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9. 임제와 신희④

박기철 승인 2024.03.25 07:00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9-4. 살로메의 환생인 신희

힌트 하나만 줘봐. 나도 여기서 여러 책들을 많이 읽어 알 만큼은 알아. 옛날 사람이라고 얕보지마.

OK. 쟁반에 올려진 어느 남자의 잘린 목을 내심 흐뭇하게 들여다 보는 여자야. 이 정도 힌트를 주었는데 모른다면 알 만큼 안다고 어디 가서 우쭐대지마.

알겠다. 살로메라는 여자잖아. 성경에 그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녀의 존재가 살짝 나오는…

맞아. 똑똑하네. 정말 알 만큼 아네. 성경에 예수님의 제자로 등장하는 살로메는 선한 여인이었지. 마리아 살로메라고 불리기도 해. 그런데 내가 얘기하려는 살로메는 악한 여인이었지. 선한 살로메와 구분하기 위해 살로메 3세로 불리기도 해. 그런데 선한 살로메보다 악한 살로메가 훨씬 더 유명해. 역시 사람들은 선한 거보다 악한 거에 관심이 많은가봐. 선한 살로메보다 악한 살로메를 그린 그림들이 훨씬 더 많은 이유지. 그 그림들 속에서 악한 살로메는 목이 잘려 쟁반에 올려진 어느 남자의 머리를 들고 있는데 섬뜩한 그림이지. 그 남자가 누군지도 알지?

딱 거기까지만 알아. 예수에게 세례를 준 세례자 요한이잖아. 예수의 열두 제자들 중 한 명인 사도 요한이 아니라… 더 이상 질문하지마. 더 알지 못하는 알량한 지식이라 뽀록나겠다.

그래도 훌륭해. 많이 아네. 그대의 지식력 인정! 악한 살로메는 팜므 파탈로 알려졌지. 그런데 성서 속에 헤로디아의 딸로 이름없이 등장하며 헤롯대왕의 아들 중 하나인 헤롯 왕 앞에서 유혹적인 춤을 춘 그 여인이야. 그녀의 춤을 감상한 왕이 살로메에게 원하는 모든 걸 주겠다 약속했다지. 살로메는 세례 요한을 증오한 자기 엄마인 헤로디아의 말대로 물질적이거나 권력적인 뭔가가 아니라 요한의 머리를 요구했다지. 그래서 감옥에 갇힌 요한의 목이 즉각 잘려져 요한의 머리가 쟁반 위에 올려져 왔고 이윽고 살로메의 손에 전달되었겠지. 그런데 그런 성서속 기록만으로 살로메가 팜프 파탈이 되기에는 부족해. 나중에 이야기가 덧붙여져서 살로메는 악한 팜므 파탈이 된 거야. 그렇게 한 장본인이 바로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자지. 그는 성서 속 이야기에 매우 선정적이며 야동적인 살을 붙여서 살로메라는 희곡 작품을 만들었는데 바로 여기서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를 많은 남자들이 욕망하는 매혹적 여성으로 재창조했지. 이 희곡에 따라 살로메라는 연극이 공연되었는데 처음에는 퇴폐적이고 불쾌한 창작물로 여겨졌지만 나중에는 오페라로까지 각색되면서 매우 인기있는 작품이 되었지. 결국 오스카 와일드가 살로메를 흥행에서 띄운 거지. 우리가 알고 있는 악한 여인 살로메는 바로 이에 근거한 거고… 그런데 성서에 이름없이 등장하는 살로메가 자기 엄마의 요청에 따라 그냥 맹하게 요한의 잘린 머리를 요구하기보다 정말로 악하게 요한의 잘린 머리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커.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자는 바로 그 점을 간파하고 상상하여 작품을 창작했을 거야. 자신의 의붓 아버지인 헤롯 왕을 홀릴 정도로 예뻤고 또 아름다운 춤까지 추었으니 어리더라도 매력을 발산하는 젊은 여인이었을 거야. 그런 점에서 나는 악한 살로메의 환생이자 화신일 수 있다고 아까 말했던 거지.

그런데 아직까지는 네가 그렇게 지적인 남자들을 치명적으로 유혹하는 팜므 파탈인지 실감이 나지 않네. 도대체 어떤 남자들을 꼬셨다는 거야? 도대체 너처럼 평범한 아줌마가 뭘 어쨌다고?

좋은 질문이야. 나한테 남자를 홀리는 그 뭔가가 있었을 텐데 그게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어떤 남자들이 나한테 환장을 했을까? 너도 알만한 사람들이야. 아니 그냥 알만한 사람들이 아니라 아주아주 유명한 지성인들이야. 이름들 대면 깜짝 놀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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