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4-수필】 등불과 가로등 - 정인

시민시대1 승인 2023.04.27 11:25 | 최종 수정 2023.04.27 11:43 의견 0

산골의 밤은 어둡고 깊다. 그래선지 밤하늘의 별들도 유난히 반짝인다. 보름날 환한 달빛도 별빛을 다 가리지 못한다. 나는 지금도 어릴 적 한여름 밤 평상에 누워 올려다본 밤하늘을 잊지 못한다. 그때의 밤하늘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캄캄한 하늘이 온통 스팽글을 뿌려놓은 듯 찬란했고, 칠월칠석 날 까마귀와 제비가 오작교를 만든다는 은하수도 은사를 수놓은 비단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펼쳐져 있었다. 나는 신비로운 밤하늘에 취해 눈을 비벼가며 잠들기를 싫어했다. 그때 나는 달에 방아 찧는 토끼가 사는 줄만 알았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 건너편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사는 줄 알았다.

할머니는 잠들고 싶어 하지 않는 나를 위해 시렁에 등불을 매달아두었다. 등불은 쉼 없이 흔들리며 그림자를 만들었다. 은은한 불빛 아래 매캐하면서도 알싸한 모깃불 향내가 퍼져나가고 밤은 점점 더 깊어졌다. 나는 흐릿한 불빛 아래 누워 전설 속의 장면들을 상상했다. 그러면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이 가슴 밑바닥에서 아련하게 차올라 어쩐지 마음이 설레곤 했다. 그러다가 별똥별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했다. ‘어데서 또 한 목숨이 지는갑네.’라고 할머니가 푸념을 하시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또 나고 죽는지 몰랐던 어린 나는 밤하늘을 그으며 아득하게 떨어져 내리는 별똥별을 보며 할머니의 말에 문득 마음이 서늘해지곤 했다. 그땐 별똥별도 자주 떨어졌다. 별 하나에 목숨 하나가 진다고 할머니가 진짜 믿으셨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은 할머니의 말씀이었으니까.

그처럼 산골의 밤하늘은 나에게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과 신비함,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때는 도시의 불빛도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빌딩 숲이 하늘을 마구 가리지도 않았고, 가로등 불빛도 지금처럼 즐비하지 않았다. 깊은 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면 산골의 밤만큼은 아니라도 별들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도시가 팽창하여 집들이 늘어나고 높은 빌딩이 많아지니 하늘이 점점 더 작아졌다. 빌딩 숲에 가려 작아진 하늘에 돋아나는 별들은 찬란하지 않았다. 불빛이 느는 만큼 별빛은 희미해졌다. 도시는 나날이 발전했다. 부산은 인제 은근하고 속살 깊은 모습을 거의 잃고 화려하고 되바라진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과거 지향적 인간인 듯한 나는 그 속에서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많은 것들에 대해 아쉬움이 무척 크다.
 
동네 아이들과 고무줄뛰기를 하던 골목길, 엄마가 물을 길으러 다니던 우물, 우리 가족이 살았던 집들, 그 동네의 푸짐한 인심, 결혼해서 잠시 들어가 살았던 시댁 동네의 한적함…. 그런 풍경들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무엇보다 허전하고 씁쓸한 것은 내가 살았던 집들이 사라진 자리에 대단지 아파트와 빌딩들이 들어선 것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단지 아래 영원히 묻혀버린 나의 집들은 이제 내 기억 속에나 살아 있을 뿐이다.
 
나는 도시의 급속하고도 가벼운 변화에 자주 넌더리가 났다. 그때 처음으로 도시를 떠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이 도시의 속성이라 쳐도 수십 년을 살아온 기억의 장소들이 한 군데도 남아있지 않은 상실감을 겪어본 사람은 그 도시의 발전이 빛나는 훈장만으로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뜬금없이 산촌에 집을 장만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내심 반겼다. 그렇다고 쉬 동조할 수는 없었다. 모르긴 해도 산촌에는 남자가 할 일이 더 많을 게 분명했다. 자칫 그 노동이 내 차지가 될까 염려스러웠다. 남편은 뒷짐 지고 일을 발로 차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어디서 바람이 들었나. 의아한 마음에 대답을 미루었다. 남편은 사뭇 진지했다. 나에게 부담 안 주고 정말 잘할 거라고 했다.
 
남편의 마음을 그렇게 만든 것은 지리산이었다. 십여 년을 주말이면 배낭을 메고 지리산을 헤매고 다니더니 그 자락 어디쯤 노년에 깃들 집을 하나 가져야겠다는 소망을 가진 것 같았다. 남편을 좀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고, 나이 들수록 병원 가까이 살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자연과 더불어 가족의 체취가 스민 집을 갖고 싶었다. 그 속에서 내 아이들과의 추억이 쌓이고, 아이들의 아이들도 오래된 기억을 나눌 수 있는 집, 웬만큼 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사람을 반기는, 그런 집을 갖고 싶었다.
 
우리는 함께 길을 나섰다. 남편은 신나게 액셀을 밟아 내가 태어난 곳 산청을 지나 함양으로 달렸다. 경호강을 따라 달리는 국도에 알록달록 핀 코스모스가 소슬한 바람 속에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도로가 옛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아지고 길가의 풍경도 많이 변했지만 그곳에는 어릴 적 오가며 보았던 자연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렇게 지리산 자락에 집을 한 칸 마련했다. 작은 방 두 개에 거실과 부엌을 겸한 공간 하나. 그 작은 집에서 한 번씩 가족 모임을 하면 열두세 명이 모였다. 거기서는 사람들이 끼어 자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여선 다들 밤하늘에 별이 많다고 놀라고, 달빛이 유난히 밝은 것에 놀라고, 어떨 땐 달도 별도 없이 칠흑 같은 밤이 펼쳐진 것에 놀라기도 했다. 한 번씩 모여 그런 시간을 보낸 지 어느덧 십 년. 그곳에도 변화가 있었다. 다만 도시와 달리 모든 게 천천히 달라졌다. 그런 중에도 다행히 우리 집 주변은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도저히 반갑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우리 집 뒤로 가로등이 설치된 것이다. 밤이면 어둠에 묻혀 있던 길이 갑자기 환해졌다. 시골의 가로등 불빛은 도시의 그것보다 훨씬 더 창백하고 강렬했다. 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개울 건너 야산도, 우리 집 뒤꼍도 완전히 발가벗기는 기분이었다. 나는 오래전 할머니 마당에서 누구에게도 거슬리지 않고 혼자 흔들리던 등불의 은은함을 떠올렸다. 그 어스름한 불빛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있는 듯했는데 창백한 가로등 불빛은 감추어야 할 속살까지 환히 드러내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개울 건너 야산에는 밤이면 새들이 깃들고, 이른 아침이면 깨어나 제각각의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하는데 나만큼이나 불빛이 성가실 게 분명했다. 새들의 지저귐이 어떤 음악보다 좋은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면 어떡하지? 더는 칠흑 같은 밤도 볼 수 없겠다 싶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누군가는 불편해하는 어둠을 그대로 두라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부엌에 설 때마다 염치없이 내 얼굴을 비추는 불빛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가로등 민원과에 전화를 했다. 사정을 말하고 불빛을 좀 줄여주면 좋겠다 했더니 기사가 왔다. 그는 마치 자기 잘못이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가로등이란 기 옛날 등불맨치로 좀 흐릿해야 제 맛인데, 요새는 사람들이 자꾸 밝게 해달라캐요. 시골껀 말도 몬하게 더 밝습니더.’ 가로등을 설치하러 다니는 그도 산촌의 어둠을 마구 베어 먹는 불빛이 마냥 반갑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그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그는 내가 원하는 방향에 까만 필름을 꼼꼼하게 붙여주었다. 다행히 불빛이 한결 수그러들었다.

나는 비록 칠흑 같은 밤은 다시 못 보더라도 새들은 편하게, 오랫동안 저산에 머물러주기를, 또 다른 변화들이 온다면 아주 천천히 오기를 바랐다. 그리고 희망을 품었다. 가로등이 하나 생기는 데 십 년이 걸렸으니 한꺼번에 도시처럼 많은 변화가 오지는 않으리라고….

 
소설가 정인

정 인

2000년 <21세기문학> 등단
저서: 작품집 『 그 여자가 사는 곳』 『 만남의 방식』 『 누군가 아픈 밤』 외
수상: 부산소설문학상, 부산작가상, 백신애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등
현) (사)부산소설가협회 회장
 
 
 
 
 
 
 
 
 
 
※(사)목요학술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시민시대』는 본지의 콘텐츠 제휴 매체입니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