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3호-신작시】 열흘씩 도셨다 외 9편 - 구자순

장소시학 승인 2023.10.26 15:44 | 최종 수정 2023.10.28 08:31 의견 0

신작시

 

열흘씩 도셨다 

                                             구 자 순

고아라 소리 방문 튀어나오면 남강 그물 친다 가마솥 씻어 참기름 타다닥타닥 뽀얀 국물이 몸속 물꼬 도랑을 타고 성당 나루 줄배 건너 함안 미나리들 우 아래 훑는다 배에 힘주고 파다닥파닥 튄다 무논에 고함 찰랑댄다 소주비 내린다 뽀뽓한 몸에 종지 붓는다 새벽빛에 쇠죽 끓인다 그리 살면 쪽박 찬다 안들이 칠칠치 못해 밖으로만 돈다 나가라 니 손에 밥 안 먹는다 곡기 입에 대지 않고 술 받아오라 하늘 주먹질 그런 날은 대병 소주 박스 떼기로 이고 와서 속말하며 마루에 탕 놓지 손가락 들 힘도 다 쏟고 잠 베고 누우면 쇠 울음에도 꿈쩍 않아 방에 묻힌다 

가물치 문 여신다

 

다안고개

실뿌리까지 햇살에 놓여 포클레인 산을 파 바빠요 올라가 선친 무덤 길 못 줘 서서 운전 덜컹꿀렁 씨불쓰블 말 뜸 부탁 길 키워 풍이 와 대소변도 못 가려 손사래 길 일어서 떼 짧아 불뚝불뚝 다안할베 초상나 기계 달라붙어 산을 파 넓혀 바위 보란 듯이 떨어져 내려 차들 멈칫 눈치로 걸어 포클레인 나리비 비스듬히 잘라 깎아 풀씨 흙탕 쏴 말이 익어 꾹꾹 눌러 큰 돌 한두 개 슬쩍 굴러 몽땅 파내고 철망 싸 꾸욱꾸욱 다져 잔돌 삐쭉거려 말 김 빼 올라갔던 꼬리가 한목에 내려 주의 낙석지역 

 

돈 봉투로 보여요

터진 허리는 오른쪽 다리를 지나 발등에 도착했다 맵다 발가락 앞은 낭떠러지다 백은 있어야 입원 가능한데 월급 이백에 미리 쓴 거 갚고 나면 마이너스통장 꽉 차고 엄마 아버지한테 이백 빌리고 아프다 말하지 않는다 남편에겐 오백 구해 달라 수술해야 한다 내편일까 돈이 오데 있노 예감은 틀리지 않아 팡팡 터지는 다리를 끌고 수술 전날까지 일을 한다 소문은 빨갛다 몇 만 원씩 몇 십만 원씩 피어난다 수술비 얇아져도 턱이 없어 병문안 오는 사람들 얼굴보다 봉투가 먼저 보여 갚을 일이 겁이 나 고개도 못 돌린다 남편은 수술 닷새 만에 빈손으로 와서 십 분 있다 구두 사서 집 간다 오래 전에 들어낸 고막 안쪽까지 공기가 눌러 차는지 천장 뚜벅뚜벅

 

11월 바람

입술 웃고 눈 차가운 삿대질 지켜야 할 것들이 다 시커멓다 벽에 방바닥에 머리를 찧는다 하루 한 끼 점심 급식 서너 그릇씩 이뻐서 먹인다 남아서 먹인다 부푸는 배 둥치 징징 돌돌 현관문 찬다 와창창 볕살 박힌다 팔딱팔딱 도르르 판막을 지나 심장을 쥐어짜 모르는 사이 어디까지 가버린 걸까 키만큼이나 큰 의자 올라 가스 불 켤 때 아니면 노른자 터질 때 등 뒤로 돌리던 빨간 손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엄마가 말라 열 권씩 동화책 들고 올 때 아니면 무한도전 속 달릴 때 아니면 바람의 나라 떠돌 때 아니면 아니면 박혀 혈관 속 돌아 찾지 못하면 하루치를 달아주는 저울 없을까 땀 비질 눈 감는다 


내외

흥건해지면 머리 깨질 듯 울음소리 젖 물리다 업어 달래다 한밤중에도 깨운 대밭 서걱스극 젖통 크니까 양 많을 거라 짜보면 물젖 아니고 참젖이니 옹골질 거라 성질 배릴까 시간도 딱딱 젖꼭지 새끼손톱 반만 한 게 귀는 질겨서 빨아도 안 나와 울다 넘어가는 걸 성질만 더럽다고
얼마나 입이 아팠을지 
젖꼭지 질긴 귀는 아빠가 빨아야 뚫린다는데
아빠는 보이지도 않아
젖에 입맛 든 아이 분유 먹지도 않아


안개

자북하게 밀려와  
궁둥이라도 붙일라치면 
달겨드는

머리 위에 씌운 큰 종 아버님
당  당  당  당  
어머님은 작은 종  
온종일
당당 당당 당당 당당
혼쭐 빠진 
젖 
빨아 
두 시간씩 우는 대밭
소마구 우엉우엉

 

새며느리

혼인은 내 자리가 생기는 거다 들어가서야 사이 자리에 끼어 발 뻗는 일이구나 알게 된다 고방이 어딘지 잠뱅이가 뭔지 알지도 못하는 말에 후닥후닥 본동 띠기 딸이라는데 눈웃음 콧등을 치는데 지들끼리 이야기에 끼어들 수 없다 비설겆이 끝낸 어머님 나를 불러 이불을 꿰맨다 땀방땀방 비가 잦았다 한 땀에 며느리와 나란히 했던 회복간 바늘귀에 꿰어 나오고 또 한 땀 막둥이 젖동냥이 목에 가시로 벡혀 나오고 뜸벙땀 땀내 나는 젖더랑이 단숨에 빨아대는 네 살짜리 나오고 따암땀 동리 소문도 지나간 여자도 순서대로 나온다 네 살 우 진료소 여 소장 꼬신 날부터 떠나간 병원까지 차암땀 꼼꼼하지 
메모 쪼가리 쪼구려 읽다가 찾는 봉투 소인 그 날짜가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연애하듯 비 내린다
 

사막골

관계자 외 접근하지 마시오
관계 없으면 접근하기나 할까
돼지 똥내가 살을 파고 들앉았다
씻어도 벗겨지지 않는다
막 형광등 게슴츠레하다
어미돼지 분양받아 허연 새끼들 
입에 짬밥 들어가고
새끼는 새끼를 치고 
흥얼거리던 냄새
술에서 노름으로 다 날리고
골에 붙박이 품 팔러 들어와서
똥에 묻혀 바깥에 가본 지가 언젠가 싶은데
아아들 아부지는 자꾸 바깥문 쪽으로만 간다
큰비 오면 물골
앞 강이 달려오고 산이 꿀꿀거려 
이 인간 나타나지 않아
전화통 마신다
제초제 뚜껑 딴다
이래도 
이래도

 

콩깍지

엉망으로 놀았다는 말이 
엉망으로 살지 않겠다로 들리고
헤어지는 밤이 싫어 
혼인했다
한 달에 스무 날 한뎃잠 
사람 사업에 바빠 몸 축나지 않을까
걱정되고
밥 안 먹었어 지나가는 말에도 
방아 찧어 더운 밥상 차렸다
늦게 든 잠 깨울까 봐
닭 울음소리에
아이 업고 대밭 오르내렸다 
같이 있다는 사람에게서 찾는 전화가 왔다
있지도 않은 행사에 참석했다 
동구 밖에서 
방문 안으로
마중 길이 짧아졌다

기다려도 오지 않아
말하기 싫어 
한 달을 안 했다
잘못해도 안 했다

 

내 사랑은 그래

꼼짝 않고 누워 있으면 괜찮아져
등이 배기고 뜨거워지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어깨가 허벅지가 바닥에 내려설 때
숨만 쉬어도 아프지만
가만히 있으면

다 지나가 

고열이 지나간 꼬리뼈 새까맣게 탄다
터진다
진물이 마른다
더께, 타들어 가는 신호다
만져도 묻어나는 건 없다 

살을 녹이고
뼈를 갉아 
굴이 생기는 동안
안으로 기어들던 너를

나는 모른다 

 

구자순 시인

◇ 구자순

| 시인. 진주 출생. 부산대학교 간호학과를 나와 1989년 12월 혼인해 의령으로 들어옴. 그 뒤 13년 농사꾼으로 살다 2003년 간호사로 일을 바꾸었다. 2021년 『장소시학』 창간호 제1회 추천 신인상 「우리 남자」 외 14편으로 문학사회에 나섬. kjs941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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