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25> ‘책임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25> ‘책임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김 해창 승인 2018.04.17 00:00 의견 0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스튜워트 월리스. 출처: 유튜브(웰빙네트워크)

E.F.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간디의 사상과 맥락을 같이 하며 ‘진정한 발전’이란 무엇인가를 유럽의 경제 현실에 찾으려 노력한 역작이다.

미국의 경제컨설턴트인 로이 바르게즈(Roy Varghese)는 ‘진정한 발전과 경제학에서의 책임성’이란 논문에서 간디의 사상에서 진정한 발전의 4가지 주요 개념을 찾아냈다. 그것은 첫째, 진실(satra)이다. 이는 발전의 궁극 목적을 말한다. 둘째, 비폭력(ahimsa)으로 이는 발전의 특성을 나타낸다. 셋째, 자급자족(swadeshi)이다. 이는 발전의 자원을 가리킨다. 넷째, 개인·사회의 자유(swaraji)로 이는 발전의 환경, 즉 토대를 말한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슈마허는 발전방법으로 단순소박함(simplicity), 비폭력(non-violence), 지역적 접근, 소규모의 개념을 내놓았다.

슈마허는 오늘날 경제학의 목적은 욕구(need)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닌 욕망(desire)를 창조하는 것으로 잘못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것은 간디가 “문명이란 어느 의미에서 양을 증가시키는데 있지 않고 사려 깊고 욕망을 자발적으로 줄이는데 있으며 이럴 때 참된 행복과 만족이 늘어나고 봉사의 능력을 증진시킨다”고 한 말과 상통한다.

신경제학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의 스튜워트 월리스(Stewart Wallis) 전 상임이사는 슈마허가 현대산업사회를 4대 죄악으로 든 것은 △그 자체로 너무 복잡한 성질 △탐욕, 시기, 허욕에 끝없이 자극되고 의존하는 것 △일 자체의 내용과 위엄의 파괴 △너무 큰 단위조직으로 인한 전제주의적 성격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날 지구경제와 관련해 보면 다음과 같은 4가지 문제로 정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첫째, 지속불가능(Unstainable)이다. 기후변화문제가 심각하다. 산업혁명 전에 비해 4℃ 이상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있어 생태계 파괴, 수질·대기·토양오염, 어자원 고갈문제가 심각하다. 문제는 인구가 아니라 과잉소비이다. 지구적 생태발자국이 1980년대까지는 지구 하나로 가능했으나 2010년 현재 매년 지구 1.3개의 자원을 쓰고 있고, 지금 미국식으로 살아가려면 지구가 5개가 있어야 한다.

둘째, 불공정(Unfair)이다. 20세기 초에 지구상 20%의 부자가 20%의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5~7배 정도 잘 살았으나 20세기 말에 들어서 75:1로 바뀌었다. 미국은 1980년에서 2005년 신흥 부자의 80%가 인구의 1%였다.

셋째, 불안정(Unstable)이다. 현재 우리는 효율성으로만 경제체제를 보아왔다. 그러다보니 안전장치가 없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사태가 이를 대변한다. 전세계적으로 불안정 사태가 증가하고 있다.

넷째, 불행(Unhappy)이다. 선진국에서 웰빙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영어권 선진국의 4명 중 1명이 정신건강문제나 질환을 앓고 있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네 가지 문제를 종합하면 우리는 지속불가능한 방향으로 더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스튜워트 월리스는 이러한 것들의 근본 원인은 잘못된 경제신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시장이 공정하다는 신화 △가격이 진실을 말한다는 신화 △더 많이 벌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신화 △영원히 성장할 수 있다는 신화라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윌리스는 “새로운 경제는 인간의 바람(wnants)가 아닌 필요(needs)를 향상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인센티브체계, 규제와 세금체계를 대폭 개혁하고, 재정과 은행체계를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개혁하고. 지역과 식량‧재생가능에너지 생산자에게 경제적인 힘이 주어져야 한다.이렇게 하려면 우리가 다르게 살아야 한다. 다르게 구매해야 하고 정치인에게 게임의 룰과 인센티브체계를 바꾸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젠가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KAIST 배상민 교수의 TV특강을 보았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배 교수는 “오늘날의 디자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의 욕망을 부추켜, 있는 물건도 버리고 새 물건을 사게 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면서 “이러한 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본 욕구와 끝없는 물질적 충족을 부채질하는 욕망을 잘 구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배 교수는 실제로 아프리카지역 주민들을 돕는 일에도 적극 나섰는데 가령 이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는 사업이라면 선진국의 정수기를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나는 흙으로 만든 저렴한 여과장치를 지역주민이 스스로 만들어 설치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지속가능한 삶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슈마허는 나아가 지구상에서 다른 존재와 평화롭게 살기 위해 ‘우주적 의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식이 ‘책임 있는 경제적 생활’의 전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슈마허는 ‘책임 경제학(Responsible Economics)’을 요구했는데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 타인에 대한 책임, 환경에 대한 책임을 의미했다.

오늘날 환경과 관련한 캐치프레이즈 가운데 ‘Think Gobally, Act Locally(지구차원에서 생각하고, 지역에서 실천하자)’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데 이 구호야말로 슈마허 사상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한편 슈마허의 대안경제론에도 비판은 있다. 벨기에 경제학자인 크리스쳔 아른스퍼거(Christian Arnsperger)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러나 책임 있는 것인가?’라는 글에서 슈마허의 공헌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를 하고 있다. 그는 슈마허가 ‘분권적 지역생태주의(decentralised bioregionalism)’를 주장하지만 중앙집권주의와 지방분권주의는 ‘대립적이 아니라 보완적’이라고 강조했다.

‘소규모(smallness)’의 확대는 경우에 따라 ‘공유지의 비극’을 낳아 중앙집권적인 방식에 비해 보다 더 컨트롤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소규모가 확대되면 새로운 사회 및 경제 기구가 필요할 텐데 세계경제 차원에서 책임 있는 분권을 위해서는 이러한 것을 관리할 중앙집권적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즉 지속가능한 삶을 시스템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중앙정부에 지방분권의식을 가진 정치가나 관료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도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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