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24. 또 다시 지주의 횡포(4)

11월. 가을이 깊어지면서 열찬씨의 고민도 깊어져 갔다. 명촌의 땅을 사긴 사야겠는데 한 5천만 원 모자라는 돈을 어떻게 충당하느냐, 장촌의 고서방 매형한테 빌리긴 빌리되 어떻게 말을 꺼내는 것도 문제지만 일단 돈을 빌린 후에도 이자는 얼마로 쳐주고 상환은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가 문제였다. 부부가 남의 빚을 신세를 싫어하긴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영순씨는 결백 증을 넘어 거의 신경질적으로 빚지기를 싫어해 어떻게든 단 하루라도 빨리 갚으려 할 것이었다. 우선 년 3%정도 이자를 준다면 일 년에 이자가 150만원이 되고 원금도 한 천만 원씩 갚으려면 합계, 1, 150만원 한 달에 근 100만원씩을 생활비에서 떼어내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300만원 조금 넘는 연금에서 열찬씨의 잡비를 70만원 영순씨가 나머지 230몇 만원을 가졌는데 거기서 월백만 원을 만들려면 열찬씨와 영순씨가 각각 얼마씩 추렴하느냐가 문제였다. 벌써 40년 가까이 된 신혼시절부터의 전통대로 부부는 바로 맥주 두 병을 식탁에 놓고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누가 얼마를 내느냐 단순하게 액수를 정하기보다 우선 평소에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하던 외식을 줄이자는 데 합의는 했으나 미혜씨의 경우처럼 거의 매일이다시피 영순씨에게 매달리고 만나면 매번 외식을 하는 판이라 언니가 두 번 사면 자신은 한번이라도 사고 언니가 소고기를 사면 아니고회를 사면 자신은 막국수나 물회 정도라도 사야되는 형편이라면서

“손님을 만나거나 가족전체 외식이 아닌 경우 우리내외가 입맛이 없느니 심심해서 어디 나가느니 하는 외식부터 줄이자.”

열찬씨의 말에

“그보다 먼저 당신 술값 좀 줄이지.”

“요즘은 일부러 술 마신다고 나가는 일은 거의 없는데 친구를 만나러 가다보면 가끔 술값이 드는 일이 있어서 그렇지.”

“그럼 외출회수를 줄여야지. 특히 산우회에 훌라를 치러 가는 일과 서회장님 사무실에서 고스톱을 치는 일.”

“그게 내 살아가는 쉼터, 아니 숨구멍 같은 건데 그걸 막으면 어쩌나?”

“그래도 한번 나가면 몇 만원씩은 쓰고 오잖아? 심지어 5만 원, 10만 원을 잃은 날도 있다면서.”

“그럼 한 주에 한두 번씩 나가던 외출을 산우회 한번, 서 회장님 사무실에 한번으로 줄이지.”

“또 당신의 모임 좀 줄이고.”

“그게 쉽나? 평생 친하게 지내온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 혼사 때 참석한 사람들이라 부조문제도 그렇고.”

“그럼 일단 새 모임을 만들거나 새로 사람을 사귀지는 말고.”

“그래야지. 그러면 당신이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주부가 생활비 쓰는 일에 어데 줄일 데가 있나?”

“내가 보기에는 당신의 지출이 생활비, 아파트관리비, 병원비 같은 기본경비 외에는 꼭 안 써도 되는 경비를 쓰는 게 더러 있어.”

“어떤 경비?”

“아이를 봐주는 것만 해도 그런데 아이에게 들어가는 소소한 장난감과 군것질 비, 병원비, 시장에 간 김에 영서네 장도 같이 봐서 음식을 만드는 일...”

“아이어미가 시장 비를 따로 계산해준다고 해도 부모자식 간에 먹는 것 가지고 일일이 돈을 받을 수도 없고 장난감, 군것질이야 내가 좋아서 해주는 일이고 단지 접종 비를 비롯해서 목돈으로 드는 병원비만 받지.”

“당신이 하기 좋은 말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매달 한 50만 원 이상 더 딸려간다고 했잖아?”

“그거야 딸이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잡기를 바라서 그렇지.”

“그렇지만 28평에 사는 우리가 48평에 사는 딸을 걱정하는 것도 우습지 않나? 이제부턴 따로 카드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웬만한 지출은 카드결제를 하고 거기서 한50만원을 아껴.”

“그렇게 따지면 매주 당신이 사는 로또복권 값도 아껴.”

“그거야 심심풀이로 하는 거지만 만에 하나 1등에 당첨되면 단번에 빚을 갚을 수 있는 기적의 문이 아닌가?”

“야유회 가서 한 사람당 둘씩 걸리는 추첨도 잘 안 걸리는 당신이나 나나 그런 행운이 올 사람이요? 한 달에 그 돈 2,3만 원이라도 아끼소.”

하면서 매달 열찬씨가 30만 원 영순씨가 65만 원씩을 떼 내어 따로 모아 연말에 원금과 이자를 갚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며

“그렇지만 연말에 청첩장이 너무 많이 올 경우 당신이 조금 도와줘,”

“그건 그 때 봐서.”

하고 일단 땅을 사는 데는 의견을 모았지만

“당신은 이제 가만히 있어봐. 박장로를 통해 지주에게 땅값을 절충하되 돈이 모자라 땅을 살듯 말듯 애간장을 태우면 땅값이 좀 내려갈 것 같아.”

“당신에게 그런 꿍꿍이가 다 있소?”

“직장생활하면서 타협이나 절충, 협상도 해본 거 아니겠어? 내 생각에 우리가 사려는 땅이 중심에 위치하기도 하지만 이번 택지개발부지 중에 유일하게 지목이 대지인 원 집터라 자신들도 그 땅을 파는 것이 비로소 그간 투자한 투자비의 원금에 도달하고 남은 땅을 팔면 이익이 되는 등 한 고비가 될 거야.”

“당신 보기보다 치밀한 사람이네.”

하고 박장로를 통해 절충을 하니 처음 2억 1천만 원이던 땅값이 뭉뚱그려 2억으로 내려왔다. 땅값은 그렇다 치고 지금 대를 베어네고 있기는 하지만 대 뿌리를 파내고 한 20년 넘게 경작을 않아 골티라는 골짜기 도랑에서 흘러내린 토사를 퍼내고 정지작업을 하기까지 너무 많은 힘이 들 거라고 해서 또 5백만 원이 내려갔다. 그러고도 또 한 보름 소식을 끊으니 장영희란 이름의 여주인이 과연 땅을 사긴 살 거냐, 만약 살 의향이 있다면 한번 마주 앉아 절충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 정도면 또 한 오백은 깎아질 터였다. 거기에다 열찬씨가 사려는 땅의 위쪽 대밭부분과 옆쪽 들깨밭쪽에 건축을 하기위해서는 땅이 넓은 열찬씨네 땅의 일부를 쪼개 넘겨주어야 하므로 자동으로 7,8평이 떨어져 나가니 대지도 반듯해지고 비용이 또 한 500이 줄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자기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긁어도 1억 8천 정도라고 우는 소리를 하자 일단 만나서 협상을 하자고 했다. 그러면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부동산중개사사무실이 아닌 법무사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하니 자신들의 거래처가 있다고 오케이 신호를 보내왔다.

월요일 계약을 하루 앞둔 날 장촌의 누님내외를 만나 간월계곡의 <장수마을>에서 매운탕을 시켜놓고

“자영요, 땅도 맘에 들고 가격도 어느 정도 절충되어 내일 계약을 할라캅니더.”

“그래 잘 됐구나.”

“더도 덜도 말고 딱 5천만 원만 빌려주소.”

“그래 내 한 평생 남에게 돈을 잘 안 빌려주지만 처남이 평생 첨 부탁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우리 남수씨 얼굴을 봐서라도 빌려는 줘야지.”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평소 처남댁이나 처수라고 부르던 영순씨를 <남수씨>라는 생소한 호칭으로 부르며 선뜻 승낙을 하는데

“이자는 법정이자정도로 해서 한 2%로 하면 안 될까?”

“안 돼. 3%는 조야 되.”

“예에? 자형 그건 은행이자 택인데?”
“은행이자가 보통 연리 3.5에서 4%아이가?”

“자형 그건 대출이자고 자형이 은행에 적금 넣으면 3%도 안 될 건데.”

“그래도 일단 3%는 되어야지.”

“아,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차남남매간에 돈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설마 한 2%를 쳐주면 넉넉하리라고 영순씨에게 큰소리를 탕탕 쳤던 열찬씨와 영순씨의 얼굴이 동시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 돈은 준비해놓을 테니까 계약하고 나서 언제든지 필요하면 가져가.”

“알았습니다.”

각자 생각에 잠겨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며

“명촌언니한테는 돈 이야기 하지마라.”

덕찬씨의 말에

“우리가 뭐 그 정도를 모를 나입니까?”

영순씨가 웃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금찬씨게 식구가 몽땅 교회에 간 것이었다.

식당 앞에서 헤어지며

“우리는 인자 월내 오리에 있는 밭에 가볼 겁니다. 슬슬 철수할 준비도 하고.”

열찬씨의 말에

“그래. 아이구 내가 다 속이 시원하다.”

“예에?”

“처남 니가 그 원전동네에서 빠져나오니까 말이다.”

“아, 예에.”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