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오의 '생활법률 산책' (8)승소판결의 함정(상)

이상오 승인 2019.01.03 16:11 | 최종 수정 2019.02.08 17:49 의견 0
법무법인 '서면' 제공
법무법인 '서면' 제공

어느 어촌 마을 가까운 곳에 대규모의 공공 개발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야산을 폭파하고, 건설 중장비들이 들락거리고, 밤낮으로 트럭들이 흙을 실어 나르면서 평화로운 마을은 진동과 소음, 먼지 공해에 시달렸습니다.

관할 지자체에는 민원이 빗발쳤고, 마을 주민들은 경운기를 동원해서 공사장 진입로를 막고 농성을 벌였습니다. 대규모 토목공사인 만큼 공사 초기의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으나, 주변 주민들 입장에서는 안전과 생존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지자체의 강한 압박이 있기도 했지만, 공사 주체 측에서도 공기를 맞추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민원을 속히 해결해야 했습니다. 주민 대표들과 공사 주체측 간에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의 협상 끝에 공사주체측에서 마을 공동체를 위해 상당금액의 발전기금을 내놓기로 합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민들 중에 합의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이 일부 있었습니다. 마을이 공동으로 쓰는 발전기금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공사장의 발파과정에 발생한 진동과 대형 트럭들의 통행으로 인해 집에 균열이 생겼으므로 집을 새로 지을 비용을 개별적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공사가 마을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는 않았으나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지은 지가 오래되어서 집에 생긴 균열이 노후화로 인한 것인지 공사장 진동으로 인한 것인지 확인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초반 토목공사가 마무리 되면서 마을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마을에 기탁된 발전기금은 마을 전체에 필요한 사업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합의에 반대한 마을 주민 한 사람이 공사 주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공사장 진동으로 인해 집이 심하게 균열되어서 안전에 문제가 발생했으므로 집 수리비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 소송의 이유였습니다.

집주인은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건설업자에게 집 수리비 견적을 받았는데, 견적금액이 1억 원을 넘었습니다. 거의 집을 새로 짓는 정도의 비용이었습니다. 집주인은 수리비 견적서 금액과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로금을 포함해서 총 2억 원을 소송가액으로 하여 건설 주체 측에 청구했습니다.

어떤 원인에 의해서 발생했든지 간에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가장 필수적인 절차는 피해액에 대한 전문가의 감정입니다. 감정인은 법원이 지정합니다. 사람이 심하게 다쳐서 후유장해가 남았을 경우에는 해당분야 전문의가 다친 사람의 노동능력상실 정도를 감정하고, 물건에 생긴 피해에 대해서는 손해사정사, 건축사, 기술사 등 해당분야 전문가들이 피해액을 감정합니다.

그러므로 피해를 청구하는 측에서 자의적으로 만들어서 제출하는 견적서는 객관적인 증거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견적서는 말 그대로 집의 수리비를 추정할 것일 뿐 공사와의 관련성까지는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송에서도 당연히 전문가의 감정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감정결과, 주택에 생긴 균열양상으로 봐서 대부분이 주택의 노후화로 인한 것이고 공사장의 진동으로 인해 주택에 균열이 발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전문가 소견이 제출되었습니다. 그나마 주택의 외벽 일부분의 수리비로 400만 원 정도가 공사로 인한 피해액으로 인정되었습니다. 판결도 그 금액 그대로 났고 정신적 손해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집주인은 건설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400만 원을 지급받는 승소를 한 것입니다. 다른 집들은 개별적으로 피해배상을 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잘 된 결과가 나온 겁니다. 나홀로 소송을 했기 때문에 변호사비용이 따로 들지는 않았으나, 기본적인 소송비용과 감정비용을 그만큼 부담했으므로 사실 남는 돈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후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승소를 한 집주인이 나중에 건설회사에 수백만 원을 다시 물어줘야 하는 사태가 초래되었습니다. 적은 금액이지만 그래도 거대 건설회사를 상대로 승소를 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황당한 일이 생긴 겁니다.

집주인은 소송 과정에서 이러한 결과를 막을 방법이 있었지만 소송 관련법을 자세히 몰랐고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대응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집주인 측의 입장을 배려한 법원의 권고를 무시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집주인은 왜 다시 돈을 물어내야 했을까요?

사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리라는 건 법률전문가라면 판결문만 봐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이 집주인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청구한 소송가액은 2억 원이었는데, 주택 피해 감정결과 400만 원만 인정되었습니다. 판결도 그대로 났으므로 소송가액 중에 400만 원은 승소했지만, 1억9,600만 원은 패소한 것입니다. <(하)에 계속>

<법무법인 '서면' 사무국장>(051-817-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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