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교수의 머릿속 전시회 : 서울-부산 도보 生覺記 81 - 큰 연못일 뿐이라고?

박기철 승인 2023.08.31 11:36 | 최종 수정 2023.08.31 11:41 의견 0

큰 연못일 뿐이라고?

대구에 왔습니다. 대구(大邱)란 큰 언덕인데, 큰 언덕은 대구 안에 없지요. 큰 산 언덕 안에 둘러싸인 평평한 분지가 대구이지요. 이 대구의 옛 이름은 달구벌이라는데, 정감 어리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 달구벌(達句伐)이라는 이름은 정감어린 게 아니라 살기어린 살벌한 이름이지요. 아마도 이 평평한 땅에서 황산벌 전투처럼 큰 달구벌 전투가 있어서 사람들을 많이 죽인 처참한 역사가 있었을까요? 그래서 달구벌(伐)이겠지요. 사람(人)을 창(戈)으로 쳐죽인다는 뜻이 벌이지요. 옛 이름인 달구벌보다 대구라는 요즘 이름이 더 좋네요.

대구는 부산처럼 산에 빽빽하게 올려진 도시가 아니라 평평한 땅에 놓인 도시이다보니 규모가 상대적으로 커보입니다. 사실상 크기도 하구요. 그러나 대구는 TK(대구경북)란 말처럼 우리나라에서 보수적인 텃세가 가장 드센 지역이라던데, 제가 살아보지 못해서 실감하지는 못했습니다. 항구도시인 부산에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철새들이 많이 살고, 분지도시인 대구에는 한 군데 짱박혀 사는 텃새들이 많이 살아서 그럴까요? 언뜻 흘려 들은 바에 의하면, 외지인이 대구에서 잘 살며 지내다가도 아주 결정적일 때 대구 원주민으로부터 노골적으로 이런 말을 듣는다더군요. “너, 대구 사람 아니잖아!” 설마 그러겠습니까? 그런데 혹시 정말 그런 건 아닐까요? 그렇든 저렇든 대구 역시 도시의 분위기는 전국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똑같습니다. 몇 번 와보았던 곳이라 그저 그렇습니다. 그런데 시골길에서 차 스트레스 받으며 걷는 것보다 도시에서 걷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는 걸 새삼 느꼈지요.

엄마처럼 보이는 수성못

제가 찍은 저 풍경 사진은 예전에도 왔었던 수성못인데, 이렇게 다시 보니 새삼스럽더군요. 그래서 의자에 앉아 한참을 쳐다 보았습니다. 크기는 커도 건국대에 있는 일감호와 참 비슷하게 생겼지요. 저는 대구를 속속들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 연못이 달구벌의 살기와 텃새민의 세기를 부드럽게 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제가 풍수지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럴 수 있겠다는 추측을 했지요. 만일 수성못의 촉촉한 습기가 없었다면 대구는 살벌하고 드센 지역이 되었을 텐데, 저 수성못이라는 물의 도(道) 덕분에 대구 양반, 대구 미인, 대구 사과가 생겼지 않았을까?하는 영양가 없는 엉뚱한 상상을 했지요.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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