【조송원 칼럼】왜 식의주(食衣住)가 아니고, 의식주(衣食住)인가?

조송원 승인 2024.04.13 14:19 의견 0

왜 식의주(食衣住)가 아니고, 의식주(衣食住)인가? 말 순서대로 중요도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먼저 나온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우리의 언어습관이다. 며칠 초라하게 입거나 아예 안 입어도 건강에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사흘만 굶어도 몸이 제 구실을 할 수 없고, 물까지 공급 받지 못하면 목숨도 위태로워진다.

더구나 옷은 내구재이다. 한 벌로 일주일을 입을 수도 있고, 일 년 아니 몇 년 치를 쟁여놓을 수도 있다. 반면에 음식은 일회용이다. 매일 매 끼니마다 새 식단을 준비해야 한다. 그만큼 품도 더 많이 들고, 생명 유지에 급선무가 된다. 영어에서는 식의주(food, clothing and shelter)로 음식을 앞세운다. 한데 우리는 왜 굳이 ‘의식주’ 순서를 고집할까?

‘의식이 족해야 명예와 수치를 안다’, 우리가 지금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출전을 따져보면, BC 7세기 춘추시대 제나라 명재상 관중의 『管子』/「목민편(牧民篇)」이다. 거기에 ‘창름실즉지예절(倉廩實則知禮節) 의식족즉지영욕’(衣食足則知榮辱)이란 구절이 있다.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입고 먹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수치를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위 구절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은 민생고(民生苦) 해결이라는 전거로 자주 인용된다. 최소한 국가공동체 구성원이 ‘헐벗고 굶주리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주해서들도 이 정도 해석에서 그친다. 필자의 관견에서는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매우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관중이 말하는 목민(牧民·백성을 다스리는 일)의 주체는 군주이다. 다산의 『목민심서』에서 말하는 지방관이 아니다.

다음으로, 예절을 알게 되는 조건과 영욕(명예와 수치)을 알게 되는 조건이 다르다. 예절은 먹는 문제만 해결되면 알게 된다. 반면에 영욕은 입고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알게 된다. 더구나 영욕을 아는 데는 입는 문제가 먹는 문제보다 앞 순위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예절을 아는 것과 영욕을 아는 것에는 등급의 차이가 있을까? 관중의 사상에서는 분명히 차이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영욕을 알려면 예절을 아는 조건에다 다른 조건을 덧붙였고, 그 덧붙인 조건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중의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입고 먹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수치를 알게 된다.’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예문 셋을 제시한다.

#1. 환공이 물었다. “민(民)이 각자 자신의 직업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소?”

관자(관중)가 답했다. “사농공상의 사민(四民)이 섞여 살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섞여 살면 말이 어지러워지고 직업이 바뀝니다.”

환공이 물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거주지를 어찌해야 합니까?”

관자가 답했다. “옛 성왕들은 사민(士民)은 한적한 곳에 살게 하고, 공민(工民)은 관부에 살고, 상민(商民)은 시정(市井)에 살고, 농민은 전야에 살게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사(士)의 자제는 언제나 사민(士民)이 되며, 공(工)의 자제는 언제나 공민(工民)이 되고, 상(商)의 자제는 언제나 상민(商民)되고, 농(農)의 자제는 언제나 농민이 되는 것입니다.” -국어/제어-

#2. 예(禮)는 귀천의 계급을 차등하고, 장유(長幼)를 차별하고, 빈부를 가볍고 무겁게 하여 모든 것이 알맞게 된다. 사(士·元士,上士,中士,下士 등의 관직) 이상에게는 반드시 예악으로 절제하게 하고, 그 외의 일반 백성들에게는 반드시 법과 죄를 물어 제재한다. -순자/부국-

#3. 옛날 한나라 소후가 취하여 잠이 들었다. 이때 관모(冠帽) 담당 관리가 추울까 염려하여, 옷을 덮어주었다. 소후가 잠에서 깨어나 기뻐하며 물었다. “누가 나에게 옷을 덮어 주었느냐?”

시종들이 말하기를 관모를 맡은 관리라고 대답했다. 소후는 옷 담담 관리와 모자 담당 관리 모두에게 벌을 내렸다.

옷을 맡은 관리는 그 직무를 태만한 죄이며, 관을 맡은 관리는 그 직분의 범위를 넘었기 때문이다. -한비자/이병- <계속>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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