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23. 문서없는 노예가 되어(10)

벌써 5월말 고추 꽃이 피기 시작하는 5월말, 징기스칸의 기마부대도, 나치의 기갑사단도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잡초의 함성이 주인이 자주 찾지 않는 오리의 매실농장에 가득했다. 매실 밭에는 이미 제초제를 한 번 쳤음에도 불구하고 한 20 일 동안 누렇게 변하며 시름시름하던 잡초들이 며칠 비가 내려서 그런지 저들끼리 어깨를 맞대고 수런수런 다시 일어서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단감나무와 매실나무의 허리까지 차올랐다. 열찬씨가 경작하는 한 150평을 제외한 아래쪽도 마찬가지라 이젠 고라니새끼가 아니라 어미나 멧돼지가 숨어도 모를 절도로 우거졌다. 부동산투기로 몰릴까 봐 중간에 구덩이를 파고 심어둔 호박이 우거져 잡풀과 서로 감고 올라가니 어지럽기가 매실 밭보다도 심했다. 특별히 소득도 없는 밭에 다시 인부를 사서 제초를 하기도 뭣하지만 그렇게 계속 물리다가 세무서에서 불시로 현장을 확인해 공한지세 중과를 할까봐 울며 겨자 먹기로 운여사가 제초작업을 할 모양이었다.

평소에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부르는 열찬씨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꼭 만만한 영순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일요일에 제초작업을 할 텐데 가선생님은 그날 무슨 일이 없어 밭에 있을 거며 사모님도 밭에 올 거냐고 물었다. 행랑아범격인 열찬씨에겐 일을 좀 도와달라는 것이고 행랑어멈격인 영순씨에겐 당일 물심부름이라도 좀 해달라는 압박이라며 입술이 뽀로통한 영순씨도 마지 못 해 밭에 나왔다. 열시 쯤 윤여사 내외와 덩치 큰 아들 대호씨가 도착해

“아이고, 우리 4번 타자, 요즘 롯데가 살아나서 내가 살맛이 나!”

어차피 같이 제초기를 메어야할 열찬씨와 둘이 악수를 하고 영순씨가 커피를 끓여와 한참을 이야기하다 대호씨가 제초기를 매고 작업을 시작하자 이선생은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텔레비전을 켰다. 처음 울타리주변부터 비잉 둘러 풀을 베는 대호씨를 따라 다니며 하도 집요하게 윤여사가 잔소리를 하는지라 전에 제 아버지 이선생이 벼락같이 ‘씨발년!’ 을 외치던 모습이 생각나 열찬씨가 다 조마조마 했다. 대호씨가 한 3,40분 울타리를 베고 이번엔 열찬씨가 예초기를 매고 나서 한참이나 매실 밭을 베어나가는데

“보소!”

쪽파를 뽑아 파전을 부치던 영순씨가 주걱을 던지고 소리치더니

“당장 그 예초기 벗으소! 큰일 나겠다.”

소리치자 윤여사가 의아하게 쳐다보는데

“저 양반이 평생 펜대만 잡는 사람이라 문중벌초에도 낫질만 하고 기계 한 번 안지는 사람인데 내가 위태로워서 못 보겠소.”

“...”

“아까 기계를 지고 비틀거리고 잘못 돌을 쳐서 불꽃이 튀는 걸 못 봤어요? 저 양반은 운동신경이 둔해서 도저히 저런 일을 못 해요.”

기어이 예초기를 벗게 하고

“자, 파전이나 먹고 합시다.”

하고 탁자에 파전과 막걸리를 내 놓으니 배고픈 대호씨가 사정없이 덤벼들고

“이 선생!”

열찬씨의 부름에 마지 못 해 나오는 척한 이선생도

“야, 사모님 음식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하며 부지런히 먹었다. 탁자에 앉기는 해도 영 얼굴을 안 펴는 윤여사에게

“나는 낫으로 저 아래 쪽이나 베지요.”

하고 열찬씨가 쓰윽쓰윽 숫돌에 낫을 갈아 보일러집 울타리 쪽을 베어나가자 비로소 얼굴이 풀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각자 일을 해나가는데

“사모님, 혹시 라면 사다 놓은 것 없어요? 일손 달리는데 점심 먹으러 갔다 오기도 그렇고 해서...”

윤여사가 애매한 눈빛으로 영순씨를 바라보자

“라면은 없는데 꽁치통조림이 있으니 김치 넣고 끓이지요 밥은 조금 더 앉히면 되고.”

영순씨가 무심한 척 말하다가

“미안해서 어쩌지.”

하고 윤여사가 돌아서자 혀를 쏘옥 내밀었다. 점심을 먹고 볕이 너무 뜨겁다고 한참이나 쉬고 두 시가 넘어 재개된 제초작업이 네 시가 조금 넘어 끝이 났다. 이미 경작된 땅을 빼고 400평이 조금 넘는 호박밭도 열찬씨가 낫으로 베어낸 곳이 한 3,40평이 되어 제법 훤하게 바닥이 드러났다. 서로가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지만 서로가 개운찮은 뒷맛인데 이선생이 누웠던 빈방을 청소하던 영순씨가

“야, 세상에나 내가 오늘 또 신인류 한 명을 발견했네.”

탄성을 질러 열찬씨가

“무슨 소리 할라꼬?”

하자

“내가 세상에서 남의 눈치 안 보고 억지로 편해도 제 몸 하나만 편하면 된다고 꼼짝 않고 개기는 사람을 딱 두 명 보았는데 말이야.”

“그래. 그 하나는 이서방 형님 아니야?”

열찬씨가 영순씨와 처형 남숙씨를 데리고 도랑바닥을 기며 민물고기를 잡는 동안 꼼짝을 않고 나무그늘에 누워 두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기다리다 매운탕을 끓이고 피라미튀김을 하면 마지막 튀김하나, 마지막 국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끝없이 술밥을 죽이고 커피까지 마시고 배가 남산 만 해서 다시 아까 그 자리에 드러눕던 사촌동서 이천형씨를 말하는 것쯤은 열찬씨도 이미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우리 형부는 가끔 기름 값도 내고 노래방도 가자고 하고 또 잘 먹었다, 수고했다 인사라도 하는데 말이야.”

“그래서?”

“아, 그 이선생인가 부잣집외동아들은 그 보다 더 하네. 말끔하게 생겨 눈만 반들반들하니 함부로 말을 붙이기도 뭐 하지만 슬그머니 사라졌다 슬그머니 나타나 먹을 것 다 먹고는 다시 약한 모습을 보이며 사라지는 데는 아무도 따를 자가 없겠어.”

“그래서 윤여사가 화를 내지.”

“아니야. 호영이할머니 말로는 윤여사가 이선생바라기래. 젊은 남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둘이 있으면 부끄럼을 타서 얼굴도 잘 못 쳐다보며 남편을 섬기기가 그렇게 공손할 수가 없데.”

“허어, 그것 참.”

하고 영순씨와 헤어졌는데 이튿날

“여보, 수요일 날 내가 현서 데리고 올라갈 테니 그리 알아요.”

전화가 와서

“왜?”

물으니

“아이구 골 아파라.”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개운찮은 기분으로 윤여사와 헤어지고 돌아간 날 장모 순란씨의 전화가 와서

“야야, 감자 캘 때 안 됐나?”

“하지감자라고 아직 조금 멀었지만 지금 캐서 삶아먹으면 맛은 좋지.”

“그래. 내가 감자도 감자지만 고추랑 옥수수, 도마도에 오이, 가지, 호박이 다 궁금하다. 내 밭에 한번 데려가면 안 되겠나?”

“그라면 그라든지요.”

“그래. 지난번에 우리 주형이, 지현이가 너거 밭에 가서 삼겹살 구워먹은 기 너무 좋았던 모양이더라. 영아집에 갔더니 오리의 이모부농장을 노래를 하더구먼. 영서랑 같이 데리고 가서 삼겹살이나 한번 구워주면 안 되나? 고기는 내가 살 게.”

“아이구, 골치 아픈데 아아들이 그래 좋아하면 한번 하기는 해야지.”

하고 전화를 끊고 가뜩이나 화가 잔뜩 난 윤여사가 신경 쓰여 죽을 판인데

“영서할매야, 오늘 농장에서 무슨 일 있었나?”

14층 호영이할머니 전화가 와서

“와요? 형님.”

그만 영순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데

“밭에 갔다 온 동생이 아무래도 밭을 잘못 내준 것 같다고 은근히 나를 원망하는 투로 전화를 하더군.”

“예에?”

동생과 달리 14층 호영이할머니는 매우 경우 바르고 신중한 사람이라 좀체 사람을 못 사귀는데 우연히 만난 영순씨와 희한하게 모든 성향이 다 닮아 자매처럼 지나는 지라 저 사람이 저러면 보통 짜증을 낸 것이 아니라 싶은 영순씨가 소상히 설명을 하자

“그래서 그랬구나. 이선생님은 착하고 순한데 사모님이 보통 야시가 아니라고 하더란 말이야.”

하고 껄껄 웃는데

“형님, 우짜꼬? 마 인지라도 밭을 내 놓을까?”

“무슨 소리? 농사고, 건물이고 들어간 밑천이 얼만데? 또 영서할배 마음 상하는 건 우짜고?”

“...”

“내말도 잘 안 듣지만 내가 잘 타일러 볼께. 그나마 조선천지에 듣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그라면 우짜면 될꼬?”

하고 이튿날 현서네 집에서 단무지를 넣으며 의논한 것이 윤여사가 점에 백 원짜리 고스톱을 좋아하니 농장으로 초청해 적당히 놀아주다 삼겹살이라도 구워 같이 먹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기왕 벌일 바엔 내가 솥에 불을 때서 닭백숙을 해줄 테니 재료를 사오라고 해서 아침 일찍 어린이집도 안 보낸 현서와 호영이할머니를 동행한 영순씨가 도착해서

“아이구, 내 새끼!”

안아 올려 뺨을 한번 쓸어주고 부지런히 불을 때자 그날도 어김없이 탁상시계와 모종삽을 든 세 살배기는 배기는 빨간 장화발로 고추밭 고랑으로 사라졌다. 한참 지나 하얀 승용차가 멎고 윤여사가 들어서자

“아이구, 윤여사님. 오늘은 중세 봉건영주의 공작부인처럼 농노인 제가 모시지요. 미천한 곳을 방문해주어 감사합니다.”

불을 때던 열찬씨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 공손하게 절을 하니

“아이구, 선생님 왜 이러십니까?”

하면서도 활짝 웃었다.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하고 아부는 아분 줄 알아도 즐겁다는 말이 과연 맞는 말인 모양이었다.

탁자위에 판을 벌여 한참이나 고스톱을 치고 나서 열찬씨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백숙을 오봉에 건져 들고 오자 영순씨가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왔다. 호영이할머니가 핸드백에서 백세 주 한 병을 꺼내서 세 여인도 한 잔 씩을 하고 다시 판을 펼지자 열찬씨도 끼어들어 낄낄 거리며 분위기를 맞추었다. 오후 네 시를 지나

“잘 놀고 잘 먹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윤여사가 호영이할머니를 데리고 돌아갔다. 설거지를 마친 영순씨가

“당신 그 동안 풀 벤다고 욕 봤네.”

하고 밭을 둘러보더니

“아이구, 아직 한참이나 해야 되겠네. 이 더운 날씨에.”

걱정이 가득한데

“그래도 우짜겠노? 풀이라도 잘 베야 장모님이랑 영아식구 왔다 가도 말이 없제.”

“당신도 참 욕을 보요.”

“당신도 마찬가지지 뭐.”

“그러게 무슨 농사를 그리 좋아해서?”

“...”

[그림=서상균]

고추와 가지와 토마토, 오이가 활착하면서 곁순을 따준다고 날마다 잔손이 많이 갔다. 옛날 사람들은 곁순마저도 거름기를 먹고 자란 것이라고 자르지 않아 고추가 키도 덜 자라고 옆으로 퍼져 바람도 잘 통하지 않아 고추의 알도 작고 소출도 적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구서동의 박교장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모두들 1미터 이상으로 고추 골을 넓게 하고 4,50cm간격으로 드문드문 심어 크게 키우니 오히려 고추가 크고 많이 열면서 약을 치거나 고추를 따기에도 편한 것이었다.

그러나 열찬씨는 매번 고추 순을 딸 때마다 그 초록색의 보들보들한 순이 나물로 무쳐먹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우선 영순씨가 매일 농장에 있는 것도 아니라 고추순을 모아 놨다 나물을 해보라고 주면 고춧잎이 시들기도 했을 뿐더러 원래 고추나물은 가을에 고춧대를 걷을 때 아직 익지 않은 풋고추와 고춧잎을 동시에 훑어 무쳐먹지만 양이 많으면 오징어, 땅콩, 쥐치포 따위를 넣어 김치처럼 담아 겨울반찬으로 먹는다고, 그 음식의 전문가는 영주의 동서 김해댁이라고 상기시켰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귀엽듯이 농사꾼에게는 모든 작물이 다 예쁜데 특히 한 뼘 한 뼘 자라난 넝쿨에서 꽃이 피는 모습이 더 살가웠다. 그 중에서도 자잘하고 노란 꽃송이가 죽은 파리처럼 떨어진 자리마다 오롱조롱 열매가 여는 토마토며 자주 빛 은은한 꽃이 떨어지면 손톱크기의 꽃보다 더 진한 진자주 빛 열매가 쏘옥 고개를 내밀다 어느 새 덩그렇게 자라면서 끝이 뭉툭한 가지는 영판 사춘기의 사내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넝쿨이 뻗어가는 오이와 호박은 두어 뼘 줄기가 뻗다 어느새 노란 꽃이 피고 또 눈 깜짝할 새 열매가 여는데 너무 어릴 때 여는 열매를 따 주어야만 줄기가 튼실하게 잘 자라 나중에 수십 개의 열매를 딸 수 있지만 당장은 그 앙증맞은 열매가 귀여워 차마 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처음 맺어 아직 노란 꽃송이를 매단 송충이처럼 가늘고 솜털사이에 가시가 투실투실한 아기오이를 볼 때마다 열찬씨는 어린 시절 뒷밭에 심은 오이가 처음 꽃이 피고 송충이 같은 열매가 맺으면 그게 채 자라기 전에 맛이 어떨까 궁금해서 매번 먹을 것도 없는 그 작은 오이를 따먹고 어머니 명촌댁에게 혼이 난 기억을 떠올렸다. 어찌 보면 그 덕분에 나중에 풍성하게 우거진 오이 대궁이에서 길고 큰 오이를 여럿 수확해 오이냉국을 먹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 하루 장모 순란씨와 처형 미혜씨까지 모시고 밭에 온 영순씨가

“야, 고추가 맺기 시작하네. 하얀 고추 꽃이 떨어진 자리마다 애기 고추가 머리를 쏙 내미는 것이 귀엽네. 진짜 사내아이 고추 같네.”

하며 미혜씨랑 마주보며 웃는데

“그래서 고추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맺는 것을 고추가 주 벗는다고 하지.”

열찬씨가 나서자

“뭐? 주, 그러니까 바지를 벗는단 말이지?”

영순씨의 물음에

“아이구 부끄러워라.”

원래 연지 볼이 붉은 미혜씨가 웃으니 진짜 부끄럼을 타는 것 같은데

“내가 뭐로 아나? 우리 어릴 때 고추가 처음 맺힐 때 사촌형수랑 누님들이 ‘야, 고추가 주 벗는다. 징그럽게도 생겼다’ 하고 웃더구먼.”

하던 열찬씨가 장모 순란씨와 눈이 마주치자

“장모님, 소호에서도 그런 말이 있었지요?”

“글쎄.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그게 사위하고 할 이야기는 아인 것 같은데.”

하며 빙그레 웃자

“언니, 언니 집에는 고추가 자주 주를 벗어요?”

“무슨 소리. 너거 형부는 밤에 자리에 들면 여자랑 똑 같다. 덩치가 작아 여동생 하고 자는 것 같다. 그런데 너거 가서방은?”

하며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인데

“피차일반입니다. 인자 자기가 주를 입고 있는지 또 주를 벗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고 깔깔 웃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