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에 대한 관견(管見) ⑤‘성장보다 분배’에 지혜 모아야

기본소득에 대한 관견(管見) ⑤‘성장보다 분배’에 지혜 모아야

조송원 승인 2017.06.02 00:00 의견 0

은퇴한 두 80대 노인의 심리를 다룬 영화 '유스(youth)'의 한 장면.

정의(正義)! 참 가슴 설레게 하는 단어이다. 부드러운 포옹의 여성성보다는 억센 악수 같은 남성성에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새천년 들어 줄곧 정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은 우리 사회에 정의의 부재가 우리 삶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한 때문이리라.

정의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나 존 롤즈의 정의론보다 필자는 『대학』의 ‘혈구지도’에 주목한다. 혈구지도(絜矩之道)란 자로 물건을 재듯이 내 마음을 ‘자’로 삼아 남의 마음을 재고, 내 처지를 생각해서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이다. 곧 공자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己所不欲勿施於人)’고 한 말과 대략 같은 뜻이다. 『대학』에서는 이 혈구지도를 통치자의 첫 번째 덕목으로 꼽는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함에 있어 통치자가 이 혈구지도를 발휘해야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고, 나아가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의는 ‘옳음’이고 ‘공정함’이다. 구성원 대다수가 오랜 동안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그 사회는 언젠가는 혁명에 의해서건 민란에 의해서건 촛불에 의해서건 간에 무너진다. 하여 정의는 사회 지속성의 담지자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근대 이전에 치란(治亂)은 오롯이 통치자의 몫이었다. 하여 정의를 서양철학이 아니라 동양 문법으로 풀면 혈구지도라 할 수 있다. 통치자가 피치자들 곧 백성들의 처지를 잘 살펴 다스리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 참 듣기 좋은 말이다. 정의가 실현된 사회라면 누구라도 살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세상사 만사를 이해하는 길잡이로서 이론들이 구성된다. 그러나 가리키는 달은 저만치 두고 손가락 끝 헤아림에 매몰돼 차라리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더 잦다. 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복잡한 이론 빌리지 않고 그냥 일상 속의 입말로 소박하게 표현할 수 없을까? ‘억울함이 없는 사회’, 정녕 그렇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가 짚어야 할 것은, 이제껏 우리는 정의의 수요자 의식에 갇혀있다는 사실이다. 왕이 혹은 메시아가, 심지어는 대통령이 정의를 실현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건 민(民)이 주인인 민주(民主)시대인 지금도 ‘왕의 녹차’ 운운하는 전근대적인 신민의식(臣民意識), 노골적으로 말하면 노예근성의 발로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가 어디에 있는가. 한 줌의 권력자가 국가인가. 너와 내가 국가일 뿐이다. 하여 우리는 정의의 수요자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자가 되어야 제대로 된, 민주에 값하는 민주시민이 된다. 우주는 티끌만도 못한 나의 삶, 존재와 부존재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사라지면 우주 또한 사라지는 것이다.

자,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를 국가임을 자각하고 현 우리 사회를 찬찬히 톺아보자.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국가 중에서 압도적으로 1위이다. OECD 평균은 12.4%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통계가 있다. 덴마크의 75세 이상 노년층 고용률은 0%로 일하는 노년층은 거의 없다. 반면 한국의 일하는 75세 이상 노년층은 17.9%(2015년 기준)로 OECD 국가 중에서 매년 1위를 차지한다. 65세 이상 노년층의 고용률은 30.6%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의 근로소득 비중이 가장 큰 국가가 되어 있다.

이렇게 일하는 우리나라 노인층이 생을 마감하는 실태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이 지난 10년 동안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58.6명으로 전체 인구 자살률(26.5명)의 2배이며, OECD 평균의 3배에 달한다.

왜 우리나라 노년층이 세상과 하직하는 방법으로 불명예스럽게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할까? 보건복지부의 ‘2014년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65세 이상)의 10.9%가 60세 이후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주된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40.4%로 가장 많이 꼽았다. 작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7561달러이다. 원화를 기준으로 했을 때 3198만 원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노인도 국민이니 한 사람당 연수입이 3198만이나 되는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살을 한다고? 그 많은 돈을 누가 몰아서 가지고 있는가?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태라면 미래에 대한 전망의 강력한 지표인 출산율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OECD 국가 중에서는 꼴찌이고 세계 225개국 중에서도 220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1.25명의 자녀를 낳는다. 일반적으로 대체출산율(Replacement Level of Fertility)은 2.1이다. 하여 이렇게 저출산율이 지속되면 인구가 감소하게 된다.

‘인구감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흔히들 인구가 감소하면 인구가 고령화되어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소비가 부진하게 되어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한다. 아니 인간이 생산하기 위해서, 소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가? 곧 생산과 소비의 도구일 뿐인가? 적어도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소득이 없어 노인들은 자살하고, 사람답게 살만한 세상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니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 우리 사회의 이 처참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비관은 성장론자들 특히 경제적 강자들의 주장대로 경제가 더 성장하면 해소될 문제인가?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는 2만 달러가 되면 복지국가가 실현될 수 있을 것처럼 선전해 왔다. 2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지금은? 얼마나 더 경제가 성장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실현될까?

이웃 일본의 경우를 보자. 2010년에 이미 국민소득이 약 4만3000 달러였는데 아시다시피 ‘잃어버린 20년’으로 2016년은 3만4000여 달러이다. 현재 일본 어린이의 6명에 1명꼴로 빈곤상태에 있다. 현재 빈곤상태에 있는 젊은이와 고령자의 대부분은 어린이 때도 빈곤했다. 그러므로 현재 빈곤한 사람들의 자식들 또한 빈곤한 삶을 살 것이라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世界》, 2017년 2월호. こどもの貧困).

소득불평등 지표 가운데 ‘소득집중도’라는 지표가 있다.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케티에 의해 널리 알려진 지표로, 상위소득 1%, 5% 또는 10% 집단의 소득이 사회 전체의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측정하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홍민기 박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 최상위 1% 집단의 소득비중은 14.2%이고, 최상위 10% 집단의 소득비중은 48.5%에 달한다. 곧 우리 사회 상위 10%가 우리 사회 소득의 절반을 싹쓸이해 버린다는 말이다.

시중에 돈이 넘쳐난다. 몇 백조 원이나 되는 뭉칫돈이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우왕좌왕 몰려다닌다. 10대 그룹 상장사의 곳간에는 550조 원이나 되는 사내 유보금을 쟁여놓고 있다. 반면에 가계부채는 1300조 원을 넘어섰다.

이런 경제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제는 성장보다는 분배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고, 특히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임을 말해주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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