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3호-추천사2】 생동生動, 그 자체인 시 - 김언희

장소시학 승인 2023.10.14 13:07 | 최종 수정 2023.10.18 11:30 의견 0

추천사

 

생동生動, 그 자체인 시

 

김 언 희


신인을 추천한다는 것은 추천작들이 보여 주는 현재의 시적 성취보다는 이 작품들로 미루어 짐작되는 미래의 가능성을 더 눈여겨보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미래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첫 번째 잣대는 글 속에 드러나는 글쓴이의 태도와 자세다. 시가 일생을 걸고,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분투해야 하는 업業이라면, 자세와 태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시는 자세와 태도로 완성되는 반야바라밀이기도 하다.

추천작 가운데 「서울역」은 김보성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시편이다. 시스템의, 자본의, 욕망의 토사물인 “토한 빈대떡 한 판”을, 찌꺼기조차 아닌 토사물을 게 눈 감추듯 쪼아 먹고 걷지도 날지도 못하고 나자빠진 비둘기야말로 현대인의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절제될 대로 절제된 언어로 쓰인 우리 모두의 직핍한 초상. 어떤 미학적 추임새도, 비평적 잣대도 허용하지 않는 압권이다. “걷지도 날지도 못 하고/대자로 누운” 채 비둘기는 일갈한다. “나와 나오라고/한판 붙자”고. 세계의 끝이자, 바닥의 바닥, 서울역 광장에 대자로 나자빠진 채 한판 붙자는 기백이야말로 김보성의 중요한 자질, 태도와 자세를, 관점과 결기를 증명해 보인다. ‘서울역’이라는 장소성에 민감한 그의 감수성 또한 예사롭지 않다. 그 비둘기가 드러누운 장소는 ‘서울역’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언어는 항상 어떤 장소로부터 오고, 그 장소는 대체 불가능한 장소인 것이다.

더불어 김보성의 시는 역동적이다. 그 역동성은 그가 구사하는 입말에서, 생동하는 현장성에서 나온다. 시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의 발명이고, 모든 시는 영원히 ‘지금, 여기’를 쓴다. 현장감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가 언어와 관념에 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의 시적 질료는 일상을 횡단하는 육체, 그의 몸을 통과하는 동시대의 풍경들이고 인물들이다. 김보성의 시는 피할 수  없는 형식의 포로가 되기 이전의 생동, 그 자체인 텍스트이다. 그의 시는 삶 그 자체, 현장 그 자체다.

김보성의 시편들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성性은 금기와 억압을 벗어버린 성, 모든 용도와 관계를 벗어나 자연스러워진 성이다. 에로티즘의 베일을 벗어버리고, 잡다한 투사와 왜곡에서 자유로워진 성, 삶의 일부이자 일상의 일부가 된 성이다. 이 자연스러운 성의 힘, 과시할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는 이 진정한 힘의 주인은 여자들이다. 도구도 무기도 사용하지 않는 힘,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이 힘을 컨트롤 하는 것이 김보성의 화자들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예술로 인식하는 것은 예술이라고 규정된 것들을 예술로 인식하라고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비예술의 특성으로 예술에 개입하면서, 예술과 비예술을 넘나드는 경계의 놀이, 김보성의 텍스트는 유희와도 같이 신선하고 활기차다. 김보성의 활기는 그가 누리는 글쓰기의 쾌락과도 관계가 있다. 김보성에게 쓰기는 놀이와도 같고 놀이하는 인간의 천진성과 즐거움은 고스란히 읽는 즐거움으로 독자에게 전이된다. 그의 텍스트는 파토스나 끈적거림으로 시간을 소비하지 않으며, 분석이나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존의 미학적 거울에 자신이 어떻게 비추어지는가는 김보성의 관심 밖이다.

타자를 소비하지 않고, 타자를 대상화하지 않고,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않는 글쓰기. 그의 시편들은 그동안 기피되었던 대상이나 대상화된 존재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쓴 자와 읽는 자 모두에게 이 자유에 동참할 수 있게 해준다. 단순히 돈으로 재는 계급차별이 아니라 지식정보수준과 문화감성수준으로 갈라버리는 더 확연한 계급차별, 더 넘을 수 없는 불평등 앞에서도 결코 언어와 관념에 지지 않을 담대한 시인의 탄생을 응원하고, 축하드린다.

 

◇ 김언희

시인. 1989년 『현대시학』으로 문학사회 나섬. 시집 『트렁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뜻밖의 대답』, 『요즘 우울하십니까?』, 『보고 싶은 오빠』, 『G G』들을 냈다. 시와사상문학상, 박인환문학상, 이상시문학상, 경남문학상을 받았다. pitchbl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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