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세상 22 - 인본이 본 세상】 세계도시를 꿈꾸다-과학과 문화의 엑스포를 기대하며, 안진우

세계도시를 꿈꾸다-과학과 문화의 엑스포를 기대하며 / 안진우(경성대학교 메카트로닉스공학 교수)

인본세상 승인 2023.08.17 11:31 | 최종 수정 2023.08.18 11:47 의견 0

필자는 이제 30여 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하는 즈음에 있다. 돌아보면 매일의 치열한 삶과 일 년의 짧음을 느끼며 지내온 세월이 결코 만만치는 않았다. 그러나 회한과 보람이 겹치는 것은 나 자신의 불완전하지만 열심히 살아 온 소중한 삶의 결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간 많은 학생을 가르치면서 과연 교육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문하곤 하였다. 많은 것을 주기 위해 모자람을 꾸짖기만 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감싸는 데 부족함이 없었는지? 자신의 논리만 앞세우지는 않았는지? 공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공학의 핵심 가치인 삶의 편의성과 가치창조라는 화두도 결국 우리가 행복할 때 완성되는 것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잘 전달하고 있는지? 나의 행복과 이웃의 행복, 나아가 사회의 행복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흔히 선진복지사회로 북유럽 국가들을 언급한다. 그들도 행복이라는 화두를 두고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근대에 와서는 외부와의 교류에 소극적이고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둔감하게 그리고 폐쇄적으로 살아오며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지금은 우리 앞 세대의 피나는 노력으로 우리의 존재를 어느 정도 나타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 산재한 비민주적, 비효율적 요소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관습과 타성을 찾아내고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의 행복, 가족의 행복, 사회의 행복은 나의 노력과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자명한 원리이다. 한때 ‘잘살아 보세’라는 사회적 구호로 경제적 부유함에 큰 가치를 두고 매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싶은 경제력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도 이제 알게 되었다. 타인을 배려하는 높은 도덕적 기준과 우리가 창조하고 누리는 문화적 자산이 우리의 자긍심이 되고 이를 통해 보편적 교양을 지닌 세계시민이 되어야 하는 필요성도 체감하고 있다.

부산은 한반도의 최남단 도시이며 바다와 맞닿아 있어 물류와 인적교류의 최적지이다. 따라서 예전부터 교역의 중심지이면서 외부 세계와의 접점지이고 외부 침입자의 도발 경로이기도 하였다. 지금의 개방사회에서는 물류와 사람이 만나는 중심지로서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부산 사람이면 모두 개최를 희망하는 2030 엑스포도 인적 물적 교류의 장으로서 우리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엑스포는 우리가 이룬 과학적 문화적 성취를 확인하고 미래를 꿈꾸는 축제의 장으로 월드컵, 올림픽과 더불어 세계적인 축제이다. 우리 부산은 이미 월드컵과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으며, 이제 마지막 고리인 엑스포를 통해 부산의 진정한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엑스포는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하여 많은 나라가 자국을 홍보하기 위해 개최하였고, 초기에는 주로 런던과 파리에서 열렸다. 1928년 파리협약에 의해 국제박람회기구를 창설하여 장소와 시기 등을 조율하였으며, 이후 엑스포는 일반박람회와 전문박람회로 구분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세계박람회 개최 간격의 문제가 원활하게 조정되지 못하면서 두 세계박람회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이에 국제박람회기구는 1988년에 세계박람회 개최 기간을 조정하였다. 이 개정안에 의하면, 세계박람회의 성격과 기간, 주최국의 의무 사항, 개최 규모, 개최 횟수에 따라 등록박람회와 인정박람회로 구분했다. 2030 엑스포와 같은 등록박람회가 더 선호되는 것은 그 규모와 권위에서 더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1889년 파리엑스포를 위해 설치한 에펠탑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가 엑스포의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20세기의 문을 열면서 자신만의 기술과 문화를 자랑하는 성대한 잔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파리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에펠탑은 평지 위의 거대한 철제구조물로서 자신들의 건축 기술을 자랑하는 기회가 되었다. 탑의 높이는 300m에 달했으며 박람회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건축가인 귀스타브 에펠이 건설을 주도했는데 완공된 시점으로부터 20년 동안 건축물을 유지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다. 공학자인 모리스 쾨슐랭, 에밀 누기에가 구조 설계를, 스테팡 소베스트르가 건축을 담당했다. 에펠탑 건설은 1887년 1월부터 1889년 3월까지 2년 2개월 동안 진행되었으며 숙련된 인부들이 250여 만 개의 리벳을 활용하여 18,038개의 철제 조각들을 조립했다. 에펠탑은 건설 당시 특이한 디자인 때문에 여러 지식인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건축물 안에 3층에 걸친 전망대가 설치되면서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박람회 개막 당시에는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구불구불한 좁은 계단을 타고 전망대에 올라야 했다. 박람회 기간 동안 190만여 명의 관광객들이 에펠탑을 방문했다. 에펠탑은 박람회 폐막 이후에 철거될 위기에 몰렸다가 1904년에 프랑스군의 무선통신 송신시설이 설치되면서 방송탑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1909년에는 파리시가 에펠탑을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하면서 오늘날 우리도 방문하여 그 위용을 바라보며 130여 년 전 프랑스의 철강과 건축기술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국가와 도시의 가치는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그 도시를 가꾸고 역량을 보일 때 비로소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그간 부산은 한국의 제2도시라는 외형적 기준에 안주하였으나 이마저 이제 인천에 추월당할 지경이며, 도시에 머무를 이유와 매력이 점점 줄고 있다. 한때 수출주도형 시기에는 국내 제일의 무역항으로, 중화학공업을 주축으로 하는 경제개발 시기에는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도시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3차,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존재감을 점점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무엇을 통해 우리의 가치를 보여줄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적 성과는 국가 전체가 같이 노력하여 보여주어야 할 것이며, 우리 부산의 역할은 그 보석들을 어떻게 엮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지역적 특성과 부산의 고유문화를 방문객들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콘텐츠를 잘 구성해야 할 것이다. 산과 바다, 그리고 예부터 살아온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보이는 작업은 그간 바쁘게 살아온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즉, 우리 삶의 터가 안전하고 편리하며 국제적 규범과 맞닿아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전통 유산과 문화가 보편적 진리와 부합하고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자칫 자신의 주장만 내세워 포용적이지 못하고 배타적이 된다면 우리만의 잔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엑스포는 문명과 문화의 성취를 보여 주기 위해 많은 아이디어와 노력을 담았다. 1차 산업혁명기에는 기계문명의 발전을 보여 주었으며, 이때 기술력의 결과인 에펠탑, 증기기관 등이 주목을 받았다. 2차 산업혁명기에는 전기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기술적 진보의 산물인 엘리베이터, 전화기, 전구, 축음기, 비행기, 녹음기 등을, 3차 산업혁명기에는 무선전화기, 정보통신기기 등을 선보여 관람객들에게 즐거운 꿈과 희망을 선사하였다. 1970년대는 정보기술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화 기반 지식정보 기술의 발전, 소위 소프트웨어 기반 기술혁신의 시기로 이를 대변하는 기기들이 선보였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우리가 준비하여 보여줘야 할 것이 무엇일까? 지금의 산업시대는 가상 세계와 실제 세상을 연결하는 소통혁신의 시기로, 인간과 사물이 다양하게 소통하는 인공지능 기반의 지능혁명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장점인 고도의 생산기술과 연계하여 우리가 꿈꾸던 미래가 성큼 다가오도록 실현하는 능력을 활용한다면 이러한 바램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올해 말 예정된 엑스포 선정투표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2030 엑스포가 국가적으로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임을 만방에 보여주는 빅 이벤트가 되고, 지역적으로는 산과 바다, 산업과 문화가 어우러져 있는 부산이 세계적 도시로 우뚝 서는 기회가 되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화를 사랑하고 문화적 자긍심을 가진 세계시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안진우 교수

◇ 안진우

경성대학교 공과대학 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산업자원부(에너지기술평가원) 에너지고급인력양성사업 센터장

과학기술훈장 웅비장(2016), 부산과학기술상(2011), 부산문화상(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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