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138) 경남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정암 이형규 선생님 댁 현판식 열려

아흔 아홉 칸 본채 '은한당', 차 마시는 공간 '품엄재'
61년 전 구입 거주…43년 간 하동군 초등학교 재직
주민 최성무 씨 "악양서 첫 현판식, 지역의 기쁜 일"

조해훈 기자 승인 2023.09.07 12:25 | 최종 수정 2023.09.13 10:45 의견 0

지난 3일 경남 하동군 악양면 정서로 38-1 소재 정암(亭巖) 이형규(李亨圭·90) 선생님 댁에서 현판식이 열렸다. 현판은 2개였다. 아흔 아홉 칸 집의 본채 건물에 걸린 당호는 ‘은한당(隱閒堂)’이고, 아래채의 차 마시는 공간은 ‘풍엄재(風俺齋)’이다.

현판식 거행 모습. 사진= 이형규 선생님 가족 제공
현판식 거행 모습. 사진= 이형규 선생님 가족 제공

이 집은 대지 500여 평에 현재 기와 건물로는 본채만 남아있다. 본채 천장의 마룻대(上樑·상량)에 적힌 상량문을 보면 1926년에 지어진 건물로 아래채와 대문 등은 다른 곳으로 팔려나갔다. 원래 이 집의 주인이 건축비로 너무 많은 비용을 들인 탓에 경제적으로 힘들어 본채 외의 다른 건물들을 팔아버린 것이다. 건축된 지 100년이 다 된 집으로, 이형규 선생님이 61년 전에 구입해 지금까지 계속 수리를 하면서 살고 계신다.

이형규 선생님은 1955~1998년 하동군 관내 초등학교에서 43년간 교사로 봉직하셨고, 지금도 건강하신 편이다. 본관이 합천으로, 부친 이장수(李長壽)님과 모친 남아기님 사이에 장남으로 악양면 중대리에서 출생하셨다. 18세에 하동읍 호암리 출신의 한살 위인 박연주님과 결혼해 슬하에 3남 4녀를 두셨으며, 증손자까지 보셨다.

가족들이 재배를 하는 모습. 사진= 이형규 선생님 가족 제공
가족들이 재배를 하는 모습. 사진= 이형규 선생님 가족 제공

이날 오전 11시에 현판식이 시작됐다. 이형규 선생님의 자식들과 손자들까지 참석했다. 악양면 유도회의 홍산 김소식(84), 덕천 강병택(82), 학정 박민규(82), 농암 최성무(80), 심인보(71) 어르신들이 참석하셨다. 하동읍내에 사시는 신양순(83) 선생님도 참석하셨고, 마을 주민들도 여러분 자리를 함께 하셨다. 이날 참가한 모두 30여 명이었다.

이날 집례(진행)는 필자가 맡았다. 먼저 개회사를 한 후 집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한 후 이형규 선생님에 대한 소개를 했다. 그런 다음 현판을 걸게 된 연유와 그간의 경과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이형규 선생님이 인사말을 하시는 모습. 사진= 이형규 가족 제공
이형규 선생님이 인사말을 하시는 모습. 사진= 이형규 가족 제공

이어 이형규 선생님께서 인사말을 하셨다. 선생님은 “이 집의 역사가 100년이 되었는데도 그동안 집의 이름이 없었는데, 마침내 오늘 당호를 얻게 돼 너무 기쁩니다. 오늘 축하해주시기 위해 참석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장남인 이병한 선생(61)도 인사말을 했다. 그는 “아버님께서 이 집에 너무 애정을 많이 쏟고 계십니다. 아버님의 뜻을 잘 받들어 이 집이 앞으로 잘 보존되고 많은 사람들의 힐링 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만전의 노력을 기하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큰 아들 이병한(61) 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이형규 가족 제공
큰 아들 이병한(61) 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이형규 가족 제공

악양면 주민을 대표해 농암 최성무 선생님이 축하의 인사말을 했다. 그는 “제가 알기로 우리 악양면에서 고택 현판식을 하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악양면 주민으로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인품이 고매하시고 지역에서 많은 동량을 길러내신 정암 선생님 댁에 현판식을 계기로 자손들에게도 더 좋은 일들이 많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제주(祭主)인 이형규 선생님이 재물을 차린 상 앞에 앉아 집례자인 필자가 따라주는 잔을 받아 올린 다음 고개를 숙였다. 필자가 축문을 읽었다. 현판식을 계기로 이 댁에 복이 많이 들어오기를 축원한다는 내용이다. 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참가자들이 은한당(隱閒堂)을 가린 커튼을 걷어내고 있다. 사진= 이형규 선생님 가족 제공
참가자들이 은한당(隱閒堂)을 가린 커튼을 걷어내고 있다. 사진= 이형규 선생님 가족 제공

“維歲次(유세차)

癸卯陰曆孟秋(七月)朔十九日申時 祭主 李亨圭 敢昭告于(계묘음력맹추(칠월)삭십구일신시 제주 이형규)

天地神明 土地之神 家宅之神 竈王大神神位 삼가伏望(천지신명 토지지신 가택지신 조왕대신 신위 삼가복망)

今爲玆涓吉日 懸板式 隱閒堂 風俺齋(금위자연길일 현판식 은한당 풍엄재)

神其保佑俾無後難 千洋雲集 子孫萬代壽福康寜 大吉祈願(신기보위비무후난 천양운집 자손만대수복강령 대길기원)

謹以淸酌脯醯祗荐于神 尙饗(근이청작포혜지천우신 상향)”

은한당 아래채로 차 마시는 공간인 '풍엄재(風俺齋)' 현판. 사진= 이형규 선생님 가족 제공
은한당 아래채로 차 마시는 공간인 '풍엄재(風俺齋)' 현판. 사진= 이형규 선생님 가족 제공

축문의 뜻은 대충 다음과 같다.

“유세차(이 해의 차례, 축문과 제문 등에 쓰는 관용어)

2023년(계묘년) 음력 맹추(칠월) 십구일(양력 9월 3일) 신시(오전 11시)에 제주 이형규가 감히 밝혀 아룁니다.

천지신명님과 땅을 관장하시는 신, 집안을 보살펴 주시는 신, 부엌을 관장하시고 불을 다루시는 신들께 삼가 엎드려 바라옵니다.

길한 날짜를 가려 뽑아서 지금 은한당과 풍엄재의 현판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신들께서는 앞으로 별 어려움이 없도록 이를 보우해주시옵소서. 그리고 좋은 일들이 큰물처럼 밀려들게 해주시고, 자손만대 수복강령하게 해주시고, 크게 길하고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게 해주시옵소서.

이에 삼가 맑은 술과 음식을 정성들여 마련해 공경하며 신명님들께 올리니 부족하지만 흠향하시옵소서.“

은한당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 사진= 이형규 선생님 가족 제공
은한당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 사진= 이형규 선생님 가족 제공

필자의 축문 낭독에 이어 이형규 선생님이 두 번 절을 하셨다. 그런 다음 가족, 악양면 주민, 행사 준비자들이 재배(再拜)하였다.

이어 필자가 현판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은한당’은 ‘선비가 조용히 은거하며 자연과 벗하며 지내는 집’이며, ‘풍엄재’는 ‘어리석은 바람이 숨어 지내는 공간’이란 의미이다.

가린 천을 개봉하는 현판식이 거행되었다. 왼쪽 줄은 가족들이 잡고, 오른쪽 줄은 마을 주민들과 행사 기획자들이 잡았다. 필자의 “하나, 둘, 셋” 소리에 맞춰 천을 개봉하였다. 행사를 다 마친 후 참가자들은 풍엄재로 들어가 가족들이 푸짐하게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다들 다시 한 번 더 이형규 선생님과 가족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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