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20)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4장 송도와 진주여자(28)

이득수 승인 2024.04.01 08:00 의견 0

“청장님, 부청장님은 공식 스케줄이 있고 우리 국장님도 집안에 일이 있고 해서 과장님께서 자갈치에서 곰장어안주에 소주라도 한 잔 하자고 하십니다. 다섯 시가 넘었으니 바로 모실까요?”

“아니, 나는 우선 창훈씨하고 바로 문화공원에 올라가서 자료를 좀 봤으면. 소주는 나중에 우리 실무자 셋이 하기로 하고 과장님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퇴근해도 좋다고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14. 송도와 진주여자(28)

“국장님, 섭섭하신가요?”

자신의 승용차에 열찬씨를 태우고 꽃마을로 올라가던 창훈씨가 물었다.

“아니. 오늘 보고가 많이 부담스러웠는데 어쨌든 한 고비가 넘어간 것이잖아? 그러나 어쩐지 뒷맛은 좀 찝찝해.”
“스토리 수를 72개에서 50개전후로 줄이려면 많이 아까우실 텐데요?”
“좀 그렇긴 하지만 일단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해. 내가 처음 현장을 답사하며 구간별로 1,20개의 스토리수를 채우려고 하니 참으로 막막한 생각이 들더구먼.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동섬처럼 누가 보더라도 그럴듯한 천하절경의 경치나 묘박지처럼 신통한 이야기 또 지역유지나 원주민에게 들은 자살바위이야기, 문바위 숭어몰이, 대형 참사 수박건지기사건등 송도의 옛 추억이나 전해오는 이야기도 더러 있지만 그걸 가지고는 전체 스무 건도 채우기가 힘들었어. 그렇다면 주변의 경치나 시설을 보고 뭔가 지어내어야 하는데 그게 작은 바위나 새 한 마리를 가지고도 한 두 페이지가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어야 하니 자연 상상이 많이 동원되고 그러다보면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가거나 깊이 들어가거나 일반시민이 생각하기에 너무 생경하거나 사변적인 경우도 생기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는데 그래서 일부는 제외시켜야 되지 않나 우려했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숫자가 많다고 트집을 잡으니 자연히 그런 부분이 시정되는 셈인데 시민의 표를 받아 구청장이 된다는 것이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야. 거의 본능적으로 문제점을 집어냈으니 말이야.”

“아니 저로서는 72개의 스토리하나하나가 너무나 재미있고 신통했는데요. 같은 세대를 살아가며 같은 사물을 보며 어떻게 보통사람은 상상도 못 할 이야기를 구상하는지 늘 신기했고 저 생각으로는 스토리하나하나가 아주 소중한 보석 같아 버릴 수가 없겠단 말입니다.”

“우리 아들이 아버지생각해서 시방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거지. <아빠 힘내세요.>처럼.”

“그런 점이 신기하단 말입니다. 우리 아이가 다섯 살이라 인터넷으로 동요를 배우다 가끔 그 동요를 하는데 어떻게 이런 대화도중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지 말입니다.”

“그렇게 느꼈는가? 그런 건 살다보면 자연스레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사이 사무실에 도착하자

“국장님, 늦은 시간에 웬일입니까? 평소 같으면 퇴근시간인데.”

평일이라 별로 방문객도 없고 누구하나 간섭할 일도 없어 퇴근을 서두르는 정성모씨가 물었다.

“그래요. 평소에 많이 놀아가며 했으니 오늘 같은 날은 야근도 한번 해 봐야지.”

하며 컴퓨터 부팅을 하는 사이 창훈씨가 타온 커피를 마시면서

“창훈씨, 우선 목록을 4부 복사하게. 그래서 과장과 정병진계장, 창훈씨와 내가 한 부씩 가지고 네 개의 구간별 주제와 좀 동떨어지거나 너무 학술적으로 깊이 들어간 이야기, 너무 심한 비약과 상상력을 발휘한 경우, 너무 감성적이거나 사변적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체크해서 나름대로 전체 숫자를 한 50개로 맞춰보기로 하세.”

하는 사이 복사를 마치고 호치키스로 한부를 찍어주는 창훈씨에게

“정 계장하고 과장의 컴퓨터에도 이 내용들을 모두 옮겨주어 일단 제외대상으로 생각되면 제목만 볼 것이 아니라 내용도 읽어보게 하게.”

하자

“정 계장님 하고 저는 거의 매일 국장님의 컴퓨터를 해킹하다시피 해서 읽어보고 그 참 신통하다, 매일매일 어디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참 보통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놀라곤 했지요. 계장님 하고 저는 감히 스토리하나를 버린다는 생각보다는 오늘도 몇 개나 신통한 스토리가 나올까 늘 기대만발이었지요.”

하고 주섬주섬 서류를 챙기고

“국장님, 전체 스토리를 과장님 PC로 넘겼습니다. 이제 내려가셔서 소주를 한잔 하면서 긴장을 푸셔야지요?”

“아니, 자네 먼저 내려가게. 나는 혼자 조용히 생각을 좀 해봐야겠네.”

“국장님, 그러면 내려올 차편이 없을 텐데요?”

“버스 정류소까지만 슬슬 걸어서 마을버스를 타면 되지.”

하는데

“국장님!”

하면서 정병진씨가 들어섰다.

“이럴 줄 알고 오면서 <순애집>에 오리백숙을 한 마리 시켜놓고 왔습니다. 한 3,40분 뒤에 가기로 하지요.”

하는 것이었다.

“그럼 잘 됐네. 노는 시간에 염불한다고 우선 목록 한 장씩 들고 여기 둘러앉게.”

하고는

“정 계장도 일단 모든 이야기 일독은 한 줄 아는데 우선 제 1구간 남쪽 바닷길의 15개의 스토리에 대해서 검토를 하지. 두 사람 잘 알겠지만 이 코스는 송도해수욕장이 입구인 현인광장에서 낚싯배선창과 횟집촌을 거쳐 해안산책로를 거쳐 암남공원입구에 이르는 구간으로 남으로 넓게 열린 바다를 구경한다는 뜻으로 남쪽 바닷길로 명명했지. 어때? 여기서 주제에 동떨어지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이야기가 없진 않겠지?”

하자

“워매! 우리 국장님 옛날 문화행사나 축제하면서 밀어붙이던 가락이 바로 나오네요. 하여간 숨 돌릴 틈도 없이 밀어붙이는 데는 당할 사람이 없지요.”

하고 한참이나 서류를 들여다보더니

“저 1-1.<집결지인사 및 송도해수욕장안내>와 1-2.<현인광장>을 묶어 하나로 압축하면 자연스레 스토리하나가 줄어들겠군요.”

“좋은 생각이야. 그건 단지 압축만 하면 되는 기술적 문제니까.”

하니

“국장님, <1-11. 송도 자살 바위>는 가까운 곳에 있는 태종대자살바위에 비해 너무 임팩트가 없어요. 태종대자살바위처럼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고 또 자살자가 수십, 수백 명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옛날에 한두 번 있었던 일을 가지고는.”

“그래? 김종대전의원님이 가르쳐 준 회심의 스토린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일리가 있네. 일단은 빼기로 하지. 다음 창훈씨 의견은?”

“국장님의 의도가 남으로 열린 바다를 주제로 한다면 1-5 <암석원>과 1-7.<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나?> 또1-8 <한줌의 모래와 자갈, 그리고 돌멩이는> 또 1-12.<석영을 아시나요?>,1-13.<내 삶의 지층은 어디쯤 될까?>가 너무 중복되고 강조된 감이 있어요.”

“그렇지. 좋은 지적이야. 우선 1-7.<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나?> 또1-8 <한줌의 모래와 자갈, 그리고 돌멩이는> 또 1-12.<석영을 아시나요?>의 두 스토리를 줄이는 것이 어떨까?”

“예. 그렇긴 하지만 임업을 전공한 단순한 기술직공무원인 저로서는 국장님의 스토리 중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바위들을 보고 너무나 웅대한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이끌어내는 1-7.<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나?>의 내용이 너무나 신기했어요. 제가 17쪽부터 한번 읽어볼게요.”

하고는

“자, 이야기가 너무 딱딱해졌나요?

지질과 광물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 싶은 분은 서구청에 요청하여 별도로 전문가선생님의 설명을 듣기 바라면서 이제 저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우리 문득 철학자라도 된 듯 저 광활한 우주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보기로 할까요?

여러분은 우주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너무 창졸간이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요?

우선 인류사의 석학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원리를 통해, 또 시선 이백은 시를 통해 우주를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로 짠 섬유 같은 시공(時空)이란 존재로 설명했지요. 그리고 동양사상의 근저에는 음양오행설, 태극도설 등으로 풀어나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 우선 음양오행설에 의하면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이 암벽과 지층이 바로 수,화,목,금.토로 이루어진 오행중의 금과 토입니다. 그리고 이 지층에 부딪히는 파도와 저 푸른 소나무와 불기운이 바로 물과 나무와 불의 요소이며 한낮의 뜨거운 태양의 빛과 에너지, 찼다, 기울기를 반복하는 달과 조수의 흐름이 바로 그 음양오행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시공과 음양오행의 중심에 서서 우주의 구성과 천체의 흐름을 한눈에 보고 있는 것인 셈인 것입니다.”

하고 뜸을 들이더니

“그리고 이 지층에 부딪히는 파도와 저 푸른 소나무와 불기운이 바로 물과 나무와 불의 요소이며 한낮의 뜨거운 태양의 빛과 에너지, 찼다, 기울기를 반복하는 달과 조수의 흐름이 바로 그 음양오행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시공과 음양오행의 중심에 서서 우주의 구성과 천체의 흐름을 한눈에 보고 있는 것인 셈인 것입니다. 의 마지막 구절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마치 무슨 철학서를 읽는 것처럼.”

하자

“그러고 보니 저도 마침 생각나는 구절이 있네요. 1-8. <한줌의 모래와 자갈 그리고 돌멩이는> 의 내용인데요. 제가 한번 읽어보지요.”

하고 흠흠 감정을 잡아

“여러분, 이 오목한 구석자리에 오니 비로소 약간의 돌멩이와 자갈들이 보이군요. 또 저 자갈돌 아래로 소금기에 젖은 모래가 깔려있겠지요.

아무런 특징도 없는 바닷가의 우중충한 돌과 자갈을 두고 왜 이렇게 심각하게 얘기를 꺼내는지 궁금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저 우중충한 해안절벽의 돌과 자갈에 바로 우리 인류역사의 중요한 지문(指紋)이 찍혀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역사시간에 인류의 4대 문명발상지에 대하여 배웠을 것입니다. 또 황하와 나일강을 비롯한 4개 문명권의 여섯 개 강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러나 그 4대문명은 인류역사가 한참이나 지나간 일이고 처음 나무위에서 생활하던 원숭이나 침팬지와 많이 닮은 영장류의 인간이라는 종(種)이 평지의 나지막한 나무열매와 풀씨 등을 채집하러 지상에 내려왔을 때 일입니다.

원시인들은 수많은 맹수의 위험을 피해 잡목이 무성한 좁은 계곡에서 작은 짐숭과 물고기, 열매를 채집하다 우연히 하천바닥의 돌멩이로 나무를 꺾고 열매를 부수다 돌도끼, 돌칼을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이윽고 굴과 홍합 같은 보다 채취하기 쉬운 조개를 찾아 바닷가계곡 즉 해안이나 만에서 움집을 짓고 살며 버린 음식찌꺼기가 조개무지 즉 패총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바닷가의 울퉁불퉁한 돌도 그 옛날 우리 조상의 누군가가 사용하던 돌칼이나 돌도끼일수 있으며 펑퍼짐한 돌이 숫돌일 수도 있습니다. 또 길쭉하고 끝이 날카로운 돌은 구멍을 뚫는 뚜르게나 찍게, 또 반질반질한 몽돌이나 아주 작은 조개껍질의 파편은 어느 소년이 맘에 둔 이웃움집의 소녀에게 구애의 선물로 준, 오늘날의 금은방에 전시된 보물일 수 있습니다. 돌과 자갈, 바위와 지층 같은 이 세상의 모든 자연이 인류역사의 유물일 수 있는 것은 그 평범한 물체들이 바로 우리 인류와 기나긴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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