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제2장 미혜 씨 집을 팔고(3)

그간 허허벌판 깜깜한 어둠속에 혼자 살기가 뭣해 금찬씨에게
“밤에 혼자서 무섭기도 하지만 적적하기도 해서 개라도 한 마리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제? 암캐는 새끼를 낳아 남자 혼자 키울 것이 못 되고 어데서 숙 강생이 한 마리 나올 때 까지 우리 마음이 데려다 놓지.”

하면서 금방 키가 열찬씨의 엉덩이까지 올라오는 하얀 개 한 마리를 데려다 주면서

“마음아, 당분간 할배 좀 지키라이.”

하는 걸

“아니, 이 큰 개를 나를 주면 누님이 그 큰 집은 누가 지키노?”

“우리 집에는 핑크가 있다.”

“아, 그 조막디 만한 거?”

“그래. 그래도 그 기 뽈뽈코 영악하다. 눈이 커서 새첩기도 하고.”

해서 식구가 된 하얀 암캐 <마음이>는 몸무게가 근 60킬로나 나가는 거구로 성격이 양순해 잘 따르기는 하지만 한 번씩 벋댈 때는 열찬씨 힘으로도 감당이 안 되어 질질 끌려가기가 일쑤였다.

“무슨 개가 이래 크고 툭지노? 몇 살이나 묵었는데?”

“몇 살이 뭐꼬? 음력설 전에 조막디만한 강아지 가져왔으니 한 8개월?”

“아이구야! 무슨 종잔데?”

“낸주게 우리 만태 보거든 물어봐라. 뭐 봉사들 길을 안내하는 맹인안내견인가 뭔가 대기 비싼 종자란다.”

해서 졸지에 열찬씨의 파트너가 되었는데 개 한 마리를 식구로 키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우선 먹새가 하도 좋아 열찬씨가 먹던 식빵조각이나 던져주어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것 같아 마트에서 개 사료를 한 포대 사다가 아침저녁 한 바가지씩 주고 물도 한 바께스씩 떠다 먹이니 멀찍이서 다가오는 기척이 나면 컹컹 짓기도 해 밥벌이는 하는 것 같은데 사람이 가까이 오면 그만 누구에게나 꼬리를 흔들며 반갑다고 뛰어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먹은 만큼 배출을 하니 금방 시원한 소나무그늘에 똥오줌이 질퍽거리고 냄새가 진동하자 미혜씨, 영순씨가 질겁을 했다. 거기다 하루는 소나기가 오자 선채로 곱다시 털이 다 젖어 열찬씨가 걱정을 하자 또식씨가 급한 대로 건축자재 패널로 거대한 6각형의 개집을 지어주었다.

“넌 당분간 니가 있던 할매집에서 자야겠다. 자, 가자.”

줄을 푸는데 좋다고 길길이 뛰어오르는 바람에 두 번이나 나동그라지면서 겨우 줄을 풀어 길로 나오니 희한하게도 열찬씨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곧장 금찬씨의 집을 향하는데 하도 힘이 좋아 줄을 잡은 열찬씨가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었다.

“동생 부산 가나? 마음이는 와 데꼬 오노?”

“아니, 오늘 저녁에 내가 몸을 좀 피할라꼬.”

“몸을 피하다니? 와, 누가 니를 잡으러 온단 말이가?”

“그 기 아이고 밤에 집에 불을 못 켠단 말이다.”

“와?”

“준공도 안 난 집에 사람이 산다고 도자기집 여자가 군청에 신고를 해서 벌금을 물라는 바람에.”

“우야꼬! 그 놈의 여펜네가 또 난리를 피우네.”

“누님은 한 동네서 십년도 넘게 살았다면서 그 여자 하나도 못 다루나?”

“이 사람아, 황소 뿔을 뽑았으면 뽑았지 명촌바닥, 아니 상북바닥에선 그 여자 이길 사람이 없다.”
“와?”

“내가 아나? 여자가 골대가리가 세어서 천하에 갋을 사람이 있나?”

“그래도 동네사람 말은 들어야지. 세상을 혼자 사는 것도 아이고?”

“말도 마라. 그런 줄 모르고 동네사람들이 부부계에 넣었다가 말캐 식겁잔치를 하는 갑더라.”

“우째서?”

“여자가 지 할 말을 다하고 성질을 부려도 남편이나 다른 사람이 감당을 못 하니 그렇지.”

“성질이 보통 아닌 줄을 짐작해도 그 정돈 줄을 몰랐는데.”

“서로 박치기 안 하는 기 상책이다. 마실사람들인들 어데 무섭어서 피했겠나?”

“...”

집으로 돌아와 대충 문단속을 하면서 내가 꼭 이렇게 까지 해야 되는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전기가 들어오고 컴퓨터를 연결한 뒤 마음이 잡히면 오늘내일쯤 다시 대하소설 <신불산>을 써나가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문을 잠그고 데크 위의 방부 목 탁자에 멍하니 앉았는데 빵빵 클랙션이 울려 대문으로 나가니 웬 개인택시 하나가 정차하며

“친구야, 열찬이 너거 집 예쁘네.”

운전석 창을 열고 달모라는 초등학교동창이 손을 흔드는데

“열찬아, 타라. 언양 가서 중태기매운탕 묵자.”

목소리가 걸걸한 용호씨가 손을 끌어당기는데 방금 목욕을 한 깨끗한 얼굴가운데 코끝이 발그레했다. 수십 년 홀아비로 살아온 음주경력의 상징이었다.

“달모 니는 오늘 일 안 하나?”

“몸 아픈 사람이 우째 남 같이 종일 일을 하노? 오전에 용호하고 찜질방에 있다가 점심 묵고 힘이 좀 나면 한 바퀴 돌면서 한5만원 벌어서 또 하루 지낼 용돈을 하고 그렇지 뭐.”

“그럼 니 지금 일 나가는 길이가?”

“그래. 용호 차가 있는 읍내까지 태아다 주께.”

“그래. 그라면 내가 택시비 주까?”

“무슨 소리? 그라면 친구가 아이지.”

“그라면 기왕 늦은 거 지녁 묵고 일 나가거라. 내가 매운탕 사께.”

“그라까?”

하고 면사무소골목 앞의 매운탕 집 앞에 차를 세우더니

“이집 여자는 직동여자고 우리보다 삼년후밴데 남자는 죽었지만 애인은 있다.”

오빠 왔느냐고 인사한 안주인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말자 열찬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달모씨는 국민학교에 다닐 때 공부든 운동이든 무얼 특별히 잘 하는 건 없지만 성격이 밝고 아무데나 잘 끼어들고 누구하고도 싹싹하게 잘 지내는 팔방미인이었다. 그래서 언양의 인구가 늘고 외지인이 많이 들어온 뒤 간혹 언양국민학교 동창이 아니면서도 동창흉내를 내는 사람이 많은데 혹시 달모씨를 아느냐고 물어서 모른다고 하면 가짜 동창이라고 할 만큼 유명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소소한 일이라도 친구의 일이라면 무조건 일단 돕고 보는 사람이라 열찬씨가 수호지의 리더 송강(松江)에 빗대어 친구가 급할 때 꼭 도와주는 남자 급시우(及時雨) 송강, 즉 제 때 내리는 비처럼 친구가 힘들면 언제나 나타나 돕는 사람이었다.

한 번도 언양을 떠나지 않고 자동차정비와 운전을 전전하다 <달모식당>을 경영하기도 했는데 총동창회 전날 전야제에 참석한 외지의 친구들을 잘 재워주어 열찬씨도 그의 홀어머니가 사는 동부리의 옛날 건물에서 잔 일이 있었는데 역시 소탈한 모친의 돌냉이김치가 시원하고 맛이 있었다. 그 사람 좋고 친구 좋고 술 좋아하는 친구가 40대에 중증당뇨에 걸려 한 때는 일을 쉬고 음식을 가려먹을 정도가 되었는데 늘 운전만 해서 운동이 부족하다고 당뇨를 고치려고 등산을 시작한 게 주말마다 신불산을 타다 열찬씨와 신불산입구에서 조우하한 일이 있었다. 그날 박봉록씨가 가져온 과매기 안주와 족발에 두 팀이 가져온 소주와 피치병맥주를 정상도 오르기 전 산치거리에서 몽땅 먹어치운 일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등산에 재미를 붙여 힘이 좀 붙자 국민학교동기회장을 맡아 이 친구 저 친구 만나 술을 마시면서 또 당뇨가 악화되어 이젠 일도 조금씩밖에 못 하고 늘 쉬어야 하며 음식도 많이 가려 먹어야할 처지였다.

“친구 니는 음식 가린다면서 매운탕은 괜찮나?”

“그래 국물에 밥이나 조금 말아서 묵으면 되지.”

국자로 피라미가 둥둥 뜨는 건더기를 떠 두 친구의 앞 접시에 담아주며 자기는 국물에 만 밥과 시금치나물로 금방 식사를 마치고

“둘이 술도 한잔 하고 노래방도 가고 천천히 놀아라.”

하고 먼저 나갔다. 인력개발사무실을 하는 김정이라는 친구에게 매운탕을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하자 조금만 기다리라 하고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 친구 오기는 글렀다. 인부들 하고 고스톱이나 훌라 붙으면 문 닫기도 그렇고 빠지기도 힘들다. 나도 가끔 가서 터지고 오지만.”

국물이 아까워 소주를 무려 세 병이나 마시고 용호씨가 그만 나가자고 해서 열찬씨가 계산대 앞에 서니 달모씨가 나가면서 주고 갔다고 했다. 그러면 추가로 들어온 소주 두 병 값이라고 받으라고 하니 그것도 미리 세 병 값을 주고 갔다고 했다. 둘이 허허 웃으며 경주방향 35도 국도 큰 길로 나와

“인자 술은 언간이 묵었고 노래방에나 갈까?”

하고 둘이 한참이나 4거리 쪽 번화가로 걸어가다

“숙놈 둘이 놀기도 심심하고 하니 길동이나 누구 친구를 더 부를까?”

“아이다. 마 놔나라. 언양 아아들은 친구들하고 술 묵으면 보통 지갑이 없단다.”

“아, 그거야 내가 사면 되지. 언양은 반촌이라 옛날부터 인심이 좀 그렇다 아이가? 이 친구, 저 친구 다 챙기다간 처자식 굶기기 일쑤니까?”

“마, 말으래이.”

하고 한참이나 어디 전화를 건다고 열중하던 친구가

“안 되겠네. 내가 여자 하나 부를라 했는데.”

중얼거려

“누구?”

“그런 여자가 있다. 내 고추친구.”

“고추친구 그런 늙은 여자동창을 불러 뭐하게?”

“그런 고추친구가 아이고 짜까짜까하는 고추친구란 말이다.”

“야, 니 능력 있네.”

“혼자 사는 내가 시간 많고 돈 안 쪼들리니 여자야 줄을 서지.”

“어떤 여자?”

“회사 식당에서 밥하는 여잔데 회사원들 점심 끝낸 두 시부터 네 시까지 우리 집에서 고추친구하고 간다.”

“그래. 몇 살인데?”

“지 말로 마흔 일곱이라 하더라.”

“그런데 오늘은 왜 못 온대?”

“공장에 댕기는 신랑이 주간하고 들어와서 벌써 둘이 씻고 누웠단다.”

“저런, 좋다 말았네.”

하고 한참이나 걸어 서부리의 어느 2층 노래방에 들어가 도우미를 부르는데 용호씨는 두 명을 열찬씨는 하나만 부르자고 한참이나 실랑이를 하다

“남자가 둘이면 여자도 둘, 고추가 두 개면 합자(蛤子)도 둘이라야지.”

용호씨의 말에

“니는 그 사업해라. 나는 노래나 할께.”

하고 열찬씨가 노래를 시작하고 용호씨는 도우미와 시시덕거리며 한 시간을 보내고

“샌님 하고 노니 재미도 없네. 노래나 하고.”

“무슨 소리? 도우미 안 좋아하는 영감이 어딨겠노? 내가 지금 그런 기분 낼 처지가 아이라서 그렇지.”

하고 밖으로 나와

“야, 택시잡자. 달모 부르든지.”

“아이다. 살짜기 뒷길로 가자.”

“니 술 취했다 아이가?”

“니 노래할 때 가시나하고 열을 좀 낸다고 술 다 깼다.”

다시 장터 앞 고수부지까지 한참을 걸어 무료주차장의 자기 차에 오르며

“술 다 깼다. 배가 실실 고푸네.”

하고 남천내공굴을 건너는데

“니 집이 어데고?”

“수정마을.”

“수정마을? 낯 선 동넨데?”

“가보면 안다. 금방 간다.”

하며 옛 언양여상 정문을 지나 덕천고개를 넘는데

“거가 어데고? 명색 삼남면 면서기 출신 내가 모르는 동네가 다 있나?”

“가보면 안다.”

자동차가 수남리를 지나 작괘천 다리를 건너고 중남뜰을 한참이나 지나 작하마을에서 마산으로 들어가는 4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자

“여는 옥산 가는 길인데 저게 연립주택말이가?”

“그래. 5층짜리 옛날 아파트지.”

“옛날 작하마을인데?”

“몰라. 지금은 수정마을이라 칸단다.”

하고 어둑한 화단 옆에 차를 대고 컴컴한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한 스무 평의 아파트가 눈에 들어가는데 현관에 흩어진 신발과 우산이 사내 혼자 사는 아파트의

흔적이 역력했다.

“아이구, 정신 없어라. 좀 치우고 살지.”

“혼자 사는 내가 청소는 와 하노? 우짜다가 우리 아들이나 여동생 옥희가 오면 한 번씩 하지.”

“여게 자러 오는 여자는 청소도 안 하나?”

“그 여자가 어데 청소하러 오는 여자가? 고추친구 하러 오는 여자지.”

“저런?”

거실에 불을 켜자 웃통을 벗은 열찬씨가 세면장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는데

“출출하제? 뭐 좀 묵자.”

“그래. 출출하기는 한데 호불애비 사는 집에 묵을 기 있기는 있나?”

“이래 봐도 우리 집에 삼겹살 하고 김치는 절대로 안 떨어진다.”

“우째서?”

“사내가 배고프면 삼겹살 꿉어서 소주 한잔 하면 되지 다른 건 뭐 있나?”

“그래서?”

“우리 아들하고 금희, 은희누나에 옥희까지 올 때마다 삼겹살을 사다 놓는다. 김치는 금희누나 농장에서 여럿이 모여서 김장하면서 우리 것도 같이 담고.”

“팔자 늘어졌네.”

“그렇지 뭐. 내가 폐가 안 좋았을 때 아이엄마만 도망을 안 가도 병도 고치고 마음잡고 살았을 텐데. 그 여자 가고 나서 세상만사가 귀찮았는데 우리 금희누나 하고 엄마가 보골이 나서 기어이 날 살리겠다면서 개소주를 수십 마리나 해 먹이서 내가 지금도 정력이 장사다.”

“아쭈”

“내가 마누라 복이 없어 그렇지 다른 건 다 부자다. 우리 엄마 아직까지 건강하고 돈 많제? 내 동생 철호네 엔진오일가게가 울산에서 제일 커서 내가 재미사마 도와주면 한 달에 200씩 주다가 지금은 일 안 하고 한 돈백씩 주기로 했다. 또 우리 금희누나가 떼 부자라서 심심하면 용돈 주제, 아들 착하제...”

“그렇구나.”

삼겹살을 굽는 사이 냉장고를 열어보니 각종 술이 그득하고 냉동실에는 삼겹살을 비롯한 고기가 그득하고 김치냉장고엔 갖가지 김치가 그득했다.

“그래 묵는 기 남는 거지.”

둘이 건배를 하다

“덥다. 옷 벗고 묵자.”

“그래.”

하고 얼마나 마셨는지 새벽에 눈을 뜨니 침대에 쓰러진 열찬씨도 식탁 위에 고꾸라져 잠이 든 용호씨도 모두 팬티바람이었다.

“친구야, 일나라!”

“일나기는? 나는 더 잘란다.”

“아침은?”

“나는 아침 잘 안 묵는다. 니는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어라”

시계를 보니 벌써 아침 여덟 시였다. 남의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기도 뭐해서 다시 드러누웠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당뇨 때문에 신진대사가 빨라 매끼 챙겨먹지 않으면 금방 배가 고파 맥을 추지 못 하거나 저혈당에 빠지는 열찬씨였다. 거기다 어제 저녁은 맛은 있지만 소화가 빠른 민물매운탕을 먹은 데다 노래방에서 한 시간이상을 거의 독창을 하다시피 배가 고플 만도 했다. 달리 방도가 없어 냉수만 한 잔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임마들이 대강 좀 마시지.”

혀를 끌끌 차며 달모씨가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아침 열 시가 조금 넘었다.

“잘 잤나? 밥 묵으러 가자.”

“그래. 니는 돈 많이 벌었나? 잠도 좀 자고?”

“돈은 오늘 하루 쓸 만큼 벌었고 잠은 손님 없을 때 잠깐씩 잤다.”

시체처럼 꼼짝도 않던 용호씨가 달모씨가 오자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일어나 옷을 입었다. 셋이 탄 달모씨의 개인택시가 매가마트를 지나 좌회전을 하며 작천정쪽으로 향하자

(옳다구나. 삼거리 <물사랑>이란 매운탕 집으로 가는구나!)

열찬씨의 뱃속이 새삼 꼬르륵거리는데 개인택시는 금방 삼거리를 지나 작천정을 스쳐 화천마을에 접어드는 지라

“밥 먹으러 간다면서?”

“그래 황토방에서 대충 씻고 새알 들어간 미역국 먹지.”

“그래?”

잠깐 생각에 잠긴 열찬씨가

“친구야, 나는 우리 농장에 데다주면 안 되겠나?”

“와? 배고플 낀데?”

“당뇨약이 거게 있다. 아침은 라면을 끓이면 되고.”

“그래?”

등말리까지 온 친구들이 열찬씨를 내려놓고 떠나자 집안을 비잉 둘러보던 열찬씨가

(주말에 마누라가 오면 잔소리께나 하겠구나? 집안이고 마당이고 엉망으로 어질러놨다고. 그 보다 김장거리 심을 땅을 어서 준비해야 조용할 건데...)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