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연 박사의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생태유아교육】(8) 아이의 뇌는 느낌을 기억하며 자란다

임지연 승인 2024.04.09 13:50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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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우리 아이 잘 자라고 있나요?
2. 7세까지 아이의 뇌는 어떻게 배우고 자라는가?
3.아이들은 일상을 반복하다:뇌 발달을 보장하는 하루 일과
4.아이들은 논다:뇌가 좋아하는놀이
5.아이들은 표현한다:만들고 그리고 이야기하며 발달하는 뇌
6.어아이들은 공간과 호흡한다 :뇌발달을 지원하는 환경
7.대한민국에서 지혜로운 부모 되기

어릴 적 즐거웠던 기억 하나를 떠올려보자. 필자는 일곱 살 때 시골 할머니 댁 개울가에서 놀았던 때가 떠오른다. 빈 병에 물이끼를 가득 넣고 나뭇가지로 저으며 마법의 묘약이라 부르며 놀았던 기억이다. 초록색 병 속에서 흐물거리는 물이끼가 햇빛에 비칠 때의 그 묘한 느낌, 나뭇가지로 병 속을 휘휘 저으며 느꼈던 뿌듯함, 개울의 물소리와 냄새, 뉘엿뉘엿 지는 해가 개울물에 비치며 반짝이던 모습, 자유롭고 왠지 모를 자신에 차 있었던 나 자신, 그만 놀고 들어오라던 부름에 아쉬웠던 기억까지.

재미있게도 대개 어릴 적 기억은 온몸에 남아있다. 우리가 보았던 장면뿐 아니라 그 순간의 마음 상태와 분위기, 냄새, 피부의 느낌들이 그 시절 그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어린 아이들은 이렇게 생생한 ‘느낌’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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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뇌의 전유물, ‘느낌’

느낌(feeling)이란 오직 인간의 뇌만이 가진 고차원적인 능력 중 하나이다. 느낌은 자주 ‘감각’과 혼돈되나, 느낌은 감각과는 다르다. 감각은 눈이나 귀, 혀나 피부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지각되는 무엇이다. 길가에 핀 개나리를 보고 노란색을 시각으로, 향기를 후각으로, 꽃잎의 감촉을 촉각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감각은 실재하는 자극과 감각기관이 있어야 가능하다.

느낌은 좀 다르다. 물론 눈앞의 개나리를 보고 느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느낌은 단순한 시각, 청각, 촉감 등의 감각 너머로 나아간다. 개나리의 모양, 색, 질감 등에서 전해져 오는 생기있다, 싱그럽다, 몽글몽글하다와 같은 이미지나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느껴지는 그 무엇이 바로 느낌이다.

느낌과 감각의 결정적 차이는 직접적인 경험 없이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개나리를 직접 보지 않고서도 우리는 머릿속에서 개나리를 떠올려 개나리를 느낄 수 있다. 느낌에는 기억과 같은 정신작용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낌은 사람마다 또는 사회나 문화마다 달라지기 마련이다. 개나리에 대한 추억이 많은 사람이 느끼는 개나리의 느낌은 남다를 것이다. 한국 사람이 느끼는 개나리와 유럽 사람들이 느끼는 개나리도 다를 것이다.

이쯤 되면 왜 느낌이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인간은 세상을 몸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하면서도 그 경험을 다시 마음이라는 필터로 경험한다. 마음의 필터를 거친 경험이 바로 ‘느낌’이라 할 수 있다.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느낌은 인간이 생명체로서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모니터링 하는 수단으로 탄생하였다고 말한다, 이러한 원시적 수준의 느낌은 인간이 사회·문화적인 경험을 하는 가운데 심리적 해석이 가미된 정서적인 느낌으로 진화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고유의 능력인 ‘느낌’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몸과 마음의 함께 작용한 심신의 협동작품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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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없이는 판단도, 학습도, 창조도 어려워

인간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면 느낌이 왜 중요할까? 인간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느낌의 내용과 질,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유명 화가의 작품을 보면서 감동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대화를 하며 상대방의 표정과 음성에서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캐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세상의 수많은 존재와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느낌의 세계를 선명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전자는 우리가 바로 ‘센스있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느끼는 힘’은 예술가들에게만 필요한 능력 즘으로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 뇌과학자들은 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예측, 판단, 행동 선택에 느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예측, 판단, 행동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한데, 사람이 가진 취향이나 선호, 풍부한 감정 등의 느낌들이 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선명한 느낌은 뇌로 하여금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반면, 느낌이 사라지면 우리는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는다, 편하거나 불편하다는 식의 분류를 할 수 없다. 뇌의 느낌 회로가 발달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행동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풍부한 상상이나 창조도 우리가 느끼는 선명한 느낌 없이는 불가능하다. 머릿속에 다양한 이미지들을 불러오고 그들을 조합해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상상과 창조의 기본인데, 선명한 느낌 없이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떠올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학습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습득하는 다양한 개념이나 지식, 기술들도 그것이 수반하는 느낌 없이는 생생하게 기억되기 어렵다. 어떠한 지적 성취도 생생한 느낌, 예를 들면, 독특한 정서나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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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생생한 느낌의 세계를 선물하자

무엇을 봐도 재미없고 지루해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 데려다 놔도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는 아이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탐색하려고 하는 아이들은 ‘느낌 회로’가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느낌 회로’를 잘 키워 줄 수 있을까?

우선, 잘 느끼려면 몸의 컨디션이 좋아야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느낌은 몸의 항상성 유지와 관련된 느낌이다. 변비가 있거나 소화가 잘 안 되는 아이, 잠을 제대로 못 잔 아이는 칭얼대고 짜증이 많다. 이런 아이들은 신체 내부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한 느낌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다. 이 불쾌한 느낌이 그들이 그려나가는 느낌의 세계의 배경색인 것이다. 찌뿌둥한 몸으로 경험하는 느낌과 상쾌한 몸으로 경험하는 느낌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는 건강한 아이들이 선명한 느낌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확률이 높다.

둘째, 양질의 외부 자극을 제공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방법은 스마트폰을 제한하는 것이다. 유튜브 영상이나 쇼츠가 내뿜는 불빛과 이미지, 소리 등의 자극은 아직 주의 조절 능력이 없는 아이들의 뇌를 마비시킬 만큼 강력하다. 이 강렬한 자극은 아이의 뇌가 스스로 주의를 조절하여 좋아하는 것을 찾고 경험해가는 재미를 알 기회를 빼앗는다. 아이의 뇌를 자극-반응만 하는 수동적인 뇌로 전락시키고 만다. 느낌은 심신의 협동 작품이라고 언급하였다. 느낌은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대상에 주의를 보내고 탐색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루어지는 지극히 능동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편안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공간, 예를 들면 자연이나 가족과 친구들과의 어울림이 있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아이는 충분한 ‘느끼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느낌 회로가 잘 발달 한다. 외부의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가 아이의 ‘느낌’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해야 할 것들이 많은 바쁜 생활, 늘 무엇인가를 재촉하거나 요구하는 어른 등은 아이에게 ‘느끼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이렇게 느껴야만 해’라는 압박감과 조급함을 만들어 느낌 회로의 발달을 막는다. 뇌발달의 가장 큰 적은 스트레스라고 하지 않던가.

봄날 산책으로 아이들의 ‘느낌 회로’를 되살려 주자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시대이다. 컴퓨터는 못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인정받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의 공감능력과 사회성은 계속 떨어지고, 글자는 읽어도 독해력은 부족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외우거나 시키는 것은 해도 스스로 창조하려는 열정은 없는 아이들이다. 느낌도 느끼는 힘도 부족한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의 느낌 회로를 되살려주어야 한다.

봄이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특유의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미세먼지가 심해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부지런히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보자. 엄마아빠와 손잡고 걷고, 선생님과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노는 즐거운 시간이 아이들의 뇌에 ‘봄날의 느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자. 그 즐거운 시간이 아이들의 ‘느낌 회뢰’ 아니 ‘행복 회로’를 키워준다고 믿어 보자.

<참고문헌>

* 안토니오다마지오(2019). 느낌의 진화: 생명과 문화를 만든 놀라운 순서(임지원, 고현석 역). 아르테.

임지연 박사

◇ 임지연

▷(사)한국생태유아교육연구소(https://www.ecoikium.org/) 소장

▷서울시 생태친화보육사업 컨설턴트

▷대구교육대학교 생태유아교육 강사

▷호치민시 한국학교 유치원 교사

▷부산대 유아교육학과 학사/석사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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