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휜다'는 예측은 어디서 나왔을까?

'빛이 휜다'는 예측은 어디서 나왔을까?

조송현 승인 2017.06.02 00:00 | 최종 수정 2023.05.14 11:13 의견 0
독일 물리학계의 대부인 막스 플랑크(왼쪽)는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독일물리학회 회장인 플랑크가 1929년 '플랑크 메달'을 아인슈타인에게 수여하고 있다. 출처 : Brundesachiv
독일 물리학계의 대부인 막스 플랑크(왼쪽)는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독일물리학회 회장인 플랑크가 1929년 '플랑크 메달'을 아인슈타인에게 수여하고 있다. 출처 : Brundesachiv

아인슈타인은 1907년 중력 효과와 가속 효과를 구별할 수 없다는 ‘등가 원리(equivalence principle)’를 섬광처럼 통찰했습니다. 그는 이를 ‘생애 최고의 영감(intuition)’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만큼 ‘등가 원리’가 일반상대성이론에 이르는 열쇠이며, 만약 그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일반상대성이론 창안은 엄두를 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등가 원리를 통찰한 지 4년 후인 1911년 중력에 의한 '빛의 휨' 현상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등가 원리를 통해 놀라운 사실들을 연역해내었던 것입니다. 이들 중에는 중력이 빛을 휘게 하며, 중력장 내에서는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중력의 적색편이 현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상대성이론 발표 4년 후인 1919년 영국의 물리학자 에딩턴이 일식을 이용한 별빛 관측실험에서 사실로 확증되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일반상대성이론이 펼쳐 보이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혁명적인 진술들은 모두 등가 원리에서 연역된 것입니다. 그만큼 등가 원리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위한 강력한 무기였던 셈입니다.

중력이 빛을 휘게 하나, 아니면 공간이 굽어져 있나

이제 아인슈타인이 등가 원리를 통해 빛의 휨 현상을 통찰한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우주선 사고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승무원들이 우주선에 타기 위해 발사대의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때 엘리베이터의 왼쪽 틈에서 한 줄기 빛이 들어옵니다. 승무원은 이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온 빛이 직진하지 않고 아래로 굽어져 반대편 벽면에 부딪치는 걸 본 것입니다.

엘리베이터 왼쪽 벽면에 들어온 빛은 직진하지만 엘리베이터가 가속하는 바람에 미세하나마 아래로 구부러져 진행한 효과를 보일 것이다 (왼쪽). 가속 효과가 중력 효과와 같다는 등가 원리에 따라 아래에 중력이 작용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엘리베이터 왼쪽 벽면에 들어온 빛은 직진하지만 엘리베이터가 가속하는 바람에 미세하나마 아래로 구부러져 진행한 효과를 보일 것이다 (왼쪽). 가속 효과가 중력 효과와 같다는 등가 원리에 따라 아래에 중력이 작용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이 사고실험이 이해가 안된다고요? 무리가 아닙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상상해보겠습니다. 엘리베이트 왼쪽 틈에서 들어온 빛은 직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매순간 엘리베이터가 가속되어 위로 올라갑니다. 따라서 빛이 반대편 벽면까지 진행하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조금 올라간 탓에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빛이 직진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아래로 구부러져 진행하는 듯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우주선이 발사대에서 발사돼 큰 가속도로 지구를 탈출할 때도 관찰됩니다. 우주선이 지상 발사대에서 솟구치며 지구를 탈출할 때 우주인은 지구중력의 3~4배의 힘을 받습니다. 우주선 속도가 중력가속도 g의 3~4배로 가속된다는 뜻입니다. 동틀 무렵 한 줄기 태양빛이 우주선 창문으로 들어옵니다. 이 빛 줄기 역시 우주선 내에서 직진하지 않고 아래로 휘어져 반대편의 벽면을 비춥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같은 사고실험을 통해 가속도가 빛을 휘게 한다면 등가 원리에 따라 중력도 당연히 빛을 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우주선이 탐사를 위해 중력이 매우 큰 별에 착륙했다면, 우주선에 들어온 빛줄기는 아래로 휘어져 진행할 것입니다. 중력은 광선을 구부러지게 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이 사고실험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속도와 중력이 똑같이 빛을 휘게 한다!’ 아인슈타인이 영감으로 얻은 등가 원리는 이처럼 놀라운 결과로 확장되어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에 이르게 합니다.

하지만 중력이 빛을 휘게 한다는 이 사고실험의 결과는 놀라움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빛이 공간에서 휘는 장면을 상상해보겠습니다. 빛이 파동임을 감안할 때 곡선을 그리는 파동의 아래쪽 부분의 진행이 늦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빛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력이 빛을 느리게 한다고요?

그러나 이것은 '광속불변의 법칙'에 위배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특수상대성이론은 광속불변의 법칙을 철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자신의 위대한 이론인 특수상대성이론의 토대를 허무는 상황에 봉착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광속불변 법칙을 고수하면서 빛의 휨 현상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빛이 휘는 것일까요, 아니면 공간이 휘어져 있는 것일까요? 위의 사고실험을 통해 아인슈타인은 결국 공간의 구조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가 빛은 어디까지나 직진하는데 공간이 곡률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는 확신을 가지기까지는 몇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결국 새로운 기하학이 필요함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는 특수상대성이론을 정립할 때와 마찬가지로 일반상대성이론에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광속불변의 법칙을 신봉한 셈입니다.

중력장에서 시계가 느리게 간다

시간 지연 효과 역시 등가 원리에서 유도됩니다.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을 해보겠습니다. 엄청나게 긴 두 대의 우주선을 상상합니다. 한 대는 가속하는 우주선 A이고 다른 한 대는 강한 중력장에 세워져 있는 우주선 B입니다. 우주선 A 앞쪽에 있는 사람 a₁과 후미에 있는 a₂가 서로 똑같이 맞춘 시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주선 B의 앞과 뒤에도 각각 b₁, b₂ 두 사람이 역시 똑같은 시계를 갖고 있습니다.

a₂의 시계가 째깍째깍하는 소리에 맞추어 전자파(빛)를 발사한다고 가정합니다. 우주선 A의 속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으므로 전자파는 도망가는 a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긴 거리를 달려야만 합니다. 이리하여 a₂가 보낸 전자파는 a₁의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 간격보다 약간 긴 시간 간격을 두고 도달하게 된다(도플러 효과). 자연히 a₁은 a₂의 시계가 자신의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a₁이 이에 대응해 a₂에게 전자파를 내보내면 그 전자파는 접근해 오는 a₂를 향해 달리는 결과가 되어 차츰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도달하게 됩니다. 따라서 a₂는 a₁의 시계가 자신의 시계보다 빨리 간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같은 결론은 등가 원리에 의해 강한 중력을 받고 있는 우주선 B에도 꼭 같이 적용됩니다. B에 있는 두 사람의 경우, b₁은 b₂의 시계가 자신의 시계보다 느리게 가고, b₂는 b₁의 시계가 자신의 시계보다 빨리 간다고 생각할 것입니다(b₂는 b₁보다 중력을 더 많이 받는다). 즉, 중력장은 시계를 천천히 가게 하는 것입니다.

중력은 빛의 에너지를 빼앗는다 - 중력의 적색편이

위의 사고실험에서는 중력의 적색편이(gravitational red shift)라는 또 다른 중요한 결론이 도출됩니다. 앞에서 우리는 우주선 A의 a₂에서 보낸 전자파가 a₁에 도달하는 간격이 차츰 길어짐을 확인했습니다. 전자파가 파동임을 감안하면 a₁에 도달한 빛의 파장이 a₂에서 보낼 때보다 길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등가 원리에 의해 우주선 B의 b₂에서 보낸 전자파의 파장이 b₁에 도달하면 원래보다 길어집니다. 빛의 파장이 짧으면 보라색이나 파란색을 띠고, 파장이 길어지면 주황색이나 붉은색을 띠게 됩니다. 중력은 빛의 파장이 길어지게 해 붉은색을 띠게 한다는 것이 중력의 적색편입니다.

여기서 새겨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빛의 에너지는 파장에 반비례(진동수에 비례)하므로, 파장이 길어진다는 것은 에너지를 잃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중력은 빛의 에너지를 빼앗는 것입니다. 비단 빛뿐만 아닙니다. 우주선 로켓은 지구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합니다. 지구 중력이 로켓을 놓아주는 대가로 에너지를 요구하는 셈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태양에서 방출되는 빛도 태양의 중력에 의해 에너지를 잃을 것이라고 추론했습니다. 이때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고 파장이 길어집니다(진동수가 작아진다.). 그러므로 태양에서 나오는 노란색 빛은 태양의 중력에 의해 파장이 길어져 약간 붉어집니다. 하지만 중력 적색편이는 그 효과가 극히 작습니다. 이것은 실험적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아인슈타인은 예상했는데, 실제로 이 효과가 확인된 것은 이로부터 4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다시 쌍둥이 역설

우리는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우주선 사고실험을 통해 쌍둥이 역설을 살펴보았습니다. 서로 등속운동하는 두 우주선에 타고 있는 형과 동생은 서로 상대방이 나이를 적게 먹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우주선을 탄 형이 돌아오면(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에 가속운동이 된다.) 특수상대성이론의 전제(등속운동)를 깼기 때문에 특수상대성이론적인 예상을 적용할 수 없게 됩니다. 누가 나이를 더 먹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누가 젊어졌는가를 시원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쌍둥이 형제를 등장시켜 봅니다. 동생은 지구에 남고 형이 초고속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옵니다. 어떻게 될까요?

상대운동 관점에서 보면 우주선의 형은 동생의 지구가 가속운동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돌아롤 때 동생은 나이를 거의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까요? 아닙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말하는 시간 지연은 가속운동 하는 쪽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등속운동과 달리 가속도 운동은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지구에 남은 동생은 자신이 정지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주선을 타고 가는 형은 가속력을 분명히 느끼게 됩니다. 물론 형은 출발 때, 혹은 방향을 바꿀 때 우주선의 가속력을 중력으로 느낄 것입니다. 등가원리에 의해 가속도와 중력은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입니다. 중력은 시간지연 효과를 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이를 적게 먹는 쪽은 우주선을 탄 형입니다.

형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지구에 남아 있는 동생은 백발이 돼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실험으로도 확인된 사실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비로소 쌍둥이 역설은 해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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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관 오디세이' 저자ㆍ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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