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자 박선정의 '돈 드릴로와 함께 세상 읽기' 1 - 『화이트 노이즈』(상) : 전자기기가 아버지가 되고 신이 된 세상

박선정 승인 2021.04.30 09:14 | 최종 수정 2021.05.21 13:16 의견 0

돈 드릴로(Don DeLillo)는 1936년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에서 태어나서 자란 이탈리아 이민 2세 작가다. 토마스 핀천, 필립 로스, 코맥 맥카시와 함께 현대 미국의 4대 작가 중 한 명이자,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냉철하면서도 예리하게 담아내고 있는데, 특히 자본주의와 기술주의 및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 속에서의 폭력과 음모 대중매체와 광고, 그리고 나아가서 테러와 환경파괴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주제들을 특유의 차가우면서도 건조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인저리타임은 '돈 드릴로와 함께 세상 읽기’를 통해 그의 대표작을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현 시대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고민해보고자 한다.

2011년 뉴욕에서 돈 드릴로 [Thousand robots / CC BY-SA 2.0]

‘돈 드릴로와 함께 세상 읽기’ 첫 번째 책은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질 그의 초기 대작인 『화이트 노이즈』(1985)다.

미국의 한 소도시 대학에서 ‘히틀러학과 학과장을 하고 있는 ’잭 글레드니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현대사회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거기에서 발생하는 두 개의 커다란 사건을 통해 과학 중심의 현대사회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컴퓨터나 유튜브 등으로 바꾼다면, 35년 전에 씌어 진 소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금의 우리 사회와 가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압축해 놓은 듯하다. 가족의 유대감을 확인하고자 정기적으로 함께 영화를 보고 쇼핑을 가고 식사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족 개개인은 모래알처럼 파편화되어 있다. 심지어 가정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부마저도 각자의 비밀을 간직한 채 자신의 고민이나 속내를 공유하지 못하고 물질과 향정신의약품에 의존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드릴로는, 자본과 손을 잡은 채 인간의 편리함과 즐거움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점점 더 유혹적으로 개발 생산되고 있는 다양한 상품들과 더불어, 나날이 발전하는 기계문명에 더 많은 자리를 내 놓고 있는 현시대의 모습을 잔인하리만큼 냉정한 필체로 묘사하고 있다.

“오늘밤에 비가 올 거에요.”
“지금 오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오늘밤’이라고 했어요.”

 돈 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 표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대화의 단면이다. 아들은 끝내 아버지가 “지금 창 밖에 비가 오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해 봐”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 ‘실제로’ ‘현실에서’ 비가 오고 있느냐 않느냐는 아이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라디오에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 핵심일 뿐이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이 소설이 씌어 진 35년 전 세상에서의 ‘라디오’는 동시대 사회에서 ‘인터넷’이나 ‘유튜브’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보다는 전자기기와 숫자 통계를 더 신뢰하게 된 근대 이후 인간사의 한 비극적 단면이기도 하다. 결국, 이러한 비극은 ‘사실’과 ‘진실’을 넘어서서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기계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결과물일 것이다. 마치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과학자의 비극처럼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대신하는 자리에 대표적으로 ‘유튜브’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제 아버지와 스승에게 삶과 세상을 배우거나 묻지 않는다. ‘유튜브’에게 묻고 ‘유튜브’에서 배운다. 아이들만 그러하겠는가. 물론, ‘유튜브도 인간이 만들고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유튜브의 세계와 그곳의 사람은 ‘지금 밖에 비가 오고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은 세상과 사람들이라는 것이 드릴로의 생각이다. 그러한 세상에서 이제는 아버지와 신의 자리마저도 ‘유튜브’가 차지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길한 예감마저 감돈다.

박선정 박사

유독가스에 노출되는 사건으로 죽음을 예감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잭은 오늘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듯 대형마트로 물건을 사러 간다. 카트에 물건을 쌓아 올릴수록, 그리고 자신의 신용카드에 잔액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결재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렇게 쌓아올린 상품 값을 지불하는 계산대에서마저도 ‘사람’을 만날 수 없도록 변화하고 있다. 스캐너, 파장, 방사. 살아 있는 인간들이 죽은 기계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계산대 앞에 줄을 선 채 말없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세상이다. 세상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세상 속에서 인간인 나는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이러한 근원적 질문마저도 허락하지 않은 채 끊임없는 화이트노이즈(백색소음)로 우리를 에워싼다.

“계산대에는 홀로그래프가 달린 스캐너가 설비되어 각 상품에 든 이진수 암호를 오류없이 해독한다. 이것은 파장과 방사의 언어이고, 죽은 자들이 산 자들에게 말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여기는 나이에 상관없이 카트 속에 알록달록한 물건들을 잔뜩 실은 채 우리 모두가 함께 기다리는 곳이다.”

<영문학 박사 / 인문학당 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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