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구 자 순
끼때 갓 지은 냄비 밥만 드셔예 가리 내도 전기 내도 싫다십니더 살강에 달아둔 푸르딩딩 돼지고기에 고춧가루 마늘 간장 넣은 벌건 국만 드시고예 냄새날 것 같아도 파 양파 들어가면 파들파들 하십니더 반찬 두 가지 넘으모 밥상이 들썩하지예 여름 긴 해는 솟기 전에 겨울 짧은 해는 지기 전에 밥 드셔야 하고예 전깃불 밑에 저녁 상차리모 때 모른다꼬 넘의 배 얻어 타고 급하게 오르는 성당제 앞 꼭지에 고함 퍼부으시고예 그럴 때는 집이 높은께 동네가 다 일어났다 앉습니더 흙신 신고 아 받아 업고 후다닥 밥상이 댓돌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루가 끝나예
툇마루에 댓병 소주 쇠죽 끓이러 가시면서 홀짝 뒷간 다녀오시면서 홀짝 소금 탁 털어 넣지예 그 덕에 새앙쥐도 머그컵 한 잔 논에 물대는 것도 남 먼저 들에 내는 밥 다른 집보다 늦으모 난리가 나지예 일 귀신은 잠 귀신 두고 못 봐예 욕 날고예 상 뛰고예 초상에도 마른 장마더라꼬예 눈물도 갈라져 꿈속 파고들더마 가시로 찔러대네예
광성인쇄소
비봉산 밑에 있는 집
어릴 적 패치기 하고 놀던 머스마 사는 집
그 애 형님은 버버리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활자를 등에 지고
활판에 꽂혀 달린다
연탄난로 위에서 기적소리가 난다
찰카닥 스응 찰카당 사악
멀건 얼굴에 이야기 유창하다
돈을 찍어 낸다
이자는 이 할
외상값 갚고 나면 간당간당 아버지 월급봉투
빚내러 다닌다
고만고만한 살림에 입이 부끄러운 엄마는
맨날 내만 보낸다
종착역은 금석이네
길에서 마주쳐도 못 본 척 지나는
간판이 보이면 얼굴이 빨갛게 달리고
올렸다 내렸다 문 밀지 못하는 발도 같이 달린다
30촉 알전구 엘이디등 달아도
금석이 형님
여전히 달리고 있겠지
남강 2
없을 거면 아예 없던지
촌살림에 싹싹 긁으니 30만 원 대학 등록금 반
나머지는 큰아한테 가가꼬 보태라케라
서울대면 몰라도 그기 학교가 빈정을 얹어
제주 날아 진탕 놀고 대학 꿈 접었다
농사지으면서
농사꾼이 봉인 세상 말고 근본인 세상 살자 해도
고개가 자꾸 돌아가더라
얇게 웃어
달포 마음에 박히더니
이파리 내고 줄기 내었다
태풍이 올라온 암남동 물막이 거닌 게 전부였다
영화도 찻집도 없이
좋다 살자 없이
완행버스를 탔다
등을 펴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 눈에
눈물 쏟게 하고 들어섰다 성당마을
화자
몸뚱아리 얇아 웃음도 얇다 새끼 세 가닥 낫 한 자루 허리춤에 달고 고개 쳐든 산비탈 탄다 드문드문 잔가지에 허리다리는 산발 나무 다발 차올려 머리에 이고 밥 먹으러 간다 빈손은 욕 타작 입고 벗고도 한참이 남는 딸년 여섯째 곯은 배가 단벌 아들 밥상에 니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하찮은 딸년 표 안 난다 가세로 찔러 쥑이삐라 옴마 소리에 깨갱 발뒤꿈치 문다 아부지 얇은 품삯 노름 문 들어가면 옴마는 밤새 바가지 득득 내 너덜 잠에 얼음 밤 기어든다 바람 파렴치하다 길쭉한 밤 집집 문문 벽에 귀 대고 아부지 목소리다 집에 가자 바지가랭이 붙들고 뿌리차면 기어가서 매달린다 놓치면 오늘 밤 다 잤다 부석에 갈비만 밀어 넣어도 불내고 길만 나섰다 하면 받히고 넘어지고 부러지고 짚가리 한 아름 큰 덤프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반쯤 붙들리는 죽을까 벌벌거리는 쇠나무
남강 8
내외는 싸워도 한 방에서 자야 한다
한 이불 덮고 같은 베개 베고
말이 발목을 감아
원앙 수십 마리 파닥거리는
이불에 긴 베개 깐다
추워서 깨어보면
남편은 이불 둘둘 말아 고치잠
나는 맨땅에 새우잠
맨날 내일에는 하지만
새벽은 젖고
베개는 춥고
시작하면 두 시간 아이 울음 탓인지
각방살이가 내림인지
방 두 개 살림에
어머님 방비는 날엔
잠자리 옮겨가
아이 재우고
귀에 문풍지 달고
집밥
젖 맛이 나지
현아 빨아대는 거 봐라 우리 호야 직이겠다
눈물 밥도 으깨셨어
노을 걸어오면
땀내 나는 빈 젖 고랑에 고개 처박아
배가 찰 때까지 빨아
울어
책가방에 번지던 된장 내
부끄러워
설익어
사 먹는 밥 살로 가지 않아 뼈에 구멍 나 하시던
정지간
오늘
삭아 삐걱거려
방문 안에서 밥상 차리신다
염소똥 상을 차리신다
문 앞 바위등 젖어
대봉나무
돌날 자전거에 실려 갈지자로 걸어와 대밭 어덕에 앉아 뱃속에서부터 철들었던 수연이 도닥도닥 걸어 돌계단 올라가 대청마루 올라가 종지 들고 소주병 들고 할베 방에 들어 담배 콜록 내려서는 걸음 비틀 뿌리 벋지 못해 자북해도 감꽃 다 떨어져 까막소리 걸린 어린 가지 빈 소마구 감싸 받은 건 더러 잊어도 자근자근 개켜둬 잠 아까운 그믐밤에 뒤란에 끌고 와 불 붙이고 삭정이 던져 넣고 불꽃 치솟으면 왕겨 들이부어 눈 매워도 불씨 안까지 타들어 가 숯검정도 다 태워 내 구천 가고도 그리 살모 빌어 묵는다 가꾸는 만큼 거두는 새벽 뿌리 하얀 재거름 넣어 자갈밭 등어리 닮은 열매 가지 움켜쥐고 한 줌 햇살 따라 발 돋워 키를 키워 벌거지 겨울 나고 사람 겨울 날아
자갈보지 어쩜 눈먼 불도저
모퉁이에 둥글게 집 짓고 말 튕겨 땅 먹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놀이 멀리 뛰어 땅을 넓혀도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땅을 잃어 몸이 자란 저녁에도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 발밑을 넓혀 책상에 앉은 하얀 얼굴 초침으로 사각거리고 문제집은 땅 반에반에 반 뼘 난로에 석탄이 타고 도시락이 탄다 집이 타 태화고무로 밀려간 송녀 내 몸 안을 헤집고 다니면서 태워 자꾸 누구냐고 왜냐고 물어 타들어 가던 숨들이 튕겨져 나가 멀리까지 헤매고 다녀 돌아가지 못해 디딜 곳을 잃어 사면발이가 기어오르는 거리를 굴러다녀 바람이 새벽을 토해 집은 대문을 잠그지 못해 밤새 서성거려 물길을 돌려 남의 땅 어스렁대는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타오르는 꿈 무논에 집을 지어 뛰어들어 골탕 허우적 떠올라 드러누운 집 타지 못한 불쏘시개 딛고 올라가 뛰어 멀리까지 달려 땅을 먹는 중 아직도 달리고 있는 걸까 아님 돌아오는 중 얼마나 멀리 어쩜 날아가 버린
목련
허리춤 움켜쥐고 둥근 안경테 너머를 째려보죠
성큼성큼 걸어요
이쁘다 이름 붙이는 걸 좋아했어요
파랗게 웃어요
데려오는 여자마다 모자란다 싫어했죠
신랑 잡아먹었다고 잘나가던 새끼 둘 대가리 씹었다고
가랭이로 말해요
숭어리가 타버렸어요
동의한 적 없어 왜 날 내버리는 거야 지둥지둥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어
지린내가 앙다물고 뿌드득 씹어요
앞발 한참 그어대다
배고파 밥 줘 하시죠
아직도 앞에 서면 오금이 저려요
손아귀 힘 뺀 사이 뒤안으로 달아나요
쉬고 싶어요
내시경
꾸울떡 삼켜 선택이었어 부셔버리고 들어섰지 숨을 곳이 없어 안개를 피웠어 꾸역꾸역 밀어 넣었지 이젠 꿀떡해도 잘 내려가지 않아 숨이 막혀 물도 타올라 검사를 했어 대가리가 안개를 훑어 꿈틀꿈틀 기어가 꾸울떡 하세요 상처 나요 꿀떡 지나 꿈틀 식도 아래 작은 딴방들 지나다 스치다 간간 뛰어들고 되새김질을 하는 밥상머리 눈물 복 나가고 안 먹어 쏘가지를 오데 피워 꾸역꾸역 밀어 넣은 꿀떡 가끔 께짝 게우는 위장 벽을 훑어 맨 처음 부탁에 손아귀 겁도 없이 손님 대접 도시락을 곱창 김에 싸 터져 비뚤 배똘 앉은 첫솜씨 정성이니 날 봐줘 내밀던 손 걸려 터지고 있어 화끈거려 몸통만 올라간 쉐타 떠나는 버스 깐에 들이밀어 열한 번째 백조 왕자 삼 옷도 아니고 날 봐 달라 옆구리를 콕콕 쪼아대 혹여 마주칠까 함박 쏟아지던 가로등 밑 보이고 싶어 얼었던 날들 박혀 녹지 않아 십이지장 한번 보자 연락에 약속을 향해 흘러가다 오지 않을 거다 속 준비를 해야 하던 그런 날 어김없이 문 밀고 들어서 미안하다 일이 생겼다 다음에 보자 선걸음에 가버리고 일어서지 못하고 신물로 올라와 숨이 쉬어지지 않아 어깨에 닿던 손 털며 뜯어내던 담쟁이 세발세발 다른 길을 걸어도 여전 같은 꿈들 꾸역꾸역 삼켜 자꾸 되새김질 쓴 물에 화끈 가슴이 타 꿈틀 기어가 잘못 들어가면 터져 피 토해 들이밀어 구석구석 헤집어도 막힌 곳이 없어 막는 것도 없는
이제 다 와 가
너도 타니
구자순 | 시인. 진주 출생. 부산대학교 간호학과를 나와 1989년 12월 의령으로 들어왔다. 그 뒤 13년 농사꾼으로 살다 2003년 간호사로 일을 바꾸었다. 2021년 『장소시학』창간호 제1회 신인상 「우리 남자」 외 14편 당선으로 문학사회에 나섰다. kjs9414@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