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이 광
이대로
진창으로 살아가진 않을 거다
내 안의
흙탕물은 탕약 삼아 달일 거다
당신이
평안히 걸을 황톳길이 될 거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현상을 가져와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비추어 주는 거지요. 비는 갑자기 들이친 어려운 상황이나 피치 못할 사람 사이의 불화를 은유합니다. 그걸 극복하고 나면 더욱 단단해진다는 뜻인데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큰비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 시간 인내해야 할 시련일지라도 굴복하지 않는 자 앞에선 언젠가는 물러날 때가 옵니다.
날이 개면 대처 여하에 따라 비 온 뒤의 상황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초장에서 ‘진창으로 살아가진 않을 거다’라는 발언에는 제대로 살지 못한 반성과 함께 앞으론 그러지 않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지요. 화자가 진창을 경험한 과거가 있음을 짐작하게 하고, 진창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뒤따를 것이란 예측도 하게 하는군요.
그리고 중장에선 구체적인 실행 의지를 보여줍니다. ‘탕약 삼아 달일 거’라는 다짐은 전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마저 품게 합니다. 종장에 들어서면서 그 의지를 북돋우는 존재인 당신이 호명됩니다. 고난이 이겨내는 마음가짐 속엔 누군가를 편안하게 해주려는 배려심을 깔려 있지요. 결국 당신을 불러들이며 이 작품은 사랑을 맹세하는 연가로 끝을 맺습니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