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풀나라 - 박태일

박태일 승인 2024.04.19 08:00 의견 0

풀나라

박태일

그 먼 나라를 아시는지 여쭙습니다

젖쟁이 노랑쟁이 나생이 잔다꾸

사람 없고 사람 닮은 풀들만

파도밭을 담장으로 삼고 사는 나라

예순 아들이 여든 어머니 점심상을 차리고

예순 젊은이가 열살 버릇대로

대소사 상다리 이고 지는 마을

사람만 봐도 개는 굼실 집안으로 내빼

이름 잊힌 채 그저 풀로만 불리는

강바랭이 씀바구 광대쟁이 독새기

이장댁 한산할베 마을회관 마룻바닥에

소금 절은 양 등줄 꺼지게 누운 마을

토광 옆 마늘 종다리는 무슨 힘으로

아침 저녁 울컥벌컥 잘도 돋는데

한때 마흔 이젠 스무집 어른들

짖ㅂ집 다 버리고 마을회관 두 방

문지방 내외하며 자고 먹는 풀나라

굴 양식 뜰 것이 아침마다 허옇게

저승길 종이꽃처럼 피는 바다

그 먼 나라를 아시는지 여쭙습니다

박태일 시인

◇ 박태일 시인은
1954년 경남 합천군 율곡면 문림리 태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미성년의 강〉이 당선하여 문학사회에 나섰다. 시집으로 《그리운 주막》, 《가을 악견산》, 《약쑥 개쑥》, 《풀나라》,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 《옥비의 달》,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을 펴냈다. 연구·비평서로 『한국 근대시의 공간과 장소』, 『지역문학 비평의 이상과 현실』,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 4』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몽골에서 보낸 네 철』, 『시는 달린다』, 『지역 인문학: 경남·부산 따져 읽기』 등을 냈다. 김달진문학상·부산시인협회상·이주홍문학상·최계락문학상·편운문학상·시와시학상을 받았다. 2020년 정년을 맞아 한정호·김봉희가 엮은 박태일 관련 비평집 『박태일의 시살이 배움살이』가 나왔다. 현재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이다.

<시인/경남대 명예교수>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