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당 달리 '사기열전' 강독 - (3) 오자서 열전

강독 교재 : 사마천의 『사기열전』(서해클래식)
참석 : 김도훈 김시형 김영주 김정애 박선정 원동욱 이영희 이희자 장예주 정미리 진희권 최영춘 최중석

달리 승인 2021.02.27 18:03 | 최종 수정 2021.06.29 14:59 의견 0

인저리타임은 「인문학당 달리(대표 이행봉, 소장 박선정)」의 인문학 나눔 운동에 동참하면서 독자께 인문학의 향기를 전하고자 '달리의 고전강독'을 소개합니다. 달리의 고전강독(수요강독)은 지난해 4월 22일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진행했고, 새해부터 『한비자』 강독이 진행 중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바랍니다. 

인문학당 달리의 사기열전 강독 모습 [내부 현판과 합성] 

복수는 나의 힘, 큰일을 위해 굴욕을 견디다

복수를 위해 부끄러움을 참았다는 점에서 자신과 비슷한 운명인 오자서(伍子胥)에 대해 사마천은 특별한 애정을 느꼈을 것이다. 많은 열전들이 한 열전 안에서 여러명의 주인공을 다루고 있는데 비해 오자서 열전은 오자서 한 사람만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고 다른 열전에 비해 훨씬 상세하다.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초나라 평왕(平王)의 태자였던 건(建)의 스승이었다. 정성을 다해 태자를 교육했는데 건의 또 다른 스승이었던 비무기(費無忌 혹은 비무극費無極)는 어느 날 진나라의 공주를 태자의 아내로 맞이해 오라는 왕의 명령을 받고 진나라에 갔는데 엄청난 미인이니 직접 왕비로 맞이하라는 간언을 하게 되고 결국 체통도 없이 간신 비무기의 꼬임에 넘어가 진나라 공주를 자기의 아내로 들여 아들까지 얻게 된다.

기세등등한 비무기는 태자와 평왕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결국 태자를 멀리 국경지대로 내쫓고 아들의 반란까지 의심하게 된 왕은 오사를 불렀으나 거짓말을 일삼는 신하 비무기 때문에 친자식을 멀리하려 하냐고 직언을 하게 되고 분노한 평왕은 오사를 옥에 가두고 태자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비무기는 오사의 두 아들 즉 오상(伍尙)과 오자서를 불러들여 죽이려는 계책을 꾸미게 되고 큰아들 오상은 사자에 붙잡혀 결국 아버지와 죽음을 맞이하고 오자서는 분루를 삼키며 송나라로 도망쳐 후일을 도모한다.

송나라에서 태자 건을 만나 정나라, 진나라 등을 떠돌아다니면서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진나라 왕이 태자 건 일행에게 정나라를 무너뜨리게 도와준다면 정나라를 다스리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당장 머물 데조차 없었던 태자 건 일행은 정나라로 들어가 계획을 실행에도 옮기기 전에 발각되어 그 자리에서 처형되고 혼자가 된 오자서는 서둘러 정나라를 떠나게 된다.

오자서가 다음 목적지로 잡은 곳은 오나라였는데 양쯔강을 건너야 했고 뒤에는 정나라 군사들이 바짝 쫓아오는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마침 양쯔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한 어부가 배를 몰아 강을 건너게 해 주었는데 오자서는 감사의 뜻으로 차고 있던 큰 칼을 어부에게 주었다. 초나라 왕이 오자서 현상금으로 좁쌀 5만석과 작은 나라를 걸었는데 칼 따위 받지 않겠다며 오자서를 쿨하게 보내주었다.

오자서가 오나라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나라와 초나라 국경에 누에를 기르는 두 고을이 서로 누에의 최애 먹이인 뽕잎을 서로 차지하려고 여자들끼리 멱살 잡고 싸우다가 두 나라 사이의 전쟁으로 번지게 되었다. 이 전쟁은 광(光)이라는 왕자의 활약으로 오나라의 승리로 끝이 났다. 오자서는 드디어 복수 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초나라를 박살내자고 왕자 광에게 건의하지만 초나라와의 전면전에 부담을 느낀 왕자 광은 반대하게 되고 그 사이 초나라 평왕은 죽게 된다. 

Jakub Hałun, CC BY-SA 3.0
오자서 조각상[중국 소주 오자서 기념관 /Jakub Hałun / CC BY-SA 3.0]

그때 오나라의 군대가 초나라를 치러간 사이 오자서가 보낸 자객이 왕을 죽이고 드디어 왕자 광은 왕위에 올랐는데 그 이름이 바로 합려(闔閭)이다. 합려는 왕이 되자 오자서를 외무대신으로 삼고 왕이 된 지 9년 만에 초나라 수도를 함락한다. 당시 초나라 평왕의 뒤를 이은 소왕(昭王)을 잡으려 했지만 도망치고 없자 평왕의 무덤을 파내어 시체에 300번이나 채찍질을 했다. 당시 초나라의 충신이었던 신포서(申包胥)는 오자서의 절친이었지만 두 사람의 갈 길은 달랐다. 초나라를 목숨 걸고 지키려는 신포서, 초나라를 뒤엎고 말겠다는 오자서. 신포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진나라 대궐 앞에 가서 7일 밤낮을 쉬지 않고 소리 내 울었고 결국 진나라의 군대 지원을 받아낸다.

마침 그때 오나라에서는 합려의 동생이 반란을 일으키고 진나라의 군대가 오는 바람에 오자서와 합려는 초나라와의 전쟁을 접고 후퇴를 하게 된다. 이후 합려는 주변의 나라들을 공격하여 땅을 크게 넓히고 다시 초나라를 공격하여 수도를 옮기도록 만들었다. 북쪽으로는 제나라 진나라를 눌렀고 원수처럼 지내던 남쪽의 월나라도 공격하였다.

월나라와의 거듭된 싸움으로 합려도 결국 죽고 태자였던 부차(夫差)가 아버지를 죽인 월나라를 계속 공격하였다. 그러나 부차는 아버지와 달리 오자서의 말 따위 듣지 않았다. 부차는 초나라에서 망명해 온 백비(伯嚭)라는 신하를 더 신뢰하고 있었다. 왕이 계속 오자서를 멀리하고 간신 백비의 잘못된 계책을 받아들이자 오자서는 제나라 사신으로 갔다오는 길에 아들을 제나라에 두고 왔다.

백비는 이를 일러 바치고 결국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한다. 오자서는 탄식하며 나의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의 관을 짤 나무로 쓰고 내 눈을 빼서 오나라 동쪽문에 매달아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을 했다. 이 말을 들은 부차는 오자서의 시체를 가죽자루에 담아 강물에 던져 버렸는데 뒷날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그 곳에 사당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오자서가 죽은지 9년 뒤 부차는 결국 월나라 왕 구천(勾踐)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한다. 오나라는 결국 멸망했다. 오자서의 섬뜩한 유언은 결국 적중했다.

사마천은 말한다. 사람이 품은 원한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일찍이 오자서가 아버지를 따라 같이 죽었다면 하찮은 땅강아지나 개미와 무슨 차이가 있었겠는가? 그는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어 후세에 널리 이름을 남겼으니 그 뜻이 참으로 비장하구나!

<정리 = 김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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