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4-이달의 시】 초현식적 식물원 - 김참

시민시대1 승인 2023.04.24 11:21 | 최종 수정 2023.04.24 11:29 의견 0

매표소 앞엔 아무도 없다. 긴 줄을 상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한적할 줄 몰랐다. 국적 불명 아이들 커다란 쇠공을 굴리며 노는 식물원 입구. 알록달록한 옷 걸친 식충식물 붉은 혓바닥 위에서 파란 벌레들 녹아내리고 있다. 관람로 따라 끝이 보이지 않는 출구 쪽으로 느릿느릿 걸으며 장어나 홍어처럼 기이한 잎을 단 나무들을 구경하는 동안 출구 쪽 관람로 따라 검은 얼굴 여인이 녹슨 가스통을 굴리며 온다. 빙글빙글 춤추는 녹색 도마뱀을 깔아뭉개며 뜨거운 화목 난로 옆에 가스통 비스듬히 걸쳐놓고 여인은 열대우림 덩굴식물처럼 나무를 탄다. 커다란 식충식물이 쇠공 굴리던 아이들을 붙잡아 붉은 혀로 녹여대는 식물원 서쪽 통로 거대한 고목에 붙어 기이한 노래 부르며 검은 얼굴 여인은 내가 키우다가 버린 덩굴식물처럼 녹색 잎을 끝없이 피워올린다.

 

시작 여화 – 봄이다. 연두색 풀들이 돋아난다. 내가 좋아하는 덩굴식물도 나무를 타기 시작한다. 봄은 짧으니 이제 곧 여름이 오겠지. 덩굴식물 짙은 녹색 잎들 번지는 아름다운 시절이 오겠지.

김참 시인

 김참 
 1995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그녀는 내 그림 속   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 『초록 거미』 등.
 수상: 제22회 최계락문학상
       제15회 지리산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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