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3호-신작시】 엉덩이 봄 외 9편 - 차수민

장소시학 승인 2023.11.06 11:35 | 최종 수정 2023.11.08 14:56 의견 0

신작시

 

엉덩이 봄

                            차 수 민

 

비 오는 건널길
들이대는 차에 넘어진 어머니는
갈비뼈 허리뼈 팔다리뼈가 부러졌다
줌치 든 전화번호가 울어
급하게 달려갔더니 딸도 알아보지 못하고
큰아들 얼굴에만 고개 끄덕인다
다니러 왔다가
내려가지 못하는 촌집
퇴원해도 혼자 앉지도 서지도 못해
아파트 창가 화분처럼 앉아
남새밭 풀을 뽑는다

뭐 하고 싶소 어디 가고 싶소
쑥 캐러 가자 쑥 캐러 가자

둘레길 가까운 밭에 앉혀드리자
웃으신다
난 앵두나무 처녀를 불렀다

평생 쪼그린 
봄이 와서
밥술도 뜨지 않는 손이 
쑥을 더듬는다
어머니는 엉덩이로 봄을 밀고 계셨다.

 

한 달

증권회사 다니는 내가
애 좀 봐 달라고 할 땐
힘 없다 못한다 해도
진영읍 참새미골
손주와 둘이서
생고구마 깎아 먹던 겨울밤은 잘 자랐고
어머니는 아팠다

내가 태어나고
시집가서 낳은 아이를 키운
오랜 흙집 
비걷이 많고 축축해
제발 새집으로 이사하자 졸라도
내가 얼마나 산다고 하며 싫다신다

입원으로 쇠약해진
어머니 몰래
아파트 사서 이삿짐 풀었더니
주주춤 들어서신다

비가 내렸다
엄마 뭐 그리 보고 있습니꺼
비 보고 있다 아이가
창가는 나지막 듣는다 
비 하나 안 들어오고
이리 좋은 데가 있나
참 좋다 참 좋다

줄이 길어 좋은 장도 싫다 하시더니
딱 한 달 살고 가셨다.

 

버드레

포교마을 구두천 부친 묘 찾아간다
나라잃은시대 창명학원 다니며 동요 쓰고
순사에게 대들었다가 맞고 사라졌다는
구두천 

올해 76세 포교마을 토박이 이을용 씨
어느 묘비의 자에 구두천 이름을 보았다 해서
첨으로 올랐다
눌산
늘 눈에 보여서 눌산
누우면 코 닿아서 눌산
사람 누운 듯 눌산
이 마을 나고 자란 갑이를 뒤따랐다
무덤 떼를 찾아야 하는데
손길 발길 드문 길
나무하고 소먹이던 발자국 다 산 되어
샅샅 헤맸지만 숨은 이름 찾지 못했다
무덤 열네 자리
묘비는 여섯

움푹 구덩이만 남은 산중턱
자식 가까이 누웠을까
구두천은 없었지만 
구가 묘가 있었다
오지 않았으면
만나러 가지 않은 채 살 것인데
오늘 왔으니 됐다고
가시 긁힌 손등 달랜다
버드레는 옛사람이 부르던 포교마을
아는 사람만 아는 이름
왜경에게 눈살 맞고
바다 보며 설움 던졌을 그물 어디쯤
햇살은 멱을 감고
그가 앉았을 너럭바위 앉아 
나는 물보라를 삼킨다.

 

성산산성

무진정 불꽃놀이 
한번은 볼 거라고 기다린 초파일이 
밤 근무 날
시간 있으면 돈 없고
돈 있으면 시간 없는
푸른 오후
어두워지면 떨어질 별똥별
연못에 그려보다가
조남산 성산산성 오른다
뛰어도 숨차고 걸어도 숨찬 
지친 그림자 
어깨에 메고
머리에 이고
남문으로 올라
서문으로 올라
말이산 굽어보며 쌓았을
옛사람 땀돌 
더러 무너졌어도
돌벽 구멍마다 눈 대고 지키는
솔잎 바람.

 

가시

니들도 쉽게는 
피지 않았을 사랑
처음
너는 갓 휘파람새 부리였어.

 

안부

맘만 가득해서 
『고성문학』 20여 권 어렵게 빌려놓고
언젠가는 적힌 인생을 꼼꼼히 들여다보겠다던
시간은 늘 뒤 번이었다 
되돌려주려고 읽어서 눈만 바빴다

『고성문학』 제6호 
회원시조를 읽다가 
삼산국민학교 급사였던 고모집 오빠를 만났다

마흔 여섯 나이 순향의 배는 그날
뚝! 하고 돛이 부러졌다. 하늘이 새파래졌다
파도는 그대로 출렁이고 청초록 물빛 꺼졌다

참상이란다 제비 같은 세 자녀 내 아낙
꿈길인가 생시인가 하늘과 땅이 터진데도
가름길 넘어선 미소 아랑곳없는 길을 간다

진솔한 솔가지 휘어 솜을 피워 살았었는데
그래서 죽었다 한다 내 원통도 빼앗겼다
이제는 안개비로 돌아간다 이 마지막 길을

하늘이고 산그림자 입술마다 얼렁인다
쓸어 모아 베푼 정이 그대 삶의 곡조였던가
부른다 함께 지낸 벗들 가슴 안에 침전되어

편안히 먼저 쉰다고 자랑하고 있다
볼록한 무덤의 단장 보기 좋았던갑다
한 줌 흙 다시 섞는 날 별빛 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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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기, 「박두만씨의 죽음」, 『고성문학』 제6호, 141쪽의 시 전문을 옮겼다. 각주 부분을 덧붙여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박두만은 경남 고성군 삼산국민학교에서 기능직으로서 20여 년간을 근무하다가 1992년 2월 10일 심장마비로 돌아갔으며 성실하기 그지없고 마음이 천심같이 어진 분으로 학교를 내 몸같이 사랑한 분이었다.


학교에서 만나면 커진 눈으로 날 보시고
아버지 뵈러 우리 집 마당 밟던 오빠가
간 소식은 들었지만 

난 갓 들어간 대학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옆을 보지 못했다
오빠 가실 때 못한 인사도
흰머리 뽑으면 동전 주시던
고모님께 못한 인사도
시에서 올리고

시인 김춘기 고성 삼산국민학교 교장 
시에서 뵙고 안부를 여쭙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밤새 누가 쫓는지
자는 얼굴이 놀랬다가 몸을 털썩
몸살감기로 누운 남편이
파래 모자반 국 한술 뜨며
시원하다는 말이 내 아침밥
옷은 세탁기에 대강 넣고
잔반 그릇은 툭툭 털어 물로 헹구고
방바닥은 보이는 것만 쓸어 담고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챙겨 입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주차한 차가 어디 있는지
오늘 회사 가면 바로 할 일
퇴근하면 딸 운동화도 사고
저녁 먹은 후엔 꼭 운동해야지 
벌써 하루를 다 보내는 
여기
근데 오질 않는다 엘리베이터
어디까지 왔나
9층에 있다
누르지 않아 열리지 않았다

 

삼산교회

교회는 천국 같았다
찬송가는 종일 불러도 좋았고
성경 몇 장 몇 절 찾는 게 재밌어
말씀 시간을 기다리고
기도하는 사람들 얼굴 보는 게 좋아
목사님 기도가 끝나면
아멘 소리에 눈을 감으며
여자 목사를 꿈꾸기도 했던 

반딧불은 
마산으로 진학하면서 흩어졌다
혼자 하루하루를 뒤적인다고
누가 죽었는지
누가 결혼하는지도 몰랐다

눈만 땡글하고 야윈 중학생
날 보살펴주던 보건소 선생님이
결혼한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
고향 오르내리며 
부끄럽고 미안했다

바람만큼 잘 되지 못해서
은혜만큼 잘 되지 못해서

선생님 딸 결혼식으로 
삼산교회
35년 만에 올려다보았다
한복 곱게 입은 선생님 앞으로
신부 절하며 훌쩍일 때
맨 뒤 앉은 
눈만 땡글한 야윈 중학생도
절하며 훌쩍였다

일찍 아버지 여의고
혼자 하루하루를 뒤적이며
감당하셨을 세월
신랑 신부 행진 뒤로 사라지는 걸 보았다.

 

상리 한약방

낮에는 밭일
저녁에는 동생 업고 
집안일 하던 움마가
가슴이 아프다며 밥도 못 먹어
심부름 간다 
고무신 벗겨지는 돌길
상리 한약방

약봉지 첩 한들한들
코스모스 하늘하늘
매달린 홍시도 맛나겠다
집 가서 움마랑 나물밥 먹을 생각
자꾸만 고무신 벗겨지고
앉지 않고 걸었는데
뒤가 어두컴컴해져
여우가 나온다는 산 고개
어른들도 잡아 먹혔다는
여기 지나 미동 넘어 울집인데

덜덜 무릎이 혼자 하는 말
여우야 오지 마라
나는 맛없다
콧물 눈물 짜는 내는 맛없다
휙 부는 바람에
눈 감은 약봉지 달린다.

 

겸상

아침 밥상 
숟가락 하나 얹으면 될 일인데
가방만 들고 나온다
학원 수업 끝나고
1시 넘어 2시까지 점심시간
큰길 따라 밥을 읽는다
물국수 6,000
순대국밥 9,000
사흘째 내리는 비
국수도 국밥도 
장마 깊은 날은 
바짝 해바라기 생각나
합성동 사거리 돌아 
옷가게 옆집 담벽 
머리 얹은 다래꽃
도로 맞은편 집은 편의점
김치사발면 구운 계란에 우유
뜨거운 물에 라면이 풀릴 때까지
계란 하나를 먹는다
라면을 한 젓가락 올리자

머리 덥수룩한 남자 터벅쩍 터벅쩍
짜장면 김밥에 복숭아맛 음료를 안고
바짝 와서 눈인사도 없이 
뜨거운 물에 짜장면이 풀릴 때까지
김밥을 먹는다
두 사람은 비좁은 식판대 
나는 컵라면을 들고 뒤로 나와 먹다가 
슬그머니 얹었다
옆에 놓인 복숭아맛 음료 이름 
춘식이다
내 친구 춘식이는 대형트럭 기사였는데
작년 하늘길로 운전했다
복숭아맛 춘식이는 어떨까?
자장면을 비비며 팔을 휘저어 
나는 컵라면을 왼손에 들고 
뒤로 물러나 젓가락질을 하며
진열대 상품들을 구경한다
자장면과 김밥을 한입에 넣는 남자
회색 윗옷이 바지 속 반, 바지 바깥 반
운동화는 양쪽 발 바깥쪽만 닳아

선반에 기댄 몸이 기울고 
내 밥상의 남자는 내가 없는 듯 
허리 밑으로 걸쳐진 바지를 올리지도 않는다
나는 남은 계란으로 선반대 톡톡 껍질을 까고
남자는 자장면과 김밥을 끝내고 춘식이를 마신다 
식판대 앞 유리창으로 비도 사람도 지나고
노른자를 입에 넣으며 겸상하는 남자를 본다
무덤덤한 둥근 얼굴에 귀를 반쯤 덮은 머리
따뜻한 밥 드세요
길 옆 물푸레나무는 
쌀밥을 수북 짓고 있다.

 

차수민 시인

◇ 차수민

| 시인. 고성 삼산 출신. 공동시집 『양파집』(2020)과 계간지 『여기』 시부문 신인상(2021)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함. 시집으로 『꽃삼촌』(2022)을 냈다.
duz9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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