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22)‘차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정담

조해훈 승인 2019.05.28 09:26 | 최종 수정 2019.05.28 09:39 의견 0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 멤버들이 정 모씨 집에서 염소 고기를 먹은 후 화개제다로 와 녹차를 마시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웃고 있는 사람이 홍순창 화개제다 상무이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 멤버들이 화개제다에서 녹차를 마시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웃고 있는 사람이 홍순창 화개제다 상무이다.

26일 오후 경남 하동군 화개면 소재지 앞 도로에 있는 남도대교를 건넜다. 다리 건너 왼쪽은 전남 광양이고, 오른쪽은 전남 구례이다.

길이 358.8m인 남도대교는 2003년 7월 29일 개통됐다. 이 다리가 개통되기 전에는 줄배를 이용하여 섬진강을 건너 다녀야 하는 등 인근 주민들의 불편이 컸다. 줄배 이전에는 나룻배가 양 지역 사람들을 실어날랐다고 한다.

특히 화개면 탑리에 소재한 화개장터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발원한 화개동천이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신의 지역에서 생산된 물산을 교환하는 장터가 오래전에 화개면 소재지에 형성된 것이다. 매달 1일과 6일에 오일장이 서다가 6·25전쟁을 겪으면서 이 일대가 황폐해지자 화개장이 쇠락했다.

현재의 화개장터는 하동군이 2001년 9월 상설 관광형 시장으로 개장한 것이다. 이후 2014년 11월에 화재가 발생한 탓에 복구공사를 벌여 2015년 4월에 재개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수 조영남이 노래 <화개장터>를 불러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다리를 건너 구례군 간전면 쪽으로 조금 가다 도로가에 있는 정 모(65) 씨 집으로 갔다. 벌써 여러 사람이 와 있었다. 정 씨가 염소를 한 마리 잡아 오늘 오후 5시에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회장 백경동) 멤버들에게 한 턱 낸다는 것이었다.

남도대교가 섬진강 위에 무지개처럼 떠 있다. 화개장터가 있는 왼쪽에서 다리를 건너면 전남 광양과 구례이다.
남도대교가 섬진강 위에 무지개처럼 떠 있다. 화개장터가 있는 왼쪽에서 다리를 건너면 전남 광양과 구례이다.

의신마을의 조봉문 씨와 신흥마을에서 펜션을 하는 다른 한 분이 숯불에 고기를 굽고 계셨다. 조 씨는 모 TV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하는 등 여러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어 화개골에서는 유명인사다. 그는 “천왕봉에 있다 내려왔다”고 말했다.

10여 명의 모임 멤버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필자도 이들과 함께 구운 고기와 뼈를 우려낸 진국을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멀리서 오거나 다른 사정이 있는 사람들은 먼저 자리를 떴다. 남은 사람들은 차를 마시기 위해 남도대교를 건너 화개장터 앞에 있는 화개제다로 갔다. 화개제다에서 장터쪽으로 있는 2층 건물인 목요갤러리로 들어갔다. 화개제다에서 관광객들에게 녹차를 무료로 시음케 해주는 곳이었다.

홍순창 화개제다 상무가 차를 준비했다. 그는 화개제다의 창업자인 홍소술 명인의 장남으로, 귀향하기 전에 부산의 부산진구 구의원을 역임했다고 했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니 차가 빠질 수 없었다. 필자도 기름기 많은 염소 진국을 먹어 속이 편하지 않아 차를 여러 잔 마셨다. 홍 상무는 오늘 염소를 준비한 정 씨 등과 최근에 필리핀의 민도르 섬에 있는 산호세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좌중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필자는 이 모임의 성격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두 가지로 정리됐다. 첫째는 화개골에 거주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평소에 차를 늘 마시고, 말 그대로 차를 사랑하고 그 가치를 존종하는 전국적인 차인들의 친목모임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모임을 통해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들 중 차에 대한 정책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으면 채택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하동군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남도대교 건너 구례 쪽 방향에 있는 정 모씨 집에서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 멤버들이 염소구이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목요갤러리에서 차를 마시면서 서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다 다음 달에는 악양면에 있는 악양루에서 ‘들차회’(Field tea meeting)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몇 사람이 약식 찻자리를 마련해 함께 차를 나눠 마시자는 것이다. 어느 사람이 “그날 찰밥을 내가 쪄오겠다”고 하자, 다른 한 사람은 “그럼 김치는 내가 준비해 오겠다”고 화답했다.

늦은 시간까지 찻자리를 하다 파하고 바깥에 나오니 낮에 덥던 날씨가 지리산 골짜기답게 선선했다. 화개골의 차가 타 지역에 비해 효능이 좋은 데는 이처럼 일교차가 크다는 사실도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한문학자·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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