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3호-신인상】 김보성 - 곰보 배추 외 17편

장소시학 승인 2023.10.11 10:07 | 최종 수정 2023.10.14 10:56 의견 0

곰보 배추

                           김 보 성

 

보고 또 보고
거울은 구멍이 났어도 한참 났지
흠 있으니 남자도 흠 있지
못 오르니 쳐다보지 마라 
들머리 호야 오빠 두고 어찌 살라고
그 집에서 널 받아들이것나 택도 없다
혼인 전날 
질척한 마당 비비며 울었다
시집가는 날 버선발 잘솜잘솜 콩을 심었고
폐백드리는데 
새댁 얼굴만 얽은 게 아니네 
다리도 저네 쯔쯔

넓은 들 쳐다보면 명치끝이 아파 친정 가지 않았다

빚 없는 세월 기다려
깎고 문지르기 삼 년
옴박옴박 함지박 얘기 들어 보실래요
아버지

 

로켓 모텔

건축 일하는 남편 
뒷머리 새집이다
갔다 올게
좀 바르고 다녀
뭐 하러 청소하면 땀나는데

늦네? 반기는 모텔 주인
육 층 오 호
자기 방 청소되어 있을 거야
숨 내뱉으며 입고 온 옷 개어놓고 샤워
건포도 같은 유두 
억센 잔디
그물 팬티에 몰아넣어도 몇 가닥 내민다

이 사장님 시간 되세요?
일 대강 처리해 놓고 두 시에 만납시다
네 사람 왔다 간 뒤 정리해놓고   
여섯 시쯤
벽에 기대 화장 지우고 씻는다
사십만 원 

가는 길에 통닭 한 마리 사고 학원비 내면 되겠다

 

설마

야윈 몸 잔기침
어머니
형과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청소나 심부름 맡았고
공기 좋은 동네 이사했다
폐병은 옮는다
소문나면서 이웃은 오지 않았다
점점 걷지 못하셨고
같은 방에서 장롱 끌어당겨 경계 지어 지내셨다 
어지러운 약봉지 
이름 부르며 
배가 고파
문을
긁고 두드렸어

교사 아버지 
방에 들어가지 마라
습관처럼 귀를 대고 살폈다 
어느 날
아무 기척 없었다 


거제 바다
장례를 마친 후 흰 보자기에 분골 안고 방파제  
한 줌 두 줌
세 번째 줄줄 부었다
빨리 가시라고
 

먹구랭이

여름밤 멱 감는 빨래터
여자 서넛 명
하이고 마 살결이 와 그리 희노  
갈아입을 옷 둥천에 놓고 들어오이라 
살살해 
야야 뭐가 찹노 시집갈 나이에 폐병 환자맨키로
아이구 썬하다 잠 잘 오겠다
그때, 포구낭구 위에서 떨어지는 
먹구랭이
하필이며 젖 마개 우에 툭
순식간에 
옥이 똘똘 감아 어디론가 델꼬 가삣다
오메 우짜꼬
베라고 있었는갑다

몇 년 소식 없었다
시집간 줄 몰랐디이 아가 안 생긴다네
신랑 사업도 안 된다 카고


친정 옴마 용왕 미더라 
그놈 땜에 그런 거 아이가?
아이 끼다
목욕하는데 본이 그도 맨들맨들 하던데 뭐

 

하루꼬

흥동에서 선암으로 시집가니 
배 밭 천지여서 
새댁 때부터 왜인 밭에서 일 했다

안짱다리 안주인 
부러웠어
타다기는 게다 소리 거슬렸지만 참을 수밖에 

어느 여름 더 더운 날
두부자루에 비지 나오듯 신작로가 비좁아
흰옷

옷 입은 사람들 
자유다 이제 
우리는
더는 참지 못한 숨비소리 터져 

하루꼬 집으로 뛰어
도망가야지
쉿, 본국 안가


삐뚤삐뚤 가리마 어설픈 쪽 짓고
낮은 걸음 샛길 
쥐어 준 고방 열쇠

 

에프 킬러

대학병원 일주일 
요양병원 한 달
만져지는 젖가슴 덩어리 수술  
얹혔든 약이 내려갔는지 양푼째 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비도 오고 끌어당기길래 못 이기는 척했었다

살을 파고드는 간지러움 긁고 긁어도 시원하지 않아
거울을 놓고
그곳
가르마 타고 수풀을 훓었어 
자세히
어디서 데려왔는지 
이도 서캐도 아닌 놈 칙칙하고 어두운 곳 좋아하는 
세면바리 
남세스러워
남세스러워 
차마 병원도 못 가겠고 

여자가 사람 잡네
사람 잡아
명태껍질 몇 겹을 벗기노

 

게이트볼장

요즘 그 여자 안 만나는 거 같대?
좋아했잖아
생활도 괜찮다면서
뜸들이더니
말을 말게 장소가 따로 없어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만났다면 들이미니
니이 미, 늙으니 그것도 힘들어

혀로만 하라니
환장하지
환장해

 

혼인날

아깝다 아까워
우찌 저런데 시집을 보내노
내사 처녀 늙히도 저런 데는 안 보내겠구만 모르지 카이
그 집 딸, 땟거리 없는데 인물은 와 그리 좋노
순아, 우리 형편에 논 몇 마지기 우찌 생길 끼고 니가 가야 우리가 산다
갈끼제?
야, 오메 걱정 마소

혼인날 동네가 일어나고
구경 빨리 가세
택시 타고 땅딸보 장가온다
하이고, 색시나 품겠나
활옷 입은 새색시, 상 밑에 눈물 굵다

이튿날 자고 난 이부자리 
아이고 구실은 했네
됐다 됐어, 우리 사위

 

일꾼 들어왔다 싶은지 신이 난 시어머니, 눈코 뜰 사이 없이 부른다
비닐하우스 안 땀은 비 오고
남편, 온종일 내 뒤만 졸졸 
어른도 안데
하나 더 보태게 되모

하, 앞을 보니 앞산이
뒤를 보니 뒷산이 불룩하다

 

아들

침대 양쪽으로 묶인 손
간호사, 환자 상태가 심각해요
어떤데요?
다음엔 그냥 있지 않을 겁니다

열흘 뒤 
자 환자분 손목 풀었으니
보호자 분 안으로 들어오세요

겹겹 홍합 속으로 손가락 바쁜 어머니

 

난희

만난 지 이십 년
삼십 대 후반 그녀
우짜다가 집 나왔노?
첨엔 헤어질 생각이 아니었죠
택시 기사 남편, 화투 치는 걸 몰랐으니 쩔쩔매는 꼴 보고 싶어 아이 두고 나왔는데 
이혼이 그렇게 되더라고 
배운 거 시원치 않아, 요식업 취직하여 여러 해 
고객과 사귀고 주방 실장과 살 섞어 
통장 무거워지니 옆에서 그냥 두지 않더라고
좀 까먹었지
오십 후반 병원 구내식당 근무 중
청춘사업? 여전하지
뜯어 갈 놈만 만나져 

그동안 스쳐 간 개불이 몇인 줄 알아
몇인데? 
오십하고 네 마리째

 

서울역

새벽 비둘기 
토한 빈대떡 한 판 게 눈 감추듯
발 붉다
뒤뚱
뒤뚱 
걷지도 날지도 못하고
대자로 누워 
나와 나오라고
한판 붙자

 

여행

공항에 나타난 
명희, 늦다 
왜 늦었노?

비스듬히 누운 남편
뒤통수에 대고 
며칠 동안 못 보는데 숙제나 하고 가지
하여튼 뒷북치는 데는 
머리 망가진다이 
쫌, 조심하고 빨리빨리 해라

에이, 씨
쫓끼모 서나

 

횡재

콩밭 마저 매는 여자
몸 담글 참새미 생각에 손 날래다

관세음보살, 관세음
마을까지 얼마나 걸리겠소
한참 내려가시면 됩니더

흠 음음 
헛기침 밭고랑 건너며
으이구
그 그 내미 대단한기라

뭐라카요
까끄럽다, 까끄럽다
중놈 대가리 같을까 

 

이렇게 산다

급히 들어서며
옷 왔제?
응 입어 보셔
거울 앞 이리저리 비춰 봐도 턱을 치는 앞산 술이 들어가면 
가만두지 않는다
일찍 여윈 어머니 그리움인지

오늘 같은 기회 놓칠세라  
다른 옷을 더듬는 눈
바지 셔츠 두어 벌 더 골라
싸줘 어서
일어나기 전에 카드 긁어야 돼
아저씨 알면 어쩌려구 
또 
그건 한 달 뒤 일이고
훔쳤어?
아니 죽였지

대낮에? 

 

공양

남편과 헤어지고
남자, 댓 명 스쳐 갔지만 아이 생기지 않았다

자그마한 절 공양 보살
노스님과 젊은 스님 두 분 계신 데 신도도 많지 않고 편했다
젊은 스님 밤마다 잔기침에
약 달고 살아 
행사 때 장보기며 심부름같이 다녀

일 년쯤 됐나? 
체해서 내과 갔더니 산부인과로 안내
임신,
신도 알기 전에 절에서 나왔지만 
보란 듯이 배 내밀며 열 달 
딸 얻고 백일
돌이 돼 가는데 앉지도 서지도 않는 아이 
안집 할머니, 앉혀 보소
설 때 됐는데 늦돼도 정도가 있지
아 아부지 
독한 약 뭇다 했지요?


다른 절로 옮긴 스님
어두워지면 올라오시오
축 늘어진 아이 업고
산길 
똥마렵듯 눈치 살피며 하룻밤 보내고 
돌부리 덜 깬 새벽 내려온다

 

유 목수

천주사 부처님 앉히고 불당 안에 신도 이름 새겼다
가족 전부 올리고 
오천만 원 시주한 회장님
사고 보상금 삼천만 원 올리는 부모
보살 용돈 모아 이백만 원
가만히 생각하니
부자 옆이 어디가 나아도 안 낫겠나
그 옆 이름 붙였다

유 원 수

 

망고

까무 까무한 얼굴
접시 만한 눈
그녀가 왔다

딱딱한 방바닥을 탓했고 겨울을 밀쳐냈지
해외전화 쥐가 나고
반질반질 열대 고양이 같은 아이
낳아  
불안한 마음 잠시 놓였지만
툴툴대는 걸음걸이
투정 섞인 말투
자지러지는 아이 울음 
취한 에나멜 구두 소리 잦더니 

맞는 기라 
바람 들면 못쓴데이

 

여름

열무김치
옆을 지나는데 침이 고여
돌아서면 무성해지는 뜰, 치마 입고 잡초 한 주먹씩 뽑는데 집게벌레가 그곳 물어 털고 털다 집중 공격받아 몇 방을 더 물려
화장실서 진정시키고 나오다 물기 묻은 발 잘못 디뎌 꼬리뼈 부딪쳐 장마에 물러 내린 호박 떨어지듯 한나절 누웠다가 
퇴근하는 영감한테 화풀이다 

누워보소 약 바르게
하필이면 중앙이네 어허허
아야 살살
아 야야
살살 좀 하소

그새 퇴근한 아들
들어가도 됩니꺼

 

김보성 시인
김보성 시인

◇ 김보성

시인. 방송통신대학 가정학과 졸업. 제3회 『장소시학』 추천 신인상을 받아 문학사회활동을 시작함. 현재 김해 장유에서 '팥고방'을 운영. kimbs1199@hanmail.net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