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위기의 자각과 진보를 위한 기회

조송원 승인 2024.02.20 11:12 | 최종 수정 2024.02.20 11:22 의견 0

“일반적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아돌프 히틀러에 비교하는 것은 별 설득력이 없다. 그러한 비교는 종종 과장되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히스테리를 반영한다.

(…)어쨌든 강한 반민주적 본능을 지닌 사람을 선출했을 때의 결과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위험하다. 결국, 히틀러는 돌이켜볼 때에야 히틀러가 되었다. 트럼프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John M. Crisp/Our dangerous failure of imagination/Korea Herald/Jan. 24, 2024-

도널드 트럼프와는 달리, 윤석열 대통령의 정체성은 지난 1년 6개월 동안에 명백하게 드러났다. 잔여 임기 3년 6개월을 대한민국이 과연 온전한 상태로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개인 단위에서든 국가 범위에서든 위기에 봉착하곤 한다. 위기는 단순히 ‘어려운 국면’이 아니다. 중대한 고비이며, 흥하느냐 망하느냐의 결정적 순간이다. 위기 극복이 쉽지 않은 것은, ‘그 순간’의 앞뒤 조건이, 많은 다른 순간의 앞뒤 조건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과 국가는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개인의 위기라는 렌즈를 통해 국가의 위기를 조명하는 것은 유익하다. 추상적인 남의 일이 아니라, 구체적인 내 일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워 설득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재레드 다이몬드는 『대변동:위기,선택,변화』에서 개인적 위기와 국가적 위기의 대처와 관련된 요인을 각각 12가지씩 들고 있다. 개인의 위기와 국가의 위기가 정확히 일치하고, 개인이든 국가든 간에 위기 극복에 필수적인 다섯 가지를 간추려서 살펴본다.

심리 치료사들은 개인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첫 번째 요인으로 ‘위기 상태의 인정’을 든다.

자신이 위기에 빠졌다는 걸 인정해야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누구도 병원을 찾지 않을 것이고, 병원을 찾지 않으면, 위기 해결을 위한 어떤 조치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나한테 문제가 있어!”라는 인정이 위기 해결의 첫걸음이다.

두 번째는 ‘개인적 책임의 수용’이다. “나한테 문제가 있어!”라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정한 후에도 “하지만 내 문제는 다른 사람 때문에, 외부적 요인 때문에 내가 이렇게 불행한 거야”라는 핑계를 덧붙인다. 피해자 코스프레이다. 이런 자기 연민은 개인적 문제 해결을 피하려는 가장 흔한 변명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후에 그 문제 해결의 책임을 자신이 떠맡는 게 중요하다. “그래, 외부 요인도 있고 다른 사람도 있어.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다. 내가 그 사람들을 바꿀 수 없고, 내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외부 요인과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바라면, 그들이 바뀌도록 유도하는 것도 내 책임이야.”

세 번째로는 ‘울타리 세우기’이다. 위기를 인정하고, 그 위기 해결을 위한 책임을 받아들인 후, 위기치료센터를 방문하면 첫 상담은 ‘울타리 세우기’란 단계에 집중한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자세히 묘사하는 단계이다.

위기에 봉착한 사람이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하면, 막연히 자신에게 결함이 많다고 생각해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실패를 예방하려면 핵심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해야 한다.

나의 어떤 부분이 아직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변할 필요가 없는 부분과 계속 고수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기 위해 무엇을 버릴 수 있고, 버려야 하는가? 이런 ‘선택적 변화’는 위기에 빠진 국가의 재평가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네 번째로는 ‘정직한 자기평가’이다. 위기를 맞은 사람이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고통스럽더라도 정직한 자기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 제대로 작동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정확히 평가하는 경우에만, 강점을 유지하고, 약점을 새로운 대처법으로 교체하며, 선택적 변화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해결에서 정직의 중요성은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다섯 번째는 ‘인내’이다.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 혹은 변화 시도의 실패를 용납하는 마음가짐, 곧 인내심도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위기에 빠진 사람이 첫 시도에서 완벽한 대처법을 찾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어떤 방법이 가장 적합한지 몇 번이고 시험을 해봐야 한다.

최종적으로 합당한 해결책을 찾아낼 때까지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끈기 있게 시도해야 한다. 불확실성과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 탐색을 성급히 포기하는 사람은 친화적인 새로운 대처법을 찾아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위의 개인적 위기 해결을 위한 5가지 사항은 국가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과 정확히 일치한다. 곧, 1.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국민적 합의 2.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국가적 책임의 수용 3.울타리 세우기, 해결해야 할 국가적 문제를 규정하기 위한 조건 4.국가의 위치에 대한 정직한 자기평가 5.국가의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 등이다.

19세기 유럽의 광부들은 탄광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데려갔다고 한다. 호흡기가 약한 카나리아는 메탄가스나 일산화탄소 같은 유해가스에 유독 민감하다. 광부들은 카나리아가 울지 않거나 움직임이 둔해지는 등의 이상 징후를 보이면 즉각 갱도에서 나왔다.

대한민국에서 카나리아는 어떤 상태인가? 히틀러의 강한 반민주적 진면목을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위기를 자각하지 못했기에, 뭇 희생을 치르고 국가가 결딴이 나고 난 후, 선출된 정치지도자 히틀러가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히틀러가 되었다.

현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혁명을 필요치 않는다. <이코노미스트> 부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15일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3’에서 대한민국은 4년째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범주에 들었다. 반면 미국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국가에 속한다.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 성숙도와 역동성을 고려할 때, 위기를 자각하는 순간 그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다. 장구한 역사에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경우가 좀 많았던가. 4월 총선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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