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세상 23-인본특집】묻지마 범죄와 불안 사회: 무엇이 잘못되었나? - 김윤태

김윤태 승인 2024.01.12 15:55 의견 0

묻지마 범죄와 불안 사회: 무엇이 잘못되었나?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 사회학)

최근 묻지마 범죄가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가해자가 서울의 지하철 등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묻지마 범죄는 법률적, 학술적 용어가 아니며 개념도 명확하지 않다. 최근에는 ‘이상동기 범죄’ 또는 ‘분노 범죄’라고도 불리지만 여전히 실체가 모호하다.

수년 전부터 서울의 강남역 살인사건과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부터 부산의 과외앱 살인사건과 성남의 서현역 살인사건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범죄가 발생했지만, 가해자들의 인구사회학적 특징도 알려지지 않았다. 모방범죄를 예고하는 인터넷 댓글도 공포심을 조장했지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도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은 오랫동안 치안이 안전한 사회로 간주되었지만, 잇따른 묻지마 범죄로 사회의 불안이 증폭되었다. 하지만 묻지마 범죄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이는 지난 20년 전부터 존재해왔고, 그 원인조차 모른다는 이유로 무관심의 영역에 놓여 있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세상을 흔드는 묻지마 범죄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사회문제가 이제야 세상에 드러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정부의 무관심, 부실한 통계 자료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훌륭한 재판관이었던 친구가 던진 ‘퀴 보노’(누가 이익을 얻느냐)라는 질문을 칭찬했다. 그러나 묻지마 범죄에서는 누가 이익을 얻는지 분명하지 않다. 강력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범행 동기가 분명하지 않고 피해자와 분명한 이해관계가 없으며 범죄 대상이 무차별적이기 때문에 체계적인 원인 분석이 어렵다.

묻지마 범죄 중 살인과 폭행 등 강력범죄의 비중이 높은데도 정부의 통계조차 충분하지 않다. 통계도 없이 처벌에 대해서만 목청을 올렸기 때문이다. 현재 묻지마 범죄 관련 통계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시기에 국회 국정감사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270건이라는 통계 자료가 전부다. 2012년 55건, 2013년 54건, 2014년 54건, 2015년 50건, 2016년 57건을 집계되었다.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적 분석도 충분하지 않다. 가해자가 왜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진짜 원인은 무엇인지에 관한 생애사적 분석 등 공식적인 분석이 전혀 없다. 경찰과 검찰 등 사법기관은 체계적 원인 분석보다는 수사와 처벌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심층분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묻지마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미국조차 묻지마 범죄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체계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범죄자는 누구인가?

사회과학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논리를 찾는다.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관계에 질문을 던진다. 19세기 말 사회학을 최초로 창시한 에밀 뒤르켐은 프랑스의 급증하는 자살자의 종교적 특징을 분석했다. 가톨릭 신자보다 개신교 신자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로 사회 규범이 약화된 ‘아노미’(anomie)를 지적했다.

우리는 범죄 가해자의 인구사회학적 특징을 통해 범죄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까? 2012년 대검찰청 통계를 활용한 2014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가해자의 연령은 대부분 30대와 40대이며, 각각 31.3%, 33.3%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다. 다음으로 20대 18.8%, 50대 10.4%, 10대 4.2%, 60대 2.1% 순서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묻지마 범죄의 피해자를 보면 고른 연령대 분포를 보인다. 하지만 성별로 보면 여성의 비율이 높다. 가해자보다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을 범죄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신림역 칼부림 난동 사건처럼 젊은 남성이 피해자가 된 경우도 발생했기 때문에 반드시 여자만 공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 심리가 증폭되었다.

가해자의 거주 지역은 서울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는 대도시에서 범죄 발생이 많은 것과 관련이 크다. 가해자의 주거 형태 가운데 혼자 사는 사람이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제공한다. 가구 구성을 보면 가해자 가운데 미혼이 75%이다.

가해자의 학력은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다. 학교를 다닌 적 없는 사람이 4.2%, 초등학교 졸업자는 18.8%, 중학교 졸업자는 27.1%였으며, 고등학교 졸업자는 37.5%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다. 대학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가해자는 10.4%에 머물렀다. 고졸 이하 학력이 87.6%이다. 직업 및 경제적 특성을 보면, 범행 당시 직업이 없는 사람이 75%에 달했다. 소득이 없는 사람도 72.9%에 달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가해자 가운데 범죄 전력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초범인 경우도 있다.

전반적으로 가해자의 인적 특성을 보면 빈곤과 사회적 고립의 특성을 가진 경우가 압도적으로 높다. 가난하기 때문에 고립된 것인지, 고립되었기 때문에 가난한 것인지 인과관계는 분명하지 않지만 두 가지 특징이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이코패스’또는 ‘외로운 늑대’라고 말했지만, 이는 범죄를 개인적 문제로 축소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많은 언론도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들이 정신질환 환자라는 의혹만 제기한 채 근본적 원인은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 사실 정신질환자 모두가 묻지마 범죄 가해자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당신은 정신질환자인가?

2023년 성남시 서현역 칼부림 사건의 가해자는 과거 조현병을 앓고 있어 치료 권유를 받았던 병력이 있지만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않았다. 당시 가해자는 어떤 조직이 자신을 스토킹하고 있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피해망상을 호소했다. 그러나 범죄 프로파일러 배상훈 박사는 가해자에게 정신질환 증상이 분명하지 않다고 하고 감형을 노린 계산적 행동이라고 보았다. 오히려 가해자가 온라인 게임에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권위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현재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들이 감옥에 갇혀있는데, 이들 중 절반 정도는 정신질환자로 간주된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도 묻지마 범죄 가해자의 절반 정도가 정신질환자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판단력이 떨어지거나 충동 조절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정신질환 환자가 공격성을 가지고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질환과 공격성의 상관관계는 크지 않다. 오히려 정신질환 환자는 쉽게 공포감을 느끼거나 사람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점에서 가해자의 정신질환 여부보다 개인의 성장 과정과 사회 경험에서 형성된 인격, 충동 조절 능력 등 복합적인 심리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정신질환은 유전적, 호르몬의 특징보다 가족 내 성장 과정, 학교와 사회에서의 경험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우울증과 정신분열 등 정신질환도 사회적 특징과 관련이 크다. 영국의 사회역학자 리처드 윌킨슨은 <평등이 답이다>에서 미국처럼 불평등이 큰 사회에서 스웨덴처럼 불평등이 작은 사회보다 당뇨병, 심장병 등 질병뿐 아니라 범죄, 정신장애, 자살, 살인, 감옥 수감 비율이 더 높다고 분석했다. 그 밖에도 불평등이 큰 사회에서 하층민의 상대적 박탈감과 심리적 스트레스가 커지고 건강과 사회문제를 악화시킨다는 다양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정신질환의 근본적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정신질환을 범죄 동기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신질환 환자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차별하거나 배제한다면 인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오히려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정신질환 환자가 편견과 스티그마(부정적인 고정관념)를 피하기 위해 치료를 거부하면서 중증으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신질환이 범죄의 원인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역설적으로 가해자가 정신질환 병력을 통해 감형을 노리는 경향이 커질 수 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의 심리적 동기로 사회에 대한 불만, 자기 처지 비관, 자기 존재 증명,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오해, 분풀이, 환각과 망상 등을 지적한다. 사회심리학의 ‘낙인 이론’은 범죄와 일탈 행위를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최근 서울시 신림역 칼부림 난동 사건의 가해자는 다른 사람에 비해 낮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포자기 심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성남시 서현역 사건의 가해자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지만, 특목고에 입학하지 못한 현실에 좌절하여 온라인 게임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인정에 대한 욕구와 좌절이 범죄적 충동과 결합된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의 구조적 효과

묻지마 범죄는 ‘선진국형 범죄’로 불리지만, 특히 사회 양극화가 심한 사회에서 두드러진다. 미국은 무차별 총기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국가이다. 2016~2020년 3명 이상이 피해자인 무차별 살인 사건 173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범행 동기 절반 이상이 정치적 신념보다 개인적 불만이나 피해의식에 따른 보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73건의 무차별 공격 범죄자의 96%는 남성이었고, 평균 연령은 34세였다. 범행 장소는 식당, 백화점, 슈퍼마켓, 쇼핑몰 등 유통점 매장이 가장 많았다. 범죄자의 28%는 공격을 암시하는 온라인 게시글이나 작별 인사 등을 남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한국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불평등이 심한 사회이다. 일본도 불평등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는 대부분 경제적 빈곤층이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경우가 많으며, 자신이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실업자 또는 소득이 없는 사람이 많고, 고졸 이하 출신에 일용직 노동에 종사하며 안정적인 직장이 없었다. 가해자는 대부분 학교를 마치지 못하거나 취업에 실패하여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다가 자신의 분노를 폭력적 방법으로 사회에 표출한다.

빈곤과 고립은 사회적 현상이다. 상대적 박탈감도 사회적으로 형성된다. 최근 한국에서 안정적 직장이 줄어들고 중산층이 붕괴하면서 상향 사회이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파리경제대학의 <세계 불평등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한국의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4.7%를 차지하고 상위 10%가 46.5%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3분의 2 이상 인구가 불평등이 지나치게 크다고 생각하고, 청년 세대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부모의 세습으로 운명이 결정되고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부정부패가 심각하고 엘리트들의 기득권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불만을 터트린다.

묻지마 범죄는 경제난이나 불안정한 고용 등 경제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해자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을 자기 자신보다 사회나 환경으로 본다. 가해자가 부유한 사람에 대한 불만을 가지기도 하지만, 부자들이 사는 지역이나 고급 백화점 매장에는 경호원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경찰이 적은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주목할 점은 특정 개인에 대한 보복 심리가 아니라 자신의 실패나 좌절의 근본적 원인이 사회 탓이라고 생각하고, 사회 전체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자신과 개인적 관계가 없는 불특정한 사회 구성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의 증가

이수정 경기대 교수 연구팀이 2013년 수행한 대검찰청 정책연구용역 보고서 ‘묻지마 범죄자 심층 면접을 통한 실증적 원인 분석 및 대응 방안 연구’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 가해자 18명 중 10명이 ‘외톨이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연구팀은 범죄자를 외톨이, 반사회성, 정신장애 3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는데, 외톨이 유형은 범죄 전력이 없고 정상적 가정에서 자랐지만, 성인이 된 후 장기간 홀로 칩거하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외톨이 생활을 하다가 특정 사건을 계기로 폭력성을 표출하고 불특정의 사람을 공격했다.

묻지마 범죄 가해자 대다수가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무차별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의 이면에는 젊은 층의 사회적 고립이라는 사회문제가 존재한다. 서울시 신림역 사건의 가해자는 사회생활에서 잇따른 실패 이후 극심한 사회적 열등감과 분노를 느꼈다. 성남시 서현역 사건 가해자는 고교 입시 실패 후 가족과도 연을 끊고 수년을 혼자 지내왔다. 가해자들은 상당 부분 혼자 살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이 없으며 은둔형 외톨이라는 것이 주요 특징이다.

은둔형 외톨이가 증가하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째, 기업의 구조조정에 의한 실업이 증가했고 신규 고용 기회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식 청년 실업률은 3% 수준이지만, 자발적 실업이나 취업 준비생이 많아 고용률은 절반 수준에 그친다. 심지어 고용과 교육을 포기한 니트(NEET)족도 증가하고 있다. 둘째, 노동 유연화로 인해 고용 인구 가운데 절반 정도가 비정규직이거나 택배 배달 등 독립적인 개인 사업자로 일한다. 사회보험도 가입하지 않고 근무 기간도 수시로 바뀐다. 평생직장이 없어졌다. 직장 이직이 많고 주거지를 옮기는 이사 비율도 높다.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가족과 친구와 함께 지낼 시간이 많지 않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셋째, 거주 지역에 도서관, 미술관, 체육시설, 공원 등 사회적 기반시설이 적어 이웃과 교류하거나 공동체 문화를 경험할 기회가 적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사회적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는 예측과 달리 인터넷이 발전한 국가에서 더 외로움이 크다는 분석 결과가 많다.

인터넷이 가장 발전한 한국에서 ‘디지털 세대’라 불리는 청년층 가운데 은둔형 외톨이가 증가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인터넷이 ‘사이버 공동체’를 만든다는 환상과 달리 인간적 접촉, 친밀감, 공동체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 2019년 청년 인구의 3%, 34만 명이던 고립된 청년들은 2년 만에 20만 명이 증가해 현재 55만 명으로 전체의 5%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30대, 40대 중년 세대 중 실직, 파산, 이혼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된 경우도 많으며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심리적 효과를 강화하면서 묻지마 범죄의 강력한 동기가 되고 있다.

미디어 효과

‘범죄 감염’ 이론은 범죄에 대한 언론의 무절제한 보도나 특종 위주의 발표가 모방 범죄를 증가시킨다고 주장한다. 서울시 신림역 칼부림 사건 이후로 묻지마 범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온라인으로 범죄를 예고하는 피의자 절반이 미성년자라는 점을 보면,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를 본 청소년들의 모방 범죄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묻지마 범죄에 대한 언론 보도가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현상도 발생한다. 묻지마 범죄로 인한 젠더 갈등은 2016년 서울시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사회문제가 되었다. 범죄의 본질이나 문제 해결보다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에만 주목해 사회 갈등을 증폭시킨다. 남성과 여성 간 혐오와 갈등 구도가 지속되며, 서로 상대를 혐오하고 조롱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묻지마 범죄는 수많은 사람을 증오와 갈등의 소용돌이로 이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나쁜 일이 벌이진 다음에 고치기보다는 미리 예방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지금 한국 정부는 ‘묻지마 범죄’에 관한 아무런 전담 부처도 없이 미봉책에 급급하고 있다. 묻지마 범죄가 오래전부터 세상에 튀어나왔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실태분석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를 하루아침에 풀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해결을 미룬다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묻지마 범죄의 사회적 원인이 매우 복잡하듯이 정책 방향의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하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만 높이는데 그치지 말고 범죄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개인적 차원의 심리적, 정신의학적 접근과 함께 구조적 차원의 사회적, 경제적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이중 전략’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정신질환 치료 지원, 경찰의 사전 예방, 절제된 언론 보도가 필요하고, 장기적 차원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고립을 줄이는 사회정책을 중시해야 한다.

첫째, 빈곤과 사회적 배제를 없애고 지나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사회 안전망을 제공해야 하고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경쟁 위주 교육을 벗어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공동체 문화를 강화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공교육을 강화하고, 저소득층과 학업 성취가 낮은 학생들을 지원하는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생활 임금 보장, 직업 훈련, 좋은 일자리 제공을 통해 절대 빈곤층을 없애야 한다. 특히 플랫폼 노동자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에게 최소한의 소득보장이나 직업교육, 사회보험을 통해 자립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빈곤을 해소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복지국가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둘째,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는 정부의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 2018년 영국에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외로움 부처(Ministry of Loneliness)를 신설했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가 100만 명 수준으로 증가하고 묻지마 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하자, 정부 주도하에 전국 각지에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를 마련했다. 지자체마다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를 설치하고 가정 방문 지원 등 사회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의 지원을 통해 정신보건복지센터, 비영리시민단체 등 민간 지원 프로그램도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1인 가구가 반드시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산업화 이후 대부분 선진국의 특징이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오히려 사회적 교류가 활발한 경우가 많다. 사회적 신뢰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2가지 견해가 있다. 먼저, 결사체를 강조하는 관점은 이익집단, 시민사회조직, 지역사회 공동체 참여를 중시한다. 하지만 시민적 결사체는 점점 약화되고, 전통적인 결사체인 종친회, 향우회, 동창회도 청년 세대와는 거리가 멀다. 다음으로 기술을 강조하는 관점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시하지만, 개인적 친밀감과 유대감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시민적 결사체와 기술적 진보만으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할 수는 없다.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안정적 직업이 중요하며, 거주 지역의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체육시설, 문화시설 등 다양한 사회적 기반시설(social infrastructure)이 필요하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고용률이 높고 사회적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에서 사회적 고립이 적고 범죄 발생률이 낮다.

셋째,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보건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고립은 상대적 박탈감, 심리적 스트레스, 분노, 증오, 정신질환을 심화시킬 수 있다. 보건 시스템을 통해 정신질환 치료 대상자를 선별하고, 병세가 악화된 사람은 입원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환자의 치료 절차를 간소화하고, 퇴원 후에도 외래 치료를 이어갈 수 있게 전담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동시에 생애 과정에서 인격이 형성되는 청소년 시기에 지나친 입시 교육과 과잉 경쟁 대신 사회성을 강화하는 교육을 강화하고 적절한 훈육이 이뤄질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묻지마 범죄에 대한 선정적 언론 보도가 변화해야 한다. 우리에게 더 큰 위험은 비슷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범죄자들의 모방 심리이다. 정신분석학의 관객성 이론은 미디어 수용자가 영화나 언론에서 나타난 사건을 동일하게 간주하며 모방하는 행동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범죄자의 동기를 무분별하게 보도하며 전파시키는 언론의 보도는 엄청난 가속도가 붙은 난기류를 만든다. 살인 예고를 게재하는 가해자의 대부분이 미성년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파급 효과를 고려한 뉴스 보도가 필요하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묻지마 범죄에 대하여 초강력 대응을 엄포한 이후 전체주의 사회의 관료기구처럼 행정부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행정안전부의 경찰 병력 지원 강화와 특공대 투입 계획이 발표되었다. 급기야 도심에 장갑차가 등장했다. 검찰은 엄벌주의를 외치며 묻지마 범죄나 예고글 조차 테러로 간주하고, 가석방이 불가능한 무기징역 등 처벌 수위를 강화하려고 한다. 중증 정신질환자를 병원에 강제 입원할 수 있는 제도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물리적 강경책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공공장소의 경찰 확대는 일정한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모든 곳에 경찰과 장갑차를 배치할 수는 없다. 모든 정신질환자를 시설에 감금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일시적 사후 대책보다 사전 예방을 위한 효과적인 사회정책이 필요한 시기이다. 범죄야말로 그 사회의 도덕적 건강 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윤태 교수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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