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10) 2022년 올해 마지막 차(茶) 만들기

잎 큰 찻잎 다른 집서 유념기로 비벼
온돌방 하루 발효, 이후 마당서 발효
일주일만 완성, 깊고 신만 나 대성공

조해훈 기자 승인 2022.06.07 22:23 | 최종 수정 2022.06.09 09:19 의견 0

올해 2022년 마지막으로 만드는 차(茶)일 듯싶다.

지난 5월 31일 딴 찻잎을 채반에 담아 아래채 옆 차 만드는 공간(製茶室)에 늘어놓고 하루를 묵혔다. 발효차를 만들 심산이었다. 찻잎이 너무 크고 세 녹차를 만들 수 없다. 찻잎의 크기가 작다면 녹차를 만들었을 것이다.

대비마을 이명재 씨의 어머니 댁서 유념기로 작업하는 모습. 찻잎이 돌아가는 기계 밖으로 나오면 이 씨가 몽당 빗자루로 쓸어넣었다. 사진=조해훈
대비마을 이명재 씨의 어머니 댁에서 유념기로 작업하는 모습. 돌아가는 기계 밖으로 찻잎이 나오면 이 씨가 몽당 빗자루로 쓸어넣으려고 옆에 서 있다. 사진=조해훈

손으로는 억센 찻잎을 제대로 비빌 수 없어 다음날인 6월 1일 저녁에 정금리 대비마을에 사는 이명재(55) 씨 집으로 가져갔다. 물론 우전이나 세작 등 작은 찻잎은 손으로 비비는 게 잎이 부서지지 않을 뿐더러 차의 맛이 세지 않고 순하다. 그 집에 찻잎을 비비는 유념기(揉捻機)가 있어 좀 사용하자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필자의 집에도 유념기가 있는데 지난해 2월 화재 때 유념기에 연결된 선이 불에 타 사용이 불가능하다. 유념기는 유차기(揉茶機)로도 불린다.

이 씨의 집 바로 위에 있는 그의 어머니(86) 집에 유념기가 있었다. 어머니께서 주로 찻잎을 따 차를 만드신다. 찻잎이 크다 보니 작은 잎보다 덜 연해 유념하는 시간이 더 걸렸다. 20~25분가량 소요됐다. 찻잎에서 허연 액이 나올 때까지 유념을 했다.

찻잎이 억세 허연 액이 나올 때까지 유념을 한다. 이 정도면 유념을 마친다. 손으로는 이렇게 비빌 수 없어 크고 억센 잎은 유념기로 비비는 게 더 낫다. 사진=조해훈
찻잎이 억세 허연 액이 나올 때까지 유념을 한다. 이 정도면 유념을 마친다. 손으로는 이렇게 비빌 수 없어 크고 억센 잎은 유념기로 비비는 게 더 낫다. 사진=조해훈

유념을 마친 뒤 집으로 잎을 가져와 바로 아래채 방바닥에 비닐과 광목을 깐 후 펼쳐 널었다. 그런 다음 찻잎의 위에도 광목을 1차로 덮고, 그 위에 또 비닐을 덮었다. 방이 뜨뜻하도록 온돌 온도를 많이 올렸다.

6월 2일 아침에 보니 제법 발효가 많이 진행돼 찻잎의 색이 진한 고동색이 돼 있었다. 발효되면서 찻잎에서 나는 냄새도 진했다. 청국장 발효 시키는 냄새와 약간 유사한 점도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냄새이다.

유념을 마치고 채반에 담은 찻잎. 비빈 찻잎에서 허연 액이 나온 게 보인다. 사진=조해훈
유념을 마치고 채반에 담은 찻잎. 비빈 찻잎에서 허연 액이 나온 게 보인다. 사진=조해훈

아침에 햇살이 쨍쨍하게 쏟아지자 찻잎을 채반에 담아 마당에 내놓았다. 햇볕이 너무 강해 혹여나 찻잎이 탈 수 있어 찻잎 위를 광목으로 덮었다. 그러면 잎이 탈 우려도 없고 발효도 더 잘 진행된다. 요즘 너무 가물어 한낮의 기온이 평균 섭씨 33~35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 번씩 찻잎을 뒤집을 때 잠깐씩 햇볕을 쬐여준다.

해질 무렵이면 찻잎이 담긴 채반을 아래채 거실에 옮겨놓는다. 거실로 옮겨 찻잎을 다시 뒤집으며 발효상태를 확인한다. 색깔을 보고 찻잎을 한 움큼 쥐고 냄새도 맡아본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확인하면 색깔과 냄새가 다르다. 색도 진해지면서 냄새에서도 발효가 하루가 다르게 더 진행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과정을 매일 반복했다.

햇볕이 쨍쨍한 가운데 마당에서 발효를 시키는 모습. 강한 햇볕에 찻잎이 탈 수 있어 광목으로 덮어 놓았다. 사진=조해훈
햇볕이 쨍쨍한 가운데 마당에서 발효를 시키는 모습. 강한 햇볕에 찻잎이 탈 수 있어 광목으로 덮어 놓았다. 사진=조해훈

그런데 6월 5일에 비가 내렸다. 겨울부터 그토록 가물더니 마침내 비가 왔다.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찻잎을 내놓을 수 없어 거실에 두었다. 찻잎 위에 덮어 놓은 광목은 펼친 상태였다. 다음날인 6일에는 약간 흐리다 햇빛이 나 다시 마당에 내놓았다. 발효와 건조를 함께 진행시키기 위함이었다.

오늘, 7일 오전에 마당에 내놓았다가 오후에 날이 흐려져 아래채 거실에 들여놓고 잠시 외출을 했다. 해거름이 되자 또 비가 내렸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래채로 가 찻잎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니 차가 거의 완성이 된 것 같았다. 발효가 훨씬 더 진행됐다. 내일 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더 이상 발효를 시키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색도 마찬가지였다. 더 숙성을 시켜 굳이 흑차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해거름에 찻잎을 거실로 들여놓고 광목을 펼친 채 발효와 건조를 동시에 시키고 있다. 사진=조해훈
해거름에 찻잎을 거실로 들여놓고 광목을 펼친 채 발효와 건조를 동시에 시키고 있다. 사진=조해훈

물을 끓였다. 차를 조금 넣고 우려 먼저 색을 보았다. 깊은 색감이었다. 찻잔에 부어 차의 향을 맡았다. 향에서 묵직한 느낌이었다.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순간 ‘아, 그래 이 맛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신맛이 생각한 것보다 많이 났다. 그리고 역시 생각한 것보다 맛이 깊었다. 적어도 2, 3년 이상 숙성시킨 맛이 났다. 올해 여섯 번째 만든 발효차인데 가장 잘 만들어진 차였다. 찻잎은 컸지만 유념기로 적당히 잘 비빈 이유도 있지만, 햇볕을 잘 이용하면서 발효와 건조를 시킨 덕이었다.

올해 마지막 만든 차가 대성공이었다. 차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은 찻잎이 크다고 시큰둥해 할지 알 수 없다. 잎이 크면 일조량이 많아 차의 성분도 더 좋지만, 차나무가 가진 좋은 영양분도 더 많이 받아들인다. 대개는 찻잎이 작은 것으로 만든 차가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하튼 필자는 무엇에 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차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아 몇 년간 두고 마실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필자가 아껴 마시고, 목압서사에 방문하는 손님들과 나눠 마시면 억지로 1년은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손님들이 워낙 많이 방문하다보니 생각보다 차가 많이 소모된다.

올해 마지막으로 만든 발효차의 맛을 보기 위해 우려 찻잔에 담았다. 신맛이 많이 나면서 맛이 아주 깊었다. 사진=조해훈
올해 마지막으로 만든 발효차의 맛을 보기 위해 우려 찻잔에 담았다. 신맛이 많이 나면서 맛이 아주 깊었다. 사진=조해훈

2022년 올해 차 만들기가 마무리 되었으니 이제부터 차산에 올라가 풀을 베고, 훌쩍 커버린 차나무의 위와 옆을 잘라주는 등 차밭 관리를 해야 한다. 그 작업은 내년 봄 새로운 찻잎을 채취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산에서 쓰는 연장이라곤 낫 한 자루와 작은 톱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년 봄까지 차산에서 일하면서 또 얼마나 몸이 상할지는 알 수 없다. 낫에 손과 다리가 찍히기도 하고, 톱에 손가락이 베이기도 하고, 가시에 몸이 긁히거나 얼굴에 상처가 생기고, 넘어 굴러 떨어져 허리와 어깨를 다치기도 하고, 깔따구에 눈 주위나 입이 물려 다음 날 그 부분이 떡나발이 되기도 하고, 진드기가 몸 곳곳에 달라붙어 오랫동안 간지럽고 아파 애를 먹기도 한다.

그렇다고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어릴 때부터 몸에 차(茶)의 인이 밴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해도 차를 덖느라 허리에 무리가 와 세수할 때 허리를 굽혔다 펼 때는 아프고 힘들어 “아이고, 허리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지인들이 목압서사에 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돈도 안 되는 차를 왜 그렇게 고생을 하며 만드느냐?”라고 물으면, 필자는 “우짜겠습니까?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 하는 일이니까요.”라고 대답하고 만다. 그 말 외엔 달리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t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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