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12) 녹차 만들기의 마지막 단계인 ‘시야게’(맛내기) 이야기

목압서사 방문 노부부와 차 마시며 이야기
제다 마지막 공정인 맛내기에 대해 설명해
맛내기 마친 차 부드럽고 구수한 고향집 맛

조해훈 기자 승인 2022.06.20 22:22 | 최종 수정 2022.06.24 08:03 의견 0

올해 2022년 차 만드는 작업은 끝났다. 어제 필자가 마당의 끝부분에 있는 텃밭의 잡초를 뽑고 있는데, 낯선 노부부가 목압서사(木鴨書舍) 입구에 서서 안내판에 쓰인 글을 유심히 읽고 계셨다. 필자와 눈이 마주치자 아내 분이 “이 마을에 놀러온 관광객인데, 목압서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서요.”라고 말씀하셨다. “혹시 시간 되시면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러면 감사하지요.”라고 해 서사 연빙재로 모셔 차를 대접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70대인 부부는 두 분 다 중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퇴직해 가끔 여행을 다닌다고 하셨다. “어떻게 이 마을에 여행을 오셨습니까?”라고 여쭈니, “화개장터와 쌍계사 등에 가끔 왔습니다. 불일폭포로 올라가는 초입인데다 입구 다리에 일주문이 세워져 있어 평소 신비로운 마을 같다는 생각이 들어 왔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양이 적은 찻잎을 덖고 비벼 마지막 단계인 '시야게(맛내기) 작업을 하는 필자. 사진제공= 목압서사
양이 적은 찻잎을 덖고 비벼 마지막 단계인 '시야게(맛내기)' 작업을 하는 필자. 사진= 목압서사 제공

목압서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와 목압마을의 유래와 역사 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에 남편 분이 “차 맛이 순하고 깊습니다. 차에 대해 많이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 부부도 차를 오랫동안 마셔왔습니다. 목압마을이 차(茶)로도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이에 대해 목압마을의 차 만드는 상황 및 소위 ‘목압차(木鴨茶)’의 특징에 대해서도 설명해 드렸다. 그리고 왜 목압마을의 찻잎이 다른 지역의 찻잎보다 비싸게 팔리는지 등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드렸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필자는 최근에 만든 녹차와 발효차를 번갈아 맛을 보여드렸다.

“차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여쭤, 필자는 “집집마다 녹차와 발효차 등을 만드는 방법이 모두 다릅니다. 제가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만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라며, 차를 따는 요령부터 제다하는 전 과정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내 분이 “‘시야게’(맛내기)를 꼭 해야 합니까? 맛내기를 한 차(茶)와 하지 않은 차는 어떤 점이 다릅니까? 저희는 그걸 구분하지 못합니다. 차 만드는 일이 아주 힘들다고 하셨는데, 꼭 맛내기를 해야만 합니까?”라고 질문을 하셨다.

맛내기를 하고 있는 필자의 또 다른 모습. 사진=목압서사 제공
더워 윗옷을 벅은 채 맛내기를 하고 있는 필자의 또 다른 모습. 사진= 목압서사 제공

필자가 이에 대해 답을 했다. “제가 설명하는 내용이 차(茶)에 대한 정석(定石)이거나 진리가 아님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저는 대대로 차를 마신 차인(茶人)의 집안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차(茶)에 대한 관심이 커 국제신문 기자 시절 차 관련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또한 중국의 보이차·용정차·철관음차·무이차 등을 생산하는 지역 뿐 아니라 일본·인도·베트남·스리랑카 등을 비롯해 동남아 국가의 차 생산지도 많이 다녔습니다. 차 관련 학술세미나도 취재를 하는 등 학술적인 부분에도 접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화개차(花開茶)에 대한 논문을 써 한국연구재단 인정 학술지에 발표를 하는 등 여러 편의 차 관련 논문을 썼거나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너절하는 것에 대해 오해는 없으시기 바랍니다. 객관성을 담보로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 때문입니다.”라고 말을 시작했다.

남편 분이 “예. 그러시군요.”라고 답했다.

필자는 “다른 복잡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간단하게 압축해 말씀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녹차를 마셔보면 우선 맛내기가 되지 않은 차는 맛이 셉니다. 맛내기를 하지 않은 차는 비유를 하자면 뜸을 들이지 않은 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맛내기를 하면 차의 맛이 순해지고 깊어집니다. 물론 차의 맛이 센 경우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계로만 작업을 하면 차의 향은 좋을지 모르지만 차솥에 덖은 것보다는 맛이 센 경우가 있습니다. 크고 센 찻잎은 어쩔 수 없지만 대개 작은 찻잎의 경우 손으로 비빕니다. 작은 크기의 찻잎을 유념기로 비벼도 맛이 셀 수가 있습니다. 찻잎의 성질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덖지 않을 경우도 센 맛이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맛내기를 하면 그 센 맛이 대체로 부드러워지고 고향집의 내음 같은 깊고 구수한 맛이 납니다. 마치 할머니의 손에서 배어나는 손맛이 난다고나 할까요?”라고 설명을 드렸다.

​'차사랑' 차회의 백경동 회장이 필자의 '녹차 작업장'에서 맛내기를 하는 모습. 사진=조해훈​
​'차사랑' 차회의 백경동 회장이 필자의 '녹차 작업장'에서 맛내기를 하는 모습. 사진=조해훈​

아내 분은 “그러면 맛내기는 어떤 식으로 합니까?”라고 질문을 하셨다.

“맛내기를 살청기(殺靑機)로 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맛내기 전용 기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방앗간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만, 빙빙 돌리면서 깨 등을 볶는 기계와 유사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맛내기는 아무래도 차솥에서 하는 게 맛이 있습니다. 약한 불, 그러니까 대략 50도 전후 정도의 불에 건조시킨 찻잎(거의 완성된 차)을 넣고 깨를 볶듯이 천천히 돌립니다. 이때 대부분 장갑을 끼고 하지만 맨손으로 해주는 게 더 좋습니다. 손의 기운이 차에 쓰며든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한 번씩 뒤집어줍니다.

맛내기가 거의 다 된 차. 사진=조해훈
맛내기가 거의 다 된 차. 찻잎의 돌돌 비벼진 모습이 거의 드러나고 있다.  사진=조해훈

이 작업을 두 세 시간 지속하면 뭉켜있는 것처럼 모양이 없던 차가 점차 찰랑찰랑해집니다. 찻잎이 꼬들꼬들해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상태에서 작업을 계속 해주게 되면 찻잎을 하나하나 셀 수 있을 정도로 개체화됩니다. 이제 조금만 더 맛내기를 하게 되면 허연 분(粉) 같은 게 생기면서 먼지 같은 게 일어납니다. 그쯤 되면 찻잎의 상태를 보아가면서 맛내기를 마무리하면 됩니다.”라고 축약해 설명해 드렸다.

필자가 이야기를 하면서 차를 계속 우려 드렸다. 두 분 다 차를 잘 드셨다. 노부부는 필자의 이야기가 재미없었겠지만 끝까지 들어주셨다. 이야기가 끝나자, “차 잘 마시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갑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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