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36) 청암치안센터 소장 출신의 '지리산 도사' 청암면 원묵계의 양영욱 삼우당(三友堂) 방장

고향인 청암면치안세터 소장 지내고 베풂 삶 살아
꽁지머리 하진 않았지만 심성은 지리산 도사
고향집인 휴암운창 차방인 삼우당 손님 끓어

조해훈 기자 승인 2023.07.26 17:50 | 최종 수정 2023.07.30 15:06 의견 0

지리산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필자가 화개골에서 주민들을 위한 재능기부 차원에서 ‘목압서사(木鴨書舍)’라는 서당을 운영하고, 차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강의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또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압서사를 방문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느끼는 점은 역시 지리산 곳곳에 도사(?)가 많이 산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리산 청학동마을 인근의 하동군 청암면 원묵계의 차방(茶房) ‘삼우당(三友堂)’에서 차를 마시곤 한다. 삼우당(三友堂)의 방장은 이곳 고향집인 ‘휴암운창(休岩芸窓)’에 거처하는 휴암(休岩) 양영욱(梁泳郁·62) 씨로 내가 만난 '지리산 도사' 중 한 사람이다. 운창’이란 향내 나는 서재(書齋), 또는 책을 숨겨놓은(藏書·장서) 곳을 말한다.

대숲에 자신이 붓으로 써 이름표 처럼 붙여놓은 사자성어를 설명하는 휴암 선생. 사진=조해훈
대숲에 자신이 붓으로 써 이름표 처럼 붙여놓은 사자성어를 설명하는 휴암 방장. 사진=조해훈

물론 다른 장소에서 휴암 방장을 만난 횟수는 더 많다. 필자는 그동안 그를 보아오면서 ‘아, 이런 분이 도사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사든 누구든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하다못해 자신이 사는 마을에라도 도움이 되고 필요한 사람이어야 한다. 수염 기르고, 꽁지머리를 한 채 남에게 폐를 끼치고 좋지 않은 소리를 들으면서, 소위 폼(?)만 잡는다고 도사가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휴암 방장은 참 도사 반열에 드는 사람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휴암운창(休岩芸窓)을 찾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차를 얻어 타고 가 지금도 혼자 간다면 찾을 자신이 없다. 갈 때마다 동행인들이 달랐다. 참 깊은 골짜기이다. 휴암 방장은 “제 거처는 증조부 때부터 살던 집”이라고 밝혔다. 예전에는 이 골짜기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살았듯이 자그마한 토담집이었다. 그가 직장에서 명예퇴직한 후 직접 조금씩 손을 봐 다소 편리한 공간이 되었다. 부산고등학교장과 부산영재교육원장을 지낸 조갑룡(72) 원장 등과 며칠 전 휴암운창을 또 찾았다.

자신이 직접 지은 차방인 삼우당 앞에 선 휴암 선생. 사진=조해훈
자신이 직접 지은 차방인 삼우당 앞에 선 휴암 방장. 사진=조해훈

그곳에 가면 차를 마시는 독특한 차방(茶房)인 ‘삼우당(三友堂)’이 있다. 무너진 사랑채에서 나온 자재를 이용해 혼자 힘으로 삼우당을 지어 개성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원형의 구조로 서까래를 놓고, 흙벽을 바르고 구들까지 놓았다. 조명까지 아름답다. 이 차방에 들어오는 사람치고 감탄을 하지 않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벽에는 유명 동양화가가 그린 소나무와 글씨가 방문인의 눈길을 끈다.

이날도 차방에서 차를 마신 후 그의 안내로 거처 뒤 대숲으로 올라갔다. 대밭이 1만 평이 넘는다. 대밭에 들어서는 순간 대나무의 서늘한 기운이 몰려들어 머리가 상쾌하였다. 그는 혼자 있을 때 곳곳에 평상을 여러 개 만들어놓아 이곳에 앉아 마음 수양을 한다. 또한 방문객들을 위하여 대숲에 길을 내놓았다. 평지가 아닌 산인데 그 많은 대나무를 잘라낸 그의 노고를 생각하니 정말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대숲 길에 각종 경전이나 고전 등에서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사자성어 108종을 발췌해 이름표를 달 듯 적당한 간격을 두고 대나무에 달아놓았다. 직접 붓으로 썼다. 명색이 역사와 한문전공자인 필자도 대나무에 걸린 사자성어 중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는 방문객들에게 일일이 고사성어의 뜻에 대해 설명해준다.

휴암 선생와 대숲 길을 걷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조갑룡 선생, 필자, 휴암 선생. 사진=휴암운창 제공
휴암 방장과 대숲 길을 걷다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필자, 조갑룡 원장, 휴암 방장. 사진= 휴암운창 제공

휴암은 이 골짜기에서 최초로 중학교에 진학한 사람이다. 그는 “청암면 아래쪽에 있는 횡천면 소재 횡천중학교로 진학해 자취를 하였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에는 횡천에서 부모님이 계시는 휴암운창까지 걸어갔습니다. 차비가 없어서였습니다. 거의 반나절이 걸렸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그는 후일 경찰공무원이 되었다. 부산에서 근무하다 고향에서 봉사하고 싶어 청암파출소장을 지내고 퇴직했다.

그는 현재 고향 및 하동을 위해 여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청암면에는 기록의 역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구전되는 이야기 등을 포함해 지역 사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역민들을 위해 삼우당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사자성어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을 오랫동안 찍어온 사진가이기도 한 그는 하동향교를 비롯해 지역의 각종 행사 사진을 재능기부 차원에서 무료로 촬영해주고 있다. 하동군민들의 안전 등을 위해 봉사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읍내장 및 진교장 등 지역의 장날이 되면 소매치기를 당하는 할머니들이 있어 예방차원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

차방인 삼우당 안에서 조갑룡 선생(왼쪽)과 휴암 선생(가운데), 필자가 차를 마시고 있다. 사진= 휴암운창 제공
차방인 삼우당 안에서 조갑룡 선생(왼쪽)과 휴암 선생(가운데), 필자가 차를 마시고 있다. 사진= 휴암운창 제공

등단 시인이기도 한 휴암은 문학 관련 글들을 모아 『인생서랍』(사람과 나무·2021)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책 속의 사진은 모두 자신이 촬영한 것이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둔 그는 큰 손주가 초등학교 5학년이다. 그가 대숲에서 힘들게 채취한 죽순을 삶아 찢어 말린 후 휴암운창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며칠 전 휴암운창을 방문해 삼우당에서 차를 마시고 대숲을 돌아본 이대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대숲에 걸린 사자성어를 설명해주시는 휴암 방장을 보고 기본적으로 학구적인 분이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필자는 그와 청학동의 식당들에서 밥을 몇 차례 먹은 적이 있다. 고향의 파출소장을 지낸 그는 누구를 만나든 먼저 밝게 인사를 한다. “형님, 요즘 우째 지내요?, ”동생, 요즘 일거리는 많은가?“라는 식이다. 며칠 전에는 그가 사는 마을의 한 정자 현판식이 열렸다. 마을 주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그가 축문을 써 읽었다. 휴암은 박학다식한 데다 한문에 상당한 지식이 있다.

휴암운창에서 포즈를 취한 세 사람. 완쪽부터 조갑룡 선생, 휴암 선생(가운데), 필자. 사진= 휴암운창 제공
휴암운창에서 포즈를 취한 세 사람. 완쪽부터 조갑룡 원장, 휴암 방장(가운데), 필자. 사진= 휴암운창 제공

그는 “며칠 전 마을 주민들이 마을 주변의 풀을 깎는 노력봉사가 예정돼 있었는데 마침 그날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전날 어둑해질 때까지 제 몫의 제초작업을 미리 하고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휴암 방장은 그런 사람이다.

그는 남은 이후의 생을 주민들과 하동군민들에게 베풀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한 듯 했다. 조갑룡 원장은 “휴암 방장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이 분처럼 티 내지 않고 베풂의 삶을 살고자 하는 분이 있어 세상은 정말 살만 합니다.”라고 평했다.

휴암 양영욱 선생의 저서인 '인생서랍'. 사진= 조해훈
휴암의 저서인 '인생서랍'. 책 속의 사진은 저자가 직접 촬영한 것이다.  사진= 조해훈

향내 나는 사람이다 보니 그의 삼우당에는 항상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휴암 방장은 겸손하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삶을 살면서 스스로 도사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이런 심성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지리산 도사라고 생각한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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