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17)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4장 송도와 진주여자(25)

이득수 승인 2024.03.27 17:15 | 최종 수정 2024.03.27 17:16 의견 0

후배직원 셋이 박수를 치고 옆에서 춤을 추며 장단을 맞추던 아가씨가

“선생님 멋져요. 나이에 비해 목소리도 우렁차고 감미로워요. 감정도 너무 좋고.”

하며 매달리듯 자리에 따라와 술을 한잔 부어주며

“저어, 선생님.”

“...”

“제가 오늘 밤에 선생님과 같이 있으면 안 될까요?”

“...!”

“꼭 옛날 제가 사귀던 남자의 아버님 같아요. 그 남자 참으로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잘 했는데...”

“그래? 그렇지만 난 지금 영자씨에게 관심을 가질 형편이 아니야.”

“...”

14. 송도와 진주여자(25)

노래방을 나와 창훈씨가 잡아주는 택시를 타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벌써 택시가 양정을 지나고 있었다. 집이 가까울수록 영순씨에게 미안한 생각과 함께 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져 아파트구내의 토곡홈마트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 패트병맥주와 소주 한 병, 땅콩과 소시지 몇 개를 사서 110동 주차장 옆 산책로를 한참 걸어 껌껌한 시누대밭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오는 이 없고 달도 이미 기울어 희미하게 비치는 아파트의 불빛이 한결 마음을 편하게 하는지라 비로소 숨을 늦추며 종이컵에 소주를 조금 붓고 맥주를 타서 서너 잔 꿀꺽꿀꺽 마시고 전화기를 꺼내

“옥자씨 자는가?”

하고 한참을 기다리니

“아니? 이 한밤중에 웬 전화를?”

하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하긴 나도 조금 전까지 당신생각하다 잠이 들었는데.”

하고 또 숨을 멈추더니

“전화 끊어요. 옆방에 은석이 듣는가 봐. 방금 뒤척이는 소리가 났어. 내가 밖에 나가서 다시 전화 하께.”

하는 바람에 또 거푸 몇 잔을 비우는데 전화가 와서

“옥자씨,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는데

“아이구, 이 남자 봐. 울기는 왜 자기가 울어? 내가 울어도 시원찮을 판에...”

하면서 한참이나 숨을 고르고 기다리더니

“내가 말이야. 만나기만 하면 죽여 버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전화로 목소리를 들으니 자꾸만 마음이 약해지는 거 있지? 이러면 안 된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어도 안 돼. 기가 막히네.”
“그래? 그러면 아직 날 생각하는 마음이 남았다는 말인데 정말 미안해.”

“그래 생각할수록 못 믿을 게 사람마음이고 더러운 게 정인가 봐.”

“그렇지. 그렇긴 하지. 그냥 내가 죽일 놈이라서 그렇지.”

“자꾸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니 이야기할 맛이 안 나네. 술이 많이 취한 것 같으니 그만 들어가서 자요. 홍여사 아니 착한 영순씨 기다리겠네.”

하더니 문득 전화가 끊어지고

“옥, 옥자씨!”

다시 전화를 끊어도 전원을 껐는지 소용이 없었다.

이튿날 오후 네 시경에 전화를 걸어

“그래 그간 어떻게 지냈어요?”

“그간 이라니 언제 말인데?”

“나하고 헤어지고 나서 쭈욱.”

“으흐음...”

긴 한숨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우리가 헤어진 지 꼭 39년이 되었구먼.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다 말해?”

“미안해.”

“처음엔 당신이 돌아오리라 기다리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했지. 그런데 당신이 내게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군에 입대를 할 당시 나는 울주군보건소에 다니고 있었는데 막상 주변에 원망할 사람조차 없다는 생각에 이제 두 사람의 사이가 완전히 끝이 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평리의 집에 가서 군사우편주소라도 얻어 편지를 해볼까 싶었지만 어쩐지 용기가 나지 않았어. 방안에서 공부를 한다고 하던 형님, 말을 걸지는 않지만 슬며시 내다볼 것만 같은 어딘가 차가운 느낌이 드는 하얀 얼굴이 무섭고 겁이 났어. 어머니, 참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응. 살았으면 근 100살이나 되었을 텐데. 벌써 돌아가셨지.”

“어머니도 어질고 우리 옥철이동갑 동생 백찬이도 착한데 그 형수 되는 분이 많이 힘들고 부담스러웠어.”

“그래. 그랬겠지.”

“그래서 진주로 가겠다고 경남도에 신청을 했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기다리라는 것이었지. 그 때까지는 나는 결핵관리 유여사를 통하고 유여사는 황성권평리이장을 통하여 당신 소식을 듣는데 당신과 동갑친구로 같이 입대한 이장동생과 하사관임관을 하고 일주일 위로휴가를 받고 왔다 곧장 귀대했다고 들었지.”

“그래 그랬지.”

“이젠 나를 아예 생각조차 않는구나 싶은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돌더구먼. 중남바닥, 언양땅은 물론 울산에 사는 것조차 싫어졌어. 그래서 도청과 진주시를 다시 찾아가 눈물로 호소를 해서 황급히 진주보건소로 옮겼지.”
“그랬구나. 나는 그런 줄을 모르고 이미 서독으로 떠난 줄 알고 가마득히 잊고 있었지. 그건 그렇고 결혼은 왜 안한 것이야?”

“물론 사귀자는 사람도 있었고 중매도 들어왔지. 그런데 내가 나보다 한 살 적은 사람에게도 속고 버림을 받았는데 나보다 몇 살씩 많아 이미 서른에 가까운 남자들은 얼마나 음흉하고 잘 속일까 싶어 자신이 서지 않았어. 또 아침마다 남편의 밥을 해 먹이는 것도 그렇고. 엄마가 없어서 살림살이를 베워본 일이 없었으니까.”

“그랬구나.”

“나이 서른이 될 무렵 유난히 중매쟁이들이 극성을 부렸어. 여자나이 서른이 넘으면 지나가는 개도 안 쳐다본다면서 말이야.”

“그래 웬만하면 시집을 가지.”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어쩌면 열찬씨가 날 찾을지 모른다고, 제대를 하고 마음을 잡아 다시 공부를 했으면 지금쯤 중학교국어선생이라도 하면서 한 번쯤은 찾아올 것으로 기대했지. 마침 어느 정도 마음이 가는 중매처가 있어 마지막으로 당신소식을 알아본다면서 유여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당신은 부산에서 이미 결혼을 해서 명절이면 아이까지 안고 언양에 다녀가더라는 이야기, 당신을 꼭 닮은 딸아이와 아주 어리고 아름다운 부인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래 얼마나 괘심한 생각이 들었을까? 미안해.”

“그런데 괘심한 생각과 함께 남자는 정말 못 믿는다는 생각에 중매가 들어와 한번쯤 결혼을 생각해 보던 남자, 한전에 다니며 돈을 잘 번다는 남자마저 끊었지.”

“그러고는?”

“쭈욱 40년이 흘렀지. 연말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는 것도 허전하고 불현듯 당신의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결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나 내게 남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그래도 여자인데. 아이를 낳아보고 싶은 생각, 그 전에 남자랑 같이 자고 싶은 생각은 영 안 들었어?”

“아기라? 그 이야긴 나중에 해. 지금 꺼내면 이야기가 옆으로 샌다. 단 남자는 한번 속아서 그렇긴 하지만 꼭 필요하긴 하다, 지금 옆에 있어서 둘이 같이 자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 당신과 같이 지낼 때도 당신이 늑대처럼 내게 달려들었지 나는 별 느낌이 없었던 것 같아. 단지 남녀관계가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사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하긴 아직 어린 나이였으니까?”

“서른이 넘으면서 중매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며 등 뒤에서 전양은 아무리 봐도 알 수 없는 여자라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어. 간호보조사라는 꽤 괜찮은 직업과 어디 내어놔도 빠지지 않는 얼굴과 하얀 피부를 가지고 왜 남자는 쳐다보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심지어 어린 나이에 남자에게 한 번 데거나 숨겨놓은 아이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이 다 돌면서 말이야.”

“...”

“민심이 천심이라고 무심하게 떠도는 세상사람 들의 이야기도 무시할 수가 없더군. 좌우간 눈을 질끈 감고 돈이나 모으기로 했어. 늙어서 자식이 없으니 돈이라도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말이지.”

“돈 그거 한번 붙기 시작하니까 참 쉽더군. 월급에 보너스가 꼬박꼬박 나오는데 일 년에 천만 원을 타면 3,4백도 안 드는 식으로 금방 돈이 불어나 처음엔 연립주택을 하나 사고 다음엔 진양군에 밭을 한 5백 평 사기로 했어. 가끔 급한 직원들에게 돈을 빌려주면 한 3부정도의 이자를 주는데 그 불로소득도 짭짤했지. 어느 듯 돈이 급하면 보건소 전양에게 가보라는 소문이 들 정도로 보건소와 시청직원들까지 내 돈을 빌려가고 꼬박꼬박 이자를 주었지. 심지어 내가 모시던 보건소장은 물론 시청의 인사과장까지 내 돈을 썼지. 심지어 진주바닥에 전옥자 돈 안 쓰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다 돌 정도로 말이야.”

“그럼 부자겠네?”
“뭐 큰 부자는 아니지만 진주 남강 옆 경치 좋은 곳에 에 서른네 평짜리 새 아파트도 있고 3층짜리 상가건물도 있고 진주진양에 대지, 전답, 잡종지 해서 땅도 한 3천 평이 있고 고향 옥종면에도 둘째오빠 명의로 과수원과 산을 좀 사두었지.”

“잘 됐네. 전부자님, 나는 살면서 돈벌이가 젤 어렵더라. 하루하루 먹고 살고 아이들 공부시키느라 월급날 안 기다리고 느긋하게 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하더구먼. 우리 마누라가.”

“그래도 당신은 아이들이 있잖아?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다니고 시집장가 가서 아이까지 낳은 자식들이 말이야. 당신 남의 땅 빌려서 취미로 주말농장 한다는데 참 어이가 없어. 그 따위 소꿉장난쯤은 진주로만 오면 밭이 500평에 임야 3천 평이 딸린 땅을 거저로 줄 수도 있는데.”

“...”

“마흔이 넘으면서 영어공부를 시작했어. 돈도 어느 정도 붙었으니 영어를 해야 퇴직하고 해외여행이라도 자유롭게 가겠다 싶어서.”

“그래 퇴직하고 해외여행은 좀 했는가?”

“아니. 정작 퇴직하니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여행사의 패키지상품을 선택해서 가는 수가 있다고 했지만 혼자 가는 것이 왠지 내키지 않았어.”

“나는 여행 두 번이나 갔다 왔는데. 그것도 미안하네.”

“뭐 이제 와서 새삼 열찬씨 원망할 것은 아니지만 나이 든 여자가 혼자 관광을 하면 무슨 사연이 있는 여자, 최소한 남편이 죽고 자식과도 소원한 그런 여자로 보일 것 아냐?”

“그렇구나.”

흘낏 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넘었다.

“옥자씨, 여섯 시에 약속이 있는데 일 보고 내가 나중에 전화할 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모처럼 산우회사무실에 가서 친구들과 훌라를 치기로 한 것이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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