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오의 '생활법률 산책' (4)이름을 바꿀 자유

이상오 승인 2018.12.01 09:50 | 최종 수정 2019.02.08 17:56 의견 0

개명은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불허한다

이름을 아무렇게나 짓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남아선호풍조로 인해 원하지 않는 딸을 낳았을 때 이름 짓기는 불만을 한껏 표시하는 화풀이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딸을 낳아 분하다고 분숙이, 이제 딸은 끝이라고 끝순이, 말숙이, 그냥 부르기 쉽게 일본풍으로 영자, 순자...

그나마 신경을 써서 지은 이름들 중에도 성과 함께 쓰면 이상한 경우가 많습니다. 평생 하루에도 수십 번을 불리고 들어야 할 이름을 이렇게 막 지어 놓으니, 철들 때가 되면 놀림감이 되기 일쑤이고 이름 때문에 인생이 안 풀린다고 푸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평생 쓰지만, 주변을 보면 이름을 바꾼 분들도 꽤 있습니다. 수십년 간 사용하던 이름을 바꿀 경우 가까운 사람들은 그 사람이 같은 사람임을 의심하지 않지만, 그 사람과 금전적인 거래를 하였거나 다른 법률관계에 얽힌 경우에는 바뀐 이름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있습니다. 특히 범죄에 연루된 사람이 자신의 신원을 숨길 목적으로 개명을 악용할 우려도 있고, 실제로 개명절차를 이용해 부동산 사기사건을 일으킨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바꾸는 일이 쉬워서는 안 될 것 같은데, 법원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쉽게 개명을 허가합니다.

우리 대법원은 ‘개명허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이름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와 기능, 개명을 허가할 경우 초래될 수 있는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 등 공공적 측면뿐만 아니라, 개명신청인 본인의 주관적 의사와 개명의 필요성, 개명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효과와 편의 등 개인적인 측면까지도 함께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개명을 허가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고, 범죄를 기도 또는 은폐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개입되어 있는 등 개명신청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개명은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불허한다는 것이 법원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법원의 이러한 입장은 개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한다는 자유주의 원칙의 발현이자, 행복추구권을 명시한 헌법정신을 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법원이 예외적으로 불허하는 사유, 즉 범죄를 기도 또는 은폐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확인되지 않는 한, 이름 바꿀 자유를 인정합니다. 평생 놀림을 당한 이름을 나이가 들어서 바꾸기도 하고, 심지어 사주팔자를 보니 이름이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서 개명을 한 사례도 있으며, 좀 특별한 일이긴 하지만 이름을 두 번 이상 바꾼 사례도 있습니다.

개명을 허가하지 않는 사례는 대부분 개명신청자가 범죄행위에 연루되어 있어서 이름의 동일성이 유지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입니다. 형사처벌을 집행하려고 하는데 이름이 다르다면 혼란이 생길 수 밖에 없겠죠.

그래도 늘 법의 맹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므로 거래관계에 있는 사람의 이름이 의심스러울 때에는 반드시 주민등록번호나 가족관계를 확인하는 세심함이 필요합니다.

2005년부터 성(姓)과 본(本)도 바꿀 길 열려

이름을 바꾸는 것은 비교적 쉬운 편인데, 그러면 성(姓)과 본(本)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요? 예를 들어 ‘경주이씨’를 ‘김해김씨’로 바꿀 수 있는가 입니다. 개인이 자신의 성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다른 성씨로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과 본은 혈족을 나타내는 상징이고, 우리나라 가족법이 주로 혈족들간의 권리관계를 규율하고 있으므로 함부로 성과 본의 변경을 허용할 경우 큰 혼란이 발생할 것입니다.

성과 본의 변경은 거의 자녀의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가족법은 부계혈통주의를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자녀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2005년 개정된 현행 가족법도 원칙적으로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하고 있으나, 혼인 시 부부의 협의에 의해 어머니의 성을 따르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혼한 여자가 자녀를 데리고 재혼을 하였을 경우 그 자녀의 성을 새아버지의 성으로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자녀가 학교와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는 가족관계 내에서 발생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자녀에게는 심각한 인권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사회가 오래 동안 풀어야할 숙제였습니다.

2005년 가족법이 부계혈통주의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크게 개정되면서,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재혼 가정에서도 자녀의 성과 본을 새아버지의 성과 본으로 변경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물론 자녀과 성과 본을 변경하는 신청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법원이 허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자녀의 복리입니다.

성과 본을 변경하였을 경우, 자녀에게 정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섣부른 변경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관계 및 사회생활에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에는 성과 본의 변경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이혼 전 아버지의 성을 따르던 자녀가 성년이 된 후 어머니의 성으로 변경 신청한 사안에 대해 법원은 그동안 형성된 정체성과 사회관계에 혼란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하여 성과 본의 변경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자녀의 성과 본의 변경이 그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부 또는 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보호할 필요성, 자녀의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자녀의 의사, 자녀의 나이 및 성숙성, 가족상황의 성질, 성본변경의 신청 동기, 변경 반대부모의 자에 대한 비행 및 방임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여 비교적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성과 이름은 한 개인이 다른 사람과 구별될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정체성표시 방법입니다. 처음 만들어진 성과 이름을 가능하면 평생 가져가는 것이 좋겠지만, 성과 이름은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부여된 것이므로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법은 개인의 행복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이 크므로 성과 이름을 변경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에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별 문제가 없다면 마땅히 허용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 사익과 공익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는 각 사안별로 법원이 풀어야 할 숙제로 돌아갈 것입니다.

<법무법인 '서면' 사무국장>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