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집 표지
먼저 가, 먼저 가 있어
이 영 춘
근이양증으로 20킬로그램도 안 되는 아내를 근 20년 이상 간병해 온
한 남자, 아내의 손발이 되고 리모컨이 되어 그래도 살아 숨소리 팔딱거리고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던 그 남자, 천사 같은 남자, 그 남자의 아내 끝내 숨소리 거두고 갔다 장례를 치르던 날 아침, 화장장 유리창 밖에서 단말마적으로 유리창 두드리며
“여보, 여보, 먼저 가, 먼저 가 있어! 내 따라갈게, 따라갈게!” 빗소리인지 천둥소리인지 알 수 없는 핏방울 뚝-뚝 떨어지는 소리,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극락왕생 염불소리 아득히 불가마 속에 묻히는데
“먼저 가, 먼저 가 있어, 내 따라갈게!” 그 목소리 화독 속에서
타다닥 탁-탁 염불이 되는데 -
천상으로 가는 길, 하늘로 오르는 길, 텅 빈 유리문은 고요히 잠에 들고
창밖 청솔 나뭇가지 끝에서 울던 까마귀 떼 빙빙 원 그리며
하늘을 덮는다
- 이영춘 시집, 참회록을 쓰고 싶은 날, 서정시학
시 해설
근육퇴행위축병을 20년 이상 앓으면 운동능력도 없어서 점차 쇠약해지고 마침내 거동도 잘 못할 것인데 환자나 간병하는 사람이나 가족 간에는 고통을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내는 20킬로그램도 안 되는 체중이었고 남편은 아내의 손발이 되고 리모컨이 되어주었다. 그래도 살아 숨소리 팔딱거리고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던 그 천사 같은 남자의 아내 끝내 숨소리 거두고 갔다.
화장장 유리창 밖에서 유리창 두드리며 “여보, 여보, 먼저 가, 먼저 가 있어! 내 따라갈게, 따라갈게!”라고 절규한다. 곁에 있는 사람은 그 소리가 젖은 채 천둥소리 내고 ‘핏방울 뚝-뚝 떨어지는 소리,’로도 들리는 것이다.
남편은 따라갈 거라고 하면서 먼저 가라고 했는데 두 사람 간의 시간 간격은 얼마쯤이며 위치는 어디인지 아는 사람 없으니 이별이 더 한스러운 것 같다. 찾아가도 혼자 찾아가야 하니까 참 까마득하다.
‘극락왕생 염불소리 아득히 불가마 속에 묻히는데’ 남편의 소리는 젖어 타지도 않고 “먼저 가, 먼저 가 있어, 내 따라갈게!” 그 목소리는 염불이 되어 불가마 속 아내를 위로한다. ‘같이 가자’고 말을 안 한 이유는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상으로 가는 길은 열렸고 유리문은 잠에 들고 울던 까마귀 떼 빙빙 원 그리며 하늘길 배웅을 한다. 익숙하지 않은 이별은 애닯고 길은 생소하기만 하고,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