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3호-신작시】 뚱뚱한 말 외 9편 - 정 유 미

장소시학 승인 2023.10.27 17:04 | 최종 수정 2023.11.02 12:04 의견 0

신작시

 

뚱뚱한 말 

정 유 미

 

살 바라 살 으와
걸어가는데

푸짐하네 푸짐
지나가는데

허벅지 줄까 
젖통 깔까

물크렁 선인장 
푹푹 하수구.     

 

아무도 없었다

군청 로터리 건설회사 이층 사무실
효자손 든 구두는 오늘도 오른 귀 담배 꽂고 

직원들이 외근 나간 열 시
맞은편 책상 위로 올라온 꼬랑내 
시끄럽다
집구석에서 노는 여자
여자는 팬티만 잘 벗으면 된다
입인지 주둥인지

오 년 전 부슬비
출근하니 취한 밤이 효자손 펄럭대며 
여자가 꼬리가 
치마꼬리를 직원으로 보는 구두에게
니기미 주사십니까 
요즘 밤낚시가 거시기 하십니까
간도 크지

던지기 신공 구두 날랐다
죽을 똥 
죽을 똥 계단 
어떻게 내려갔지?

 

외딴집

종일 물켜는 의령 권혜 
상권 하권 
책도 이런 비책 있다
또록또록 오들개 산딸 감꽃 졸졸 붙는 자주달개비 
물 한 잔 얻어먹을까 들어선 마루 밑 털신 한 켤레 
작은 걸 보니 할메 발 크기가 합천 엄마 
우물 장독대 부엌 살강에 보시기 종지
마루 위 플러그 빠진 
금성냉장고.

 

예쁘니요

친정 가는 준비 제삿날 아침
오빠야 부르면 버선발 
엄마, 계신 거기는 어떻습니꺼

가시기 전날 밤 병실에서
예쁘니요
눈 세워 둘레둘레 
우리 딸 참 예쁘니요
나 말고는 없었다

언니는 큰딸 오빠는 장남
권이는 아들 숙이는 막내
나는 없는 나

예쁘니요 
우리 딸 참 예쁘니요
떠나시기 하루 전.    

 

경계선

다르게 생겼다고 못생겼다고 
손가락질 수군대는 출입국 세관 직원 티나는 특급 후각 
수치 분노 불안 범죄 냄새 맡는다
어떤 날은 밀수 어떤 날은 소아성애 포르노
땀방울 역겨우면 알아채는 티나는 
입국 심사장 검색대에서 보레 만났다 
묘하게 닮은 얼굴과 냄새에 만나자마자
당신은 누굽니까 
여행자, 이름 대신 여행자라는 대답
이상도 하지 그날 이후 티나는 보레 생각
꼬리뼈 자리에 흉터 티나는 
생각나면 사랑하는 티나 떠나고 싶은 티나는 
가까이 가까이 
애벌레 먹고 숲속 달려 비 오는 연못 빨며
나는 누굽니까 
트롤, 암수한몸에 꼬리 달린 숲이야 
망설임 없는 거울이 대답해 주었다
넌 처음부터 완벽해
아름다워

거울은 사실이었고 진실을 알게 된 티나
비를 웅크리지 않는다
주룩주룩에 맡긴다
꿈틀꿈틀에 안긴다

트롤이 있다 세상과 숲 사이에
가끔 본다.

 

가리목 와리

가리목 사람은 와리 이사 안 돼 자네 외가도 와리 가서 안 풀렸다 
묵경당 어른 말씀에 가리목은 조씨 터 옆에 와리는 문씨 터
조씨는 와리 가면 씨 마른다 글월 문자 뒷산이 와리를 감싸고 있다

와리로 이사 간 창녕 조씨 외갓집 내력
외할베는 오대 독자 가리목 들은 창녕 조씨 들 
나라 잃은 시기 왜놈한테 빼앗겼다  
큰 외아제는 실겅실겅 사람만 좋아
군인 가신 둘째 외아제 군번표 돌아오셨다 
같이 떠난 셋째 외아제 한센병 
대구 막내 외아제 요양원 가셨다
키 훌쩍 초계 큰이모는 칠순에
둘째 너부리 이모 후두암 마흔일곱에 떠나셨다
귀먹어 까먹어 엄마 
보고 싶을 때면 합천 이모 

묵경당 어른이 가리키신다
자네 외갓집이다

밭이 된 씨앗 같은 작은 땅 
와리 가서 씨 안 말랐는데예 
글월 문자 뒷산이 조씨도 감싸주던데예
학산 다리 건너 뚝방 걸어 와리 간다 
건너 가리목 간다
이제부터 외갓집은 가리목 와리.

 

아침 달

아침달이란 출판사가
지나는 시 한 줄 꿍꿍 파내어
떤진다
아침이 빵구가
아니 혹이 크나큰

이러한 달을 건네는
아침달이란 출판사가
지나는 머리카락 한 올 지잉 
땡긴다
밤이 솟았는데
혹인가 했더니 비집고 든 

고것이 걷고
튀어 오르고
무릇 달은 
각색 이마를 쏜다.   

 

갱년기

앵 앵 앵
자다 일어나 홈키파 뿜어
그래 죽은 줄 알아
오줌 누는데 앵 
홈키파 뿜고
새로 잠들려는 데 앵 
홈키파 뿜고
이불에 귀에 앵
좇아 봐 덤벼 봐 
너도 질기기가 앵
앵 앵.

 

자꾸 어딘가 누르는

카페는 빨간 날 두 시에 붐빈다
평일 열두 시 반이 휴일 두 시라는 사실
관찰력이든 관심법이든 밑을 못 보니
저 혼자 빠지는 개펄

짱뚱어 속성을 가진 내가 뻘 짓 마! 하면 
웃기시네!
자를 대고 한 자 두 자 
사정거리 반경 안은 너의 글자로 
도배되었습니다

꿈이 대서빵입니까
다른 이름 밑에 끼어든 목소리
겹쳐진 목젖에는 파릇파릇이 없습니다
입 안 고이는 군침 새침이 없습니다
달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포개진 노트와
넘기고 싶지 않은 손가락


카페는 쉬는 날이 안심입니다
누구 오지 말았으면 하고 커피를 잠급니다
시월 다 가도록 줄장미 푸르고
혼자 치는 북과 여럿이 치는 벽을 
생각합니다.

 

다식

포식하고 싶으냐 증식하고 싶으냐 
유식하고 싶으냐 

미식하고 싶고 안식하고 싶고 
번식하고 싶고 
지식은 가식 무식은 탄식 
자식은 과식

얼마나 갖고프면 
장식이란 가구 다 있을까 
얼마나 무례하면 
예식이란 실례 다 있을까 
얼마나 달달하면 
주식이란 특식 다 있을까

형식은 공식 회식에 잠식
내 식은 질식 네식은 천식
네 식 단식 내 식 편식


얼마나 외로우면 
소식이란 일면식 다 있을까
얼마나 불안하면 
폭식이란 죄의식 다 있을까
얼마나 
얼마나.

 

정유미 시인

◇ 정유미

| 시인. 부산에서 태어나 9살 때부터 합천으로 들어와 합천 사람으로 살고 있다. 합천문인협회 사무국장을 11년 동안 맡았고, 합천예총사무국장을 지냄. 『경남문학』 신인상(2011)을 거쳐 『장소시학』 제2회 추천 신인상(2022)을 받아 문학사회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방송통신대학 재학.
hayandoe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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