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23. 문서없는 노예가 되어(11)

아침에 일어나 여덟시 반이나 아홉시까지 글을 쓰고 아침을 먹고 열시 넘어 밭에 나와 한 바퀴 빙 둘러보며 순을 따거나 물을 주고 울타리를 손보고 나면 어느 새 열한 시가 넘는데 이제 따갑기보다 뜨거운 6월초의 태양아래 낫을 갈아 보일러 집 울타리 밑에 풀을 베러 가면 미처 작업도 시작하기 전에 무성한 잡초사이에서 훅 더운 김이 올라왔다. 억새, 클로버, 쇠무릎, 봄맞이꽃과 나락냉이, 쓴냉이, 고들빼기, 민들레와 노란 꽃을 매단 아기똥풀과 고마이대까지 사방의 풀씨란 풀씨가 다 날아와 거름기는 많고 사람 손은 잘 닿지 않아 제가끔 키를 키워 서로 어깨싸움이라도 하는 듯 땅에 붙거나 기어야할 민들레나 클로버도 보통 무릎이 덮이도록 자랐다. 거기다 중간중간 호박을 심어 왕성하게 줄기를 벋은 호박이 넙적한 이파리를 드리운 아래 벌써부터 두레박만 한 호박이 뒹굴어 낫질을 하려면 여간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아니었다.

또 울타리너머로 촉수를 뻗은 칡넝쿨이 한 열흘 만 방해를 받지 않으면 가로세로로 밧줄처럼 길게, 길게 벋어 자칫하면 발이 걸려 넘어지기가 일쑤였는데 손에 낫까지 들고 있어 위험하기가 짝이 없었다. 거기다 가끔 뱀이 나오기도 했는데 주로 무자수로 불리는 독이 없는 물뱀이었지만 간혹 살모사나 까치독사도 보여 섬뜩하기가 짝이 없었고 억새와 호박넝쿨이 얼크러진 틈에서 푸다닥, 고라니가 뛰쳐나와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보다 열찬씨를 짜증나게 하는 것은 아직도 매일매일 몇 명인가 사망자를 인양하는 세월호사고현장의 소식과 유병언일가의 추적소식이었다. 어머니 명촌댁이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생각이 떠오르며 이렇게 매일매일 상식 밖의 사이비종교단체와 범죄자를 추적하고 수장된 시신을 수습하며 또 대통령과 관료들의 무능함과 책임을 추궁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켜들고 시위를 하는 뉴스를 접하는 것이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도 오뉴월 염천에 땅에 머리를 처박고 풀을 베다 고개만 들면 바로 위의 꺼지지도 않는 라디오에서 악을 쓰듯 폭격하는 볼륨을 최대한 올린 라디오소리를...

그렇든 말든 뚝심하나는 당할 자가 없는 열찬씨가 매일 정오가 되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풀을 베는 걸 보고

“국장님, 이 국장님!”

언덕위의 박 사장이 부르더니

“그 너무 열심히 하다 열사병 걸리겠습니다. 잠깐 쉬어가지요.”

하며 소리를 질러 허리를 펴니

“사장님, 올라오십시오. 막걸리 한 잔 하십시다.”

재활용 조사장도 옆에 서서 손짓을 했다.

“그러면 잠깐 쉬었다 할까?”

열찬씨가 토시를 벗으며 다가가자

“이쪽으로!”

박 사장이 울타리 그물 한 쪽을 들고 손을 잡아 언덕 위로 올라가니

“어서 오세요.”

후덕한 인상의 부인이 웃으면서 술상을 내오는데

“이 산중에 웬 오징어, 그것도 산 오징어 같은데...”

열찬씨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제가 오다가 월내장에서 좀 샀지요. 5일장을 둘러보다 마침 들어온 배가 있어서 선착장에서 바로 샀지요.”

조사장의 말에

“월내에도 5일장이 있나요?”

“예. 원래부터 있었다고 월내장 아입니까?”

하며 셋이 막걸리를 한 사발씩 들어 올리는데

“밑에 밭에 어르신은 삽질만 변강쇠가 아니라 낫질이 예술이라고 또 소문이 났어요.”

박사장부인이 웃으며 나오는데

“소문이라니, 소문도 사람이 있어야 퍼지지요?”

“아뇨, 여기서도 사람은 많아요. 기름집할배가 고약해서 그렇지 할머니는 얼마나 사람이 찬찬하고 친절한지, 또 우리 조사장님 부인도 그렇고. 하여간 저랑 셋이 모이면 밭에서 일하는 어르신 보면서 하하호호 웃다가 세월이 다 가지요.”

“저런! 내가 동물원의 원숭이 꼴이구나? 남들이 보는 줄도 모르고 훤한 개활지에서 혼자 돌아다니고...”

하다 울타리에 오줌독을 고여 놓고 가끔 볼일을 보는 일이 떠올라 흠칫하는데

“사장님이 하도 부지런해 주변의 고사리를 다 뜯는 바람에 기름집 할매가 애가 달아서 말입니다.”

“그래요?”

“예. 내년부터 사장님은 앞산에 험한 데 가시고 울타리 뒤 언덕에는 우리 여자들이 뜯게 남겨주세요.”

“예. 알았어요.”

“이제 풀이 거의 다 베어져가던데 좋은 구경거리 놓치게 생겼어요.”

“예에?”

“풀 베는 것도 예술이라고 우리가 뒤에서 바라보면 낫 끝으로 풀뿌리를 팍팍 긁어 휘익 감아올려 한 아름이나 되는 키보다도 더 긴 풀을 나란히 눕히면서 풀을 베어 나가는데 세상에는 빵을 굽거나 소고기의 뼈를 바르거나 회를 썰거나 하다 못 해 설거지를 하는데도 나름대로 기술이 있고 그 기술이 빼어나 예술같이 보인다고 하는데 어르신 풀 베는 솜씨는 과히 예술인 것 같아요.”

“허허, 어려서 부터 소꼴을 베고 또 농업학교를 다니고 말입니다.”

“예. 그 학교에는 풀 베는 과도 있었던 모양이지요?”

“아니오. 농업과, 원예과, 축산과가 있는데 전 농업과였지요. 그러고 보니 교내행사 퇴비증산촉진 풀베기 대회에서 2등을 한 적도 있네요.”

“역시!”

하고 웃는데

“사모님이 멋쟁이 같아요. 다음엔 같이 한번 오세요.”

“예. 그러지요.”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더니 그 외진 산속에서 또 하나의 사회가 형성되는 것 같았다.

[그림=서상균]

하지 무렵이 되어 감자도 캘 겸 장모 순란씨가 막내 영아씨와 두 손자를 데리고 와서

“자, 오늘은 감자나 좀 캐볼까? 토실토실 타박감자로.”

하면서 아이 둘과 열찬씨까지 붙어 감자를 캐는데 어떤 것은 토실토실 살찐 뿌리가 여남은 개씩 줄줄이 쏟아져

“야, 줄줄이 사탕이다!”

“열 개도 넘는다. 열두 개, 열세 개, 아니 열다섯 개!”

남매가 신이 나는데

“야, 대박이다. 강호동이 머리통만한 감자가 나왔다.”

열찬씨까지 신이 나는데

“아이쿠!”

감자대궁이를 잡아당기던 순란씨가 고랑에 넘어지며

“감자가 와 이렇노? 뿌리가 녹았네.”

그러고 보니 전에 열찬씨가 웃거름을 준 감자가 여기저기 뿌리째 녹은 것이었다.

“그 참 희한하네. 새 땅이라서 그런가?”

딴전을 피는 열찬씨는 제발 영순씨가 눈치 채지 않기만 바라면서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이 삼겹살을 굽느라고 정신이 없는 영순씨는 감자를 다 캘 때까지 밭에 오지를 않았다. 여섯 식구가 넉넉히 고기를 먹고 된장찌개로 점심까지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가서방, 저 많은 풀은 언제 다 빘노?”

장모순란씨가 감탄을 하는데

“우짭니까? 주인이 비라카이 비야지요.”

“아이구, 이 염천에 저 넓은 밭을?”

“비는 기야 빈다 치고 지주의 위세가 그래 당당한지 사람을 그렇게 부려먹고도 욕봤다는 인사 한 마디가 없으니.”

영순씨가 혀를 끌끌 차더니

“내가 능력이 없어 우리 영감 농사지을 땅 한 조각도 못 사주고.”

하는데

“당신, 시방 무신 소리고?”

열찬씨가 화를 내자

“그게 아니라 지주의 심술은 하늘이 내는 건지, 당신이 하도 안타가워서 말이야.”

첫물 애호박 몇 개와 오이를 담으며

“형부, 이렇게 고생한 소출을 내가 가져가도 될란지?”

영아씨가 미안한 표정이라

“처제 니는 내 큰딸 아이가?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너거 식구나 밥걱정 없이 잘 살면 그만이다.”

“...”

손님들은 물론 영순씨까지 보낸 열찬씨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나서 풀을 베 낸 자리 중 풀이 적고 흙이 드러난 부분을 이리저리 연결해 좀 거칠기는 하지만 한나절 만에 한 서른 평의 들깨 밭을 만들었다. 6월초에 모를 부운 들깨를 7월초에 옮기면 기름을 짜는 가을들깨가 되는데 전에 구서동서 실패한 경험을 살펴 올해는 거친 돌밭에 그대로 빡빡하게 키워볼 심산이었다. 오후 다섯 시경 평상에 앉아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조금 쉬었다 영순씨가 준비해둔 저녁을 한 술 뜨고 야구나 보려고 생각하다 그만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으슬으슬 떨리는 바람에 잠이 깼는데 얼마나 피곤했는지 그 좋아하는 롯데야구가 끝나는지도 모르고 곯아떨어져 벌써 아홉시가 넘은 한밤이었다.

점심을 잘 먹어 배도 고프지 않아 그냥 윗도리 잠바하나만 걸치고 밖으로 나와 한참이나 풀밭을 쏘다니니 비로소 후 트림이 나오며 술기가 날아갔다. 냉수 한잔을 떠놓고 탁자에 앉으니 오늘이 그믐껜지 칠흑 같은 어둠이 에 덥힌 골짜기 어디선가 와롱새롱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려오며 심장의 고동소리가 천천히 감지되었다.

여름에 접어들면서 오리농장의 나날이 비교적 순탄하게 흘러갔다. 고추가 익어 첫물수확을 하면서 영순씨가

“여보, 왜 200포기가 넘는데 한 서른 포기만 익었을까?”

“그러게 말이야. 같은 포트안에서도 다른 종자가 있었나보지.”

하면서도 열찬씨의 가슴이 뜨끔했다. 지난번에 웃거름을 잘못 쳐서 거의 다 말라죽은 고추 틈에서 겨우 살아남은 몇 포기에서 첫 열매가 익은 것이었다. 가지와 오이는 좀 늦기는 해고 그럭저럭 평년작은 되는데 두 번째 사러갔을 때 품절이 된 토마토는 전부 다 말라죽고 맨 끝의 방울토마토하나만 살아남아 텅 빈 공간에 수많은 곁가지를 쳐 무슨 떨기나무처럼 근 한 평의 땅을 차지하고 발갛게 열매를 맺어 한 대여섯 포기의 수확량은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운 일은 옥수수가 익기 시작한 것이었다. 고추, 참깨, 열무, 감자 등을 심다 어중간한 자투리땅이나 아직 개간하지 않은 생땅에도 전에 호박을 심었든지 해서 조금이라도 맨땅이 드러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씨를 뿌려 절반도 싹이 트지 않았지만 토질에 따라 크고 작게 어수선하게 자랐지만 나름대로 각각의 힘에 맞게 옥수수를 맺었다. 처음 옥수수를 따는 날 여남은 개를 삶아서 둘이 하나씩 먹어보고

“아이구, 달고 고소하다.”

“생땅에 첫 수확이라서 그런가?”

하고 기뻐하던 영순씨가 나머지를 영서네 집에 몽땅 사다주었는데 영서와 현서 두 아이는 물론 어미아비와 가게에서 일하는 아가씨까지 맛있다고 난리가 나서 일주일 뒤에 또 한 20개를 보낸 영순씨가

“아이구, 우리 아들하고 서울 아이들은 이 좋은 옥수수를 못 먹어 어쩌지?”

하다

“참, 맞다. 택배로 보내자.”

하고 다음 주말에 한 서른 개를 부쳐 너무나 맛있게 잘 먹었다는 며느리 상미씨의 전화가 왔는데 이어서

“너거 옥수수가 잘 익었나? 하매 익을 때가 되었는데.”

장모 순란씨의 전화가 왔다. 열찬씨가 삽으로 생땅을 파고 자신이 씨를 넣은 기억이 난 모양이었다. 해서 다음 주 장모 순란씨와 처형 미혜씨까지 데리고 온 영순씨가 한 아름 옥수수를 쪄다 둘러앉아서 먹는데

“아이구, 맛있다. 찰옥수수, 찰옥수수 해도 이보다 맛있는 옥수수는 못 봤다.”

“고모야, 그건 딸네 집 옥수수라서 그렇고 또 공짜라서 더 맛있는 법이다.”

“예서방네 니는 엉뚱시럽기가 예나 지금이나 똑 같네. 환갑진갑이 다 지나도 아직도 철이 안 나나?”

하며 부지런히 먹다가

“아이구, 우리 영아랑 주형이, 지현이가 옥수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순란씨의 탄식에

“여남은 개 따로 놔두었으니 갈 때 가지고 가서 영아 주소.”

“고맙다. 그런데 우리 갑린이 하고 혜원이도 옥수수 좋하하는데.”

“삶은 것 몇 개 남가 가이소.”

하며 하나 더 먹으려던 영순씨가 손을 털며

“언니는 와 그 좋아하는 만이아버지, 형부 옥수수 안 챙기노?”

“그 양반 워낙 입이 짧아서.”

하고 넘어갔는데 다음 일요일 오후 느닷없이 울타리 밖에서 빵빵 클랙슨이 울리면서

“언니야, 내 왔다! 형부 오랜만입니다.”

검정 라이번을 벗으며 처제 영신씨가 손을 흔드는데

“또 왔다. 옥수수생각이 나서.”

뒤에서 멋쩍게 웃으며 장모순란씨가 내리더니

“영신이하고 전화로 옥수수가 잘 익었다고 이야기하다가 야가 하도 가자고 졸라서...”

수줍게 웃더니

“보자, 옥수수가 좀 익었나?”

소쿠리를 하나 찾아들고 영신씨와 둘이 옥수수 골로 들어서는데

“오늘 끝물인데 아주 못 된 거 말고는 아끼지 말고 다 따소.”

영순씨가 허허 웃으며

“보소. 내가 형제가 많아서 미안해요. 당신도 망내이 백찬이삼촌집에 민우, 성우 생각이 날 건데...”

“됐다. 복지복걸이지 뭐.”

하고 우선 한 솥을 삶아 나눠먹고 남은 것은 영서네 몫으로 챙기니

“언니 고맙다. 우리 황 서방하고 교영이가 옥수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가시나야, 황 서방만 입이가? 우리 갑린이하고 혜원이도 있고 주형이, 지현이도 있다.”

하면서 기어이 둘이 반반으로 나누어 갔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