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에 관한 진실(後篇)

최저임금에 관한 진실(後篇)

조송원 승인 2018.01.26 00:00 의견 0

미국 세인트 루이스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5달러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 세인트 루이스 공영라디오(KATELYN PETRIN)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Isidor Isaac Rabi. 1898~1988)는 핵자기공명에 관한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194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라비가 뉴욕 이스트사이드의 빈민가에서 이민자 계급의 어린이로 성장할 때였다.

라비의 친구들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묻곤 했다. 그러나 라비의 어머니는 “라비야, 오늘은 학교에서 어떤 좋은 질문을 했니?”라고 물었다. 그리고 라비의 친구들이 아닌, 라비가 노벨상을 탔다.﹡

최저임금에 관한 진실(前篇)에 이어 ... 그리고 실제에 있어서는

25년 전까지 경제학자들의 통설은,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것은 경험칙經驗則이 증명하며, 유일하게 흥미로운 의문은 ‘얼마나 많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서 새로운 연구는 이 결론에 의문을 던졌다. 그 핵심 저작은 1995년 데이비드 카드(David Card)와 알랜 크루거(Alan Krueger)의 책, 『신화와 측정 : 최저임금에 관한 새로운 경제학』(Myth and Measurement : The New Economics of the Minimum Wages)이다. 이 책은 현재의 논문 중 대부분은 결점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최저임금 인상을 옹호하는 클린턴 행정부의 노동부에서 수석 경제학자라는 크루거의 신분은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을 가열시켰다.

그 후로 줄곧 최저임금의 영향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오갔다.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희생시킨다는 새로운 연구가 나오면, 이 연구를 비판하는 다른 연구가 나왔다. 그 역逆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토론의 대부분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문제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결과적으로 빛(해결책)보다는 열기(격렬한 토론)만 낳았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연구는 최저임금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그룹으로 10대에 초점을 맞추었다. 10대의 25%는 시급이 최저임금이거나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있다.

그러나 10대는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고 줄어드는 추세이다. 현재는 미국의 전체 시간 노동의 2%도 되지 않는다. 10대의 시간 노동은 전체 최저임금 시간 노동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1979년에는 25%였다. 그러므로 10대의 소득에 관한 연구 결과로는 최저임금에 관한 전체적인 영향을 거의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의회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 보고서는 제의된 연방 최저임금 인상안이 전체 고용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10대 노동시장에서 나온 증거(그것도 선택적 증거)를 사용했다. 이런 문제점들을 제쳐두더라도,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일부 연구들이 미국에서 최저임금이 고용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더라도, 통계적으로 말하면 강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최저임금과 고용과의 관계에 대해 다른(그러나 똑같이 합리적인) 모델을 사용하면, 종종 일자리 파괴 결과는 사라진다. 이 결론은 평균 추정치를 알아내기 위해 많은 서로 다른 연구들로부터 나온 추정치를 결합한 메타연구들에 의해 입증된다. 메타연구에서 관측된 수준까지는 최저임금을 올려도 노동자들이 그들의 직장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일자리 킬러라는 증거는 희박하지만, 다른 부정적인 효과를 가진다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어느 정도 물가를 상승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다. 최저임금 노동이 재화와 용역의 비용 중에서 차지하는 몫이 적기 때문이다. 2013년 캘리포니아에 있는 도시, 새너제이(San Jose)에서 최저임금을 25% 인상했는데, 식당 가격은 1.45%밖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최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향상시킨다는 좋은 증거가 있다. 고용에 대한 최저임금의 영향을 연구한 결과는 서로 상충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들은 한 방향을 가리킨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이 향상되었고, 최저임금보다 약간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도 소득이 올랐다.

다른 나라에 대한 연구들도 최저임금이 고용을 감소시키지 않고 급료를 올릴 수 있다는 결론을 지지한다. 예를 들면, 1999년에 영국은 국민 최저임금을 도입했다. 광범위하게 그 영향을 조사한 독립 위원회는 아직 일자리 감소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2016년 정부는 25세 이상의 노동자 최저임금을 훨씬 더 높여 시간당 약 9.80달러로 정했다. 그러나 일자리가 감소했다는 강력한 증거는 없다.

2015년 독일은 현재의 가치로 시간당 약 10.30달러로 국민 최저임금을 도입했다. 이 영향에 대한 초기 연구는 일자리에 별 영향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최저임금 반대론자들은 자기들 주장의 증거로 종종 프랑스를 거론한다. 프랑스는 높은 최저임금(시간당 약 11.30달러)에 높은 실업률(거의 10%)인 나라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고용에 대한 주요 걸림돌은 아마 최저임금이 아니다. 노동제한법 때문이다.

세계의 정책입안자들은 이러한 축적된 증거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때 최저임금을 비판했던 IMF(국제통화기금)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현재는 합리적인 수준으로 정하면, 최저임금은 잘 설계된 노동 정책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추천하고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수준이란 무엇인가? 영국과 독일의 경험은 미국에 대한 토론을 위해 적절할 것 같다. 절대적인 의미에서든 중간 노동자 소득의 몫에서든 두 나라는 미국보다 최저임금이 더 높다. (아칸소나 웨스트버지니아 등 몇몇 주의 최저임금은 중간 노동자 소득에서 비슷한 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미국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상당한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50달러로 상향해도 실업률이 올라갈 것 같지 않다. 게다가 그 정도의 최저임금은 영국과 독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평균 노동자 소득과 유사한 비율을 구성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10.50달러도 1968년의 최저임금보다 적다.

얼마나 높아야 지나치게 높은 것일까?

어떤 지점에서 높은 최저임금은 일자리를 파괴하기 시작할 것이다. 문제는 정확히 그 지점이 어딘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국민 최저임금의 명백한 부정적 영향을 실증하는 오직 하나의 연구결과를 알고 있다. 다니엘 렉(Daniel Reck) 외 2인의 덴마크 경험에 대한 것이다.

덴마크인은 18세가 되면 최저임금이 40% 올라 시간당 15달러에 근접한다. 그러나 그들의 고용률은 1/3이나 떨어진다. 고용주들은 숙련도는 비슷하나 훨씬 더 적게 임금을 주어도 되는 17세를 고용하는 것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이 연구는 모든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말해 주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유사하나 더 싼 노동으로 전환할 수가 없다. 그리고 영국에서 유사한 연령관련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연구에서는 고용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곧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미국의 도시들이 제의한 조치들이 시행된다면, 최저임금이 역사상 가장 높아질 것이며 노동자 몫이 어느 때보다도 커질 것이다. 시애틀은 최저임금을 제의된 시간당 15달러 계획의 일부로서 13달러로 인상했다. 그리고 그 영향을 들여다보기 위해 워싱턴 대학교의 경제학자들에게 연구를 의뢰했다. 2017년 6월에 발표한 이 연구는 최저임금 인상이, 돕고자 의도했던 저임금 근로자들을 해쳤다고 결론지었다. 이 조치로 고용주들은 노동 시간을 줄이고 새로운 고용을 미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연구결과는 논쟁의 여지가 있고 최종적인 결론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시애틀이나 그 외의 지역에서 다른 연구결과가 많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희생시킨다는 믿을 만한 연구 결과가 나올 공산이 크다. 이것은 거의 불가피하다. 더 높은 최저임금을 위한 캠페인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비용과 편익에 대한 정밀한 평가에 따라 추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운동가들은 “생활임금”이라는 명분에 집착한다. 생활임금이란 노동자가 품위 있는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소득을 의미한다. 곧 노동 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임금이라는 경제학자의 개념과는 아주 다른 그 무엇이다. 시장 경제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품위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을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는 고용주를 만날 수 있다는 보증은 하지 않는다.

운동가들이 두 자녀를 둔 싱글맘(편모)은 시간당 20달러를 받아야 한다고 결의하고, 그들이 그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올리도록 입법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확실히 실업률은 올라갈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가 나오면, 올바른 추론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일부는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희생시키니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잘못된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연구의 결론은 최저임금의 적절한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지 최저임금을 완전히 없애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경제학자들은 연구 초점을 바꾸는 게 좋다. 연구초점을,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가 아니라 ‘최저임금의 적절한 수준은 얼마인가’에 맞추어야 한다.

임금과 빈곤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가장 강력한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입증 되었지만, 이 정책이 성취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지자들은 종종 최저임금이 빈곤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빈곤을 감소시키는 무딘 도구이다.

시급 얼마라는 식의 최저임금은 그 자체로는 시급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가계소득에 대해 알려주는 바가 거의 없다. 그들의 가계소득은 일하는 시간이 몇 시간이며, 일하는 성인이 몇 명이며, 성인 한 명이 얼마를 벌며, 부양가족이 몇 명이냐에 달려있다.

같은 시급 7.25달러라 해도, 인명구조원으로 여름에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10대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맥도날드에서 4교대로 일하는 여성은 그 의미하는 바가 아주 다르다. 연방 최저임금이 15달러가 되면, 전임 노동자(full-time worker)가 한 명 이상인 대부분의 가정은 빈곤선(poverty line) 이상의 소득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파트타임 노동자(part-time worker)로만 구성된 가정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저임금 15달러는 역사상 최고점과 비교해도 높으며, 유사한 나라들과 비교해도 높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수준은 전국적인 기준으로는 채택되지 못하고 단지 특정 도시에서만 적용될 공산이 아주 크다. 다른 말로 하면, 최저임금 그 자체로서는 빈곤을 퇴치할 수 없을 것 같다.

소득공제, 납세자의 소득과 부양자 수에 따른 연방 정부 보조금과 같은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소득공제 하나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소득공제가 가진 위험은 고용주가 연방 보조금을 임금 삭감의 구실로 사용하여 저소득 노동자를 위한 소득의 일부를 효과적으로 착복할 것이라는 점이다. 최저임금은 고용주이 이 짓을 못하게 한다.

최저임금에는 또 다른 중요한 한계가 있다. 미국은 소득배분의 맨 밑에 있는 저임금 문제는 없다. 평균 노동자의 실질 임금이 올라가면서 생기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소득분배의 상위층으로 불균형적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상위층은 이미 소득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미국은 평균 시민의 생활수준이 정체되거나 쇠퇴하는 문제로 고투하는 유일한 서구 국가는 아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좌·우파를 막론하고 포퓰리스트들은 자기본위의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널리 퍼진 불만을 이용하고 있다. 좌파 쪽에서는 이 불만이 아주 높은 최저임금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평균 노동자의 소득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세계정치를 뒤흔들어 놓은 경제 세력을 뒤집어엎을 수도 없을 것 같다. 최저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의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증거는 있다. 그러나 이런 부수효과는 그들이 평균 노동자 소득에 근접하는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없어질 것이다. 미국이 성장의 과실을 모든 국민에게 나누고자 한다면, 최저임금을 높이는 일보다 더 많은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끝>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등 저/허병민 옮김, 『최고의 석학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웅진지식하우스, 2014), 188~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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