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숙 교수의 호스피스 이야기】 (10)호스피스에서 죽음의 단계 이론

박선숙 승인 2022.09.29 10:36 | 최종 수정 2022.09.30 10:53 의견 0
[픽사베이]

죽음과 슬픔의 과정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있습니다. 죽음의 단계나 슬픔의 여러 이론은 죽어 가는 이나 이혼한 사람들 또는 신체 일부를 상실한 사람의 극복, 그리고 자연 재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연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린드만 (Lindeman, 1944)의 3단계 이론(부정, 애통, 슬픔), 볼비(Bowlby, 1961)의 3가지 측면(반항, 혼란, 재정립),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68)의 5단계(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파케(Parkes, 1970)의 심리적·정서적 측면(그리움, 반항, 혼란) 등이 그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다양한 상실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가장 많은 기여를 한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의 이론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녀는 많은 임상 경험을 통해 임종에 가까워진 환자들이 다양하면서도 특정한 슬픔과 상실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습니다.

퀴블러 로스는 환자들이 단계마다 다르게 고통을 이겨내며 새로운 단계마다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내었습니다. 이 단계는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다섯 가지이며 이러한 지식을 통해 환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이론이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임종자 모두가 다섯 단계에 꼭 도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단계라고 표현하지만 어떻게 보면 반응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반응은 환자의 신체적·사회적·심리적 요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부정(Denial)입니다. 자신의 질병이 치유될 수 없음을 알게 될 때 “아니야, 나는 믿을 수 없어”라는 표현을 하게 되는 반응입니다. 사실에 대해 충격적으로 반응하면서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단이 잘못 내려졌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여러 의사를 찾아다니며 좀 더 나은 진단이 내려지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사람은 중상이 없어질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기도 하지만, 그 치료를 통해 완쾌될 수도 있다는 기대 속에서 더 적극적인 치료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그들이 부정의 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부정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사실에 직면할 준비가 되었을 때는 다른 사람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고통을 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의 감정을 반항과 분노(Anger)로 나타냅니다. “하필이면 지금! 왜 나에게!”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나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또는 신에게까지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반응을 보이는 단계입니다. 이러한 시기에는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감당하기 상당히 힘들어집니다. 분노의 감정을 자신 또는 타인에게 전가시키거나, 대상이 수시로 바뀌고 모든 상황에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건강한 사람을 질투할 수 있으며, 일찍 죽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충분히 분노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도록 기다리면서 존중과 이해를 해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이해와 관심을 받게 되면, 자신은 곧 죽게 되고 사람들이 자기를 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이 아직도 가치 있는 사람이며 보살핌을 받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활동이 허락된 사람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타협(Bargaining)의 단계입니다. 이때는 불가피한 사실을 어떻게든 연기하려는 시도를 하는 단계로,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착실하게 살아왔고, 신에게 특별한 헌신을 하기로 맹세함으로써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협은 주로 절대자와 하는 타협으로 다른 단계에 비해서 기간이 짧아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차피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어. 그러니…”라고 말하면서 생명을 연장해달라고 하거나, 며칠이라도 좋으니 통증이나 신체적 불편 없이 보냈으면 하는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 단계에서 간혹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면 자기 몸의 일부나 전체를 의학 발전을 위해 기증하겠다고 언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 역시 정상적이며 다음 단계를 위해 준비하는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번째 단계는 우울(Depression)의 단계입니다. 회복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더이상 부정하지 못하게 될 때 침울해지는 단계입니다. 이때에는 자신의 슬픔과 두려움을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가만히 있거나 울기도 합니다. 초연한 자세와 무감동, 분노와 격정이 극도의 상실감으로 바뀌면서 심한 우울증에 빠집니다. 이러한 우울의 단계에서는 신체 부위의 손상이나 가족을 만나거나 돌볼 수 없는 상태에 대한 반 작용적(reac-tive)인 우울과, 사랑했던 사람들과 자신에게 중요했던 모든 것의 손실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예비적(preparatory) 우울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주위 사람들은 충분히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고 불평할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슬픔을 느끼며 조용히 자기 곁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귀담아 들어주고 부드럽게 대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수용(Acceptance)의 단계입니다. 더이상 분노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습니다. 관심의 세계가 점점 좁아지면서 마지막 정리의 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포기의 반응이 아니라 평화로운 느낌, 명랑함, 사물과의 긍정적인 타협의 모습을 보이는 단계입니다. 그렇다고 행복한 감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너무 지쳤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혼자 있고 싶어하며 사람들을 반가워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꺼려할 때가 많습니다. 그동안의 의사소통은 언어보다도 무언의 대화로 바뀝니다. 임종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침착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이 침묵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뜻깊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자신이 버림받지 않았다는 확신에서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옆에 머물러 주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자신은 사랑받고 있으며 값있고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단계이론은 개인의 특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개인의 성격에 의해서 또는 그들의 신체적·사회적·심리적 요인에 의해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 개인이 이러한 모든 반응을 경험하지는 않으며, 또한 이론가들의 단계처럼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님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박선숙 교수
박선숙 교수

 

 

 

 

 

 

 

 

 

<동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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