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중학교 학생들이 '선비 문화 체험'의 하나로, 지난 5월 1일 오전 하동향교 대성전에서 도포를 입고 석전대제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하동향교 제공
하동중학교(교장 류용만) 학생 156명이 지난 5월 1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하동향교(전교 박명환)에서 ‘선비 문화 체험 활동’을 했다.
하동교육지원청(교육장 이춘호)과 하동향교, 하동중학교가 협의하여 하동중학교 학생들에게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향교에서 전통문화와 참된 교육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도록 체험 활동을 하자는 데 협의해 이날 ‘선비 문화 체험’을 한 것이다. 또한 하동향교에서 봄과 가을에 하동 관내 각 중·고교를 방문해 실시하던 충효(忠孝) 인성교육을 향교에서 대체한 의미도 있다.
본격적인 체험 행사 시작 전에 하동향교 박명환(가운데 마이크 든 사람) 전교가 하동중학교 학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하동향교 제공
이날 박 전교는 인사말을 통해 “오늘 우리 향교에서 실시하는 ‘선비 체험’ 활동이 여러분의 앞날에 많은 도움이 되고,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향교의 주인이 되어야 하므로 언제든 찾아와 공부도 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달라.”라고 말했다.
이 교육장도 “오랜 세월 우리 지역의 정신적 중심이 되어 왔던 하동향교에서 우리 고장의 깊은 역사와 전통을 몸소 체험하고 선비 문화 체험을 통해 학생 여러분의 앞날에 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인사말을 했다.
이날 학생들은 4개 조(組)로 나뉘어 향교의 ‘선비 체험’에 참가했다. 교직원 17명 또한 4개 조로 나뉘어 학생들의 안전사고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진행을 도왔다. 향교 측에서는 박 전교와 최삼용 부전교, 한충영 전 유도회장 등 10여 명이 참석해 이날 행사를 주관했다.
이춘호 하동교육지원청 교육장이 체험 활동을 하러 온 하동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하동향교 제공
이날 행사는 크게 4개 부문으로 진행되었다.
첫째는 먼저 제1조가 대성전(大成殿)에 올라가 하동향교에서 봄과 가을에 공자 등 옛 성현을 모시고 제(祭)를 올리는 석전대제(釋奠大祭) 체험을 하였다.
하동향교는 설총·최치원·정몽주·이황 등 우리나라의 18현(賢)과 공부자(孔夫子)를 비롯한 맹자·안자·증자·자사자 등 4대 성인, 그리고 주희와 정호 등 송조(宋朝) 2현 등 총 25현을 모시고 있다. 대성전에서 학생들은 헌관(獻官) 옷과 도포를 입고 25현께 제를 올리는 석전대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체험하였다.
두 번째는 대성전에서 석전대제 체험을 마친 제1조의 학생들은 대성전 아래에 있는 명륜당(明倫堂)으로 내려갔다. 그러면 제2조의 학생들이 대성전에서 석전대제를 체험한다. 제1조 학생들은 명륜당에서 PPT로 이전 시대에 향교의 기능과 교육 내용 등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세 번째는 향교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기숙하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에서 사람살이의 기본 예절을 배웠다. 이를테면 향교와 서원에 들어갈 때는 정면에서 볼 때 오른쪽 문을 이용해 오른쪽 발을 먼저 딛고 들어가고, 나갈 때는 왼쪽 문을 이용해 왼발을 먼저 내딛고 나가는 등의 예절을 배웠다. 그리고 제례를 지낼 때 헌관 옷과 도포(선비 옷)를 입는 방법을 배웠다. 그런 다음 절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절을 할 때 남자는 왼쪽 손이 위로 가고,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가도록 하는 예절을 배웠다.
하동향교 박명환 전교가 사행시 짓기에서 '대기만성' 주제로 장원을 한 하동중학교 3학년 3반 하지원 양에게 상장을 주고 있다. 사진= 하동향교 제공
네 번째는 향교 입구의 풍화루(風化樓)에서 사행시 짓기를 하였다. 조마다 대기만성(大器晩成)·관포지교(管鮑之交)·청출어람(靑出於藍)·호연지기(浩然之氣)를 주제로 현장에서 10분 안에 사행시를 지었다. 심사위원은 박성아 문학박사와 오세현 교육학 박사, 이영근 전 고교 교장이 각 주제에 한 명씩 4명의 장원을 뽑았다.
장원을 한 학생 명단은 다음과 같다. 대기만성(하지원·3학년 3반), 관포지교(유승우·1학년 4반), 청출어람(전효상·2학년 1반), 호연지기(성재원·3학년 2반)
‘관포지교’에서 장원을 한 유승우 학생의 사행시를 대표적으로 보겠다. ‘관: 관심을 가져주고, 포: 포기하지 않고 나를 도와주고, 지: 지구에 하나밖에 없는, 교: 교실 안에 있는 친구 간의 우정’이다.
하동향교 측이 사행시 짓기에서 장원한 학생 4명에게 각각 상장과 상품을 전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상품인 족자 글씨는 서예가인 박성아(왼쪽에서 두 번째) 문학박사가 썼다. 사진= 하동향교 제공
추사체를 연구하는 서예가이기도 박성아 박사가 족자에 4점의 붓글씨를 써 장원을 한 이들 4명의 학생에게 각각 선물했다. 또한 참가 학생들이 하동항교에 대해 서로 문제를 내고 답하도록 하여 정답을 낸 학생에게는 하동중학교에서 과자를 선물하였다.
이렇게 4개 조가 번갈아 가면서 각각의 체험 활동을 하였다.
이번 행사를 위해 이임숙 장의(掌議)가 명륜당 등에 3명이 앉을 수 있는 책상 15개(150여만 원)을, 향교에서는 볼펜(20만 원)을 준비하여 참가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호연지기’로 장원을 한 성재원 학생은 “사실 그동안 하동향교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라며, “오늘 ‘선비 문화 체험’ 활동을 통해 하동향교가 이렇게 훌륭한 교육기관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돼 많은 도움이 됐다. 향후 개인적으로도 자주 출입하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하동중학교 학생들이 지난 5월 1일 하동향교에서 '선비 문화 체험' 활동을 마친 후 교직원 및 하동향교 관계자들과 함께 향교 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하동향교 제공
하동향교 측은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앞으로 하동 관내 다른 학교 학생들이 향교에서 ‘선비 체험’ 활동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도록 진행하겠다.”라며, “하동향교가 지금의 중·고교에 해당하는 학교였으며, 교육 및 성현에 대한 제례 기능 두 가지를 하였다.”라고 밝혔다.
한편 하동향교는 조선시대인 1415년(태종 15)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지금의 고전면 고하리에 창건되었다. 1593년 임진왜란 때 전부 불에 타 사라진 것을 1603년 때 이경호가 다시 중건하였다. 1730년(영조 6)에 부사 정덕명(鄭德鳴)이 횡보면 내기동에서 진답면 나동 성전골로 대성전(大成殿)만을 이건하였고, 1736년에 부사 민진기(閔鎭箕)가 횡천(橫川)으로부터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 뒤 1744년 부사 전천상(田天祥)이 나동의 문묘를 현 위치로 옮겨와 향교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다. 1847년(헌종 13)과 1920년에 각각 중수하였고, 6·25전쟁 때 소실되었던 풍화루(風化樓)를 1966년에 전교(典校) 남상수(南相洙)의 주간으로 현대식 건물로 재건하였고 서재도 다시 지었다. 이후 성균관장 직무대행을 지낸 정한효(鄭漢孝) 전교가 6·25 전쟁 때 소실된 양사재(養士齋)를 1984년 8월 15일에 신축한 것은 물론 풍화루를 복원하고 화장실을 짓는 등 향교를 전체적으로 보수·정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참조)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