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21)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4장 송도와 진주여자(29)

이득수 승인 2024.04.02 07:00 의견 0

따라서 이 바닷가의 울퉁불퉁한 돌도 그 옛날 우리 조상의 누군가가 사용하던 돌칼이나 돌도끼일수 있으며 펑퍼짐한 돌이 숫돌일 수도 있습니다. 또 길쭉하고 끝이 날카로운 돌은 구멍을 뚫는 뚜르게나 찍게, 또 반질반질한 몽돌이나 아주 작은 조개껍질의 파편은 어느 소년이 맘에 둔 이웃움집의 소녀에게 구애의 선물로 준, 오늘날의 금은방에 전시된 보물일 수 있습니다. 돌과 자갈, 바위와 지층 같은 이 세상의 모든 자연이 인류역사의 유물일 수 있는 것은 그 평범한 물체들이 바로 우리 인류와 기나긴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14. 송도와 진주여자(29)

여러분, 발밑의 자갈이나 돌을 주워 찬찬히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혹시 원시인이 돌도끼나 돌칼로 쓴 흔적이나 지문이 보이십니까?

아니, 새까맣게 눌러 붙은 그을음뿐이라고요. 예, 어느 여름밤 야영 나온 청소년들이 피웠던 캠프파이어의 흔적이나 코끝이 새빨개진 딸기코 할아버지가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마실 때 생긴 저 그을린 돌이나 쪼그라진 캔, 깨어진 소주병의 파편들이 바로 몇 억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의 후손들이 커다란 확대경으로 들여다볼 소중한 유물이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는 구절말입니다. 마지막 부분 바닷가의 단순히 그을린 돌 하나가 그 옛날 원시인들의 돌도끼일 수도 있고 우리가 함부로 버린 쪼그라진 캔이나 깨진 소주병의 파편이 먼 훗날 후손들에게 소중한 유물이 되어 박물관에 자리 잡을 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반전 말입니다.“

정병진 계장도 나서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기도 한데 지금 생각해보니 앞의 것은 지질학적으로 너무 깊이 들어갔고 뒤에 것은 너무 비약이 심한 것 같기도 하네. 일단 제외시키기로 하지.”

“아니, 국장님. 저 개인적으로는 ‘ 여러분, 이 오목한 구석자리에 오니 비로소 약간의 돌멩이와 자갈들이 보이군요. 또 저 자갈돌 아래로 소금기에 젖은 모래가 깔려있겠지요...”

하고 아까 열찬씨가 읽어나간 부분을 끈질기게 다시 읽어가다 기어이

“여러분, 발밑의 자갈이나 돌을 주워 찬찬히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혹시 원시인이 돌도끼나 돌칼로 쓴 흔적이나 지문이 보이십니까?

아니, 새까맣게 눌러 붙은 그을음뿐이라고요. 예, 어느 여름밤 야영 나온 청소년들이 피웠던 캠프파이어의 흔적이나 코끝이 새빨개진 딸기코 할아버지가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마신 후에 셍긴 저 그을린 돌이나 쪼그라진 캔, 깨어진 소주병의 파편들이 바로 몇 억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의 후손들이 커다란 확대경으로 들여다볼 소중한 유물이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의

구절이 너무 좋아요. 웬만하면 살렸으면 합니다.”

간곡히 말하자

“일리는 있는 말이지. 또 내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작성한 문장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나? 일단 두 스토리는 세모표시 고려대상으로 하세.”

하고 다시 훑어보다

“이건 집필자 내 자신의 생각이나 반성이랄까, 단지 스토리수를 늘이기 위해 아주 사소한 것이나 동떨어진 것을 억지로 꿰맞추거나 한번 읽어보거나 들어본 상식을 인터넷이나 참고자료를 검색해 너무 학술적인 입장에서 전문용어를 남발한 경우도 있어. 그래서 별 깊이가 없는 단순한 안내인 1-4. <낚싯배 선착장>을 빼고 1-12.<석영을 아시나요?>도 제외했으면 해. 너무 지질학적 요소가 많아서.”

하는데

“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는데요. 석영을 황금과 연관시켜 인간의 보편적 호기심을 끌어낸 이야기가 참으로 흥미롭지 않아요? 저는 스토리텔링 또는 관광안내가 단순한 설명이나 안내를 넘어서 이런 식으로 뭔가 울림이 있는 이야기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면서

“아까 암석원에서 본 석영을 기억하시는 분은 그 수정처럼 맑고 아름다운 석영이 왜 저렇게 시꺼먼 석영맥으로 불리는지 의아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보통 수정 같다고 생각하는 그 수정(水晶)은 자연 상태의 순수결정체의 석영을 사람이 보석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의 석영인 것입니다. 그러면 시꺼먼 석영 맥은 도대체 무엇인가 묻고 싶습니까? 우리가 석영이 수정이라는 보석과 동일한 물질이라 하니까 매우 귀하고 희소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석영은 우리지구의 표면, 즉 지각의 92%를 이루고 있는 가장 흔하고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구성요소입니다. 모든 바위가 부서지면 자갈이 되고 마지막에 흙이 되고 모래가 되듯 그 흙과 모래의 주성분이 모두 석영인 것입니다. 그 모래의 반짝이는 금빛을 황홀하게 느낀 고대인들이 모래를 녹여 유리를 만든 것이며 더욱 발전된 형태가 현대문명에서 여러 용도로 쓰이는 실리콘이며 석영이란 말이 화학적으로 바로 산화 실리콘이 된답니다.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고 해도 자꾸만 복잡해지는 것이 암석에 대한 공부인지 모르겠군요. 아무튼 여러분은 지각의 최대구성요소인 석영이 우리 인간에게 치명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황금의 사촌이라는 사실하나만이라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읽어나가는데 정병진 계장이 휴대폰을 꺼내들며

“국장님, 식당에서 전화왔습니다. 백숙이 준비되었다는 이야긴데.”

“그래요.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게. 이제 제 1구간이 거의 끝나는데 마자 하고 가지.”

하면서

“마지막 1-14.<바위를 뚫는 나무>를 뺏으면 해. 암남동장을 지낸 김경환 기획감사실장이 주민들에게 연리지(連理枝)가 나타났다고 무슨 대단한 길조라도 나타난 듯 이야기해서 가보니 바위틈의 사철나무 두 그루가 서로 붙은 것 같기는 한데 수형이나 크기가 너무 보잘 것이 없었어. 옛날 왕조시대에 낱알이 200개가 넘는 벼이삭을 가화(嘉禾)라고 해서 왕에게 바치면 왕이 풍년의 징조라고 좋아했는데 그 밖에도 상상속의 새인 봉황(鳳凰)이나 연리지, 비익조(比翼鳥)등을 자신의 선정, 특히 태평성대의 상징이라고 말이야. 그렇지만 사진사 김종현씨가 아무리 신경을 써 사진을 찍어도 너무 볼품이 없어 그 옆의 바위에 거꾸로 붙어서 자라는 찔레 덩굴이야기를 곁들어 절벽사이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강인한 생존력을 이야기 하려는데 아무래도...”

하는데 이번에는 열찬씨의 전화가 울려 무심코

“여보세요.”

뜻밖에도 옥자씨의 목소리였다.

“어어, 우째 먼저 전화를 다 하고?”

하면서 볼륨이 높아 다른 사람이 듣겠다며 정병진씨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는데

“조금 쉬었다 하지요.”

하고 창훈씨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순간 바로 휴대폰이 울리며

“오늘은 왜 전화를 안 했어요?”

기다리기라도 한 듯 옥자씨의 목소리가 터졌다.

“중간보고랑 직원들과 미팅이랑 종일 바빴어.”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오후 내내 전화를 기다렸지.”

“아니 무슨 일이 있어요?”

“그런 게 아니라 이번에는 전화만 오면 성추행범, 아니 성폭행범으로 단단히 따져 물고를 내려다가도 전화만 오면 마음이 약해지고. 그러다가 문득 어느새 전화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고.”

“미안해.”

“또 미안해하네!”

“진짜 미안해. 그게 다 우리가 한때나마 서로 살을 섞고 산 사이가 되어서 미운사랑이 남은 거지.”

“미운 사랑이라?”

“그래요. 아무튼 지금 직원들과 회합중이니 전화를 끊고 있다 저녁에 할게.”

“그래요. 오늘은 정말 단단히 혼이 날 줄 알아.”

전화를 끊자 두 직원이 귀신같이 알고 들어오는데

“제 1구간은 이 정도로 하고 밥이나 먹으러 갈까?”

열찬씨가 멋쩍어 하는데

“국장님, 저는 송도자살바위이야기를 빼는 것이 너무 아쉬워요. 태종대자살바위에 뒤진다고는 하지만 국장님의 극적인 반전 멘트가 버리기가 너무 아까워요.”

하고 자료를 뒤적이더니

“이야기가 너무 무거웠습니까?

그렇다면 퀴즈 하나,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자살바위는 어디에 있을까요?

......

바로 부여의 낙화암입니다. 3천 궁녀가 떨어졌으니까요.”

하는데 정병진씨가

“그것도 그렇지만 국장님이 전에 같이 해안산책로를 걸으면서 바위위에 세워진 두 개의 전망대형 쉼터를 활용해 세 개의 러브 포인트를 만들어보자던 아이디어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는데

“그 문제를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 또 보수적인 구청장이나 구의 간부들이 반대할지도 모르고.”

하면서 백숙집으로 향했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집에 가려는 열찬씨를 정병진 계장이 자꾸 붙잡으며 산에서 육고기를 먹었으니 바다에서 생선을 먹어야 산해진미(山海珍味)를 채운다는 바람에 곰장어를 구워 소주를 세 병이나 더 마시고 다시 노래연습장까지 거친 후에야 간신히 풀려나 연산동으로 향했다.

“자나?”

예의 시누대 밭에서 전화를 하니

“술 마셨어요. 목소리가 퍼졌네.”

“응 직원들이 수고했다고 자꾸 노래방에 가자는 바람에.”

“팔자 늘어졌네요. 남은 마음이 아파 가슴이 찢어지는 바람에 자기는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고. 그래 도우미도 불렀어요?”

“아니.”

“새빨간 거짓말.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하지?”

“아니, 옥자씨 오늘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하는데 저쪽의 낌새가 이상했다. 아닐까 다르랴 이내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국화가 시들고 가로수에 낙엽이 지고 하도 허전하고 처량한 생각이 들어 오후에 촉석루 지나 진주성에 갔는데 말이야.”

이제 대 놓고 흑흑 우는 소리를 내어

“옥자씨, 울지만 말고 좀 진정하고 이야기를 해요. 그래야 내가 무슨 사연인지를 알지.”

하는 순간

“나쁜 사람! 당신은 그런 말 할 자격도 없어요!”

하고 딸깍 전화가 끊겨버렸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마침내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에 전화를 끊자 깜깜한 밤하늘에서 싸늘한 바람이 몰려와 시누대를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다. 맥주를 한 잔 마셔보자 이빨이 덜덜 떨렸다. 가슴팍으로 한기가 밀려들고 있었다. 술잔을 놓고 옷깃을 여미며 하늘을 바라보니 깜깜한 하늘에 별이 드문드문 하고 눈썹 같은 하현달이 하얗게 반짝이며 비수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왜 그렇게 갑자기 화가 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근간에 와서는 그 철없는 어린 연인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별별 유치한 이야기를 하며 낄낄거리기까지 했는데. 남은 술을 집에 들고 갈 수도 없어 병뚜껑을 닫고 안주도 돌돌 뭉쳐 시누대밭에 감추고 일어서려하는데 따르릉 다시 전화벨이 울리더니

“어디야? 아직 집에 들어간 거 아니지?”

“그래. 예기해 봐.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지?”

“그래 하지 뭐. 오늘은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지 말고 끝까지 잘 들어.”

“알았어.”

공원을 한참 돌다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리는데 마침 서너 살 된 사내아이를 데리고 온 예순 초반의 할머니가 커다란 풍선을 서로 던져주고 받아서 다시 던지며 아주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풍선이 자기 발치로 떨어져 다가오는 아이에게 쥐어주자

“고맙습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데 눈동자가 또랑또랑한 참으로 귀여운 아이였다.

“아이구! 착해라. 인사도 잘 하고. 그래 몇 살이지?”

“네 살!”

“이름은?”

“하일철.”

하는데 할머니가 다가와

“아이가 참 이쁘네요. 키우는 재미가 여간 아니겠내요.”

하자

“웬 걸요. 제 누나를 키울 때까지는 몰랐는데 이젠 힘에 부쳐요. 몸무게가 늘어나 안아 올리기도 힘들고.”

하다 찬찬히 옥자씨의 눈을 들여다보며

“집이도 손주가 있나본데 서울이니 부산 같이 먼데에 있나 봐요?”

“예. 뭐 그게...”

“요즘은 손자가 가까이 있어도 시어머니 오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며느리가 있어 이렇게 손주를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영광이라 하는데 실제로 손주를 길러보면 너무나 힘이 들지요.”

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가는데 그만 눈물이 핑 돌더라는 것이었다.

“미안해. 많이 섭섭하기도 했겠네.”

“또 미안해야! 이 무책임한 인간이!”

“무책임하다니? 아이이야기를 하다 왜 갑자기 무책임한 이야기가 나와?”

“당신이 무책임한 행동을 했으니 그렇지! 자기 아이가 생긴 줄도 모르고.”

“아이라니?”

금방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열찬씨가 알기로 공무원인 자신이 혼전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비난받을 일이지만 직업이 간호사인 관계로 칠칠맞은 여자로 흉을 볼 것이라면서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젖을 보채듯이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열찬씨에게

“잠깐만!”

하고 돌아서서 뭔가 조치를 하고 한참만에야 받아들였는데 나중 그게 <삼풍>이란 이름의 파란 포장에 가락지처럼 생긴 하얀 피임약을 조치하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는 당신이 원하지 않았잖아?”

“뭐 원하지 않았다고? 형편이 안 돼서 그렇지 아이를 원하지 않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 더더욱 사내를 받아들이면 누구나 그 사내를 닮은 분신을 낳고 싶은 법이지.”

하면서 또 한참이나 말이 끊어지는 게 가슴을 진정시키는 모양이었다. 뜻밖의 이야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열찬씨가 다시 술병의 마개를 열어 병째로 들이키는데

“잘 들어봐! 이 원수 같은 사내야. 미안하다는 말로 제발 이야기를 끊지 말고!”

하면서 중간, 중간 흐느끼는 바람에 열찬씨의 눈앞에 줄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선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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