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를 속풀이로 읽는 아침
김 어 진
무를 쓸어 고추와 쪽파와 양파 넣고 동치미를 담습니다
거미줄 치는 생각과 밭에서 캔 영혼들과 몸을 섞습니다
가족의 속풀이를 위하여 톡 쏘는 맛을 만들고 있습니다
거미줄 치는 생각은 생각만 하다가 손의 그리움이 되고
밭은 고집 센 발로 버티다가 뿌리채 뽑히기도 하더니만
서로 육즙을 내주어 섞이며 천국의 맛을 만들어냅니다
어머니는 이 동치미를 한평생 담그다가 세상 뜨셨습니다
거미줄 치는 생각이다가 밭이 됐다가 속이 탔을 겁니다
아버지가 허구한 날 술만 드시고 늦게 왔기에 말입니다
속풀이 하시느라 동치미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두 분의 거미줄 치는 생각과 밭처럼 끈끈하진 않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속풀이 해장 동치미 국물이었습니다
- 김어진 시집 담쟁이는 벽을 종교인 것처럼, 현대시학 서정시선 03
시 해설
어머니가 만드시는 동치미는 가족의 속풀이를 위하여 톡 쏘는 맛을 내며 추울 때일수록 더 맛이 있다. 약주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아침에 쓰린 속을 달래기에 최고의 해장국이라 생각하시면서 들이키신다. ‘거미줄 치는 생각’이란 거미처럼 생계를 생각하며 가족이 맛있게 먹도록 준비하는 것을 말하며 ‘밭에서 캔 영혼들’은 그 과정의 재료이고 ‘몸을 섞’는 것은 가족 사랑과 재료의 버무림을 말한다. ‘가족의 속풀이를 위하여 톡 쏘는 맛을’ 구현하시는 어머니는 아버지도 자식들도 만족하도록 초점을 맞추신다. ‘서로 육즙을 내주어 섞이며 천국의 맛’이 탄생하는 것이다.
밭은 고집부리며 무를 보호하려고 버텼지만 뿌리채 뽑히게 된다. 무의 잔발을 잡고 있던 흙덩어리들이 땅으로 떨어져 되돌아 앉았다. 이런 과정을 다 보시면서 한평생 동치미를 담그시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린 시인은 ‘거미줄 치는 생각이다가 밭이 됐다가 속이 탔을’ 것으로 보았다. 생각과 현실 사이에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허구한 날 술만 드시고 늦게’ 오시는 아버지의 음주 습관이었다. 그러냐 어쩌겠는가, 남편의 속은 풀어드려야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아시는지라 아버지는 동치미 국물을 벌컥벌컥 마셨으리라. 시인은 어머니를 ‘아버지의 속풀이 해장 동치미 국물이었’다고 한다. 두 분은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하시며 사이다처럼 청량하게 묵은 체증을 내려가게 하셨을 것이다. 지금도 시인의 기억에는 ‘이열치열 좋다고 동치미 국물 드리는 어머니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이열치열이고 이한치한이라 하시던 모습.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