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19)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4장 송도와 진주여자(27)

이득수 승인 2024.03.29 08:00 의견 0

“공부를 잘 하는 편이라 제 앞가림이야 하겠지만 아파트 하나 정도나 웬만큼 먹고 살 만큼 살림도 물려줄 작정이야. 그래 봤자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제 아비나 수시로 바뀌는 새엄마들 때문에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그래 그런 건 차차 살면서 생각하고.”

“그래요. 오늘은 예까지 하지. 아이 올 시간이 되었어요.”

“알았어.”

14. 송도와 진주여자(27)

진주 쪽이 조금씩 수습이 되는 사이 송도해안볼레길의 중간보고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대충 작성된 보고서초안을 담당국장과 부구청장에게 보이니 듣지도 보지도 못 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그럴 듯하게 지어내는지 신통하기는 한 데 사업가출신의 현실적인 구청장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서구민을 비롯한 시민들의 반응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어쨌든 보고서원안을 확정하고 총 72개의 스토리 중 대표적 스토리 네 개를 정병진씨와 박창훈씨의 의견을 물어

0.2구간 태고의 숲길에 나오는 <묘박지와 관제탑>
0.역시 2구간의 <새들의 땅 두도>
0.3구간 아홉 구비 길의 <빗살무니 토기와 숫돌, 암남동 패총이야기>
0.4구간 회상의 바닷가(1969 여름날의 송도풍경)

로 확정지었는데 마침 정병진씨가 문화계장으로 근무하면서 프레젠테이션 경험이 많아 보고서와 자료화면을 만드는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열찬씨가 퇴직한지 겨우 2년이 지났지만 그 새 행정은 또 발전되어 <새들의 땅 두도>에서는 각종 새들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날거나 군무를 이룬 모습이 바로 화면에 뜨는 것이었다.

옥자씨와의 통화에 자주 긴장하고 또 요즘 일이 너무 힘든지 영 얼굴이 말이 아니라고, 다시는 그딴 일을 맡지 말라는 영순씨의 우려 속에 마침내 보고일이 닥쳤다. 오후 네 시 보고시간에 조금 앞서 미리 인사를 하려고 구청장실에 들렀는데 출타중이어서 부구청장실에 들렀는데 전연 안면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 국장님. 직원들한테 보고내용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요. 국장님 현직시절에 공무원문예지 <징검다리>에 실린 시도 많이 읽었고 또 퇴직 전에 연재한 <봄에 띠우는 편지 시리즈>와 퇴임사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하고 반갑게 악수를 청하더니

“기획담당관실에서 기획을 해본 저로서는 지금까지 어떤 선례도 정의도 없는 스토리텔링에 관한 내용을 어디서 무얼 보고 작성하셨는지 깜짝 놀랄 정도로 잘 정리된 보고서를 보고 역시나 하고 감탄했지요. 문제는 청장님의 반응인데 아마 잘 될 것 같습니다.”

하며 서규수 전부구청장에게 많이 이야기를 들었다며 깍듯이 선배대접을 했다. 마침내 보고시간이 임박 간부진을 거느리고 입장하는 박극제 구청장과

“안녕하십니까? 청장님?”

“아이구, 못 보던 사이에 신수가 더 훤해지셨네.”

“고맙습니다. 일거리를 주고 불러주셔서.”

“우리 가국장님 아니고 누가 그 일을 해주시겠습니까? 직원들 모두 기대가 큽니다. 좋은 작품 만들어주십시오.
덕담으로 인사를 마치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송도해안볼레길 스토리텔링의 집필을 맡은 이열찬입니다. 제가 20년 넘게 근무하던 서구의 길목 하나 나무하나에도 애착이 가득한 송도해안볼레길의 스토리를 맡겨주신 박극제구청장님과 동료직원여러분들의 배려에 감사드리며 지금부터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하며 스토리텔링의 정의를 간단히 설명하고 부여된 과제와 송도해안볼레길의 현황, 4개의 구간설정과 스토리텔링수, 향후 일정 등을 보고하고 대표적 스토리를 몇 개 읽어보려고 하는데

“잠깐, 국장님!”

“예, 청장님!”

마치 현직 때처럼 부르고 대답하면서 서로가 멋쩍어서 빙긋 웃었다. 그러면서 옛날 습관처럼 부지런히 받아 적을 준비를 하는데

“어디서 자료를 구했는지는 몰라도 그 스토리텔링이라는 사업이 참으로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과연 우리 구민들이나 송도를 찾는 방문객들이 그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겠지요?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예. 저도 이 생소한 과제를 맡으면서 그런 우려를 했습니다만 제 자신이 서구에 근무하면서 송도해수욕장에서 각종 축제를 열고 태풍피해를 복구하고 또 암남공원을 자주 둘러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송도해수욕장만큼 아담하고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없다고 생각한 점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래한줌 나무하나 바위하나에 다 제 눈길과 손길이 담긴 해수욕장과 암남공원에 대한 제 애정은 변함이 없는 만큼 스토리들을 가장 편안하고 아름답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작성하고 되도록 많은 사진, 그러니까 송도일출은 물론 동백꽃이나 새 같은 그림을 많이 넣어 알록달록 아름다운 책자, 긴 설명을 싫어하는 젊은이들도 좋아할 화려한 책자를 만들 생각입니다.”

“예. 그렇겠지요. 같이 읽어볼 참고자료로 붙은 스토리를 대충 읽어보았는데 역시 시인이신 우리 국장님의 문장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송도의 유래나 역사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나 우리가 힘써 조성한 송도해수욕장 되살리기에 대한 구체적 공정이나 사업비 또 자연생태에 대한 학술적인 고증이 필요하지 않나 싶은데요?”

“예. 우선 흥미를 끌어야하니까 부드럽고 재미있는 문장과 아름다운 삽화는 피할 수 없겠지요. 저는 이 과제를 맡으면서 제 자신이 송도에 너무 애착이 깊어 아전인수식의 너무 과도한 찬미에 빠질까 우려되어 되도록 객관적 이야기가 되도록 송도원주민인 김수생새마을금고이사장과 모지포노인회장, 송도어촌계장등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고 다른 자료들도 착오가 없도록 암남공원지질조사용역보고서, 생태조사용역보고서등 되도록 구체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단 송도해수욕장 되살리기에 따른 세부 공정이나 예산 등은 너무 상세하면 딱딱하고 지루한 행정문서 같을까 봐 송도폭포, 고래조형물, 음악분수, 해안산책로 등을 관광안내서처럼 부드럽게 표현하고 소요예산 등 구체적인 수치는 그 대표적인 것만 기록했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좁은 송도바닥에 무려 72개의 스토리라면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닙니까? 책이 두꺼우면 읽어보기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예. 그 저도 너무 산만하지 않도록 구간별 스토리수를 조금씩 줄여 한 5,60 편으로 줄일까 합니다.”

“60편도 너무 많지 않을까요?”

“예. 집필자 입장에서 어느 것 하나 버리기에 안 아까운 건 없지만 그래도 좀 엄선해서 50편 내외로 줄이기로 하겠습니다.”

“예. 그래야지요.”

비로소 질문을 멈추자 팽팽하던 장내의 긴장이 풀리고 죽을 상이 되었던 김웅렬 과장과 사회석에 선 정병진 계장과 뒤에 엉거주춤 서 있던 박창훈씨의 얼굴이 풀렸다. 이어

“우리 국장님의 화려한 문장은 믿음이 가지만 대한민국 어디에도 전례가 없던 사업이라 그런지 어딘가 안심이 안 되고 불안하단 말입니다. 자,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떤지 들어봅시다.”

하며 좌중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대답이 없자

“우리 부구청장님은?”

“예. 저도 청장님과 비슷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스토리 하나하나가 부드럽고 친근하여 대 시민 접근성은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과 삽화를 적당히 넣으면 마치 화보 같이 아름다운 책자도 될 것 같고.”

“예. 그렇군요. 그럼 담당 조국장님 생각은?”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단 작성된 스토리를 해당부서에 회람을 돌려 각종 수치 등에 오류가 없는지 살피고 해당부서 실무자들이 꼭 넣고 싶은 내용이나 이야기를 추가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다른 사람은?”

아무도 대답을 않자

“국장님이 열심히 하시는 건 알지만 유례가 없는 사업이라 어쩐지 안심이 안 됩니다. 그리고 시간관계상 첨부된 스토리의 독해는 회의를 마지고 각자가 따로 읽어보면 될 것 같습니다. 국장님은 마무리 잘 해주시고 해당부서에서도 적극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국장님, 여전하십니다.”

회의를 마치자 참석했던 실과장과 암남동장이 우르르 몰려와 악수를 청하는데

“허어, 그 것 참!”

열찬씨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자신이 현직으로 있을 때의 용역보고회의나 조금도 다름없이 무엇 하나 시원하게 결론을 내기보다는 어딘가 조금은 미진한 듯 여운을 남겨 발주자의 목을 죄는 행정책임자의 스타일이 한 때 가장 밀접했던 동료였던 자신에게까지 그대로 재현된다는 것이 섭섭하면서 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그래요. 다들 수고했어요. 그런데 어디로 모신다니?”

“청장님, 부청장님은 공식 스케줄이 있고 우리 국장님도 집안에 일이 있고 해서 과장님께서 자갈치에서 곰장어안주에 소주라도 한 잔 하자고 하십니다. 다섯 시가 넘었으니 바로 모실까요?”

“아니, 나는 우선 창훈씨하고 바로 문화공원에 올라가서 자료를 좀 봤으면. 소주는 나중에 우리 실무자 셋이 하기로 하고 과장님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퇴근해도 좋다고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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