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18)】 기억은 볼 수 없어서 슬프다 - 이월춘

조승래 승인 2023.12.20 15:13 | 최종 수정 2024.01.02 14:40 의견 0

기억은 볼 수 없어서 슬프다

이 월 춘

곧 사라질 존재들은
아무르표범, 검은 코뿔소, 보르네오오랑우탄, 크로스강고릴라,
매부리바다거북, 말레이호랑이 등등이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존재들은
백두산호랑이, 도도, 나그네비둘기, 황금두꺼비, 흰코뿔소,
양쯔강돌고래, 태즈메이니아늑대 등등이다

그리고
내 어머니

- 『시와 소금』, 2022년 봄호

이월춘 시인의 이 시를 통하여 마치 흑백 무성영화를 거쳐서 천연색 영화를 보고 다시 흑백영화로 돌아간 뒤, 갑자기 영화 필름이 툭 끊어진 것 같은 적막감으로 마무리됨을 느끼게 된다.

1연에서 환경변화로 개체수가 급감하여 곧 멸종될 위기에 처한 ‘아무르표범, 검은 코뿔소, 보르네오오랑우탄, 크로스강고릴라, 매부리바다거북, 말레이호랑이 등‘을 언급하고

2연에서 복원을 위해 학자들과 환경론자들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다시는 볼 수 없는 백두산호랑이, 도도, 나그네비둘기, 황금두꺼비, 흰코뿔소, 양쯔강돌고래, 태즈메이니아늑대 등’의 멸종동물들을 묘사하다가

‘그리고/내 어머니’
시인은 어머니를 마지막 연에서 호출하여 일상의 익숙한 단어로, 머나먼 나라 생명체 이야기 전개인줄로만 알았던 독자들의 상상을 멈추게 한다.

‘기억은 볼 수 없어서 슬프다’. 그 안개 같은 흔적을 기억으로 더듬어 보지만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현실 앞에 한 평생 교직에 몸담고 교장으로 퇴임한 시인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기가 되어 멈추었다.

어머니는 분명히 이 세상에 나를 두고 가셨다. 누구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존재’. 또 어느 누구는 ‘곧 사라질 존재’가 되겠지만 먼저 가신 그 분, 정말 그립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서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외 ▷계간문예 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수상 ▷단국대 겸임교수 역임(경영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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