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예비결과’

조송원 승인 2019.02.17 13:55 | 최종 수정 2019.02.17 14:16 의견 0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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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이란, 국가가 모든 개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기본소득제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실험 중에 있다. 미국에서는 소득불평등 완화하기 위해, 유럽에서는 복잡한 복지제도를 단순화하려고, 한편에서는 기초생계급여나 실업급여에 안주하며 사는 이들의 취업동기를 유발할 목적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기술혁신으로 생기는 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험한다.¹⁾

기본소득이란 개념에 대해 일반인들은 대부분 직감적으로 윤리적 거부반응을 보인다. 빈곤은 게으름의 결과이고,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자본주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탓이다. 더 적확히는 시장주의자들의 교묘한 프로파간다에 우리의 정신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구조적 실패임은 염두에도 두지 않는다.

기본소득이란 개념보다는 '복지에서 근로복지로(from welfare to workfare)'란 슬로건이 일반인에게 훨씬 더 설득력을 갖는다. 이 슬로건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무상으로 돈을 지급하면 사람들이 나태해진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버나드 오먼디는 서부 케냐의 채석장에서 일당 2달러는 받는 가난한 노동자다. 오먼디는 물론 전체 마을 사람들이 현금 500달러를 무상 지급 받았다. 이 금액은 오먼디 1년치 임금과 맞먹었다. 몇 개월 후 <뉴욕 타임스> 기자가 오먼디 마을을 찾아갔다. 마을에 현금이 넘쳐났지만 사람들은 무상으로 받은 돈으로 술을 사먹지 않았다. 집을 수리하거나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오먼디도 받은 돈으로 오토바이를 사서 사람들을 실어 날라주며 하루에 6~9달러를 벌고 있었다.

라이베리아에서는 빈곤층 중에서도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200달러를 주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 알아보려는 실험을 했다. 빈민가에서 알코올중독자, 마약중독자, 잡범 등을 선정해 조사했다. 3년 후 나타난 결과에 따르면, 그들은 옷과 음식, 약을 구입하고 소규모 사업을 창업하는 데 그 돈을 썼다. 한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들조차 무상 지원 받은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는데 누가 함부로 쓰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케케묵은 주장이 사람들 입에서 떠날 줄 모른다. 과학자들은 사실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저명한 의학 저널<란셋Lancet>은 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을 '빈곤층은 조건 없이 현금을 제공 받았을 때 사실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정리했다.²⁾

지난 8일(현지 시각) 핀란드의 보편적 기본소득 실험 1차 결과가 나왔다. 국가단위의 실험결과로서는 최초이다. 2017과 2018에 걸쳐 실험했는데, 2017년 데이터만 분석한 예비결과이고, 상세한 최종보고서는 2020년에 나올 예정이다. 이 결과를 두고 국내 일부 보수 언론의 왜곡 보도는 악의적이다. “실업자에게 실업급여 대신 기본소득을 보장했지만 실업문제 해결에 별 효과가 없어 실패한 실험이며, 핀란드 정부는 다른 대안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해석했기 때문이다.

핀란드 실험의 예비결과의 구체적 내용과 그 함의를 상세히 톺아보자. 핀란드는 실업수당 수급자 2,000명에게 매달 560유로(약 72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복잡한 행정절차도 생략했고, 도중에 직업을 구해도 지급했다. 핀란드 중위소득이 2900유로(약 373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이 금액은 빈곤 수준을 훨씬 밑돈다. 그러나 기본소득 수급자들은 사회부조와 주거 및 질병 수당 같은 사회적 혜택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자녀가 있는 가구에 종종 발생하는 경우로, 기본소득보다 실업수당에 더 많다면 실업수당을 계속 신청할 수 있다.

2017년만의 데이터를 분석한 ‘예비결과’에 의하면, 기본소득은 일자리를 구하려는 성향을 향상시키지는 못했다. 실험집단(기본소득수급자)의 사람들은 2017년에 평균 49.64일 일했다. 통제집단(종래의 실업급여수급자)의 사람들은 49.25일 일했다.

기본소득수급자는 2017년 평균 1만6159유로(2078만 원)를 정부로부터 수령했다(기본소득+각종 사회적 수당+해당하는 경우 실업수당 등을 전체 포함). 통제집단의 사람들은 1만1337유로(약 1448만 원)를 받았다. 이는 노동시장의 결과는 같은데 기본소득수급자에게 5000유로(643만 원)을 더 쓴 꼴이다. 노동시장에 한정하면 기본소득은 유의미한 영향이 없다는 결론이 된다.

이 실험의 중요한 다른 부분이 있다. 주관적인 행복감의 평가이다.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건강과 장래 희망에 대해 현저한 개선이 있음을 이 조사는 보여준다. 기본소득수급자는 종래의 실업수당수급자에 비해, 훨씬 더 낙관적이고 전업 직업을 찾는 데 적극적이며, 스트레스도 덜 받았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감도 더 높았다(비록 일반인보다는 훨씬 낮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조사결과는 약간 에누리해서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 응답률이 낮았다. 실험집단은 31%, 통제집단은 20%에 불과했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판단해도, 적은 소득이나마 확실히 보장되어 있는 사람이 좀 더 낙관적일 것이다. 단단한 증거가 뒷받침한다. 기본소득수급자는 2017년 질병 수당으로 평균 121유로(약 16만 원)를 청구한 반면, 실업수당수급자는 216유로(약 28만 원)를 청구했다.

정부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소득 사다리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하고 덜 우울하게 하는 것이 사회제도 비용을 현저하게 증가시킬 만한 가치가 있느냐에 대한 판단이다. 기본소득으로 실업률이 감소하고 실업자가 언젠가는 찾을 일자리의 질이 높아진다면, 기본소득 주장의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선진 사회에서 행복의 총량을 높이는 일도 증세를 정당화할, 바람직하고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³⁾

사회정책의 목적이 무엇인가? 개인의 행복을 증진하고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좋은 삶과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물적 토대를 보장하는 것이다. 개인의 불운이든 사회경제적 문제이든 간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사회가 돌보지 않는다면, 해고는 살인이 된다. 죽음 같은 삶의 처지에서 격렬한 노조 투쟁을 누가 나무랄 수 있단 말인가. 이뿐 아니다. 시장이 보상하지 않는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공익활동가들도 실업자와 진배없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밥이 그림을 그리고 작곡하지는 못하지만, 밥을 먹지 않고 그리고 작곡할 수 있는 미술가와 음악가는 없다.

사회나 국가에서 돈의 총량이 늘어나는데 행복의 총량은 줄어드는 게 불평등이다. 재벌 밀어주고, 부동산 값 받쳐주고, 멀쩡한 4대강 파헤치는 데 몇 십조 들여 망쳐놓고, 사람도 없는데 공항 짓고 다리 놓고 철도 까는 짓거리의 당연한 결과로 우리 사회는 지금 지극히 불평등하다.

우리는 정녕 ‘슬기로운 사람’(Homo sapience)인가? 사회의 재화는 인간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한낱 도구에 불과하다. 도구는 그 목적에 알맞게 쓰일 때만 의미를 갖는다. 도구를 이용해 행복을 증진시키는 게 슬기이다. 슬기로운 사람은 나의 행복이 너의 불행으로 무너진다는 사실을 안다. 하여 슬기로운 사회는 낙오한 어느 누구에게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이번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에서, 소득의 최하계층을 더 행복하게 하고 덜 우울하게 했다는 예비결과만으로도 기본소득제의 정당성은 확보되었다고 생각한다. 2018년 데이터 분석을 포함한 2020년의 최종 보고서에서는 기본소득의 정당성이 더 강화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이원재(LAB2050 대표), 「‘기본소득’이라는 화두」, 『한겨레신문』, 2019년 1월 29일. 2)뤼트허르 브레흐만/안기순 옮김,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김영사, 2017), 40~44쪽. 3)Leonid Bershidsky(블룸버그 칼럼니스트), 「In Finland, money can buy you happiness」, 『The Korea Herald』, 2019년 2월 12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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