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울 문학예술지 『장소시학』 3호 발간 ... 장소 특집으로 '부산의 꽃부리', 동래

조송현 기자 승인 2023.10.05 11:01 | 최종 수정 2023.10.11 10:18 의견 0

경부울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 가치의 발굴, 창조, 전승을 기치로 내세운 부정기 문예지 『장소시학』 3호가 나왔다.

『장소시학』 3호가 선정한 특집 장소는 동래로 '부산의 꽃부리'라는 수식을 달았다. 

동래의 <문학 전통> 편에는 '일제 강점기 의사 양봉근의 민족적 택임 의식과 활동'(윤효정), '동래기생의 춤바람, 아름다운 치맛바람'(송희복), '이민영 시의 1950년대와 그 뒤'(박태일), '이영찬 명랑 문학의 의미'(최미선)을 실었다. <장소시> 편에는 김대봉, 조순규, 서정봉, 최상수, 김어수, 허남기 시인의 작품을 담았고, <회향기> 편에는 김소운의 '나룻배랑 바다랑', 최상수의 '회상'을 실었다. 이밖에도 동래 특집은 부산풍토기 7편과, 북한 문학 속의 동래 '동래성 싸움', <시와 장소> 수필 코너에 김명인의 '장소, 시간이 아로새기는 공간들'과 박태일의 '가야 최인욱과 적중 안병국'을 담는 등 다채롭게 꾸몄다.

『장소시학』은 제3회 신인상에 김보성 시인을 선정하고 수상작 '곰보 배추' 외 17편을 실었다. 추천사는 손진은, 김언희가 썼다. 

<신작시>에는 이영자, 최영순, 구자순, 정유미, 김영화, 차수민 등 경남시인회 소속 6인의 시인 작품들이 선보인다.

<우리가 사랑하는 시인> 편에는 문옥영 시인이 자선 대표시와 함께 조명됐다.

꼬꼬야. 478쪽. 4만2000원.

 

 

 

다음은 『장소시학』 엮은이 박태일(경남대 명예교수) 시인의 발간사.

 

『장소시학』 제3호를 펴내며


세상살이 사람들 다 좇는 듯이 보이는 일도 그 속으로 내려서서 찬찬히 보자고 들면 선 자리가 다르고 사정이 한결같지 않다. 세상 물정에 허수선한 사람이라 모를 따름이다. 돈이니 권력, 꺼지지 않을 욕망의 부풀린 세간도 마찬가지다. 오리무중.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히더라도 그냥 넘어설 수밖에 없을 일이 한둘인가. 그런 가운데라도 나날살이 경관과 삶터마저 탐욕의 지형도에 고스란히 앗긴 채 허수아비처럼 살 수는 없다. 참된 장소 구성과 재구성을 향한 넉넉한 상상적 도전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제3호를 준비하면서 마음 걸음은 부산, 그곳도 동래 쪽으로 옮겼다. 부산의 빛나는 꽃부리, 동래. 부산 근대를 대표하는 사람을 가장 많이 키워낸 곳이다. 그런 만큼 격동의 부산이 겪은 변혁과  투쟁, 좌절과 모멸, 보람과 망각을 온몸으로 겪어왔다. 오랜 근대 시기, 부산포 쪽 사람과는 다른 동래 사람이 집단으로 또는 낱낱으로 알게 모르게 되풀이했을 가장 무거운 물음은 아래. 우찌 동래 사람이 부산포 사람과 같응교? 그럼에도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을 더듬어 나갈 실마리조차 얻지 못한 현실이다. 

동래 특집을 마련하면서 문학 전통 맨 앞자리에 양봉근론을 놓는 보람은 유다르다. 양봉근에 관한 거의 유일한 연구자인 고려대 윤효정 교수가 무거운 그 일을 맡아 주었다. 몽골에서 흉사한 함안 의사 이태준을 이어, 중국 땅에서 겨레 광복 항쟁 앞자리에 나서 군의로 선의로 인술을 베풀었던 지사다. 끝내 되돌아오지 못하고 연변 겨레사회의 의학 발전에 이바지하다 타향에서 운명했다. 아직 양봉근이 남긴 어린이문학과 의학 관련 계몽 문필은 눈길이 닿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1907년 의령 설뫼 안희제가 세웠던 구포 구명학교에 뿌리를 둔 구명초등학교 1944년 졸업사진첩에서 양봉근의 아들, 양득우의 어린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던 일이 작은 한 기쁨이다. 아버지가 중국 땅 만주 땅을 헤치며 왜적과 싸웠을 때, 그 아들은 고향에서 낙동강 푸른 물골처럼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여름 방학을 온전히 양봉근론을 위해 내준 윤효정 교수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그 뒤를 동래의 기녀 예능과 문화를 일깨워 주는 글로 이었다. 진주에서 오래 공부의 맷집을 키웠던 비평가 송희복이 부산 문화, 동래 예술을 향해 마련해 준 미시적이면서도 이채로운 글이다. 근대 초기 우리 기녀 문화가 왜의 기생 문화와 다른, 그 경계와 영역을 넘나든 내력을 폭넓게 되살리고자 하는 송 교수의 노력이 더욱 힘을 받기 바란다. 이어서 글쓴이의 이민영론과 최미선의 이영찬론을 더했다. 이민영은 1950년대 초반 부산 지역시와 김해문학의 기개를 보여 준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영찬 또한 그와 비슷하게 1960년대 부산 어린이문학을 꽃피웠던 인물이다. 고성의 평론가 최미선이 명랑 문학에 초점을 두어 이영찬 문학을 더듬어 주었다. 두 작가 모두 오늘날 지역문학지에서 흐릿하게 잊혔지만 그이들을 공론 자리로 이끌어 내고자 한 노력이 헛되지 않기 바란다.

각별히 이민영론을 마련하는 기회를 틈타 경인년전쟁기부터 1950년대 부산 지역 풍토기를 모아 붙였다. 부산 지역문학의 활화산이었던 1950년대를 제대로 파들어가기 위한 땅 고르기 작업이다. 역외 피란 작가 김광주의 것과 목포 화가 장덕의 전중기 글을 앞세웠다. 그 뒤로 손동인, 김정한, 장호, 안장현의 글을 얹었다. 장덕은 이당 김은호 문하에서 그림을 배운 한국화가다. 1930년대 후반 전남 목포로 옮겼으며, 경인년전쟁기 조희관이 이끌었던 목포 전우사와 갈매기구락부 일원으로서 해군목포경비부의 정훈 활동을 함께했다. 그 과정에 무리를 이루어 부산에 들린 결과물이다. 화가 특유의 꼼꼼한 묘사가 돋보이는, 전쟁기 부산 풍정을 잘 담아낸 답사기다. 교사며 잡지 편집자로서 몫이 활발했던 시인, 소설가 손동인의 풍토기는 ‘르뽀’라는 갈래 이름을 붙였다. 서울이 서울로 올라가고 난 뒤 부산의 전후 사정을 일깨워 주는 귀한 글이다. 장호와 안장현은 이민영과 글벗. 1950년대 부산 문학을 어렴풋이나마 더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사회 세태에서부터 문학사회 안쪽 움직임까지 너비 넓은 글들이 한자리를 탄 셈이다. 지나간 시절 부산에 관한 이들의 기억이 오늘과 앞날의 지역 가치로 싱싱하게 되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은 뒷사람 몫이다. 

부산과 동래 장소시로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걸친 작품을 몇 편 골랐다. 시인들은 모두 동래 사람이거나 동래와 지연이 두터운 사람이다. 서정봉, 최상수, 허남기는 동래 태생이고, 김해 김대봉과 언양 조순규는 동래고보를 나왔다. 김어수는 강원도 영월 사람이나 범어사에서 출가했다. 필명 ‘어수魚水’란 다름 아니라 범어사에서 비롯된 것. 허남기는 일본 조총련계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살다간 사람이다. 북한의 ‘렬사릉’에 묻힐 만큼 북한에 충성했던 이다. 그이가 동경 하늘에서 북한을 향해 썼던「락동강」은 구포 옛집 한걸음 바깥에서 오늘도 쉼없이 흐르고 있다. 작품을 올린 여섯 시인은 부산 지역 문학사회에서 눈길을 두지 않는 이다. 작품 한 편 한 편의 우열보다는 이른 시기부터 동래 사람들이 지녔을 정신머리를 오늘날 지역문학이 잊지 말라는 당부로 읽히길 바란다. 

‘발굴 수필’로 조명희 수필 「부산」을 소개한다. 부산은 조명희가 언론인 생활을 한 곳일 뿐 아니라, 첫 소설집 『낙동강』(백악사, 1928)을 낸 곳이다. 그이 대표작「낙동강」의 앞머리가 구포역을 바탕으로 삼은 점은 잘 알려진 일. 아쉽게도 1928년에 쓴 것으로 적힌 이 수필「부산」 초간본 발표 지면은 찾을 수 없었다. 북한의 『현대 명문선(1)』(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 1963)에 실린 것을 다시 옮겼다. 김헌순이 엮은 이 책은 “모국어를 세련된 문학어의 경지에 이르게 한 언어 구사의 경험과 높은 문체적 기교”를 보여 준 작품들을 본보기로 묶은 것이다. 제1부 묘사, 제2부 서술, 제3부 운문, 대화문으로 짰는데, 조명희「부산」은 제2부의 ‘수필’ 자리에 올렸다. 작품을 소개하면서 북한에서 썼던 ‘사이소리’는 우리쪽 맞춤법으로 손질을 했다. ‘바다’가’를 ‘바닷가’로 적는 것과 같은 일. 초간본 출처를 알 수 없다는 아쉬움뿐 아니라, 작품 속살도 다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도 아쉽다. 글 흐름으로 보아 작품 뒤쪽 자리가 생략된 것으로 짐작되는 까닭이다. 어쨌거나 조명희 삶과 문학의 한누리에서 부산과 맺은 짙은 연고를 한 가지 더 확인할 수 있어 즐겁다. 게다가 작품을 빌려 1920년대 부산을 살았던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의 신민요 한 가락을 얻을 수 있었으니 그 점이 더한다. 

부산 회향기에는 김소운과 최상수의 것을 올렸다. 김소운의 것은 어린이청소년을 현실독자로 삼은 글이다. 그럼에도 이제껏 부산 사람으로 알려져 왔던 시시비비의 속사정과 앞뒤 경과를 일깨워 준다. 부산에서 진주로 진해로 옮겨 살았음에도 김소운을 부산 영도 사람으로 묶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 셈이다. 최상수의 글은 주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시점에 서서 쓴 글이다. 그 시기에 이루어진, 어릴 적 동래 지역 회고다. 각별히 정과정 옛터 자리에 대한 비정과 동향 민속학자 송석하, 손진태와 관련한 회억, 나혜석을 향한 기억이 흥미롭다.  

인물기에는「우호 배재황 실기」를 얹는다. 배재황(1895-1966)의 둘째 아들 배시창(1947-  )이 쓴 선친 일대기다. 배재황이 늘그막에 본 그이는 1997년 호주로 건너가 살다 여러 해 앞부터 호주와 부산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그런 뒤 아버지의 일대기를 쓰기 시작했다. 배재황은 아직까지 무거운 개별 논고가 한 편도 마련되지 않은 경남 ․ 부산 지역 근대 첫머리 문학인이며 농민항쟁가일 뿐 아니라 배달말 실천가다. 
 
진해 웅동 사람인 그이는 주시경에게서 배달말을 깨우치고, 기미만세의거 때 웅동 의거를 뒷받침했을 뿐 아니라, 1930년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치열했던 김해 진영 농민 항쟁을 허성도와 함께 이끌었다. 을유광복 뒤 좌우대립에 쫓겨 1947년 낙동강 물끝 부산 하단에 몸을 숨기고 살았다. 진해 개광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1914년 최남선이 냈던 종합지 『청춘』 문예현상에 시와 단편소설, 그리고 수필이 잇달아 뽑히면서 근대 매체와 제도를 빌려 배달말로 작품을 발표한, 경남 ․ 부산의 첫 본보기를 마련했던 이다. 남아 있는 몇 되지 않은 그이 작품은 근대 초기 경남 ․ 부산 지역문학의 의기를 아낌없이 대변한다. 지역으로 말하자면 배재황은 진해에서 나서 김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고, 부산에서 살다 이승을 뜬 뒤 고향 진해로 돌아간 지사다. 그이 이거移居만큼 삶의 신산은 깊었다. 빠른 시일 안에 개별 논고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우호 배재황 실기」를 얹는다. 

그런데 이 글은 미완성이다. 배시창이 귀국해 있었던 2016년 무렵 그이를 만나 선친이 살았던 고향 진해 웅동과 산소, 그리고 하단 옛집 자리까지 둘러본 적이 있었다. 그때 제목도 없이 받아두었던 글이「우호 배재황 실기」다. 이곳에 올리면서 글쓴이가 걸맞은 제목을 붙였다. 받아 놓은 뒤로 틈내어 더 깁고 다듬어 완성에 이르기를 거듭 채근하였지만, 그이도 나도 바쁜 세월에 휩쓸려 버렸다. 이제 배시창 또한 신병을 겪고 있어 더 손을 볼 처지가 아니다. 『장소시학』 동래 특집을 마련하는 자리에 낙동강 끝자리 하단에서 가뭇없이 떠내려간 한 근대 초기 지식인의 포부와 좌절을 세상에 알리고자 미완성인 채로 싣는다. 글은 속살에서 반복되는 자리가 넓다. 그러나 글쓴이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그대로 두었다. 마찬가지로 지역어나 글쓴이 특유의 말씨도 그대로 살렸다. 이 글은 배재황 실기면서 글쓴이 배시창, 그이의 회고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쉽게 볼 수 없을 앞 시대 삶의 간난과 곡절이 켜켜로 녹아 든 글이다. 이렇게라도 선친의 꼼꼼한 사적을 잊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 준 늦둥이 아들의 뜻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으리라.

동래와 연고를 맺은 작가들은 예외 없이 금정산과 임진왜란 때 동래성 싸움을 마음에 품었다. 대표 작품이 동래고보 출신 동래 사람 염주용이 쓴 희곡「동래성 함락의 날」이다. 오늘날 온천동 이주홍문학관에 간수되어 있는 그 원본은 이미 학계에서 다루었다. 이제 『장소시학』 제3호를 빌려 소개하는 ‘력사그림책’ 『동래성 싸움』(조선미술출판사, 1989)은 북한에서 마련한 작품이다. 김정희가 글을 쓰고, 김창수가 그림을 붙였다. 아직까지 부산 지역학에서 북한과 관련한 관심은 무지에 가깝다. 북한에서 다루어진 부산 장소성 구명이나 지역지 이해는 눈 밝은 이들이 앞으로 쌓게 되리라. 각별히 『동래성 싸움』은 ‘력사그림’이라는 됨됨이 탓에 소설이 갖출 바 긴 서술과 꼼꼼한 묘사가 따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북한 사회주의 체제 안쪽에서 다듬어진, 정사와 다른 허구적 짜임새와 인물 설정이 눈길을 끈다. 

이번호에는 세 번째 추천 신인으로 김보성을 내보낸다. 글 인연을 맺은 지는 오래지 않으나 바쁜 생업 환경 속에서도 용맹정진이라는 말이 허투루 쓰이는 것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배움에 집중력을 보여 준 시인이다. 각별히 웃음과 눈물을 한꺼번에 싸안은 다양한 성적 상상력은 우리시가 전통으로 삼았던 기존 성애주의 시의 소극적 지평을 벗어날 수 있을 가능성이 넉넉하다. 구자순, 정유미에 이어 지역 시문학사회에서 오롯하게 제 몫을 충실하게 도맡아 나갈 세 번째 재목으로 김보성 시인의 출발에 박수를 더한다. 그미를 위해 진주 김언희, 대구 손진은 시인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빠른 시일 안에 독특하고도 개성 넘치는 첫 시집으로 기대에 즐겁게 응답하리라 믿는다. 

이번 호 신작시에는 경남시인회 여섯 시인 곧 차수민, 김영화, 이영자, 최영순, 구자순, 정유미가 옥고를 주었다. 허깨비 같은 말장난에 빠지지 않고 나날살이 안쪽에서 자기답게 삶을 보듬고 다듬어 나가고자 한 그미들의 날선 고심이 더욱 발전하기 바란다. 뒷날 낱낱으로, 또는 한 붕당으로서 경남 ․ 부산 지역 좋은 시의 본으로 자라나리라 믿는다. 

이번 호 창작시에는 따로 ‘우리시가 사랑하는 시인’ 자리를 마련했다. 그 처음으로 창원 시인 문옥영(필명 지영)을 불러낸다. 자선 대표시 10편을 중심으로 삼은 자리가 오롯하다. 오랜 세월 창원 지역에서 뜨겁게 시와 삶을 겪어온 시인이다. 편편이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그미의 모든 것이 더 많은 사랑을 받기 바란다. 그미를 위해 비평가 최영호 교수가 기꺼이 풀이를 맡아 주었다. 여러 해 앞부터 겪고 있는 투병 생활도 너끈히 이겨 나가리라. 

제3호의 맨 끝은 두 편의 수필로 맺는다. 김명인 시인의「장소, 시간이 아로새기는 공간들」은 ‘시와 장소’라는 기획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두 번째 글이다. 처음을 맡아준 황동규 시인의 전쟁기 부산 시절 기억에 이어, 김명인 시인의 웅숭깊은 시력과 말씨를 뒷받침하는 소략하나, 무게 있는 장소 감각을 잘 풀어 보인 글이다. 

박태일(명예교수) 시인

표지 그림은 정철교 화백의 것으로 채웠다. 지금은 울산 땅으로 놓인 신암리 갯가 아침 풍경. 소년 시절과 성장기를 거친 부산, 동래를 떠나 양산으로 다시 울산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정 화백은 갈래도 화풍도, 그를 뒷받침하는 선과 빛깔도 마냥 달라지고 깊어졌다. 고통스런 삶의 곡절을 뚫고 피어 오른 환한 긍정의 힘이 잘 살아 있는 정 화백의 그림을 표지로 올리는 즐거움이 새삼스럽다.  

이합집산과 유유상종의 울창한 글숲에서 의리로만 글을 청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물리치지 않고 선뜻 응해준 글쓴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잘 들여다보면 작은 것이 아름답고 낮은 것이 늘 무거운 법이다. 앞으로도 『장소시학』은 그런 분들의 격려에 힘입어 한 길, 한 걸음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끝자리에 덧붙여 둘 일은 『장소시학』 본문에 쓰인 역사용어 문제다. 편집실이 지닌 생각과 달리 받아들이기 힘든 용어를 쓴 글자리가 몇 곳 눈에 뜨인다. 그렇지만 그 일은 글쓴이 낱낱의 몫으로 돌렸다. 글쓴이의 뜻을 존중하기로 한 까닭이다. 오랜만에 낙동강 왼쪽 부산 동래 기슭으로 눈길을 둔 보람은 적지 않다. 뒷날에라도 『장소시학』이 다채롭고 새로운 담론 창발과 의쟁의 작은 디딤돌이 되기 바란다. 
 

2023년 9월 20일
박 태 일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