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24. 다시 지주의 횡포(3)

집으로 와서 연구를 하기를 한 5천만 원 모자라는 돈을 채우는 방법이 아들 정석에게 빌리는 방법과 장촌의 고서방에게 빌리는 방법 중 하나를 택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아직 집도 못 산 아들에게는 말을 못 하지. 정석이 모르게 장촌에 빌리자.”
영순씨의 말에
“장촌자형이 좀 꼼쟁이가? 나는 아직 장촌자형한테서 돈 빌렸다는 사람을 못 봤다?”
김해의 용철씨가 퇴비장사를 하다 퇴비 싣는 굴삭기까지 달린 덤프트럭을 통째로 잃어버려 낙심을 하고 순찬씨가 돈을 빌리려 왔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일, 또 명촌의 금찬씨도 건축하는 또식씨의 사업이 어려울 때 말을 꺼내다 본전도 못 건진 일을 떠올리는데
“그래도 울산데름 집 살 때는 살짜기 빌려주더란다. 사람만 야물면 안 빌려줄 택도 없지. 그런데 이자는 꼬박꼬박 챙기더란다.”
“그래서 우리도 빌려준단 말인가?”
“내가 슬쩍 형님한테 물어봤는데.”
“그래서?”
“당신이 빌려달라면 좀 망설이다가 빌려주겠지만 내가 나서면 두말없이 빌려줄 것 같다네.”
“우째서?”
“내가 더 경우 바르고 미덥다는 말이겠지.”
“에라이, 고약한 영감탱이!”
하던 열찬씨가
“그럼 우리 시작해볼까?”
“몰라. 내가 아나? 당신이 하도 좋아하기도 하지만 말린다고 될 사람도 아니고.”
“그래 다음 주엔 장촌자형한테 가보자.”

[그림=서상균]


열찬씨가 장촌의 고 서방을 찾아가는 것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의 복안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자기가 사려는 땅이 농막을 짓고 농사를 짓기에 쓸모가 있고 땅의 기운이 어떤지, 명당은 아닐지라도 무난히 사람이 살만한 땅인지 또 집을 지으면 방향을 어디로 할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매형에게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그 외에 또 한 가지의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아무래도 한 5,6천만 원 부족할 것 같은 돈을 좀 빌리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 고속철부지에 들어가는 도리 뜰의 여남은 마지기의 논에 대한 보상금을 무려 27억이나 받아 조카를 준 1억을 빼고 농협에 고스란히 예금을 해 언양농협의 큰 손으로 조합장실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차를 마시고 수시로 조합장에게 점심대접을 받는 것을 큰 낙으로 여기는 형편이라 자기마음에만 들면 그 구렁이알 같은 돈을 빌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의 이유는 울산, 언양간의 큰길에 면한 장촌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속도로와 산업도로로 들판의 대부분이 들어가 딱히 전원기분을 낼 집터도 없는 판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언양으로 귀향하려면 최소한 두 누님에게 다 마침한 땅이 있는지 또 누님 이웃에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보아야 마땅한 예의인데 비록 명촌에 적당한 땅이 나왔다 하더라도 장촌에는 일언반구 이야기도 없이 땅을 사고 집을 짓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이었다.
거기에다 세살 터울의 두 자매간과 동서 간에는 전부터 넷째 장촌의 고 서방이 비록 촌수는 아래지만 나이가 셋째 박 서방보다 한 살이 많아 서로가 평소에 데면데면했는 데다 명촌은 비록 쪼들리기는 하지만 4남1녀로 자손이 성한데 비해 장촌은 딱 딸 하나 미진씨 밖에 없다는 점을 두고, 한집에서는 먹고살 것도 없으면서 자식만 자꾸 낳는다고 흉을 보고 한쪽에서는 저렇게 먹도 쓰도 않고 장에서 동서를 만나도 막걸리 한 잔 하자는 말도 없이 꽁창꽁창 돈만 모으는 구두쇠 가죽꼴기라 삼신할미가 자식도 잘 안 준다고 흉을 보며 은근히 질투를 하는 사이라 잘못하면 자기가 들어 또 다른 분란을 일으킬까 두려운 것이었다.

영순씨가 평소에 고차대씨가 좋아하는 침조기와 납새미를 사들고 장촌에 도착하자
“처수씨 왔능교?”
코가 덜렁하게 높은 고서방이 간단하게 한마디 던지고 마는데
“아이구, 우리 홍여사가 왔네. 우리 월깨가 야물게 잘 살아서 인자 내 동생이 고향에 땅을 다 사러오네.”
하면서 찹쌀, 콩, 팥, 참기름, 들기름을 차에 실어주고
“갈 때 시간나면 감도 좀 따가거라. 꼬라지는 저래도 저게 원래 참감이라 홍시도 맛있고 꼬깜을 깎아도 좋다.”
하며 남편 눈치를 살피더니
“보소. 쌀 찧어놓은 것 있능교?”
남편의 눈치를 슬슬 보며 창고로 가더니
“이거 한 두말 되겠네. 한 말 값은 쳐주고 한 말은 서울에 아이들 오면 밥도 하고 떡도 해서 먹어라.”
남편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외면하며 말했다. 남편이 직장에 다닐 때는 밑에 두 동생에게 수시로 주던 쌀을 퇴직이후 한 번도 제대로 줄 수 없어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 마침 자기 좋아하는 생선을 잔뜩 사와 기분이 좋아진 남편이 설마 무슨 딴 말이야 하겠나 싶어 그 무거운 쌀 두말을 질질 끌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 어떤 땅인지 가보기는 하자. 부산에 편한 아파트 놔두고 일부러 이 골짜기 와서 농사짓고 살려는 속을 나는 모르겠다. 다달이 연금이 딱딱 나와서 밥걱정도 없는데 말이야.”
마음이 상한 고서방이 엉뚱하게 짜증스런 표정을 짓자
“아, 동생이 자기가 직장에 다닌다고 못 쓰던 글을, 그 평생을 소원하던 글을 쓴다고 촌에 들어온다고 한다 아잉교?”
덕찬씨가 옆자리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다 전에 부산에서 한 번, 언양에서 한 번 출판기념회를 두 번이나 할 때 나중에는 집에 마을사람이나 조카가 오면
“아, 이것 봐. 우리 처남이 이번에 시집이라고 책을 다 냈어. 옛날부터 집안이 양반행세를 할라카면 과거를 보고 벼슬을 하고 시를 쓰서 문집을 내어야 한다는데 우리 처남이 과연 선비는 선비인 모양이야.”
하면서 가뜩이나 덜렁하게 높은 코를 벌렁거리며 무게를 잡을망정 정작 아내에게는
“처남은 꼭 그런 행사를 해서 농사일 바쁜 사람을 오라가라캐야 되나?”
볼멘소리를 하면서 거,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집 경비나 하게 봉투나 하나 좀 마련하라고 해도 첫 번째 부산의 출판기념회 때는 끝끝내 외면하고 마는지라 두 번째 모교 언양초등학교에서 하는 출판기념회 때는 덕찬씨가 미리 떡을 한 말이나 해서 자기 기수인 46회는 물론 사방의 선후배들 천막으로 돌리며
“오늘 출판기념회를 하는 가열찬시인이 내 동생임더.”
신이 나서 떡을 돌렸던 것이었다. 부리시봇디미를 넘은 자동차가 능산마을에서 방향을 바꾸어 자동차면허시험장을 지나 길천산업단지속의 도로를 벗어나 후리마을 앞에서 좌회전 작천정방향 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왼쪽은 사광리, 오른쪽은 등말리가 있는 언덕에서 우회전을 해 논길을 한참 달려 조그만 4거리에 닿자
“화식이 집은 문이 잠겼고 언니는 집에 있을라나?”
덕찬씨가 평평한 들 가운데 덜렁하게 솟은 2층집을 바라보는데
“그냥 갑시다. 할마시가 지금까지 집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 이 근방 어데서 밭일을 하다가 사람기척이 나면 찾아올 겁니다.”
열찬씨의 말에 모두 커다란 향나무 숲이 우거진 샛길로 걸어가며
“야, 많이도 변했네. 이 향나무가 저 위에 집터자리를 산 사람이 무덤을 쓴 자리의 도래솔인데 벌써 한 20년이나 되었나? 그 때 산림조합에서 삭도허가 한다고 출입할 때 보이 이 골짝에는 대밭이 쫙 이어지고 그 양지바른 품에 집이 몇 채 있었는데...”
고차대씨가 기억을 더듬는데
“삭도(索道)가 뭔데?”
덕찬씨가 묻자
“새끼로 만든 길이란 뜻인데 저 산꼭대기에서 마을까지 굵은 철사 줄을 걸고 산위에서 벤 풀이나 나무를 그 케이블로 실어 내리는 거지.”
“아아, 그거 전에 어데서 많이 본 것 같다.”
하면서 향나무길 아래 푹 꺼진 땅에 지은 오래 된 통나무집 앞에 이르자
“참 시근도 없는 사람이지. 촌집이 산을 끼고 앉아 볕이 잘 들고 물이 잘 빠져야 되는데 우째 이래 물구덩이에 지었능고?”
고차대씨의 말에
“처음 멋모르고 지은 울산사람은 장마에, 모기에 10년도 못 버티고 나가고 빈집이 남은 걸 어데서 도자기 굽는 사람이 사서 왔답디다.”
하는데 얼굴이 갸름한 50대의 사내하나와 몸매와 얼굴이 둘 다 두루뭉술한 여자가 집에서 나와 물끄러미 쳐다보는지라
“아, 안녕하세요?”
열찬씨와 영순씨가 동시에 인사를 해도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다 다시 들어가 버렸다.
“뭐, 저런 사람들이 있노?”
고차대씨와 순찬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인데 마실사람들하고 통 어울리지를 않는답니다.”
“그래. 천시지리(天時地理)다음에 인화(人和)라고 집터도 이웃이 좋아야 진짜 길지라고 하잖아?”
모처럼 고차대씨가 문자를 쓰는데
“외삼촌!”
언덕위의 대밭에서 소리치며 키가 작은 일식씨가 톱을 든 채 나타났다. “그래. 일식아, 니가 우째? 오늘 일 안 나갔나?”
열찬씨가 묻자
“이모하고 이모부도 다 오셨네? 외숙모도 오시고. 어서 오이소.”
세 사람과 인사를 나눈 후에
“외삼촌 직장은 그만 두었심더.”
“그만 두다니? 조카가 공진단 판 실적도 좋고 해서 공장장이 되었다면서?”
“예. 그런데...”
가천의 삼성 S. D. I에 다니던 일식씨는 회사가 다른 계열사로 통폐합되고 인원이 정리될 때 멀리 경기도까지 가기 보다는 가까운 고향에서 어머니 금찬씨를 모시고 살 요량으로 퇴직금 받은 것과 자기가 살던 조그만 아파트값을 보태 대대로 살던 등말리의 밋밋한 벌판위에 덩그런 2층집을 지었다. 그리고 부부가 여기저기 소소한 일자리를 찾아 생활비를 버는 한편 틈틈이 농사를 지어 아이들을 공부시키다 얼마 전까지 아내는 언양읍에서 <웰빙식당>이라는 조그만 분식집을 하다 현장인부들이 이용하는 5천 원짜리 밥집으로 바꾸었고 일식씨는 외양만디 넘어 소호리 가는 방향의 한약 짜는 공장에 다녔다. 명색 대기업에 다니던 사람이라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과장이 되어 여사장의 신임을 받았는데 이렇게 부산, 울산 한의원들의 조제약을 대신 끓여내고 가공비만 받는 것 보단 쌍화탕이나, 공진단(供辰丹), 십전대보탕 등을 직접 생산해 팔면 수입이 많을 것이라는 일식씨의 제안으로 대범한 여사장이 새로 건물을 짓고 설비를 들여 그간 한의원에서 화제(和劑)해주던 재료를 그대로 넣고 시험사마 공진단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맛도 괜찮고 효과도 있다는 주위의 평판을 듣고 아예 생산라인 하나를 더 만들어 일식씨가 생산책임자가 되었다. 이제 판로가 문제였는데 언양바닥에는 그 비싼 공진단을 먹을 사람이 잘 없어 설날에 만난 영순씨에게 부탁을 하자
“그래. 우리 조카가 도움이 되면 한번 알아나 보지.”
하고 돌아와
“먼저 당신이 한통 먹어보소.”
하고 한 통에 70만 원이나 되는 공진단을 대범하게 주문하더니
“그래 막을 만 항교?”
“먹기는 좋은데 너무 비싸 간이 다 오르라든다.”
“남자가 되서 그만한 보짱도 없소? 그래 효과는 있는 것 같고.”
“입맛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아. 계속 먹다보면 변강쇠가 될지도 모르고.”
“아이구, 장히나 되겠다.”
하면서 주변의 좀 먹고살 만한 사람인 여보산악회의 해순씨에게 권해 남편과 세 아들이 먹을 네 통을 주문받는 것을 비롯 청우회, 남일회, 연천회 등 자신의 모임에서 만나는 넉넉한 부인데들로 부터 졸지에 여남은 통 주문을 받고 이어 추가주문이 들어와 20통이 넘자 사은품으로 열찬씨네 집에 또 한통의 공진단이 배달되기도 했다. 그 후에도 가끔 주문을 하며 어느 새 일식씨가 이미 주력종목이 된 공진단 생산라인의 공장장이 되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아니 그 좋은 공장장은 와 그만 두고?”
“예. 주인 여사장이 하도 불도(佛道)가 세어서. 무슨 암자의 신도회장이라는 그 왕보살은 공장을 짓고 차를 사고 새 제품을 생산할 때마다 거창한 제(祭)를 지내는데 예수 믿는 제가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도 집사던 지난해까지는 모르는 척 넘어갔는데 올해 장로(長老)가 되고나니 명색 장로가 우상숭배를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새 차 샀다고 고사를 지내는 날 혼자 공장안에서 ‘저 우상숭배의 어리석은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다가...”
“그래서?”
“여사장한테 딱 걸렸다 아입니까? 공장장 안 보인다고 고사떡이라도 좀 먹이려고 찾아 나선 여사장 앞에서 한갓 우상인 부처를 믿는 저 어리석은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빌다가...”
“그래서?”
“기가 차서 허허 웃더군요. 그리고는 한 지붕 안에서 십자가와 불상이 같이 있을 수는 없다고 하느님을 선택할지 공장장을 선택할지 당장에 결정하라고 했지요.”
“그래서?”
“당연히 공장장을 그만 두었지요. 명색이 장론데 그런 시험을 못 이길 것 같아요?”
“저런 외양만디 저 한갓진 숲속에서 부처님과 하느님이 박치기를 했구나. 그래서 앞으로는 우짤 긴데?”
“동생 지희아빠가 자꾸 어데 가지 말고 자기일이나 좀 도와달라고 해서 우선 뒤모도 일당을 받고 나중에는 부사장 비슷하게 현장도 관리하고 자재도 구입하는 방향으로...”
“그래서 지금 대나무 비고 있나?”
“예. 저게는 옛날 도산할배집 대밭인데 제 처남하고 처남친구하도 둘이서 한 300평을 사서 집지으려고 해서 지금 택지조성하고 있심더. 오늘 삼촌이 보러 온 땅도 나중에 대를 비어내어야 됩니더.”
“그래.”
하고 일식씨가 메시지로 보내준 도면을 열찬씨의 휴대폰으로 보면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대가 우거져서 어데가 어덴지 통 모르겠네.”
이미 폭이 6미터나 되게 널찍하게 사도를 설정한 도로위로 한 20평의 들깨 밭이 있고 그 뒤로 대나무가 빽뻭하고 그 속에 높다란 감나무가 세 그루나 있어 빨간 감을 수도 없이 매단 모습을 바라보며 영순씨와 덕찬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보자. 땅 두 필지를 합하니 모양은 일단 반듯하게 잘 생겼네. 지금은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가지만 대나무만 베어내면 옛날 집터랑 문전옥답 채전 밭이 나오겠지.”
고차대씨가 산림조합에 다니며 제법 견문이 트인 사람답게 이 곳 저 곳을 가리키며 도면과 대조를 하는데 금찬씨가 나타나며
“아이구, 이기 다 웬 사람들이고? 그래 고서방은 8월은 잘 쓌능교? 하루가 빨라도 언니는 언닌데 덕찬이 이 가시나는 지 서방 데리고 언니한테 들여다보러 오지도 안 하고?”
덕찬씨를 흘겨보자
“아이구 언니야, 나도 내일모래 나이 칠십이다. 같이 늙어가면서 문안은 무슨?”
평소 호적수인 두 자매가 언중유골(言中有骨)로 슬쩍슬쩍 찔러보는 것이었다. “처형 여가 집터 같은데 안채 앉았던 자리가 어덴교?”
“저 콘테이너 박스자리에 3칸 접 집이 동향으로 앉았지요.”
“3칸 겹집이라? 새미는 요?”
“장독간하고 새미하고 화단자리는 저 뒤쪽인데 자세히 보면 동백이랑 노란 꽃나무가 보일 겁니다. 참 치자나무도 있었제?”
하는 방향을 유심히 살피던 고차대씨가
“봐라. 저 대밭 안에 낮은 돌다무락이 보이제? 저 담 뒤로가 일식이 처남이 산 대밭, 지목이 산이고 고 아래가 지목이 대지인 집턴갑다.”
“내사 암만 봐도 통 모르겠다. 눈먼 송아지 요롱소리 듣고 따라 가기다.”
“나도 봉사 기름 값 당하깁니다.”
덕찬씨와 영순씨가 중얼거리는데
“가기나 니는 시근머리가 그래 없나? 어림이 시근이고 서울이 북쪽이라고 나이 칠십을 공으로 묵었나?”
금찬씨가 또 덕찬씨를 긁는데
“그래 자영, 땅은 쓸 만하요?”
“대 뿌리만 파내면 옛날 전답이라 농사도 잘 되고 집터라서 물도 나오고 다 좋지.”
“그라면 움막 짓고 농사지으며 글쓰기에 딱이겠네.”
“내가 배운 것은 없어도 들은풍월에 의하면 골짜기가 오목하고 볕이 잘 들어 일단 합격이다. 또 사개이마을과 고래들 사이로 앞이 확 트이고 저 봉꼴산 꼭대기가 보이는 것이 금상첨화다. 집터는 좋다.”
“그래요?”
“바람도 잘 통하고 저 앞쪽에 대밭이랑 묵은 소나무의 전경도 기가 막히네.”
왕년에 조경공사를 하던 가락이 나오며
“저런 소나무는 한 주에 수백만 원, 아니 돈 천만 원도 넘을 긴데 자동정원이네.”
“아, 그거는 이불이씨 산소의 도래솔하고 그 앞에 누구 외지의 조경업자가 땅을 빌려 임시로 심어논 거다.”
“아무튼 땅은 아무 손색이 없다. 사고 안사고는 처남 니 마음이지만.”
하는데
“새이야, 새이 니 입장은 어떻노?”
“내사 뭐? 당장 내년부터 들깨 밭이 날아가게 생겼다.”
“저런 동생이 고향에 땅을 사서 온다는데 그까짓 들깨 밭이 다 뭐고?”
덕찬씨가 기가 찬 표정인데
“몰라. 말이 나오다 보이 그렇지.”
눈치 빠른 금찬씨가 재빨리 빠져나가며
“땅을 사고 안사고 내가 뭐라 카지는 안 했다이. 나중에 내 원망을 할 생각은 말고 당자가 알아서 하기다.”
하며 완강히 입을 다물었다.
“당신은 맘에 드능교?”
“내사 뭐, 내 좋아하는 일인데 그냥 마음에 들지 그런데 돈이...”
하는데 영순씨가 재빨리 눈짓을 했다. 장촌에서 돈을 빌리든 안 빌리든 몇 번이나 돈을 빌리려다 거절당한 명촌에서 알면 실란스러울 것 같아서였다.
“그래요. 금강산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밥이나 먹고 봅시다. 박장로, 자네도 가지.”
“아, 아입니다. 저는 현장인부들하고 같이 먹습니다.”
해서 다섯이 간월의 <장수마을>이란 매운탕 집에 들어가는데
“아이구, 형부 오시네. 언니, 오랜만이요.”
주인여자가 덕찬씨의 손을 잡으며 반색을 했다. 고차대씨가 직접 도정한 쌀을 납품하는 집이라 서로 친한 사이인 모양이었다. “그래 저 첨보는 손님들은?”
“부산애 우리 남동생하고 올캐다. 와 공무원도 높고 글 쓴다는 내 동생 말이다.”
“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주인여자가 공손하게 인사를 해 얼떨결에 받는데 문득 금찬씨와 눈이 마주친 덕찬씨가 멈칫하면서 주인여자를 한 쪽으로 끌고 가더니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는데
(저 동생이 명촌에 땅을 사서 농사도 짓고 글도 쓸려고 온다 아이가?)
척하면 삼척이라고 열찬씨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하면서 빙긋 웃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