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지리산 산책 (23)화개골을 찾은 파리의 여인들

조해훈 승인 2019.06.04 16:12 | 최종 수정 2019.06.04 16:32 의견 0
④존슨(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하이디가 목압서사에 전시 중인 고서 등을 본 후 필자(왼쪽)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존슨(가운데)과 하이디가 목압서사에 전시 중인 고서 등을 본 후 필자(왼쪽)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짬이 날 때마다 집 인근의 하동야생차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방문객들을 안내하거나 전시 관련 설명을 해준다. 이달 30일까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고운 최치원 특별전’을 하고 있어 학생들이나 차인(茶人)들이 단체로 관람할 경우 특별전에 대한 해설을 해준다. 이날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오후에 외국인 여성 2명이 전시실로 들어와 주춤하는 것도 없이 바로 관람을 했다. 좀 있다 데스크에 있는 필자에게 다가와 리플렛을 요구하기에 건네주고는 “방명록에 좀 적어달라”고 했다. “화개 차에 관심이 있어 왔다”고 적었다. “잘 오셨다”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모두 40세로 미국인이지만 프랑스로 시집을 가 현재 파리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한 사람은 이름이 존슨이고 다른 한 사람은 하이디로 친구인 두 사람 모두 40세였다. 이들에게 필자가 차를 우려주곤 “화개 차의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맛이 아주 좋다”고 응답했다.

프랑스 파리서 찻집 운영 중인 여성 2명

필자가 “예전에 파리에 머물 때 오데옹거리의 오데옹호텔에 있었다”고 하자, “바로 인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로테르담성당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녀들도 “반갑다”고 환하게 말했다.

필자가 “그 당시 바로 옆에 있던 서점 ‘세익스&캄퍼니’에 매일 들렀다”고 하자 그녀들도 “그 서점에 자주 간다”고 했다. 필자는 “원래 그 서점이 있었던 곳과 서점을 처음 연 미국인 여주인과 헤밍웨이, 그리고 아일랜드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 등의 관계와 소설 <율리시스>가 그 여주인의 지원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한참 이야기 하자 “아, 그랬군요”라며, “이런 골짜기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내용까지 다 아느냐?”고 신기해 했다.

①파리에서 온 존슨(오른쪽 첫 번째)과 하이디가 하동야생차박물관에서 장혜금 학예사 등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파리에서 온 존슨(오른쪽)과 하이디가 하동야생차박물관에서 장혜금 학예사 등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들은 “천년 차나무가 있는 곳에 가려면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그곳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다”고 했다. “천년 차나무는 몇 년 전에 죽었다”고 말하자, “알고 있다. 그래도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박물관 장혜금 학예사가 필자에게 “괜찮으시면 동행하면서 설명을 좀 해주십시오”라고 해 필자의 차로 안내를 했다.

정금리 도심마을로 들어가 도심다원의 차산으로 차를 몰고 올라가다 너무 가팔라 중간쯤에 있는 체험관에 차를 세웠다. 이제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그녀들은 “차밭 풍광이 너무 좋다”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허망하게도 표지석이 대신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화개골의 차의 역사에 대해 한참 설명을 해주었다. 필자는 지난 해에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인 『석당논총』에 「한시를 통해 본 하동 화개 차의 제 양상」 주제의 보잘 것 없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화개 차의 역사를 정리한 바 있었다.

설명을 마치자 이들은 “이 도심다원 차밭을 경영하는 분의 집에 가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박물관에서 출발하기 전에 도심다원에 “외국인들과 천년 차나무를 보러 가도 되겠느나?”고 전화를 해놓은 상태였다. 차산에서 내려오면서 “집에 가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니, 흔쾌하게 “오시라”고 했다.

천년 차나무 터 답사 후 도심다원 방문

도심다원의 오시영 사장님과 사모님이 반가이 맞아주셨다. 오 사장님의 큰아들인 다곡(茶谷) 오세홍(40) 씨와 며느리인 정경진 씨까지 마당에 나와 있었다. 차방에 들어가니 다곡이 차를 우려주었다. 다곡은 부산의 모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인재이지만 차가 너무 좋아 고향으로 돌아와 차농사를 짓고 있다.

10대 째 차농사를 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도심다원의 차는 화개골에서도 맛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해 여름에는 이낙연 총리가 도심다원에 와 차를 마시고 가는 등 화개골을 찾는 VIP들은 모두 이 다원에 들러 차밭을 구경한 후 차맛을 보고 가는 것이다.

다곡이 여러 차맛을 보여주자 이들은 “차맛이 아주 좋다. 차를 좀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녹차 1kg을 구입하였다. 이 집의 인심이 워낙 후하여 차값도 싸게 해준데다 양도 1kg보다 훨씬 많이 주었다. 존슨 씨는 파리 시가지에서 남편과 큰 찻집을 운영한다고 했다. 중국차와 대만 차는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도심다원에서 환대를 받은 이들은 “붓당골은 어디냐?”고 물었다. 필자는 “여기서 가깝다. 가보고 싶으냐?”라고 물으니. “가능하면 한 번 가고싶다”고 말했다. 붓당골 김종열(56) 사장에게 전화를 하니 “오시라”고 했다. 모암마을에 있는 붓당골로 차를 몰았다. 붓당골 김 사장은 홍차와 발표차를 맛보여주었다. 이들은 좀 구입할까,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 달 5월10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된 제22회 하동야생차문화축제 때 붓당골 차가 수제 덖음차 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고 설명했다. 고민하던 그녀들은 붓당골의 발효차를 1kg 샀다. 그러자 김 사장이 ”제 차를 사 주어 고맙다는 뜻으로 저녁을 사겠다“며, ”바로 옆이 모암휴게소 식당이다“고 말했다. 그래서 모암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었다.

모암마을에 있는 모암휴게소에서 존슨과 하이디가 김종열(오른쪽) 붓당골 사장 및 필자(왼쪽 첫 번째)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모암마을에 있는 모암휴게소에서 존슨과 하이디가 김종열(오른쪽) 붓당골 사장 및 필자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붓당골서 저녁 먹은 후 화개제다로

저녁을 먹은 후 존슨과 하이디와 함께 화개제다로 갔다. 화개제다는 화개골에서 처음으로 차공장을 설립해 상업화를 꾀한 곳이다. 화개제다 설립자인 홍소술(90) 명인이 아직 생존해 계시고, 그 분의 아들 둘이 대를 이어 차를 만들고 있다. 홍소술 명인의 장남인 홍순창(61) 화개제다 상무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부산에서 학교를 나와 부산 부산진구 구의원을 역임했다. 차에 대한 것은 물론 화개의 역사 및 문화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는 화개제다의 명품 차의 하나인 옥로차를 우려 내놓았다. 홍 상무는 이들에게 “차는 양을 좀 넉넉하게 넣어 뜨겁게 우려 마셔야 제대로 된 차맛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콩에 가루차와 꿀을 넣어 직접 제조하여 음식을 내놓았다. “이 음식은 한끼 식사로도 가능하다”며, “내일 아침에 식사로 이것을 먹으라”고 존슨과 하이디에게 포장해주었다. 홍 상무는 말을 재미있게 해 항상 주변을 유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들은 여기서도 차를 좀 구입했다. 홍 상무는 “감사하다”며, 구입한 차 외에 다양한 차 및 여러 선물을 이들에게 주었다. 그는 “내일 아침에 여기로 오라. 그러면 악양에 있는 화개제다의 차밭을 보여주겠다”고 하자 이들은 “좋다”고 했다. 화개제다서 한참을 놀다 필자의 집인 목압서사로 함께 왔다. 존슨이 “목압서사가 어디냐?”고 묻길래 “내 집에 있다. 가보고 싶나?”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 것이다.

이들은 목압서사에 오자마자 “오래된 고서를 보고싶다”고 했다. “목압서사에서 지금의 책과는 다른 오래된 고서들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목압서사 고서 보며 감탄

목압고서박물관과 목압문학박물관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목압고서박물관에 전시중인 고서들을 보게 하였다. 필자는 “이 공간은 정부로부터 정식 박물관 등록허가를 받은 곳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을 위한 미니 사설 박물관”이라고 말했다. 목압서사 내의 고서박물관과 문학박물관은 지난 4월10일부터 7월 9일까지 <사서삼경>과 <지리산의 시인과 작가들>을 주제로 각각 전시 중이다.

이들에게 고서들을 만져보게 하였다. 이들은 “고서는 어떻게 만들며, 이 책들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 역시 설명을 해주었다. 밤 늦게까지 이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반 농가에서 차를 만드는 과정을 알고 싶다”고 해 좁고 초라한 필자의 차 작업장에 데리고 가 차솥을 보여주며 덖고 비비고 건조하는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존슨(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하이디, 필자(오른쪽 첫 번째)가 화개제다에서 홍순창(왼쪽) 상무가 우려주는 차를 마시고 있다.
존슨(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하이디, 필자(오른쪽)가 화개제다에서 홍순창 상무가 우려주는 차를 마시고 있다.

자리를 파한 후 이들이 켄싱턴리조트에서 숙박하고 있다고 해 데려다 주었다. 이튿날 오전에 이들을 조태연가에 데려다주었다. 필자는 일이 있어 “이들이 여기서 일을 다보고 나면 화개제다에 좀 데려다 주십시오”라고 조태연가에 부탁을 했다. 점심 때쯤 화개제다에 가니 이들이 와 있었다. 화개제다 홍 상무는 “이 분들께 먹이기 위해 아침에 일부러 차밭에 가 따 온 찻잎”이라며, 큰 믹서기에 찻잎과 요구루트, 우유 등을 넣은 후 갈아 주스로 한 컵씩 내놓았다. 마셔보니 맛이 괜찮았다. 이들도 좋아했다.

화개제다 차밭 구경 후 부산으로

홍 상무는 이들을 화개제다 차밭에 데리고 가 구경시킨 후 나중에 필자와 합류하기로 했다. 오후 5시쯤 홍 상무로부터 “농협주유소 앞 은성식당에서 참게가리장으로 저녁을 먹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는 전화가 와 “그럽시다”라고 했다. 은성식당은 얼마 전에 악양정에서 일두 정여창 선생에 대한 석채례를 올린 후 점심을 먹은 곳이다. 식당으로 가니 악양면에 사는 전 EBS 촬영감독님도 와 계셨다. 존슨과 하이디도 참게가리장이 맛있다며 두 그룻씩 먹었다. 그렇게 저녁을 맛있게 먹은 후 이들을 켄싱턴리조트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내일 아침에 부산으로 떠난다고 했다.

<역사한문학자·교육학박사/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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