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이오스,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을 수정하다

프톨레마이오스,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을 수정하다

조송현 승인 2017.02.04 00:00 | 최종 수정 2018.07.23 13:40 의견 0

 

프톨레마이오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체계를 관측 결과와 일치시키기 위해 주전원과 이심원을 도입했다. 그의 체계는 복잡했으나 관측 결과와 잘 맞았다. 출처: 위키피디아
프톨레마이오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체계를 관측 결과와 일치시키기 위해 주전원과 이심원을 도입했다. 그의 체계는 복잡했으나 관측 결과와 잘 맞았다. 출처: 위키피디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 중심의 우주 체계는 곧 결함을 드러냈습니다. 예를 들면, 달의 크기는 관측 시기에 따라 8~10%의 변동을 보입니다. 지구에 가장 가까이 다가왔을 때와 가장 멀리 떨어질 때의 크기가 달라보인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행성들도 밝기의 변화를 나타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지구에서 행성까지의 거리 또는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 중심의 천구 체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별이 일정한 크기의 천구에 붙어 있다면 밝기나 크기의 변화를 보일 수 없겠지요. 게다가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덕분에 바빌로니아인들이 축적해 놓은 수많은 천문학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 중심 우주 체계가 이들 자료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 체계를 수정할 필요를 느꼈고, 수백 년에 걸쳐 수정 작업을 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정수를 담은 책 '알마게스트'

아리스토텔레스 우주 모형에 대한 수정 작업은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며 고대 그리스 문화를 연구하던 천문학자입니다. 그는태양 달 행성 등의 운동을 계산한 결과를 실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 책은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세속적인 학문이 쇠퇴하면서 유럽에서 잠시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랬다가 아랍에 전해졌던 그 책이 아라비아어로 번역되었고, 후에 ‘가장 위대한 것’이라는 뜻의 『알마게스트 Almagest』(원본 그리스어 제목은 『수학적 모음집』)라는 제목으로 유럽에 역수입되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태양, 달과 행성들의 모든 움직임을 서로 연결해 하나의 체계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포기했습니다. 천체 운동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계산만 하면 충분하며, 그 원인까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현상과 일치하는 정확한 계산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지요. 예를 들어 달력과 항해표를 작성할 때, 계산법이야 어떻든 정확한 계산만이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여러 개념을 사용하여 천체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다른 천문학자들이 고안한 개념을 사용하기도 하고, 스스로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운동의 개념은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유는 원이 완벽하고 우아한 도형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을 계승한 것입니다. (천체가 실제로 원 궤도 운동이 아니라 타원 궤도 운동을 한다는 사실은 케플러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이 반드시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천체의 '원  운동' 관념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적(기하학적) 우주관과 천상의 세계는 완전하고 영원불멸하다는 세계관이 결합해 탄생한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다섯 개의 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태양과 달 그리고 항성천구의 별들을 관찰했습니다.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원 운동을 한다면 어째서 밝기나 크기의 변화가 나타날까?

프톨레마이오스는 이 천체들이 완벽한 원 운동을 해야 한다는 절대 요건, 혹은 관념과 실제 관측 현상(때론 후퇴하는 등 일정한 원 운동이 아님)을 일치시키기 위해 기존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체계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는 우선 두 가지 기초 개념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 하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놓여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기초 개념을 유지하면서 원 운동 관념과 실제 관측 결과를 일치시키기 위해 크게 두 가지 개념을 새롭게 도입했습니다. 그것은 주전원(周轉圓,epicycle)과 이심원(離心圓, eccentric cycle, deferent)이라는 개념입니다. 항성구의 중심은 지구이지만, 행성의 대원(이심원이 그리는 원)의 중심은 이와 다른 곳에 위치합니다. 대원의 중심이 항성구의 중심에서 벗어나있기에, 대원을 이심원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심원의 중심은 이심(eccentric point)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전원의 중심은 이심에서는 일정한 속도로 돌지 않는 것으로 관측되었습니다.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의 주전원의 중심이 특정 점을 중심으로 일정한 속도로 원운동한다고 가정했는데, 그 점이 바로 동시심(equant)입니다. 

아래 그림은 커다란 이심원과 작은 주전원 외에, 이심원의 중심의 운동, 항성구의 일주운동, 동시심을 중심으로하는 각도와 같은, 하나의 행성 운행에 대한 다섯개의 움직임을 개념적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우주 모형 개념도. 행성이 주전원의 작은 궤도를 돌면서 대원의 큰 궤도를 돌고 있다. 계의 중심은 X(이심)이며 지구는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이심을 기준으로 지구와 대칭되어 있는 점이 바로 동시심(equant)이며 프톨레마이오스가 새로 도입한 개념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러한 모형을 바탕으로 행성들의 밝기가 일 년 동안 변하는 것과 행성의 역행운동을 설명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프톨레마이오스 우주 모형 개념도. 행성이 주전원의 작은 궤도를 돌면서 대원의 큰 궤도를 돌고 있다. 계의 중심은 X(이심)이며 지구는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이심을 기준으로 지구와 대칭점이 바로 동시심(equant)이며 프톨레마이오스가 새로 도입한 개념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러한 모형을 바탕으로 행성들의 밝기가 일 년 동안 변하는 것과 행성의 역행운동을 설명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주전원은 고대 힙파르쿠스(Hipparchus of Nicea, BC 190~120)가 처음 제시한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특정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완벽한 원 운동을 함과 동시에 그 공전 궤도 상의 한 점을 중심으로 작은 원 운동을 한다고 가정했습니다. 이때 그 작은 원을 주전원이라고 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또 천체들을 운반하는 거대한 수정천구가 실제로는 지구의 중심을 원점으로 해서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지점들을 중심 삼아 돌고 있다고 가정했다. 이때 중심에서 벗어난 일련의 지점들을 '이심점(eccentric point)'이라고 합니다. 개별 천체들의 원 운동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 각 천체의 이심점은 그 위치가 서로 다르다고 가정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구는 여전히 우주의 중심으로 남았지만, 다른 천체들은 지구의 중심이 아닌 각자의 이심점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심점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의 궤도를 이심원이라고 합니다.

원 운동 조건과 관측 결과 일치 위해 주전원(epicycle), 이심(eccentric point) 도입

행성은 주전원을 따라 이동합니다. 주전원과 주전원의 중심이 움직이는 큰 원의 상대적 크기를 조절함으로써 어떠한 행성의 궤도도 그려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미 알려진 천체의 주기적 운동의 수가 불어나 이들을 설명하는 데는 약 80개의 천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궤도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천문학의 목적을 모두 이루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천체가 궤도를 따라 이동하는 속도도 역시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행성이 언제 그리고 어디에 나타날 지를 정확하게 예측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전원을 따라 이동하는 행성의 속도를 변화시키든지, 주전원의 중심이 움직이는 속도를 빠르게 또는 느리게 조정할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그는 천체들이 하늘에 나타나는 위치와 시기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만이 그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과학적 원리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했던 것이죠. 이런 점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과학자라기보다는 기술자였던 것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모형은 태양 달 행성들이 고정 별들을 역행하여 움직이는 이유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이때 그 고정 별들은 각 이심들을 중심으로 다른 천체들에 붙어서 동심원의 모습으로 돌고 있는 수정구 중에서 가장 바깥쪽 수정구에 붙어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모든 천체를 이런 식으로 계속 움직이게 하는 물리적 과정, 또는 수정구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는 없었습니다.

이런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비판을 종종 받았고, 이심들의 필요성 때문에 많은 철학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고 합니다. 즉 과연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길 수 있느냐는 문제가 불거졌던 것입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가 그 주위를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지동설은 기원전 3세기 아리스타르코스로 곧장 거슬러 올라가고, 프톨레마이오스 이후에도 가끔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당시 ‘상식’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이유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단점: "수정천구 80개, 지나치게 복잡"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복잡성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옵니다. ‘현명한 왕’으로 유명한 13세기 스페인의 왕 알폰소 10세(Alfonso X)는 천동설에 기반을 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이 너무 복잡하다고 불평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태초에 만물이 창조될 때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훗날 우주의 섭리를 찾아 헤맬 인간들을 위해 약간의 실마리를 남겨 놓았을 것이다.”

유럽 기독교계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체계(geocentric system)와 거의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스템은 항성천구 뒤쪽의 우주에 천국과 지옥을 마련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모형을 진리로 받아들였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이후 1000년 동안 지배력을 유지한 데는 이 같은 요인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것은 또 달력 제작과 항해에 필요한 정확한 천문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체계였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또한 고대 최후의 중요한 지리학 서적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지구의 크기를 재었는데, 고대 그리스 에라스토테네스의 계산 값보다 작게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서양을 건너 아시아에 이르는 대양의 거리가 실제보다 훨씬 짧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콜럼버스로 하여금 항해 계획을 짜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플레토마이오스가 지구의 크기를 실제보다 큰 계산 값을 내었다면 콜럼버스가 항해 계획을 짤 엄두를 내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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