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9. 임제와 신희③

박기철 승인 2024.03.23 11:02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9-3. 팜므 파탈이었던 신희

노 노 노! 절대 그러지마. 싫어. 나 그냥 브라운 할래. 마하트마는 무슨! 브라만교라는 게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해도 난 내가 만든 브라만교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살아생전엔 좋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야. 일단 사람을 높고 낮은 신분으로 구분하는 거부터 잘못 되었어. 이름이 브라운인 나는 울 종족들이 드려야 할 제사의식을 만들고 제사를 관장하는 신분이었으니 나랑 가까운 사람들은 가장 높은 브라만 계급이 되었지. 그 밑으로 사람들을 여러 계급으로 나누었으니 그게 어디 좋은 거겠어. 브라만교가 브라운인 나를 정점으로 이루어지는 거니까 결국 나 좋으라고 만든 종교였어. 비인간적인 종교였어. 알고보면 나는 내 아래 신분계급의 사람들을 괴롭힌 장본인이야. 특히 내가 이주해 간 땅에서 살던 검은 피부의 토착 원주민을 가장 낮은 계급으로 정하며 그들을 노예로 삼은 것을 반성하며 후회되. 난 살아생전에 결코 잘 한 게 없어. 너무 오만하며 거만하게 거들먹댔을 뿐이야. 나 죽고 천년 후에 이를 간파한 위대한 인물이 바로 고타마 싯다르타였어. 브라만 아래 크샤트리아 계급에 속한 왕족이었던 그는 형이상학적으로 치달으며 고리타분해지는 브라만교의 맹점을 알며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를 창시했지. 그 위세가 대단했다고 들었어. 결국 그는 깨달은 자의 표상인 부처가 되었지. 고타마 싯다르타는 참으로 엄청난 성인이야. 그보다 천년 전에 먼저 태어난 나도 존경할 만해. 그러나 브라만교가 원래 뿌리내린 땅에서 불교는 뿌리를 내릴 수 없었지. 대신 윗나라 중국으로 올라가 뿌리를 내리고 아시아 대륙을 주름잡는 엄청난 종교가 되었지. 그리고 고리타분한 브라만교는 좀더 생기발랄한 힌두교로 전환되었지. 아무리 브라만교가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해도 나는 힌두교의 창시자로 불리기에는 부족해. 다만 내가 인도 땅에 미친 영향력이 지대했던 건 사실이야.

하긴 여기서 내가 너를 마하트마 운운하며 창시자로 치켜 세우는 것도 부질없네. 네 말이 맞아. 그냥 여기 이름대로 임제라 부를게. 근데 너 나란 여자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 내가 누군지?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살아생전에 엄청난 사람들이 집결한 곳이라는데 내가 왜 여기 왔을꼬?

글쎄! 그냥 평범한 아줌마처럼 보이는데… 뛰어난 미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녀처럼 보이지도 않아. 더군다나 끼많은 요부처럼 보이지는 않은데 넌 도대체 왜 여기 들어왔지? 방을 잘못 배정받아 잘못 들어온 거 아니야?

호호호… 나 우습게 보지마.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세기의 유혹녀였어. 그렇다고 네 말대로 내가 아주 미인은 아니지. 그런데도 남자들은 내 앞에서 꼬리를 내렸어. 납짝 엎드렸어. 어떤 남자들은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자살까지 했어. 그렇다고 그 남자들이 바보들은 아니었어. 당대에 가장 똑똑하며 머리좋다고 소문난 최고 인텔리이자 지성인들이었어.

아니 네가 그랬다고? 도무지 믿기지가 않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너가 뭐가 좋다고? 그냥 펑퍼짐한 아줌마일 뿐인데. 좀 후줄근하게 보이기도 한 너한테 무슨 매력이 있었을까? 그것도 너의 사랑을 얻지 못했다고 자살한 남자까지 있었다면 신희 넌 그야말로 팜프 파탈이네. 치명적 매력을 가진 요부!

후세 사람들은 나를 대표적 팜므 파탈로 인정하며 평가하고 있지. 그것도 최고급 지성인을 유혹한 남자로 알려졌지. 난 나보다 지성이 떨어지는 남자들은 우습게 여겼어. 그냥 성적 상대나 노리개로 여겼지. 난 머리가 특출한 남자들과 정신적으로 교감하며 사귀었어. 대개 머리가 좋은 남자들은 지성미 넘치는 여자들을 오히려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나한테는 안 그랬어. 그냥 나좋다며 매달렸어. 말이 통했나봐. 그런데 난 그런 남자들의 적극적인 성적 애정 요청에 절대 응하지 않았어. 좀 못되기도 했지. 아니 좀이 아니라 지금 와서 보니 많이 못된 여자였어. 내가 뭐 그리 잘났다고 나 좋다며 날 안고 싶다며 달려드는 남자들을 거세게 내쳤는지 몰라. 그 남자들은 애가 닳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삶의 의욕을 잃기도 했어. 그렇다고 내가 정조 관념이 강한 여자는 절대 아니었어. 숱한 남자들을 사귀며 성을 질펀하게 즐기기도 했어. 그렇다고 사귄 남자들에게 내 마음을 주지 않았어. 그냥 육체만 준 거지. 참 나란 여자 나도 알다가도 모르겠어. 성적으로 문란하면서도 어떤 남자들에게는 절대로 여자의 문을 허락하지 않는 팜므 파탈! 내가 봐도 난 아이러니 떵어리야. 패러독스 그 자체지. 그런데 말이지! 난 2000여년 전 어느 여자의 환생이자 화신이기도 해. 그녀도 팜므 파탈의 대명사로 알려졌지. 그녀가 누군지 너도 대충 알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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