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23)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4장 송도와 진주여자(31)

이득수 승인 2024.04.04 07:00 의견 0

집에 돌아와 거실에 누웠는데 천장의 꽃 무니가 뱅글뱅글 돌았다. 하필이면 가로세로 방사선까지 일정한 무니라 눈앞이 더 어지러웠다. 자신도 모르게 내쉬는 한숨소리에 안방 침대에서 자던 영순씨가 눈을 비비고 나오며

“와? 어제 보고가 잘못 되었나? 우째 그래 잠도 못 자고 한숨을 쉬노? 김모청장 그 인간하고 헤어지고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오늘 또 잠꼬대를 하고 난리네. 그러니까 내가 다 늙어서 일 욕심, 돈 욕심내지 말라고 했잖아?”

자신과 자신의 가정에 무슨 위기가 닥친 지도 모르고 근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남편을 다독였다.

14. 송도와 진주여자(31)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아파트정류소에서 87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전화벨이 울리더니

“열찬씨, 걱정했제? 내 죽어도 그 소리는 안 할라고 했는데...”

“미, 미안해. 잠은 좀 잤나?”

“별로. 당신도 못 잤제? 내 진작 용서하고 잊어버리기로 한 사람한테 왜 그래 화를 낸지 모르겠네.”

“아니야. 당연하지. 내가 무슨 소리를 들어도 싼 거지.”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 하세요. 내가 뭐 오줄없는 년도 아니면서 그렇게 화를 내고는 다시 당신걱정을 다 하고 말이지.”

“미, 미안해.”

아직도 가슴이 콩닥콩닥 하면서도 2구간에서 4구간까지의 스토리를 검토해서 선별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어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국장님, 바쁘십니까? 오늘 암남공원으로 사진 찍으러 가시지요.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국장님과 제 생애를 두고 최고의 명품사진을 찍을 것 같아요.”

독수리5형제의 막내인 김종현씨가 당연히 따라나설 것으로 보고 아예 자동차를 가지고 나타났다.

“야! 여전히 먼지투성이군 아마도 무 세차(洗車) 세계기록을 경신하고도 남았겠는데?”

“무슨 말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접촉사고로 차가 찌그러지고 페인트가 벗겨져도 마치 영광의 상처처럼 그대로 자동차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다닌다는데 이까짓 세차 좀 안 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그 돈 있으면 차라리 전어 구워서 소주나 마시지.”

“그 이야기는 어디서 주워들은 거지?”

“옛날에 국장님한테서 배운 가락 아닙니까? 장돌뱅이가 겨울에 ‘내가 암만 추워도 비싼 돈 주고 잠바 사 입나. 차라리 그 돈 주고 소주 마시지, 하던 이야기 말입니다.”

하면서 꽃마을을 내려와 구덕로를 타고 송도아랫길로 접어들어 송도고개와 해수욕장을 지나 암남공원의 입구에 차를 대고 공원입구 묘박지 앞에서 동섬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 해안절벽위의 숲길을 한참이나 걸어 옛날 해초, 그러니까 해안선보초병들이 이용하던 철 계단을 타고 한참이나 내려가

“여기가 국장님이 술만 자시면 이야기하던 뭉크의 <절규>같다는 절벽입니다. 송도사람들은 시루떡 바위라 하지요.”

하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더니

“이게 정말 공룡의 발자국일까요?”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윗돌의 홈을 이리저리 바라보다

“에이, 이건 도무지 사진이 나오지 않아.”

다시 두도섬이 바라보이는 전망대에 이르러 불멸의 명화가 나온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더니

“국장님, 드디어 술시입니다. 어서 내려가시죠.”

“내려가긴? 난 좀더 현장을 살폈으면 하는데. 석양에 물드는 암남공원도 보고.”

“안 됩니다. 여섯시 이십분에 우리 독수리5형제의 모임을 준비해놓았습니다.”

“갑자기 모임이라니?”

“국장님, 아니 큰형님이 늘 말씀하셨잖아요? 걸뱅이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시내에 한번 나오기 힘든 큰 형님 나온 김에 우리 독수리5형제 모임을 하기로 말입니다.”

“그럼 서로 얼굴이나 보잔 말이지.”

“예. 우리가 서로 얼굴을 본다는 것이 뭡니까? 소주 한잔 마시고 고스톱 한판 붙어 삼봉꺼이 한번 하고 노래방 들리는 것이지요.”

“그래. 장소는?”

“형님 좋아하는 보신탕집 <미림>입니다. 모처럼 영양보충 한번 하셔야죠?”

“그래. 하는 수 없지.”

열찬씨가 김모구청장 밑에서 문화관광과장을 하던 시절 문화계주무와 공보계주임으로 일하던 정병진씨와 박기도씨는 매우 영리하고 눈치 빠른 사람으로 까다롭고 성급한 구청장은 물론 온갖 기발한 발상과 아이디어를 새로운 문화콘텐츠라고 무대뽀로 밀어붙이는 열찬씨를 잘 보조하며 업무처리나 처신에 절대로 어긋남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실하고 복종심이 높았다.

그러다가 열찬씨가 이유도 모를 괘심 죄에 걸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기획감사실장에서 하루아침에 신설부서 자치생활과장으로 좌천되어 아직 직원배치도 없는 명목상의 과장으로 혼자 빈방에 앉았을 때 모든 직원들이 만약 열찬씨와 접촉하면 자신도 구청장에게 미운털이 박힐까 봐 쉬쉬하며 기피할 때였다. 자신이 구청장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도 박기도씨가 축화화분을 사들고 와

“형님, 너무 기죽지 마십시오. 직원들, 적어도 과장님과 같이 근무해본 직원들은 과장님이 아무 허물이 없이 그저 묵묵히 일 해왔고 언젠가 반드시 다시 재기할 것을 믿고 있을 것입니다. 저녁에 소주나 한잔 하십시다.”

한 자리에 정병진씨가 같이 나올 것은 짐작했는데 뜻밖에도 사진기사 김종현씨가 따라왔다. 평소의 덜렁대던 성격에 열혈남아의 정의감이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날 진하게 술을 한잔 마시고 헤어지면서 다음 일요일 언양으로 천렵을 가서 스트레스를 풀기로 했는데 당시의 문화계장이던 이재식씨가 따라나섰다. 직장 기우회에서 바둑이나 몇 번 두고 같이 근무한 적은 없는 사이였는데 문화계장으로 근무하면서 열찬씨가 과장당시에 한 사업의 기획서, 인사문등을 읽어보고 진정한 공무원상 존경하는 선배 상(像)으로 늘 생각했다고 했다.

태화강 상류에서 반도로 버들치와 미꾸라지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앞으로 열찬씨를 중심으로 서로 형제처럼 지내기로 하고 곧바로 <독수리5형제>가 결성되었고 마지막엔 소주에 흠뻑 취해서 남천내다리 밑에서 방금 전 매운탕을 끓인 냄비를 모자처럼 뒤집어쓰고 돌멩이와 숟가락을 두드리며 놀았고 그 후로는 마치 조직폭력의 오야봉과 꼬봉 같은 끔찍한 형제로서 지내온 것이었다.

정병진씨 덕분에 용돈을 버는 만큼 오늘은 내가 쏜다는 열찬씨의 제안으로 수육과 술을 넉넉히 시켜먹고 고스톱판을 벌려 두 시간 쯤 더 놀고 노래방에 가서 또 한 시간을 놀았다. 그날도 도우미 둘을 불러 하나는 열찬씨 전담을 하게 했다. 출근길에 걸려온 전화의 화해무드와 암남공원해안가의 기분전환에 저녁의 회식으로 기분이 좋아진 열찬씨가 노래도 세 곡이나 하고 도우미들에게 만 원짜리 하나씩을 꽂아주고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자신에게 몸을 밀착해오는 아가씨와 모처럼 부비부비와 스킨십도 즐기면서 열한시가 넘어 아주 유쾌한 기분이 되어 자리를 파하고 택시를 탔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진짜 기분은 좀 풀린 걸까?)

비로소 옥자씨의 생각을 하며 전화를 해 보려다 택시기사가 맘에 걸려 시종 눈을 감고 앉았다가 택시에서 내리자말자 대숲으로 달려가

“자나?”

“아니. 전화가 올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어요.”

“은석이는?”

“옆방에서 자고 있어요.”

금방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저어 열찬씨!”

“왜?”

“이제 당신을 용서하고 과거로부터의 족쇄에서 풀어주기로 했어요.”

“고맙기는 하지만 풀어준다고 풀리는 것인가? 설령 옥자씨가 풀어준다고 해도 내 마음에 자책과 후회가 남은 동안은 풀리는 것이 아니지.”

“그러니까 내가 더 이상 자책감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

“그러나 쉽사리 벗어나지는 못 할 것 같아. 왜 옛날 영화제목에 <용서받지 못 할 자>가 있었던 것처럼.”

“...”

한참이나 침묵이 흐른 후에

“열찬씨!”

“왜?”

“이젠 열찬씨가 더 이상 자책감도 갖지 말고 우리가 처음만나 단순한 수험생으로 같이 공부를 하던 천진난만한 시절로 돌아갔으면 해.”

“그게 쉽나?”

“아니 생각 나름인 것 같아. 아직 학생신분인 열찬씨보다 내가 나이도 많은 직장인인데다 열찬씨는 화가 나고 흥분할 입장이 될 만한데다 또...”

“또?”

“내가 완강히 반항을 하지도 않은 것 같아. 같이 공부하며 저도 모르게 친숙한 생각이 들어 스스로 무너진 것인지도 모르지.”
“그리고 말이야. 그 때 그 아이.”

“그래. 그 아이...”

열찬씨의 가슴이 사정없이 뛰며 훅 울음 섞인 한탄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는데

“열찬씨만 원망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열찬씨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뿐 제 몸속에 생명을 담고 있는 내가, 소위 모자보건요원이라 누구보다 생명의 탄생에 진지해야 될 내가 아이를 포기한 것이니 내 죄가 더 많은 것 같아.”

“미, 미안해!”

“늘 미안해라는 소리밖에 할 수 없는 당신, 그 여린 마음도 이해가 돼. 당신이 날 버리기는 했지만 아주 성격이 포악하거나 음흉한 사람은 아니잖아? 그냥 순진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 눈에 꿈이 가득한 사람이지.”

“그렇게 이야기하니 고맙고도 미안해.”

“당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열찬씨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내 자신이 경솔했다는 생각도 들어.”

“그게 무슨 소리야?”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논산훈련소나 어디로건 면회라도 가서 당신의 약속을 받고 급히 약혼식이나 결혼식을 올리거나 아니면 미혼모로서 당당하게 출산을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그게 말이나 되나? 당시에는 직장 내에서 연애만 해도 흉이 되는데 그게 용납이 되나? 바로 징계위원회에 불려가 파면조치가 되었을 텐데.”

“그래. 그게 가장 큰 문제였지. 만약 직장을 그만 두면 만삭의 몸으로 무얼 먹고 살며 나중에 어떻게 아이를 키우며 다시 대학을 갈 건지 자신이 없었지. 또 아이를 낳아도 누구하나 안아줄 사람도 없고.”

“그래. 그래서 내가 죽일 놈이지.”

“아니야. 당신만 자책할 일은 아니야.”

“당신이라니? 오늘은 자꾸 당신이라고 부르네.”

“그래요. 이제 사랑하는 당신이지. 서로 핏대를 올려 삿대질을 하는 사이. <이봐, 당신<이 아니고 서로 사랑하는 <여보당신>의 당신이야.”

“앞으로는 절대로 당신을 괴롭히지 않고 비록 같이 있지는 않아도 우리가 처음 밤을 보냈을 때처럼 잘 할게.”

“미, 미안해.”

“괜찮아요. 어서 들어가서 자요. 나도 눈을 좀 붙이게.”

“고마워.”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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